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3>
강릉농악은 상모꾼 수만큼 무동(舞童)이 있기 때문에 여나무 개의 고깔이 필요하게 된다. 두꺼운 종이를 두어 겹 발라 고깔을 만드는 것은 쉬운데 고깔에 다는 꽃을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마을에 살던 이북에서 피란 나온 40대 초반의 홀아비인 권씨는 말수도 적고 어디 한구석 조금 부족한듯 하였지만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신통하게도 꽃을 일구는(만드는 것을 ‘일군다’고 한다) 재주가 있었다.
흰 미농지를 여러 겹 포개서 이리저리 접은 다음 끝부분을 철사로 묶고는 가위로 요리조리 오려서 살살 일구면 소담스럽고 예쁜 꽃송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생겨나는 것이 신기하였다. 고깔 하나에 대여섯 개씩 달아야 하므로 상당히 많이 만들었는데 다 만든 후 색색의 물감을 풀어서 병에 넣고 대롱을 끼워 꽃에다 대고 불면 흰 꽃이 빨강, 노랑, 파랑, 연두 등 가지가지 색으로 다시 피어나고는 했다.
무동(舞童) / 지신(地神)밟기 / 날나리(태평소)
풍물연습은 마을 가운데 마당이 넓은 우리 집에서 하는데 각각의 장면에 따른 가락을 맞추는 연습을 하였다. 풍물놀이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상쇠는 눈치도 빠르고 쇠도 잘 쳐야하는데 재명이 아버님이 10여 년간 하시다가 젊은이한테 넘겼는데 이어받은 것이 만복이형이었다. 어린나이에 이어받았지만 워낙 재치가 있어서 지켜보신 후 어른들이 썩 잘한다고 칭찬을 하셨다. 길을 갈 때 치는 질꼬내기(길군악)에서부터 모판에 씨 뿌리기, 김매기, 벼베기, 마지막으로 뱃놀이까지의 연희는 장면마다 가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수없이 반복연습을 하였다.
북과 징은 비교적 쉬워서 박자만 잘 짚으며 상쇠와 눈짓을 맞추면 되지만 장구는 북편과 채편의 연주기술이 쉽지 않아 장구잽이들은 따로 남아 일대 일로 전수(傳受)를 하고는 했다. 가락이 대충 맞는다싶으면 각 과정마다의 모이고 흩어지고 둥글게 진을 만들었다가 풀어내는 등의 동작과 형태를 수없이 의논을 하며 맞추어나갔고, 어른들을 모셔다가 보이고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보통 저녁을 먹고 장작을 한 단씩 챙겨서 모이는데 연습을 하다가 어두워지면 마당 한쪽에 화톳불을 피우고 밤이 이슥할 때까지 연습을 하곤 했다.
풍물단의 구성은 기수(旗手), 날라리(태평소), 꽹과리를 치는 상쇠와 부쇠, 장고 2명, 고수(북) 2~3명, 징잽이 1명, 노인 가면을 쓰고 장죽을 입에 문 잡패 하나와 법고쟁이와 무동은 짝을 맞추어야 하므로 각각 열 두어 명으로 이루어져서 전체는 대략 30여 명으로 짜여진다. 그런데 맨 끝에 서는 애기무동은 예닐곱 살의 꼬맹이로 세워서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는 했다.
음력 정월 보름께가 되면 걸립패를 구성하여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고 집안의 안택을 기원하는데 그 비손이는 항상 상쇠인 만복이형이었다. 우선 우리 마을부터 시작하는 지신밟기와 안택은 맨 처음은 항상 우리 집이었고 다음이 찰방집이었다. 이미 마을 사람들이 마당 구석은 물론 사립문 바깥까지 빼곡히 들어차 구경할 준비를 하는데 우리 어머니는 툇마루 위에 가난하다보니 쌀을 말(斗)에 담아 내놓지 못하고 됫박에다 수북이 넘치게 담아 소반에 받쳐놓고 냉수 한 그릇을 옆에다 내어 놓은 다음 촛불을 켜 놓는다.
풍물꾼들은 삽짝 바깥에 모여 섰다가 쇠를 치면서 마당으로 들어와서는 한 시간이 넘도록 신명나게 논 다음 비손이가 소반 앞으로 나와 집안의 안택을 빈다. 만복이형은 맑고 청승맞은 목소리로 고저장단을 맞춰 청산유수 같이 사설을 읊어 나갔다. 사이사이 꽹과리와 사물로 흥을 돋운 다음 사설을 읊고, 또 사물을 울린 다음 사설을 읊고 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 갠지갠지갠지 개갱, 개갱개갱 갠지 착.
