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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서 시를 읽다 (4)
- 테이트 브리턴 갤러리: 영국의 화가들
2013년 6월 10일(월) 오전
런던에서는 9시 30분이 넘으면 지하철 요금 할인 제도(off-peak)가 적용된다. 1일권이 7.30파운드이다. 대부분 미술관이 10시나 돼야 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둘이유가 없다. 게다가 요즘 런던은 해가 오랫동안 하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제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어 한껏 아침 게으름을 부렸다. 단체 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은 여유를 부릴 수 있어서 좋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충분히 하고 길을 나섰다. 마땅한 점심식사 자리와 시간을 알 수 없어서 아침 식사가 중요하다. 더구나 서울에서는 아침도 거르던 집사람이, 이미 아침 식사는 호텔비에 포함되어 있으니 점심식사를 생략해도 좋을 만큼 하루의 영양을 고려해야 한다하여 달걀, 우유, 과일까지 든든히 챙겨 먹었다.
우선 지하철을 타고 핌리코(Pimlico)역에서 내려 테이트 브리턴(Tate Britain)으로 갔다. 오늘의 스케줄은 테이트 브리턴에서 영국 화가들의 그림들을 보고나서 템즈강의 수상(水上) 버스격인 ‘테이트 보트(Tate Boat)’를 타고 템즈강 건너편 테이트 모던(Tate Modern) 갤러리 까지 관람하는 일정이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얼마가지 않아 빨간 공중전화 박스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핸드폰의 등장으로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영국 시내에서는 자주 만날 수 있다. 빨간 공중전화 박스는 영국의 유명한 건축가 길버트 스코트(Giles Gilbert Scott)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공중전화 박스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여인들의 사진과 전화번호를 적은 화려한 전단지가 많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도 유흥가 주변에 주차를 하면 차창에 여인들의 사진과 전화번호가 적인 천연색 명함들이 즐비하게 꼽히는데, 여기 런던에서는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그런 관경을 볼 수 있다.
인류가 이 세상에 창조된 이래 식욕과 성욕은 생존을 위한 기본 욕망이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인가 보다. 중세 이전에는 마음만 서로 맞으면, 혹은 돈만 있으면 언제나 식욕처럼 채울 수 있는 욕망이었고, 중세이후 현대에 이르면서 또한 종교와 나라와 민족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식욕 못지않게 성욕도 자유분방해 지고 있는 것 같다.
<핌리코 지하철역에서 테이트 브리턴 갤러리 가는 길목에서>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갤러리는 런던의 밀뱅크(Millbank)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미술관으로서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테이트 세인트 아이비스(Tate St. Ivies) 갤러리와 함께 같은 테이트 갤러리 네트워크에 속한 미술관이다. 1897년 영국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소속으로 출발해 1955년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로 독립했다가, 2000년에는 현대미술작품들이 테이트 모던으로 분가하면서 지금의 테이트 브리튼으로 개명되었다.
테이트 브리튼은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인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주요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1545년부터 현대까지 영국 화가를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가끔 전시실이 바뀌기도 한다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 위층(Upper Floor)에는 블레이크(Blake)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으며, 중심층(Main Floor)에는 연대별 전시실과 함께 별실로 터너 작품 전시실과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 작품 전시실이 있는 클로어 갤러리(The Clore Gallery)가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중심층 통로에는 무어(Henry Moore, 1898-1986)의 조각이 전시되고 있었다. 아래층(Lower Floor)에는 카페 등 부속 지원시설과 특별전을 위한 방들이다.
테이트 브리튼은 1984년부터 매년 권위있는 현대 미술상인 ‘터너 상(Turner Prize)’ 시상과 수상작가 전시회도 주관하고 있다. 터너 상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영국 미술가들 중 50세 이하의 역량있는 미술가 4명을 선별하여 그들의 작품을 전시한 후, 수상자를 결정하는 상으로, 영국 미술계 뿐 아니라 국제 미술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비중있는 상이다.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도, 아마도 이를 본받아, 금년에 <제2회 올해의 작가상>을 선정한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은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적 잠재성과 비전을 제시하고, 작품활동을 통해 한국미술의 발전 및 진흥에 기여해온 역량있는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하고 후원함으로써, 새로운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 및 담론을 이끌어 내고 한국 미술문화의 발전에 도모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제2회 <올해의 작가상 2013>을 위해 운영위원회가 미술관 내외부 10인의 추천인단에게 각각 1인의 작가 추천을 위촉했으며 추천된 작가들은 5인의 국내외심사위원단에 의해 심사절차를 거쳐 4명의 작가를 선정하였다. 이 작가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별도의 각각의 4개 전시실에서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2013>전에 참여한다. 전시 후반부에 전시된 작품세계를 토대로 2차 심사가 이루어지며 최종 <2013 올해의 작가>가 선정된다’
예술분야에서 권위있는 상이 갖는 의미는 예술발전 공헌에 큰 몫을 담당해 왔다는 것이다. 미술분야에서 프랑스의 살롱전(Salon de Paris), 영국의 터너상, 한국의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등이 미술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문학분야에서는 역시 노벨문학상이 으뜸이겠고, 각국마다 비중있는 상들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이력서에 떳떳하게 올릴 수 있는 상(賞)다운 문학상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얼마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을 때,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반성하는 글을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에게 과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진지하게 숙고하면서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세계의 문단에 이름을 널리 알린 문학인이 얼마나 되는지 묻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나에 대한 질문이라고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삶의 보편적 가치를 승화시킬 수 있는 확고한 나의 예술론을 마련하는데, 그리고 그 위에 보석같은 글을 쓰는데 투자해야겠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삶이 너무도 귀중하기에.
