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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 새로운 대작 게임인 ‘아이온’으로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05년 이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던 김택진 사장이 ‘아이온’을 앞세워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
1 인터뷰
소프트웨어로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 게임 사업을 시작했다는 김택진 사장. 그는 한국에서 통하는 게임은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법칙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도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리니지(Lineage)’ 이후 엔씨소프트의 모든 역량을 집대성한 아이온으로 대박을 터뜨린 그는 “온라인게임의 프론티어라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아이온’이 미국 PC게임 판매 1위를 기록,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게임 개발 외에 하루, 일주일은 보통 어떻게 보내나요. 게임 개발은 단순히 기술적인 능력뿐 아니라 방대한 역사적 지식,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콘텐츠 사업이다. 김 사장은 일주일에 4~5권의 책을 읽으며 역사, 철학 등의 분야에서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특히 게임 개발에 뛰어든 계기나 이유 같은 것이 있나요. 그는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가장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가 바로 게임”이라며 “‘인터넷을 엔터테인먼트망으로 보고 게임을 한번 해봐야지’라는 생각으로 엔씨소프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게임은 어떤 산업이고 여기서 성공하려면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나요. 그는 해외에 연구소와 스튜디오를 설립하면서 현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며 아이온의 경우 한국, 북미, 유럽 개발팀이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만든 게임이라고 말했다. 온라인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공시를 번복하면서까지 그가 아이온의 출시를 수차례 연기한 것도 결국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탄탄한 스토리, 사실적인 그래픽 등 높은 완성도가 아이온의 성공비결이 됐다. 개인·회사 차원에서 연구·개발(R&D)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사업을 온라인게임 밖으로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꼼꼼하기로도 유명하다. 게임의 콘셉트뿐 아니라 디자인, 그래픽 등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신경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챙기는 모습 때문에 그에게 붙은 별명은 ‘김 대리’. 하지만 그는 “‘김 대리’부분은 오해”라고 말했다. 경영인으로서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1997년 엔씨소프트 창사 후 처음 리니지를 선보일 당시가 외환위기 때였습니다. 성공이 있는 곳엔 항상 실패가 따라다닙니다. 회사가 어려웠을 때는 언제였습니까. 한국 온라인게임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라고 봅니까. 또 엔씨소프트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면. 한국 온라인게임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그는 온라인게임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원천기술,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없이 인적, 물적 자본만 투자해서 복사본을 만든다면 게임 산업은 성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이러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대로 구현해낼 ‘원천기술’의 개발이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게임 업계를 향한 중국의 추격이 만만찮습니다. 반면 중국은 온라인게임의 소비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게임중독이나 아이템 지하거래 등과 관련 온라인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들도 있습니다. 2 리더십 탐구 김택진 사장이 소프트웨어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85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재학 시절 컴퓨터연구회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대학선배인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과 함께 ‘아래아 한글’을 개발했다. 한글타자 연습프로그램인 ‘한메타자’와 한메타자의 대표적인 게임인 ‘베네치아’도 김 사장의 작품이다. 리니지 개발 당시 외환위기로 고전 승부사적 기질이 성공요인 |
엔씨소프트와 김택진.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 한국 온라인게임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11월 엔씨소프트가 5년 만에 내놓은 야심작 ‘아이온’은 베일을 벗자마자 파죽지세의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마저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아이온은 리니지 이후 주목할 만한 흥행작이 없었던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의 중흥을 불러오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게임의 승패는 개발자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김택진 사장에게도 화려한 조명이 비춰지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역사가 온라인게임의 역사라는 공식은 아이온과 김택진 사장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 |
해외 매출이 절반 이상…국내 기업 이미지 벗어 김 사장 성공신화는 젊은이들의 희망 |
1 블록버스터급 투자
5년 동안 230억원 들여 개발한 ‘대작’
배경음악, 런던심포니가 직접 연주
경희대 인근의 한 PC방. 토요일이라지만 새벽 3시를 넘긴 시간이다. 사람이 제법 많다. 대략 30여 명의 이용객 가운데 열댓 명 정도가 ‘아이온(AION)’에 접속해 있었다. 아이온에 몰입해 있던 한 이용객은 “아이온이 그래픽이나 음악 같은 부분에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와우)’ 이상으로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베고 찌르고 피하고 반격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이 게임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꼬박 1년째 아이온에 빠져 있다”며 지금은 “솔직히 중독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PC방 업주는 “평소엔 손님들의 3분의 1, 많을 땐 절반 정도가 아이온을 찾는다"고 귀띔했다.
