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그 꿈을 이루다
부산의 향기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으로 시작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미풍에는 항구의 열기가 묻어 있다. 해운대, 태종대와 더불어 부산의 3대 관광 명소로 등극한 곳이 감천동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달동네에 불과했던 곳이 부산 여행의 중심이 되었다. 부산 사람들은 감천동을 태극도 마을이라 부른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곳에 1950년대 후반 신흥 종교인 태극도 신도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마을이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3천 400여 가구에 9천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살았다. 좁고 비탈진 터에 많은 사람이 살다 보니 집을 계단식으로 지을 수밖에 없
었다. 그것도 아주 다닥다닥 붙여서. 지금의 감천문화마을이 있게 된 계기는 2008년 무렵 재개발 사업이 무산되면서부터다. 슬럼화
되어가는 달동네를 그냥 둘 수 없었기에 금속공예가 진영섭 작가를 비롯해, 뜻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2009 마을 미술 프로젝트 _ 꿈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를 시작했다. 그러자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10여 년 만에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골목 여행의 성지가
되었다.
희망의 푸른빛을 노래하다
산복도로는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다. 평야지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길이다. 땅 좁은 부산에 궁여지책으로 만든 도로이다
보니 등산하듯 골목길을 올라야 한다. 산복도로 한가운데 감천문화마을이 있다. 산비탈 가파른 길을 마을버스가 ‘부릉부릉’ 잘도 다
닌다. 한겨울에 눈이라도 내리거나, 날씨가 추워 도로라도 얼어버리는 날이면 출근대란, 등교대란이 일어날 법하다. 하지만 천만다
행으로 부산은 따뜻하지 않던가.
부산은 항구다. 들고 남이 다른 도시에 비해 잦다. 이별도 많고 만남도 많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토착민, 이주민, 피란민이 뒤엉켜 감천동 비탈진 곳에 모여들었다. 힘겨운 삶의 연속이었지만 억척스럽게 이겨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퇴락한 달동네로 변해 기억의 저편으로 물러갈 때쯤 문화마을로 새로이 거듭났다. 생명의 물결이 감천동을 문화마을로 탈바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