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구(畵具)를 메고 산을 첩첩(疊疊) 들어간 후 이내 종적이 묘연하다.
단풍이 이울고 봉(峰)마다 찡그리고 눈이 날고 영(嶺)우에 매점(賣店)은
덧문 속문이 닫히고 삼동(三冬)내― 열리지 않었다.
해를 넘어 봄이 짙도록 눈이 처마와 키가 같았다.
대폭(大幅) 캔바스 우에는 목화(木花)송이 같은 한떨기 지난해 흰 구름이 새로 미끄러지고 폭포(瀑布)소리 차츰 불고 푸른 하눌 되돌아서 오건만 구두와 안신이 나란히 노힌채 연애(戀愛)가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날밤 집집 들창마다 석간(夕刊)에 비린내가 끼치였다.
박다(博多) 태생(胎生) 수수한 과부(寡婦) 흰얼골이사 회양(淮陽) 고성(高城)사람들 끼리에도 익었건만 매점(賣店) 바깥 주인(主人)된 화가(畵家)는 이름조차 없고 송화(松花)가루 노랗고 뻑 뻑국 고비 고사리 고부라지고 호랑나비 쌍을 지어 훨훨 청산(靑山)을 넘고.
위 작품은 『향수』로 잘 알려진 정지용 시인의 <호랑나비>라는 작품이다.
하나의 情死 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름없는 한 화가와 산장 매점의 주인이었던 한 과부가 한겨울 깊은 산 눈 속에서 사랑을 나누다 저 세상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들의 변사체가 봄이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진다는 얘기다.
신문기사로나 보도됨직한 하나의 사건이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다. 어쩌면 신문에 보도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작자가 이 情死 사건에 대해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지용은 1902년 6월 20일(음력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 하계리(下桂里)에서 약상(藥商)을 경영하던 정태국(鄭泰國)과 정미하(鄭美河)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연못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다고 해서 아명(兒名)을 지룡(池龍)이라고 하였고, 이름도 지용(芝溶)이라고 하였다.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프란시스코(方濟角)이다.
정지용은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시의 시단(詩壇)을 대표했던 시인이었다. 김기림과 같은 사람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향수’(조선지광, 1927)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정지용은 우리의 모태인 「문장」지와의 인연이 깊다.
문장지는 편집 겸 발행인 김연만(金鍊萬)으로 일제강점기 말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와중에서 탄생하여 《한중록(恨中錄)》, 《도강록(渡江錄)》,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등 민족고전의 발굴하여 주석에 힘썼고, 민족문학의 계승 발전을 위해 유능한 신인을 많이 배출했다.
시 추천을 맡은 정지용(鄭芝溶)과 소설 추천을 맡은 이태준(李泰俊) 등을 통해 문단에 등장한 신인으로 시에 김수돈(金洙敦)·김종한(金鍾漢)·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박남수(朴南秀)·이한직(李漢稷)·조지훈(趙芝薰), 소설에 곽하신(郭夏信)·임옥인(林玉仁)·최태응(崔泰應)·선진수(宣鎭秀)·허민(許民), 시조에 조남령(曺南嶺)·이호우(爾豪愚/李鎬雨)·김상옥(金相沃)·오신혜(吳信惠) 등이 있다.
제2권 제6호부터는 이태준이 편집과 운영을 전담했다. 일제의 강압에도 이희승(李熙昇)의 《조선문학 연구초》, 조윤제(趙潤濟)의 《조선소설사 개요》, 이병기(李秉岐)의 《조선어문학 명저 해제(名著解題)》, 최현배(崔鉉培)의 《한글의 비교 연구》 등 국문학 분야의 무게 있는 논문과 자료를 계속 발표했다. 그러나 1941년 4월 일제의 탄압으로 제3권 제4호(통권 26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8·15광복 후인 1948년 10월 정지용이 속간을 꾀하였으나 1호로 종간되었다.
다시 정지용의 시 <호랑나비>를 들여다 보자.
이 시는 1941년 『문장 22호』에서 발표되었다.
무릇 모든 문인들은 자연을 동경한다. 세속적인 욕망에 젖어 서로 헐뜯고 살아가는 소란하고 오염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조용하고 맑은 자연 속에 머물고 싶어한다. 더욱이 그 자연이 청정한 눈으로 가득 덮인 깊은 산골이고 보면 이 얼마나 아늑하고 정결한 공간이겠는가. 그런 성지(聖地)에 때묻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그곳을 바로 낙원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러한 행복을 누리는 연인들은 그들의 그 지복(至福,행복에 다다른 것) 한 순간을 영원히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으로 그들의 행복을 구원화(久遠化영원을 구한다)하기를 원한다.
정지용은 이 연인들의 죽음을 넘어선 구원한 사랑을 청산으로 날아가는 호랑나비 한 쌍을 통해 암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호랑나비>는 정지용의 청정무구한 자연회귀의 소망과 구원한 순애정신이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한 화가는 곧 작자의 전이된 인물이다. 현실적으로 성취될 수 없는 작가의 욕망이 작품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의미하는 바는 무궁무진하다.
시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삶과 죽음 또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등의 개념이 언급된다. 또한 ‘덧문’,과 ‘속문’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연애가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했다.’라고 하는 굉장히 자극적이면서 감각적인 표현이라든지 ‘호랑나븨 쌍을 지어 훨훨 청산을 넘고’라든지 이 시에서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정말 상상의 나래를 편다.
명작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문학이란 결국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또 무엇을 위해 쓰이는 것인가?
문우님들, 각자 평을 해보세요.
첫댓글 때때로 사람들은 금지된 장난을
신문의 가십난에서 읽거나 드라마로 느끼면서
대리만족을 하며 살아 가는데
정지용시인 역시 시로 절창을 표현한것 같습니다.^^*
열공하고 갑니다~~^^
정지용과 문장지, 잘 알았습니다. 정사와 호랑나비...
야하지만 전혀 야하지 않는 시, 감상 잘하고 갑니다.
배움은 끝이 없다는 말을 또 느껴봅니다 만혜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