그 말에 기자도 호기심이 생겨 아이온 서버에 접속해 봤다. 홈페이지에서 회원에 가입한 후 주인공 캐릭터도 만들었다. 게임 시작. 기자가 만든 캐릭터가 시작점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섰다. 햇살이 안개를 걷어내고 산맥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호숫가로 다가가자 들소들이 한가로이 물가를 거닐며 풀을 뜯는다. 홍학을 닮은 새가 갈대 사이를 배회하고, 바닥이 훤히 보이는 물속에선 물고기들이 자꾸만 뛰어올라 파문을 만든다. 뉴에이지 음악가 유키 구라모토의 선율을 연상시키는 피아노곡까지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니 이것이 게임 속인지 전원풍경을 담은 영화 속인지 헷갈릴 지경. 어디선가 갑옷을 입은 용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괴물들을 쫓아갈 때서야 게임 속은 비로소 소란스러워진다.
아이온은 엔씨소프트가 총 5년에 걸쳐서 개발한 야심작이다. 지난해 11월11일부터 공개 서비스에 들어가기까지 130여 명의 개발팀이 230억원을 들여 만든 게임이다. 개발팀이 게임의 스토리 라인과 시나리오를 위해 참고한 문헌만 해도 500여 권, 캐릭터와 배경화면을 위한 밑그림만 수만 장이다.
음악제작에만 3년 걸려
게임에 등장하는 배경음악은 자그마치 650곡. 재일 음악가 양방언의 지휘 아래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한 곡들로 음악제작에만 3년이 걸렸다. 그 비용만 10억원으로 만만찮은 수준이다. 아이온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담은 앨범이 교보문고와 인터파크에서 음반 예약과 판매 부문 각각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캐릭터가 공격이나 방어 시 터지는 효과음 등 각종 효과음은 6000가지 이상이며, 게임 속 목소리를 위해 전문성우 30여 명이 녹음작업에 참여했다.
이런 막대한 작업을 진행한 개발팀의 속마음이 편했을 리가 없다. “개발 총괄 책임자가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로 두 차례나 바뀌고, 개발을 마무리한 책임자도 요즘 들어 걸핏하면 신체 이상을 호소한다”는 것이 엔씨소프트 측의 개발과정에 대한 소회. 그만큼 아이온 개발은 엔씨소프트 사람들에겐 혹독한 작업이었다.
개발진의 노고에 힘입어 아이온은 지난 1년 사이 그 자체로 게임계의 이슈가 됐다. 인기몰이는 무서울 정도였다. PC방 전문 미디어 PNN이 조사한 순위에 따르면 아이온은 지난해 11월 이후 1년 동안 줄곧 점유율 20%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 사이 순위 한 번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동시접속자 수는 24만 명으로 국내 게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20만 명 선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동시접속자 수가 20만 명이 넘는 게임은 업계에선 ‘국민게임’으로 통한다”며 아이온의 기록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직까지 국민게임의 반열에 오른 것들로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와 ‘와우’, 넷마블의 ‘서든어택’, 넥슨의 ‘카트라이더’, 엔씨소프트의 전작들인 ‘리니지 1·2’ 정도다. 이 관계자는 “한동안 FPS(1인칭 슈팅 게임)에 인기 순위를 내줬던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가 아이온을 계기로 다시 각광받는 중”이라며 게임 업계 내의 기상도가 변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PC게임 판매 1위
해외에서의 인기는 더욱 눈부시다. 북미에서는 본격 서비스가 시행되기도 전에 예약판매로만 50만 장의 패키지가 팔려나갔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NDP에 따르면 아이온은 9월부터 PC게임 부문 판매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산 게임이 온라인게임의 본고장인 북미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한 것은 아이온이 처음이다. 반응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 10월까지 북미와 유럽 두 시장에서만 110만 장이 팔렸다.
