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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내가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걸어가도
(찬송 1장)
2021-1-22, 금
맥락과 의미
시편 23편은 많은 성도들이 암송하며 사랑하는 시편입니다. 이것을 노래하는 성도들은 미래에 대해 아주 낙관적인 확신을 합니다. 두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도 경험하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두려움이 있으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23편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으로 나 자신에게 말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 죽음 골짜기에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1-4절)
2.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 적들 앞에 풍성한 상을 차려 주십니다(5-6절)
3.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10장)
오늘 이 시편을 읽고 외우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고백합시다. “죽음 골짜기에서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나의 아버지시기 때문에.”
1. 여호와는 나의 목자, 죽음 골짜기에서 나와 함께 하신다 (1-4절)
1) 나의 목자의 인도하심 (1-3절)
1-4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목자” 왕을 목자라 합니다.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구약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왕입니다. 여호와는 모든 성도의 왕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자기에게 말합니다. 앞날을 아주 밝게 봅니다. 넉넉하게 살게 해 줄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목자는 양들을 풀이 많은 풀밭에서 먹게 하십니다. 배불리 먹고 누워 쉬게 합니다. 또 샘물이 있는 곳으로 데려 갑니다. 과거 건조한 그 땅에 어디에 풀이 많은 지 잘 아니까 그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물이 있는 곳을 잘 아니까 데려 갑니다.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앞으로 나에게 먹을 것 주시고 마실 것 주실 것입니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이 소생시킨다. “내 생명을 다시 회복하십니다. 살아갈 힘을 회복하십니다”. 한 주 동안 힘껏 일하면 힘이 빠집니다. 마음이 울적해 살아갈 힘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목자이니 나에게 먹을 것 주어서 힘을 주실 것입니다.
“의의 길” 좋은 길을 말합니다. 좋은 풀이 있는 곳, 좋은 물이 있는 곳으로 가는 좋은 길로 나의 목자께서 인도할 것입니다. 놀랍게도 내가 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양이니 잘 모릅니다. 여호와께서 먹여 주고, 마시게 하고 인도해 주십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자기 이름을 위해” 그 분의 이름을 위해. “자기 이름”은 여호와 그 분의 성품을 말합니다. 6절에 “좋으신 분이니까, 은혜롭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니까” 나는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고 특별히 선해서가 아닙니다. 아니 나의 마음 속에는 탐욕과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나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나에게 잘 해 줄 것입니다.
2) 출애굽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
“의의 길로 인도”한다고 하는 노래는 출애굽과 홍해의 구원을 경험한 후 했던 노래입니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리라”(출애굽기 15:13).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언약 백성인 나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고백한 나에게 예수님은 나의 목자 되십니다. 먹고 사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예, 하나님이 목자이시니 나를 먹여 줄 것입니다.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내가 일해서 먹고 마실 일터를 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고백합시다. 내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흥청망청 쓰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부족하지는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전보다 가난해질 수 있지만, 부족해서 굶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까.
“쉴 만한 물가”는 “안식의 물”을 말합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지치도록 일해도 나에게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부유하기도 하고 가난해지기도 하지만 쉼과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3) 위기 속에서 “당신”이 함께 하심 (4절)
그런데 나는 미래에 대해 쉽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여호와를 “그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4-5절은 “주”라 부릅니다. 여기서 “주”는 “당신”이라는 뜻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당신”이라고 친근하게 부릅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나는 죽음의 그늘이 있는 골짜기로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사자들이 나오는 숲 속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그러나 피해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목자께서 작은 지팡이로 사자들을 쫓아 버릴 것입니다. 긴 막대기로 넘어진 양들을 일으킬 것입니다.
나도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위기가 올 때도 있을 것을 압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로 오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시므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영 성령님을 통해 지금 나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마귀와 악한 자들을 지팡이로 쫓아 버릴 것입니다. 당신의 막대기로 나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것들이 나를 위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죽음의 골짜기는 걸어갈 것이지만 성령님이 위로할 것입니다. 건강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회복시킬 것입니다. 당장 회복시키지 않을 때, 그 때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건강이 나쁘면 해를 받았지만, 그 죽음의 골짜기에서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내 영혼은 다시 회복됩니다.
갑작스레 내 마음이 죽음의 골짜기 지나듯이 우울한 때도 올 것입니다. 이 어두움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느껴 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느낌과 관계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이 바로 그 순간에도 함께 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 약속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일어섭니다.