(1) 영국의 대표화가,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Snow Storm - Boat off a Harbour's Mouth, 1842, Oil on Canvas, 91X122Cm, Tate Britain>
터너의 <눈보라 - 항구 어귀에서 멀어진 증기선>에서 우리는 눈보라에 휩싸인 파도 때문에 대상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생동감과 격렬한 운동감을 느낄 수 있다. 터너는 광포한 소용돌이의 효과를 탐구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런 파도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돛대에 몸을 묶어 자연의 변화를 관찰했다고 한다.
눈보라 폭풍의 격렬한 힘, 바람과 파도의 소용돌이, 증기선의 연기, 화면을 제압하는 빛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수평선 가운데로 집중되어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증기선은 폭풍우와 사투를 벌이며 연안을 향하고 있다.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다 한 가운데서 왼쪽의 산더미같은 파도가 우리를 덮칠 것 같은 공포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세계에 대한 질서정연하고 고정적인 표현이라는 기존 회화의 역할을, 터너는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활력적인 탐구로 바꾸고자 하였다.’ 특히 그의 후기작들은 ‘공간과 빛의 거의 추상적인 시각화’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터너는 19세기 가장 성공한 풍경화가로 런던 토박이이며 아버지는 이발소를 운영하였고 어머니는 정신이상자였다. 그러나 터너는 어린나이에 최고의 명문인 영국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에서 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대기의 변화에 따라 풍경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와 풍경을 관찰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심상을 묘사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유화와 수채화에 똑같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한 풍부한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The Fighting Temeraire, 1838, 캔버스에 유채, 91X122Cm>는 런던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2) 문학과 미술의 교감,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The Lady of Shallot, 18888, Oil on Canvas, 153X200Cm, Tate Britain>
라파엘전파의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가 그린 <샬롯의 처녀(The Lady of Shalott, 1888)>는 테니슨의 시 <샬롯의 처녀>(The Lady of Shalott, 1832)>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녹음이 짙은 영국의 목가적인 풍경 저녁 빛살 속에 흰옷을 입은 여인이 슬픔을 가득 머금고 작은 보트를 타고 있다. 배의 난간에 걸쳐진 태피스트리(벽걸이 융단)에는 말을 탄 기사의 모습이 보이고, 3개의 촛불 중 둘은 꺼지고 하나에만 불이 켜져 있으나 그나마 꺼질듯 흔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상징한다. 19세기 당시 촛불은 삶을 상징했다. 배의 전면 촛불 옆에는 십자가가 놓여있어 신의 손길에 배의 운명을 맡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슬픈 사연의 그림이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도시는 점차 피폐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은 영국의 전원 풍경을 거실에나마 걸고자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샬롯의 처녀>이야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란슬롯의 엘라인 전설이다. 엘라인 공주는 어느날 신분을 숨긴 채 마상시합에 나선 란슬롯을 연모하게 되지만 이미 란슬롯은 기네비어 왕비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게 되고 자신을 배에 띄워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죽고 만다. 그녀의 손에 란슬롯에 대한 사랑을 담은 편지가 주어져 있었고, 그 배는 카멜롯의 궁성까지 흘러간다. 란슬롯은 엘라인 손에 있는 편지를 읽지만 끝내 기네비어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는 슬픈 전설이다.
또다른 하나는 이를 각색한 테니슨의 시 <The Lady of Shallot, 1832>의 주인공이다. 아더왕 시대를 배경으로 한 테니슨의 시에서 레이디 샬롯은 어두운 탑에 갇혀 세상을 거울로만 보도록 허락 받은 저주에 걸려 있다. 그녀는 탑속에 갇혀 오로지 거울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것을 태피스트리에 짜넣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바깥세상을 바라보던 어느 날 란슬롯을 보게 되고 사랑을 느껴 자신의 갇힌 삶을 원망하게 된다. 베틀을 내려와 창밖을 내다보자 거울이 깨지고 저주가 내린다.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룻배를 타고 님을 찾아 출발한다. 배는 조용히 냇물을 타고 카멜롯 성으로 떠내려가고 그녀는 슬픈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시신을 태운 배가 성에 도착하였을 때 모두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란슬롯은 그녀에게 강한 연모의 정을 느끼며 애통한 시를 바치게 된다.