북미와 유럽만이 아이온의 서비스 지역인 것은 아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4월 중국에서 처음 아이온의 해외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현재 일본, 대만, 북미, 유럽, 러시아 등에서 각각 서비스 중이다. 엔씨소프트는 현재 세계적으로 260여 대의 아이온 전용 서버를 운영 중이며 중국에서만 157대를 돌리고 있다.
아이온은 엔씨소프트의 ‘실적 견인차’로 올해 3분기 매출 1662억원 가운데 37%가량인 790억원을 벌어들였다. 지난해 4분기부터 지금까지 엔씨소프트가 아이온 하나로 벌어들인 돈만 1900억원에 달한다.
2 글로컬라이제이션
외국 판타지 작가 고용, 텍스트 번역
‘현지형’ 콘텐츠 보강 완성도 높여
아이온이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화 작업에 엄청난 공을 들였기 때문. 아이온은 각 국가별로 전통의상을 게임 내에 추가하기도 하고 현지의 전문 성우를 등장시켜 친숙함을 주었다. 북미 서비스의 현지화 전략에만 1년의 시간을 들일 정도로 치밀한 전략이었다.
엔씨소프트는 북미 시장의 이용자들을 보다 게임에 몰입시키기 위해 1년 동안 별도의 텍스트 번역작업을 추진했다. 16명의 현지 판타지 소설가들을 고용해 게임 속의 대사·용어·스토리 라인의 번역 내용이 현지 게임 소비자들에게 어색하게 들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 그동안 동양권에서 만든 게임이 서양에서 대박을 터뜨린 작품은 거의 없다. 이는 등장인물을 만들 때 문화적인 면을 감안하지 않고, 단순 번역하는 등 현지화 전략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내용에 따로 서양적인 문화를 입히기 보다는 번역작업을 제대로 해서 어색한 느낌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이에 따라 미국판 아이온은 한국 게임이라는 인상을 받기 힘들 정도다.
텍스트 번역에 이처럼 치밀한 공을 들이는 것은 해외 다른 지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 엔씨소프트는 중국과 대만 서비스에서 중화권 전통 황실 의상을 게임 속 캐릭터 의상에 추가하고,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속담을 번역 내용에 대거 반영하기도 했다.
아이온이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획단계부터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현지에 적합한 콘텐츠를 보강하는 이른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세계화+현지화)’전략을 수립한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철저한 현지화 노력에 따라 아이온은 미국, 유럽 등 온라인 게임 본고장에서 이용자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국내 게임 업계의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한동안 블리자드의 와우나 워크래프트 3, 스타크래프트 등이 인기랭킹 상위권에 대거 포진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상태였다. 한때 각광받던 e스포츠 종목만 하더라도 가장 많은 선수들이 등록돼 있는 경기가 10년째 스타크래프트일 정도다.
그렇다고 북미나 유럽 시장의 관심이 국내 게임 산업의 설욕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게임의 본고장답게 미국만 하더라도 연간 350억달러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이다. 또 아이온과 같은 유료 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시장이다. 아이온은 우리나라에서는 월 이용료가 2만원, 미국에서는 15달러로 인터넷 콘텐츠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온라인게임이 전체 게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 내외로 국내 90% 수준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포화상태에 가까운 국내 시장에 비해 해외 시장은 미개척지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북미나 유럽에서 통하는 것 자체로 기업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XL게임즈의 송재경 사장은 “아이온처럼 국내 게임 업계의 기술력이나 콘텐츠 기획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확보됐다”고 평가했다.
