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신희지의 종횡무진 동양철학
사람의 관상
얼마 전 영화 관상이 상영되어 대박을 친 모양이다. 900만이 넘게 봤으니 지나가는 사람 다섯 중 한사람은 본 셈이다. 왜 이렇게 많이 봤을까? 도대체 사람의 관상이 뭐 길래?
관상이라는 건 그 사람의 이목구비와 얼굴색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의 이목구비는 부모에게 물려받는 것이니 선천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모의 운명과 자식의 운명이 대물림되기도 한다는 말이 되나? 얼굴색은 의학과 관계가 있어 질병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눈의 흰자가 누런색이면 간이 나쁘다든지 하는 식으로 병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현재도 읽을 수 있다. 안색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니 기분이 나쁘면 대번 얼굴에 표시가 드러난다. 지금 그가 어떤 상태인지 표정을 읽을 줄 알면 상황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관형찰색(觀形察色)이라고 한다.
관상을 잘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늘의 천기가 내려오고 땅의 지기가 올라와서 만나는 지점인 정오이다. 빛으로 인하여 현혹되지 않도록 그늘에서 보아야 한다.
관상을 보는 법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한다. 사람의 모습을 동물의 모습에 빗대어 보는 금수형이 있다. 딱 보면 이 동물을 닮았다! 하는 경우, 그 동물의 습성을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로는 오행으로 분류하여 보는 형이다. 목형(木形)은 길죽한 얼굴, 화형(火形)은 역삼각형, 토형(土形)은 둥글둥글한 형, 금형(金形)은 네모난형, 수형(水形)은 삼각형으로 나뉘며 내가 공부하기로는 얼굴을 삼등분하여 이마가 넓으면 예능이 이마가 좁으면 지략이 있고 관자놀이는 부부궁이 눈 아래로는 자녀궁이 코의 모양에서는 재산이나 건강을 보고 턱에서는 덕성과 부하운이 드러난다고 배웠다. 세 번째로는 주역의 64괘를 환원하여 직감으로 보는 형이다. 관상을 제대로 보려면 금수형을 기본으로 하고 오행법과 64괘를 참조하여 보면 된다고 한다.
관상은 좁은 의미로는 그 사람의 얼굴만 보고 인물을 감정하는 것이지만 넓게는 체격, 걸음걸이, 밥 먹는 모습, 평소 행동거지, 잠자는 모습, 목소리까지를 모두 포함한다고 조선생은 말한다. 나는 여기에 체형을 보고 체질로 분류하는 사상체질론도 덧붙여 본다.
옛말에 ‘면상(面相)은 배상(背相)만 못하고, 배상은 심상(心相)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면상은 말 그대로 얼굴을 보는 것이고 배상은 골격이나 뒤태를 말한다. 심상은 그 사람의 마음씀씀이이다. 이 모든 것은 행동으로 보여 진다. 그러니 다 필요 없고 행동하는 모습 이상의 관상은 없는 것이다. 다른 이의 행동을 살피는 것은 눈썰미이고 섬세함이다. 하지만 이것에는 내 마음의 주관이 많이 작용한다.
관상을 통하여 사람들이 알고 싶은 건 무엇일까? 운명?
관상은 제왕학(帝王學)이었다. 사람을 다루기 위한 높으신 분들의 사람 분류법이다. 관상이니 사주명리학이니 사상체질론이니 하는 것은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 중국에서 사람들을 분류하여 관리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 나온 학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는 자신의 관상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고 남의 관상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관상은 별 거 없다. 평상시 자신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면 자신의 관상이 나온다.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를 알면 굳이 사주팔자를 논하지 않아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가늠이 된다. 남의 입을 통하여, 나를 알 필요가 없다.
내가 만약 원하지 않는 운명으로 가고 있다면 내 욕심이 과한지 돌아볼 일이다. 때로 살면서 체념만한 도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죽어도 나는 그 일을 이루리라, 하면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세 가지 액체를 쏟아내는 것이다. 피, 땀, 눈물이 없고 어찌 원하는 것을 얻겠는가!
그러면 남의 관상을 알고 싶은 경우 생각해 보자. 목이 길고 까마귀 부리와 입을 가졌다고 하는 유방의 상을 장경오훼(長頸烏喙)라 하고 그 유방의 관상을 미리 알고 잘 대처한 이가 장량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유방의 눈치를 살피며 욕심이 없는 모습을 보이다가 산으로 줄행랑을 쳤다고 되어있다. 그 유명한 공성수명신퇴(功成遂名身退)는 공을 이루어서 이름을 날리면 몸을 숨기는 것이 사는 수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잘 생각해 보자. 유방의 관상을 몰랐다고 해도 공을 세워 그 공이 자신의 윗사람을 누를 정도가 되면 당연히 밉보일 수밖에 없으니 처세술에 대한 고민이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영화 관상이 인기를 끄니 여기저기 관상 보는 것에 대한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그것을 다 신경 쓰고 그대로 상대를 재단했다가는 만날 사람이 없겠다 싶은 내용들이 많아 이럴 때 쓰는 말이 혹세무민(惑世誣民)인가 싶다.
영화에서 관상쟁이 내경은 사람을 보면 척하고 다 알아 맞춘다. 그러나 그는 별 수를 써도 단종의 폐위와 수양대군의 즉위를 막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는 것 또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내경의 마지막 대사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봤을 뿐 바람은 보지 못했다. 파도를 일으키는 건 바람이거늘.’ 이쯤하면 눈치 챌 수 있다. 사람의 관상은 산의 관상과 달라서 운명으로 바로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관상의 한계다.
사설 조용헌 글 신희지
-차와문화 2012년 9-10월호
저작권이 있는 글이므로 옮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