‘라파엘 전파’는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등장하여 유행했던 화파로서,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Dante Gabriel Rosetti, 1828-82)를 비롯한 7인의 영국 로얄 아카데미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던 미술운동이다. 르네상스 이전, 중세 화가들의 순수함과 솔직함, 단순성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그들의 모토였으며, 모든 사물은 보이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세기 영국왕실미술원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미술이 표현한 웅장함과 신화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라파엘전파는 이에 반기를 들고 라파엘로 이전의 미술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쳤다. 그리스 신화가 아닌 영국의 세익스피어와 아서왕의 전설, 단테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으면서 문학과 소통을 시도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96)의 <오필리아(Ophelia, Oil on Cavas, 1851-52, 76.2X111.8Cm, 테이트 브리턴)>, 워터하우스의 <샬롯의 처녀>, 윌리엄 헌트(William Holman Hunt, 1827-1910)의 <깨어나는 양심(The Awakening Conscience, Oil on Canvas, 1853, 76X56Cm, Tate Briatain)> 등이 있다.
(3) 시인이자 화가인 신비주의자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
<Elohim Creating Adam, 1795, Colour print, ink and watercolour on paper, 43.1X53.6Cm, Tate Britain>
블레이크는 낭만주의 시인이자 화가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과 계몽주의의 기반위에서 과학과 이성을 중요시하며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에 차 있었다. 블레이크는 물질적 풍요 이면에 있는 소외 계층의 문제 등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언어나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블레이크는 시와 회화라는 두 영역은 표현수단과 제작방식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성격과 내용은 동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담을 창조하는 신>은 주로 동판 기법과 수채를 혼합한 형식에 자신의 시를 더한 것이다. 블레이크는 구약 창세기에 있는 하나님의 아담 창조를 부각시키고 있다. 블레이크는 십계명같은 율법으로 인해 종교가 인간의 상상력을 억압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마치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내려오는 것같이 음울한 날개를 펴고 왼손으로 이끼낀 흙을 집어 아담을 창조하고 있다.
블레이크에게 있어서 창조하는 하나님은 영을 겁주는 존재, 이성의 신, 즉 블레이크 신화에 있어서 유리즌(Urizen)이다. 유리즌은 블레이크의 동판화 <옛부터 계신 분(The Ancient of Days)>에 묘사되어 있다. 복잡한 블레이크 신화에서 이성과 율법의 전형이다. 그는 수염이 난 노인으로 묘사되며 때때로 건축가의 도구들로 우주를 창조하고 통치한다. 혹은 그물망을 들고 율법과 전통사회의 거미줄에 사람을 가두려고 한다.
이 그림에서 아담은 땅의 흙(dust)에 뿌리를 두고 있고 하나님은 그 흙으로 아담을 창조하셨다. 압박하는 벌레(뱀이 아님)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이브 대신 나오고 있다. 이것은 이브가 금단의 과일을 먹어 하나님에게 불순종한 후의 인간의 죽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마지막 한줌의 흙을 집으려고 하고 있다. 그 흙은 푸른 진흙으로 별로 유쾌한 흙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은 블레이크의 메시지의 일부분이다. 아담은 고통스런 자세로 마치 십자가에 못박힌 것처럼 손을 위로 뻗히고 있다. 그의 다리는 뱀이 아닌 큰 벌레가 칭칭감고 있다. 블레이크에게 있어서 구약의 하나님은 거짓신이고, 인간은 에덴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창조될 때, 즉 영적인 신의 나라로부터 나와서 물질적인 것으로 만들어질 때 타락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윌리엄 블레이크는 낭만주의를 연 신비적 경향의 시인 겸 화가 겸 판화가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는 일생동안 초상화나 풍경화처럼 단지 자연에 대한 외관을 복사하는 회화를 경멸했다.
그림은 물론 시에 있어서도 우주와 자연의 본질을 깊이 다루고 있는 그의 작품에는 상징적인 언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 난해하다. 게다가 인간 심연의 무의식과 내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등 신비주의 경향으로 인해 독자나 감상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는 항상 생각이 막힐 때마다 블레이크의 시집을 꺼내 읽었다고 한다. 그에게 블레이크의 시집은 통찰력과 상상력, 그리고 영감을 끌어내는 보고였던 셈이다.
블레이크는 1784년 아버지가 죽은 후 판화 가게를 열어 채색인쇄법을 고안하였다. 그후 <순진무구의 노래(Songs of Innocence, 1789)>, <경험의 노래(Songs of Experience, 1794)>, 유리젠의 서(The First Book of Urizen, 1794)> 등 자작시집에 동판을 사용하여 삽화를 그려 넣어 인쇄하고 손으로 채색해서 출판했다. 한편 밀튼(John Milton, 1608~1674)의 작품 전체와,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 구약성경 <욥기>를 자신의 영적 환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수채화와 소묘 등으로 그렸으며 일부를 동판으로 제작하여 출판하기도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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