3 첨단 기술 총동원
100% 토종 기술 이용,
사실적인 3차원 그래픽 완벽 구현
아이온은 엔씨소프트가 전작인 리니지 1·2로 만들어 놓은 MMO
RPG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MMORPG란 인터넷의 수많은 사용자들이 동시에 접속해 자신의 고유 캐릭터를 육성하면서 그 캐릭터를 통해 서로 교류하는 게임을 말한다. 게임 이용자는 자신의 캐릭터를 육성하기 위해 괴물들을 죽여 경험치를 쌓고 레벨을 올린다. 레벨이 오를수록 캐릭터의 공격력, 방어력, 체력, 마법능력, 전투기술이 상승하며 착용할 수 있는 무기나 장신구 같은 명품 아이템의 종류도 늘어난다.
아이온의 기본적인 게임 체계도 리니지나 다른 MMORPG와 유사하다. 중세 유럽 분위기의 판타지를 스토리 바닥에 깔고 있다. ‘천족’과 ‘마족’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용족’이 이 두 종족을 모두 위협하는 구도가 기본 스토리다. 이용자는 천족과 마족 중 한 진영을 선택해 자신의 캐릭터를 종족의 영웅으로 키워야 한다. 이용자는 그것을 위해 게임 속에 등장하는 괴물들을 죽여 레벨을 올리고, 명품 아이템들을 모아야 한다.
엔씨소프트가 아이온의 대대적인 흥행몰이에 성공한 비결로 꼽는 것은 단연 사실적이고 섬세한 그래픽이다. 아이온의 3차원 화면 속에선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며 때때로 눈도 쏟아진다. 날씨가 추우면 캐릭터가 입김을 뿜고, 캐릭터가 눈밭을 뛸 때 눈 위로 발자국이 남기도 한다. 해의 기울기에 따라 캐릭터의 그림자 위치와 길이가 바뀐다.
3D기반의 아트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감으로 이를 위해 게임 캐릭터의 발바닥 그림자에서부터 한 달에 몇 번, 언제 비를 내리게 할지까지 모두 계산해서 작업했다. 80명의 아이온 아트팀이 그린 그림만 수만 장에 이를 정도다.
엔씨소프트 측은 “아이온은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삼다보니 전 세계 게임 유저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공감할 수 있도록 공들인 부분이 바로 그래픽”이라며 “사실적인 영상 구현에 쓰인 기술은 100% 토종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용자가 주인공의 캐릭터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만들 수 있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시스템도 중요한 인기 요소다. 유저는 자신이 키울 캐릭터를 성별·얼굴·몸매·피부색·헤어스타일·문신·점·수염 등 신체적 특성에 따라 디자인할 수 있다. 캐릭터의 얼굴만 해도 이마·눈·코·입·귀·턱·미간·광대뼈의 길이와 폭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 수가 무려 1억1000만 개. 워낙 다양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보니 유저들 사이에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같은 정치인이나 방송인 강호동, 탤런트 소지섭, 인기가수 원더걸스의 소희 등 연예인을 닮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놀이처럼 유행하기도 한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은 특히 북미나 유럽 쪽 온라인게임 유저들의 취향을 배려한 측면도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온라인 게임 유저들이 자기 캐릭터의 레벨이나 장비가 남보다 우월한 수준이길 바라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북미나 유럽 유저들은 캐릭터를 어떻게든 남들과 달라 보이게 하려는 욕구가 크다고 말한다. 서양 쪽 유저들이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엔씨소프트도 “서양 시장에선 다양한 캐릭터를 선호하는 층이 많아 이런 취향을 고려해 넣은 것이 아이온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4 ‘아이온’ 리뷰
쉽고 편리한 인터페이스
섬세한 그래픽 “WOW!”
아이온은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시리즈 이후 내놓은 MMORPG라는 점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2006년 이후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WoW(월드오브워크래프트, 이하 와우)’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11월11일 국내에서 공개 서비스를 시작한 아이온은 동시 접속자 수 20만 명을 돌파하면서 외산 게임인 와우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각종 게임 순위에서 현재 50주 이상 1위를 지키고 있다.
아이온의 국내 성공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아이온은 와우 이후 위축됐던 MMORPG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대작 외산 게임에 맞서서 국내 온라인게임도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다시금 MMORPG 시장으로 돌아오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탄탄한 스토리, 화려한 그래픽이 성공 비결
아이온은 기존의 리니지, 리니지 2로 갖춰진 각종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고, 높은 완성도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동서양 모두를 공략하는 차세대 완성형 글로벌 MMORPG를 목표로 추진됐다. 게임을 처음 접한 대부분의 유저들은 화려한 그래픽과 쉬운 조작방법 그리고 익숙한 인터페이스로 쉽게 게임에 적응했다.