2.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 적들 앞에 풍성한 상을 차려 주신다 (5-6절)
앞에서는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 말했습니다. 먹여 주고 나를 보호하고 지키십니다.
5-6절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보여줍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없지만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4절에 이어서 5절도 하나님을 “주” 즉 “당신”이라 부릅니다. 당신은 나에게 식탁을 차려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눈 앞에서)” “나를 공격하는 자들 가까이서” 이 찬송은 하는 다윗은 실제로 적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먹을 것도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적들이 일어나 공격해도, 확신합니다. 그 적들이 보는 앞에서 식탁을 차려서 먹게 할 것입니다. 적들은 나에게 가깝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가깝게 계시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떤 반대자들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풍요로운 식탁을 차려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귀한 기름을 내 머리에 부어서 윤기 나게 합니다. 잔은 흘러 넘칩니다. 기름을 “부었다.” “넘친다”는 먹고 마시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말합니다. 이유없이 비방하는 반대자들이 가까이 있어도 우리 아버지는 나를 먹여 주실 것입니다. 적에 대한 두려움 없이 풍성하게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평생에 받을 은혜를 생각합니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하나님의 이 복은 한 번만이 아니라 평생 계속될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따를 것입니다. “따른다”는 말은 원래 적들이 나를 죽이려고 따라오는 것에 스는 말입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적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따라올 때 살아났습니다. 왜냐?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그를 더 가까이 따라와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심”(헤세드) 언약적 사랑을 말합니다. 나를 무조건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적들 보다 더 가까이 나를 따라옵니다. 내 뒤에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 복이 따라올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 한 분 한 분도 자기에게 이렇게 말합시다. 내 일생 동안 앞으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를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니 그렇게 믿으십시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 것을 확신합니다. 여호와의 집, 성전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성전에 사는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이 성도는 제사장처럼 성전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는 일을 영원히 계속할 것을 확신합니다. 성도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식탁과 이 땅의 복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더 감사할 것은 성전에서 계속 예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안정보다 예배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여호와의 집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예배 드리는 곳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다른 성도들과 함께 화목제물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함께 찬양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시편 22편에서도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죽음의 고난 가운데 부르짖었던 성도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다음 성도들에게 가서 함께 찬양하겠다고 했습니다.
시편 23편은 이 성도의 결심을 이어 갑니다. “나의 목자, 내 앞에 잔치를 베푼 나의 아버지”의 집에서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살 것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누리는 땅의 풍요를 통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바라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은 이 땅에서 위험 가운데 지켜 주시고 먹고 마실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 보호와 공급을 통해 성도는 여호와와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3.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요한복음 10장)
시편 23편에서 ‘목자이신 여호와’는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양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서 우리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앞서가시면 양들은 그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요 10:3-4).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주님은 양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은 하늘에 있지만 지금도 목자로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고아 같이 버려 두지 않으시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요한복음 14:16-18). 진리의 성령님께서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말하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한복음 16:13). 사도들을 통해 기록한 진리의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로 들을 때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말씀으로 인생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이 거할 날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 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6-17).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눈물을 흘리는 그의 백성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해 주시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자기 백성을 모두 인도하십니다.
광야 같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듯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때도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나의 목자’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먹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을 들으며 따라갑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 길에 원수의 공격이 있지만, ‘나의 목자’께서 ‘나와 함께하시면서’ 그 모든 해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도 23편으로 노래하며 나갑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예수님은 나의 목자” 때로는 많이 부족한 것이 있어도 모든 것을 가진 삼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판단하여 필요한 만큼 주시고 있습니다. 죽음의 그들이 드리운 듯한 눈물 골짜기를 지난 순간에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십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우리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그 약속을 꼭 붙들고 순례의 노래를 부르며 천국으로 행진합시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목자께서 양들을 위해 희생양이 되심
이 땅에 계실 때에 굶주린 백성을 풀밭에 눕게 하시고 넉넉히 먹이신 일이 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실 때에 그들이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셨습니다(마가복음 6:39). 그 때에 자신이 바로 ‘생명의 떡’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찬의 의미도 함께 알려 주셨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 주님은 실제로 성찬을 제정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을 때에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시어 그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요 10:15, 17). 실제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신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로 올라가셔서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우리’(이사야 53:6)을 구원하시려고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사 53:7)처럼 되셔서 우리의 반역죄에 대한 죗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친히 지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도 주님을 버렸으나 예수님께서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 16:32) 하시며 그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고백하시며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골짜기를 친히 걸어가셨습니다. 목자 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양들을 구원하시려고 양의 자리에 내려오셔서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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