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생각한다.
가끔 아들네와 식사를 하다보면 아들녀석이 푸념을 늘어 놓는다.
“ 아~, 5월 달이 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왜?” 하고 물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나도 마흔 고개를 넘긴 아들의 나이 시절에는 육군본부에서 나름 국가와 군의 발전을 위하여 골몰하느라 어린 자식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는 아내에게 다 맡겨두고 주어진 과제 해결에 내 온 열정과 상급자의 신뢰에 실망을 드리지 않으려고 정말 내 모든 지혜를 다쏟아붓고 그래도 버거우면 지난 군생할동안 쌓아온 분들의 협조를 받아 지원을 받기도하며 관련부서 실무차를 찾아다니면서 증 창설부대 시설과 소요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소요 예산과 인원편성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느라 하루 해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모르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은 내가 살테니 아이들 데리고 나와라.같이 저녁이나 먹자.” 하고 모인 자리인데도
왜 그렇게 오월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걸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요즘처럼 스마트 폰도 없었다. 그 시절에는 산골 촌놈 주제라 방과후엔 책가방 던져두고 지게를 지고
땔 나무를 하러 산천을 헤매기가 일 수였다.
가설극장이라도 설치되면 잘 나가는 친구따라 영화 구경 가는 것도 큰 즐거움이던 시절도 있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나의 경우에는 극장은 생각지도 못하고 살았다. 설사 생각이 있었다고 해도 극장 갈 용돈을 어디서 구할 데도 없었고 얻을 수도 없었다. 홀로 삼 남매를 기르시며 노심초사하는 어머님께 언감생심 영화관에 갈 돈을 타내려고는 꿈도 못 꾸던 처지였다. 철도청에 다니는 일제시대 유학을 다녀온 삼촌이나.
둘째 엄마까지 있던 친구를 제하고는 대부분의 내 또래들은 꿈이 비슷했다.
“어서 세월이 흘러서 학생 입장 불가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하고 말이다.
그러던 내가 어느 덧 세월이 흘러 나이가 종심에 이르렀으니, 누구의 노래말처럼 비우고 버리고 살아도 기껏 백 년도 힘든 인생인데 아까운 인생, 덧없이 늙어가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등바등하며 살아온 아득한 세월이 덧없다.
“오월에는 돈이 들어갈 일이 너무 많아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누나 생일, 마누라 생일, 조카 두 녀석의 생일....”
5월의 여왕, 오월의 신부, 말이야 멋지고 좋지만,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살면서도 오월이 힘이 든다는 것에 수긍이 간다.
나부터도 아들이 어버이 날이라고 내미는 봉투가 싫지는 않으니 말이다.
더구나 지금은 나라가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더더구나 우한 코로나 탓에 일년 반이나 넘게 모든 공공 시설이 다 문을 닫아서 노인들마져 집을 나서면 갈 곳이 없다.우물안 개구리처럼 근시안적인 한심한 정치지도자들탓에 나라 돌아가는 꼴도 엉망이고 제정신인 사람도 우울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각박하고 암울한 세상이다.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유행어처럼 되 뇌인다는 말에 3포( 연애, 결혼, 출산포기) 시대 ,5포( 3포에 취업 포기, 내집 마련 포기) 시대라는 말이 있고, 거기에 더하여 요즘은 7포( 대인관계와 꿈을 포기) 시대에 산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정말 딱하기도 한 세월이다.그런 우리의 젊은 이들에게 가정의 달이 어떤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5월에는 정말 기념일이 많기도 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바다 식목의날, 유권자의 날, 식품 안전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처님 오신 날, 발명의 날, 세계인의 날, 부부의 날, 방재의 날, 바다의 날 등 하루 건너 하나씩 기념일이 있는 달인데 우리 가족 중에는 오월에 생일을 맞는 사람이 네 사람이나 있으니 아들이 그런 말을 할만도 하다.
명심보감에는 효를 강조하는 말이 많이 나온다.
젊은 사람들이 제 자식 귀여워 할 줄은 알아서 자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음식은 받아 먹으면서, 부모님이 흘리는 침은 더럽다고 하고, 온통 거리 마다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파는 가게는 즐비한데 초 고령사회 65세인구가 천만에 육박한다는 우리나라에 노인들의 기호품을 파는 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부모가 온 정열을 다 바쳐 자식을 기르느라 피골이 상접할 지경도 모자라서 결혼을 시켜서도 손자들을 돌봐주느라 살던 곳을 떠나서 자녀들이 사는 세종시로 이사왔다는
노인네가 정말 많다. 고시를 합격하여 고위 국가 공무원인 자녀들이 많은 이곳에서는 경로당에서 자식자랑을 함부로 하지 않는것이 예의이기도 하다.
한 부모가 열 자식을 많다고 생각하지 않고 키워 내었건만, 열 명의 자식들은 한 부모 모시기를 힘들어 한다고 하는
구절도 있다. 수 천 년 전에 나온 선현의 말씀이지만 지금도 들어맞는 말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문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명심보감 구절을 어찌 알기나 하리요..
지금은 효의 개념도 많이 변했다. 자녀들에게 나이든 부모님께 일방적인 섬김을 강요하고 문중에 효자가 많이 났다고 자랑을 하던 종래의 효의 개념을 강조하다가는 꼰대 소릴 듣기 안성마침이다. 이제는 부모와 자녀 세대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자식들이 처한 사회적인 여건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상호 보완적 수평적 관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요즘 세대에는 부모 노릇하기도 힘이 들고, 자식 노릇하기도 쉽지않은 세상이다.
가정의 달에 각 연령층이 느끼는 감정을 요약한 에릭슨이란 심리학자의 말이 새삼 관심을 끈다.
유아기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감정은 불안감 이라고 한다.
소년 소녀기의 감정은 열들 감이고, 사춘기의 가장 중요한 감정은 정체성의 위기감이라고 한다. 청년기에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집단속에 자신이 몸을 담고 있다는 소속감이 중요한 감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년 이후에 찾아오는 중요한 감정은 상실감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같은 노년의 삶을 사는 입장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우한 코로나 덕분에 지금처럼 경노당도 문을 닫고 주민 센터의 각종 프로그램마져 중단이된 지금 집을 나서면 갈 곳이 없다.
자식들 다 자라서 자립 해 둥지를 떠나 가고 부모들만 남아 있는 빈둥지에서 받아들이기 싫어도 어쩔 수 없는 빈둥지 신드롬과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나이든 아내들의 과잉 보호 본능을 극복하면서 서리처럼 내리는 늙음을 염색으로 위장을 하려 해도 날마다 깊어가는 주름을 어이할 것인가.
나이 들어감에 따른 한계를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나 친지를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이나 주변에서 만난 친구들과 부담 없이 어울리면서 흔히 말하는 "내가 말이야...."는 씩의 잘난체하는 말을 하면서 철없이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결하는 습관을 익혀가면서, 타인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면서 각 연령 층의 감정도 이해하면서 적응해 나가야 할 수밖에 없다.
가정의 달이라고 모두가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기를 원하기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순응하고 부족한 대로 살아가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남과 자신을 비교해보았자 괜히 자신이 초라해지기 일수다.
가능하면 젊은 시절 가꾸어온 각자 나름대로의 재능을 활용하여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보낸다면 어울릴 사람도 만나고 우울증도 안 걸리고 고혈압 치료도 된다고 하니 좋을 것이다.
가정의 달이라고 특별 한 것을 바라지도 말고 탓하지도 말고 욕심을 줄여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정의 달을 보내는 슬기로운 삶의 자세가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내 속을 끓이며 사느니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살아온 날보다
적게남은 날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