특히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인 커스터마이징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제 게임보다 캐릭터 생성에 시간을 더 많이 쏟는 유저가 있을 정도로 아이온은 현존하는 게임 중 최고의 커스터마이징력을 보유하고 있다. 연예인 얼굴부터 귀여운 꼬마까지 원하는 대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기존의 게임들은 한 번 캐릭터를 생성하면 다시 바꿀 수 없지만, 아이온에서는 게임의 장점인 커스터마이징을 위해서 외모변경권이라는 부가서비스를 통해 여러 차례 자신의 캐릭터를 변신시킬 수 있게 했다. 아이온은 유저들로 하여금 외모변경을 통해 마치 새로운 캐릭터로 플레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여 질리지 않도록 했다.
기본적으로 유저들은 천족과 마족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며, 여기에 용족이라는 제3의 종족이 이들을 위협하는 구도다. 이들 3개 종족이 전투를 벌이는 어비스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아이온에서 최초로 시도된 어비스는 마치 우주공간에서 캐릭터가 이동, 전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며, 여타 게임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참신한 콘텐츠다.
전투 위주의 게임이지만 강렬하고 투박한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름답고 섬세한 그래픽의 아이온은 지금까지 등장한 온라인게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그래픽을 자랑한다. 환상 속에만 존재할 듯한 공간에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아름답고 섬세한 그래픽은 여성 유저들의 마음을 많이 흔들었으며, 이어서 상당히 쉽고 편리하게 구성된 게임 인터페이스와 조작법 덕분에 유저들은 아이온이라는 게임에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다. 이렇게 유입된 여성 유저들로 인해 레기온(길드), 파티사냥, 웹사이트 활동 등이 매우 활발해져서 유저들 간의 끈끈한 단결력이 생겨났다. 이는 아이온 성공 요인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비행이 가능한 게임은 많지는 않지만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온과 같이 평상시 이동에 비행의 재미를 더한 게임과 비행 도중에 전투 또는 다른 행동이 가능한 게임은 거의 없다. 물론 일정 시간이 제약된 비행은 충분하지 않지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메리트가 됐다.
지상을 이동하다가 점프 후 사용할 수 있는 활강 시스템은 넓은 지역을 뛰어 다닐 때 빠른 이동은 물론이고, 전투 중이 아닐 때에도 유저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어 가장 성공한 콘텐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은 자신만의 특정 콘텐츠(예를 들면 사냥과 전투 등)들에서만 재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온은 전투 이외의 다양한 것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요소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리니지 2 이후 MMORPG 유저는 계속 줄어들었고, FPS(1인칭 슈팅 게임)가 게임 시장을 주도하면서 일부 마니아 유저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온이 나올 당시에는 사실상 MMORPG 유저보다는 FPS 등의 캐주얼 게임 유저가 더 많았다.
캐주얼 게임 이외의 MMORPG들은 이미 만들어진 틀에서 유저가 학습하면서 플레이하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스트레스와 함께 적응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아이온은 처음 MMORPG를 접하는 유저들을 최대한 배려했다. 결과적으로 쉬운 접근성 덕분에 연령과 성별에 무관한 다양한 유저들이 아이온을 플레이 할 수 있게 됐는데 이것은 성공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해외 게임들이 동양에서 성과가 높지 않듯이 동양권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등장인물 등 문화적 차이가 큰 이유였는데 아이온은 기획단계에서 글로벌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현지화 전략을 준비해 어색한 느낌이 없는 번역에 주력했다. 덕분에 아이온은 해외 유저 사이에서 동양 게임이라는 인식을 최소화했다.
또 이전의 게임들은 캐릭터의 능력치 향상에 비중을 많이 두어 게임의 깊이가 떨어지며, 몰입도가 약했다. 아이온은 천족, 마족, 용족이 다투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중간에 삽입되는 영화 같은 컷 신으로 게임 몰입도를 높였다.
