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학창시절
전찬기 (대전공업고등전문학교 토목과, 1969학번, 통 4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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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 력 :
- 1953년 2월 22일 대전 출생
- 1966년 : 대전대흥초등학교 졸업
- 1969년 : 대전중학교 졸업
- 1974년 : 대전공업고등전문학교 토목과 졸업
- 1979년 : 성균관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 1981년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 졸업(공학석사)
- 1988년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 졸업(공학박사)
- 1981~1994 : 부천대학교 부교수
- 1994~2010 : 인천전문대학 교수
- 2004~2005 : 미국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교환교수
- 2010~현재 : 국립 인천대학교 교수
-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미국 마르퀴즈(Marquis) ‘후즈 후 인 더 월드(Who’s Who in the World)‘ 2015년판(32nd edition)에 등재(확정)
- 1990년대 이후 : 인천시 도시계획위원, 건설심의위원, 서울시 기술위원,
안전자문위원, 부천시 도시계획위원, 인천대학교 대학건설본부장 등 역임
- 현재 : 국토교통부 중앙건설심의위원, 국방부 BTL 사업 평가위원, 서울시 시설안전 자문위원, 인천시 사전재난영향성검토위원, 설계심의위원, 인천경 제청 자문위원, 시흥시 설계심의위원, (사)한국재난정보학회 회장, (사)인천 아카데미 원장, (사)자유경제실천연합 공동대표, 토목품질시험기술사
2. 가족사항 : 아내와 1남 1녀
좌 우 명: 건강한 몸, 성실한 생활, 감사하는 마음
취 미 : 여행, 영화감상
3. 입학동기 :
제가 대전중학교를 졸업할 당시에는 국민 모두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며, 대전공전이 취업이 잘 된다는 소문을 듣고 어린 마음에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지원했었습니다.
4. 입학시 포부 :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다니자는 단순한 생각이었죠.
5. 학교생활 (자취생활, 하숙생활, 도서관생활, 동아리 생활, 학생회활동,
장학금 수령, 아르바이트, 자격증 취득 등)
6. 학교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추억 (통학중 에피소드, 장학금, 연애, 미팅, 동아리활동, 학생활동, 결혼, 취업)
베레모를 쓰고 대학생같은 교복도 입고, 머리도 어느 정도 기를 수 있어서 고등학생이 대학생 대접을 받던 일들은 어떤 때는 어색했지만 어깨가 으쓱거리기도 했었죠.
교복 한 벌로 5년을 입으려고 입학식 때 크게 맞추어 헐렁하게 입고 다니던 일은 그 시절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다 같은 입장이다 보니 창피한 것도 없었습니다.
1학년 때 유난히 키가 작아 2번을 받아서 1번을 받은 김남식 친구와 잉크병 던지며 싸우고, 교복에 잉크가 묻은 채로 다니던 것도 추억일까요?
측량실습을 한다고 측량기를 메고 들판으로 산으로 다니던 일은 힘들기도 했지만, 레벨이나 트랜싯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여학생을 보던 일은 나름 재미가 쏠쏠했었죠.
학교 근처 삼성동에서 친구들과 하교하면서 막걸리와 함께 먹던 곱빼기 짜장면은 젊은 배를 채워주었고, 대전극장 골목 서울식당에서 막걸리 마시며 허풍 떨던 일은 조금 고학년 때인가 봅니다.
25번인가 시내버스를 안타고 가끔 대사동 집에서 학교까지 4km를 걸어 다닌 일은 건강에도 좋았고 차비도 절약하였지만, 걸으며 사색도 많이 하게 되어 정신건강에도 좋았던 거 같습니다.
친구들과 소풍 갔던 만수원의 목련꽃 아래서 찍었던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제주도 수학여행과 한라산 등반을 한 추억도 생생합니다.
선배들에게 기합을 받거나 얻어맞는 일은 일상화(?)되어서 그러려니 살았었고, 유도부 탈퇴하려고 도망 다니던 일, 등교 길에 교문을 지키던 유도부 선배님 무서워서 담 넘어 학교 들어간 일도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그중에서도 김홍석 선배님은 늘 웃는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잘 대해 주시고 친동생처럼 챙겨주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형님입니다. 지금도 예전처럼 여전히 인자하신 모습으로 넉넉하게 후배들을 이끌어 주시고, 학창시절처럼 동문회 대표를 해주시면서도 특히나 현직에서 젊은 마음으로 직접 뛰고 있어서 참으로 존경스럽고 든든합니다.
또한 체육대회 매번 우승하던 일, 학교 편제 바꾼다고 데모하던 일, 친구들과 교정 잔디밭에서 문학책을 읽거나 미래를 걱정하던 일, 방학 때마다 길게는 20일에 4~5명씩 다녔던 무전여행 등도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을 존경했던 저로서는 강의 시작 전에 분필을 준비해 드린 것이 나름 보람이 있었었고, 교련시간에 나이가 젊은 조교 교관선생님을 놀리던 일은 지금 생각하니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7. 학교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추억( 자취생활, 아르바이트, 군생활,
학생운동, 적성, 학비마련, 공부 등)
편입학 검정고시를 보려고 고학년 방학 때마다 김천 황악산 직지사와 계룡산 신도안의 민박촌에서 공부한 추억이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8.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 :
졸업하면서 편입학 검정고시를 붙게 되어 바로 이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일, 대학의 지도교수님이신 신현묵 교수님의 지도로 대학원으로 진학해서 교직에 몸담게 된 일이 제 인생이 되었으며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9. 졸업후 학교 생활이 사회생활에 미친 영향 :
5년 동안 같은 전공을 한 친구들과의 깊은 우정은 물론 선후배님들과의 교분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는 대학만 졸업한 다른 사람들보다 폭넓은 교분을 쌓게 되는 일종의 프리미엄 같은 것입니다.
10.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역경은 힘들지만 견디어 내면 그만큼 보람도 큽니다. 모든 게 그렇듯이 본인이 하기 나름이고, 핸디캡도 극복하기에 따라서는 득이 되고 자극도 됩니다. 또한 핸디캡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은 경우도 많습니다.
13. 앞으로 바람 :
지금처럼 선후배 사이가 돈독하게 오래 동안 지속되면서 전공별로 도움이 되고 인생의 버팀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