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복과 신령한 복의 차이
안 유 섭 목사 (아르케 아카데미 원장, 반석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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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령한 복의 의미
가) 시편에 대하여
시편은 히브리어로 테힐림( )이라고 하는데 '찬양하다'라고 하는 동사인 할랄( )에 명사형 접두어 테( )가 합성되어 이루어진 말로서 복수 형태이므로 '찬양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시(詩)는 히브리어로 미즈모르( )라고 하며 헬라어로는 프살모스( , Psalm)라고 하는데 둘 다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시편은 곧 찬양의 노래로서 운문의 장르에 속하므로 운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가져야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율법을 비롯하여 인류의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 잠언과 시, 예언과 묵시 및 서신 등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크게 산문과 운문의 두 종류로 대별된다. 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문 형태의 말씀은 읽고 해석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문자적(Literally) 혹은 여자적(如字的)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지만, 운문 형태의 말씀 곧 시가서와 예언과 묵시 기록은 산문을 이해하는 평범한 틀로써만 해석할 수는 없다.
운문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억양과 병행법 등 형식에 있어서의 운율적 특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표현에 있어서의 상징(Symbol)과 메타포(Metaphor) 등을 이해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시편이나 그 밖에 운문적 성격을 띄고 있는 말씀들을 이해하려면 소위 영해(靈解)라고 하는 비유적 해석 방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편은 운율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어서 알파벳 시편이라고 불리는 답관체 형식의 시만도 아홉 편이나 된다. 이러한 시들은 각 행이 히브리어 알파벳 22자로 시작하는데 시 119편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또한 유사한 형태의 문장 구조가 여러 편에서 나타나기도 하는데, 본 장(Chapter)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시 1:1 의 초두에 사용된 아쉬레 하이쉬 아쉐르( )라는 표현이 시 94:12, 시 106:3과 시 112:1에서도 같은 형태로 등장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러하다.
나) 운명론적 복과 순종의 복의 차이
위의 히브리어를 번역함에 있어서 시1:1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하다'라고 되어있고 나머지 시편에서는 '~한 사람이 복되다'라고 서로 다르게 하였는데 어느 번역이 더 정확한 것인가? 원어를 직역할 때는 '사람의 복은 ~한 것이다'가 되어 두 가지 번역은 모두 잘못되었으나, 의역을 허용한다면 후자의 '~한 사람이 복되다'라고 번역할 수는 있을 것이다.
위의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문법 지식이 요구되는데 우선 구문(Syntax)상으로 히브리어의 명사 문장(Nominal Sentence)을 이해하여야 한다. 히브리어 문장 중에서 술부(Predicative)에 동사가 나타나지 않고 명사 혹은 명사 상당 어귀(형용사, 분사 등)만으로 이루어지는 문장이 있는데 이를 명사 문장이라고 한다.
시 1:1~1:2 까지는 하나의 명사 문장으로서 '사람의 복'이라는 뜻의 아쉬레 하이쉬( )가 문장 전체의 주어이며, 아쉐르( )이하의 나머지 내용은 보어(Complement)인 동시에 술부를 이루고 있는데 주어와 보어를 연결하는 동사는 없다. 아쉐르( )는 영어의 관계대명사 That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는 독립 관계대명사로 사용되어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다음은 아쉬레 하이쉬( )라는 주어를 해석해야 하는데 이는 명사의 독립형과 연계형에 대하여 알아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 시 1:1의 우리 번역은 아쉬레( )를 수식어처럼 해석하여 '복있는'이라고 해버렸다. 그러나 아쉬레( )는 '복'이라는 뜻의 명사 에쉐르( )의 연계형으로서 '~의 복'이라는 뜻이지 소유격이나 수식어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어느 나라 말이든 소유격을 나타낼 때 소유하는 명사를 소유격의 형태로 만들고 소유되어지는 명사는 그대로 두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왕의 말씀(King's Word)'에서 소유하는 명사인 '왕(King)'을 소유격으로 만들어 '왕의(King's)'라고 만든다는 말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소유하는 명사(독립형)를 그대로 두고 소유되어 지는 명사를 연계형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만듦으로써 소유격과 유사한 효과를 만든다. 예를 들면 '왕'이라는 뜻의 멜렠( )이 '말씀'이라는 뜻의 다바르( )를 소유하고자 할 때, 멜렠( )을 소유격의 형태로 변형시키지 않고 다바르( )를 데바르( )라는 연계형으로 바꾸어 오히려 소유하는 명사 앞에 둠으로써 데바르 멜렠(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를 만일 시 1:1을 번역한 개역 성경의 방식대로 해석한다면 '왕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의 왕'이 되는 셈이다.
이제까지 '복 있는 사람'이란 번역이 잘못된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시 1:1-2를 원문대로 다시 번역하자면 "사람의 복이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함이라"가 된다. 다시 말해 그러한 자라야 하나님의 복을 받고 그의 모든 행사가 형통하게 되리라는 뜻인 것이다.
결국 시 1:1-2의 사상은 신명기 28장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때 복을 받는다는 가르침이며, 이는 시 94:12과 시 106:3 그리고 시 112:1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한편 신약의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 역시 복 받을 조건에 대하여 가르치신 것으로 시 1편의 원의(原意)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