신규 유저 배려 부족 ‘옥의 티’
아이온은 분명히 국내 MMORPG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전체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많은 의미를 남긴 게임이 됐다. 매출과 함께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해외 서비스에서의 성공도 국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아이온이 국민게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첫째로 출시 1년이 지난 지금 게임 내 직업 간의 밸런스 문제가 아직도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다. 오픈 초기에는 여러 차례 직업 스킬 등의 밸런스 관련 업데이트가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유저들의 불만은 여전하고 관련 업데이트 소식이 없어졌다. 현재 대부분 서버에서는 특정 직업으로 유저가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둘째로 신규 유저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아이온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고 대부분 사람들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유저들이 있어야 한다. 초반 콘텐츠는 아직도 1년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추가되는 콘텐츠들은 기존 유저들에게 유리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새로 시작하는 유저들은 기존 유저들과의 차이를 좁히지 못해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로 수많은 유저가 동시에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최적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아이온은 화려한 그래픽과 세밀한 커스터마이징의 부담으로 대규모 전투 시 고사양의 컴퓨터에서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며, 조금 낮은 사양에서는 원활한 게임 진행이 힘들 정도다.
넷째로 꾸준한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아이온이 미완의 부분을 가다듬는 작업을 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새로운 콘텐츠의 개발로 유저들이 함께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게임이 돼야 한다.
1 과거&현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서
‘리니지’성공 계기 게임업체로 대변신
엔씨소프트의 역사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통하는 게임은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법칙을 엔씨소프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씨소프트의 대표적인 게임인 리니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만, 북미, 일본, 중국 등 각 지역에 진출하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인터넷 콘텐츠로 손꼽히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해외 시장에서의 성장세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다. 2001년 업계 최초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으며, 2004년 2895억원, 2005년 338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3466억원의 매출 중 해외에서 1280억원을 벌어들었으며, 로열티로도 201억원을 거둬들여 업계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112% 증가한 166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 목표는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늘어난 5860억원이다.
이러한 실적에 따라 지난해 연말 4만원대였던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11월18일 현재 13만7000원(종가)으로 거의 세 배 가까이 뛰었다. 시가총액은 2조9833억원대. 시가총액으로는 웅진코웨이, 현대산업개발, 대림산업 등과 맞먹는 규모이며, CJ제일제당, 제일모직, 현대증권보다 기업가치가 높다.
직원은 1997년 17명에서 12년 만에 1800여 명으로 늘었다. 해외법인의 직원까지 합치면 3000여 명에 달한다. 엔씨소프트는 1000여 명의 개발자들이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세계 정상급 게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 각각 게임개발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에도 게임개발스튜디오를 설립해 동서양의 게임 개발자들이 국경을 뛰어넘어 종합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리니지로 게임 한류 주역으로 떠올라
김택진 사장이 엔씨소프트를 창업한 것은 1997년. 게임 회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시작했다. 현대전자 연구소에서 IT 솔루션을 연구하던 10여 명의 엔지니어가 주축이 돼 각종 시스템 통합, 홈페이지 제작 등을 주업무로 삼았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 탄생의 계기가 된 리니지는 이러한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 중 하나에 불과했다. 2년 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나온 리니지가 워낙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예 게임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1998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는 당시 게임들이 텍스트 중심이거나 PC통신을 배경으로 했던 것과는 달리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게임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동시접속자 수는 1998년 말 1000명에 불과했던 것이 1999년에는 1만 명, 2000년에는 10만 명, 2001년에는 30만 명을 돌파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리니지 폐인’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였다.
리니지의 후속 게임인 리니지 2도 대만, 중국, 북미, 유럽 등에서 전 세계 동시접속자 수 35만 명, 국내에서만 동시접속자 수 10만 명을 기록하며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게임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해외 시장 개척과 독창적인 게임 개발로 북미, 중국, 일본 등에 진출해 게임 한류의 주역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현재까지 ‘리니지’의 누적매출은 1조6000억원. 전 세계에서 서비스되는 국가는 26개국. 누적 회원 수는 4300만 명에 달한다. 한 달에 1번 이상 게임에 접속하는 회원은 110만 명.
리니지 탄생 이후 엔씨소프트는 급성장했다. 2000년 코스닥 등록 이후 2003년에는 코스피 시장에 변경 상장했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펼쳐
하지만 항상 잘 나가는 기업에게도 위기는 있기 마련이다. 2000년 이후 승승장구해 오던 엔씨소프트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05년부터. 리니지를 이을 대작 게임을 만들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만들어 내는 게임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매출은 성장 정체에 접어들었고, 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엔씨소프트가 벼랑 끝에서 내놓은 야심작이 바로 아이온이다. 아이온은 각종 기록을 세우며 엔씨소프트의 재도약 기반이 됐다.
국내 온라인게임 업계의 선두주자로서 엔씨소프트는 IT 기업의 특성을 살려 젊은 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에게 해외 교류의 기회를 주는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 ‘엔씨-하자 글로벌 프로젝트’를 비롯해 대학생들이 도보로 국토를 걸으며 자신의 도전정신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엔씨소프트 문화 원정대’를 실시한 바 있다.
서울 삼성동 신사옥 입주 이후 다양한 사람들이 게임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여갈 수 있도록 견학 프로그램인 ‘DTR(Dream To Realize)’을 운영하고 있다. 또 엔씨소프트의 오픈마루스튜디오는 국내 오픈소스 저변 확대를 위해 ‘WOC(Winter of Code)’ 매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꿈은 한국에서 아시아, 북미, 유럽까지 온라인게임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계속 만드는 것이다.
tip 엔씨소프트의 성공작&차기작
◎ 국내 게임의 이정표 리니지 1·2
엔씨소프트의 대표적 성공작은 ‘리니지 1·2’다. 엔씨소프트는 지금까지 이 두 게임만으로도 2009년 3분기까지 2조원을 벌어들였다. 명실상부 엔씨소프트의 효자형제다.
리니지 1은 김택진 사장이 엔씨소프트를 창립한 후 처음 개발에 착수한 작품이다. 1998년에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도 인기 랭킹 10위 안에 들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원조 MMORPG다. 국내 MMORPG의 공식을 만든 것으로도 평가 받으며, 전 세계에 4300만 명의 가입자를 두고 있다.
후속작인 리니지 2는 2000년 10월부터 개발에 착수해 120명이 3년 동안 100억원을 들여 만든 야심작이다. 2003년 10월부터 본격 서비스에 들어간 뒤 리니지 1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인기랭킹 10위 안에 머무는 인기 게임이다.
◎ 차기작 ‘블러드앤소울’, ‘길드워 2’
엔씨소프트는 아이온의 인기를 이어갈 차기작으로 ‘블레이드앤소울’과 ‘길드워 2’를 꼽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출시 일정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다만 내년 중 블레이드앤소울의 비공개 테스트가 실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블레이드앤소울에 대해 엔씨소프트는 ‘무협 액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존 MMORPG들이 거의 중세 유럽 분위기의 판타지물이라는 점과 확연히 차별화를 이룰 것이라는 설명이다. 엔씨소프트 측은 “‘내공’을 쌓아 ‘장풍’을 쏘고 ‘경공’을 사용해 날아다니는 등 무협지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장면을 게임 속에서 실현시키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또 아이온과 마찬가지로 섬세한 그래픽 기술을 기반으로 동양 분위기의 게임 속 세계, 무협지 세계관이 녹아 있는 스토리, 극대화된 액션 효과 등이 특징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
‘길드워’는 2005년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게임이다. 세계적으로 600만 장 정도가 팔려나갔다. ‘길드워 2’는 엔씨소프트의 북미 지역 자회사인 아레나넷에서 개발하고 있다. ‘길드워 2’는 MMORPG 형식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2 미래
인재양성·기획력 향상으로
경쟁력 높여야 지속성장 가능
그동안 엔씨소프트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IT 인프라 덕분이다.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과 함께 인터넷 이용자가 급증해 온라인게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게임을 출시해도 IT 인프라가 받쳐 주지 못했다면 온라인게임 시장이 이만큼 성장할 순 없었을 거란 의미다. 물론 리니지, 아이온 등 획기적인 게임을 내놓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
엔씨소프트는 지난 12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다. 이런 성장이 향후 10년 이상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김택진 사장은 “엔씨소프트의 목표는 지구촌 한 사람이라도 즐겁게, 세상 사람들의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엔씨소프트가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미래 점치기 어려운 게임산업
게임 산업의 성장성이 조명 받고 있지만 업종 자체의 특성상 불안정한 흥행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게임 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꼽으며 호평하고 있는 반면 시장은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흥행 산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게임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게임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내재해 있던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의 위험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블리자드를 비롯한 외국 게임업체들이 국내로 계속 진출하면서 업체 간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다.
업체 간 경쟁구도 강화로 이제 웬만한 품질의 신작 게임이 아니고선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어졌다. 게임업체들은 흥행 리스크에 대한 부담에다 고품질의 게임 개발을 위해 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게임 시장의 경우에는 게임 하나만 ‘대박’을 쳐도 승산이 있기 때문에 진입과 퇴출이 비교적 자유롭다. 그래서 온라인게임 업계에는 선도 기업에 대한 이점이 거의 없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항상 경쟁과 게임 개발에 대한 비용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흥행 게임들이 나타났고 그 히트 게임들보다 수백 배 많은 게임들이 시장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게다가 흥행 게임을 배출했다 해도 그 게임이나 후속작이 지금까지 게이머들의 곁에 남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성종화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이온이 성공적으로 진입한 북미·유럽 시장에서 추가 판매가 지속적으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우려와 달리 장기적으로 성장성이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 성공 가능성이 높고 체계화된 게임 개발력을 보유하고 있고, 글로벌 게임 시장의 높은 성장을 엔씨소프트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영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엔씨소프트는 향후 고성장이 예상되는 세계 온라인게임 시장 내에서 전 세계 게이머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개발, 판매할 능력을 갖춘 세계 2위 업체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와 업체 관계자들은 엔씨소프트가 이런 험난한 가시밭길을 뚫기 위해선 “해외 진출만이 살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과 일본, 유럽 등 신흥 온라인게임 국가들의 도전이 거세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우리나라 게임 상당수가 현지 게임에 밀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인구 면에서 큰 게임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북미나 유럽, 일본 등 보다 규모가 큰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수년 전부터 이런 점을 인식하고 일본, 북미, 유럽을 비롯한 해외 각 지역 진출에 박차를 가해 왔다. 엔씨소프트는 미국, 중국 및 일본에 현지 게임개발스튜디오를 설립한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외국에서 출시될 게임은 현지인들의 취향에 맞게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현지 게임개발스튜디오의 중요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는 해외 시장 공략과 함께 단일 장르 의존도 탈피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방점을 찍고 영토를 계속 확장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김택진 사장은 “리니지 시리즈와 아이온으로 주도권을 틀어쥔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 장르에서 탈피해 캐주얼, 게임포털 등 보다 대중적인 장르로 게임 포트폴리오를 확실히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포털 등 대중적 장르로 포트폴리오 확대”
최근 세계 게임 업계는 지각변동을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내에 게임 간의 ‘플랫폼’ 경계가 무너지고, 유력 게임사 간 합종연횡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엔씨소프트는 이 같은 변화에 제대로 적응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미래의 트렌드는 콘텐츠 산업이다. 엔씨소프트의 수익률이 현대자동차 대비 두 배가 넘는다는 점에서 콘텐츠 산업이 얼마나 고부가가치 산업인지를 알 수 있다. 미래 콘텐츠 산업에는 물리적, 기계적인 단순 기능성 위주 기술에서 벗어나 감성이 중시되는 감성 기반 기술이 필수적으로 포함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엔씨소프트가 미래 콘텐츠 산업에 대한 강한 기술적 우위가 있어야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엔씨소프트 역시 저작권 문제 해결, 인재 양성, 기획력 향상 등을 통해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