<자~~, 이집 성주를 한번 모셔봅시다.>
에헤루 지신아 지신아 밟아밟아 보자. / 에헤라 지신아 지신아 모셔모셔 보자.
♬ 갠지갠지갠지 개갱, 개갱개갱 갠지 착.
에헤라 지신아 이 집에 성주를 모셔보자. / 에헤라 지신아 성주님네 본향이 어디던고.
마당에서 신명나게 놀고 난 다음 만복이형은 잽이 서너 명만 데리고 집안 곳곳을 다니며 빌었다.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제석(帝釋)님’을 비롯하여 집안의 수호자인 ‘성주님’,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七星)님’, 부엌신인 ‘조왕(竈王)신’에다 각종 터주신(地神)인 우물지신, 장독지신, 도장(곳간)지신, 마굿간지신, 정낭(뒷간)지신, 삽짝지신 등은 물론이려니와 객사한 귀신인 ‘객귀(客鬼)’, 억울한 귀신인 ‘영산(靈山)’, 처녀귀신은 ‘손말명’, 총각귀신인 ‘몽달’, 자손 없는 귀신인 ‘무사(無嗣)’, 사람 죽은 ‘상문(喪門)’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잡신들을 주워섬기며 사설을 읊어대어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고는 하였다. 한 집이 끝나고 나면 미리 연락이 되어있는 다음 집으로 풍물을 치며 가는데 가정 형편에 따라 쌀을 말(斗)이나 됫박, 밥그릇에다 내 놓는 집도 있었고 떡이며 전 등 음식을 내 놓는 집도 있었는데 내놓는 제물이 부실하면 대충 짧게 놀고는 다음 집으로 가곤 했다.
우리 마을이 끝나면 어른들이 미리 연락을 하여 풍물단이 없는 다른 마을에 가서 놀아주는데 ‘걸립(乞粒)’을 한다고 하였다. 어떤 해에는 우리 마을 풍물단이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여러 이웃마을에서 신청이 들어와 밤늦게까지 마을들을 돌아다니느라 애기무동은 녹초가 되어 어른들이 업고 다니기도 했다.
한편 마을 어른들은 지게를 지고 따라다니며 쌀을 거두어 져 날랐는데 어떤 해에는 모아진 쌀이 몇 가마씩이나 되어서 그 쌀을 팔아 마을의 상여도 바꾸고 풍물악기도 새것으로 바꾸곤 했다. 그때에도 타동(他洞)으로 밤길을 다니다보니 이따금 불량끼가 있는 젊은 놈들이 시비를 걸고는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평안도에서 피란 나온 봉식이 아버지와 6.25 때 왼쪽 손목을 잃고 손대신 갈고리를 단 순심이 아버지가 나설라치면 어마뜨거라 줄행랑을 쳤다.
망덕봉(望德峰) 위로 달이 휘영청 떠오르면 쇠(꽹과리) 치는 가락은 더욱 흥겨워지고 날라리 소리도 더욱 간드러지게 넘어 간다. 활활 타오르는 화톳불 빛에 어지럽게 휘돌아가는 상모꼬리는 흡사 정월대보름날 쥐불놀이의 불꽃이 휘돌아가는 듯 눈앞이 어지러웠다. 붉은 치마 노랑저고리의 무동들은 치마를 부풀리며 맵시 있는 손동작으로 춤사위를 맞추며 돌아간다.
흰 점투성이 검붉은 낯짝의 바가지탈을 쓴 영감은 흥에 겨워 장죽을 휘두르며 덩실거리고, 북잽이와 징잽이들도 덩달아 어깨를 우쭐거리며 돌아가면 장구잽이도 날렵한 손동작으로 가락을 휘몰아 간다.
장면마다 쇠가락이 빨라졌다가는 느려지고 다시 빠르게 휘몰아 가는데 거기에 따라 날라리 가락도 변화무쌍하게 바뀌고 어깨춤이 덧들이면 놀이마당은 온통 흥겨움으로 휩싸인다. 마당 구석이나 삽짝 바깥에 웅기중기 모여선 구경꾼들은 간드러지는 가락과 풍물패들의 현란한 몸짓에 손뼉 장단을 맞추며 어깨를 같이 들썩거리게 된다. 어둠 속에 얼굴을 숨긴 숫기 없는 처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몸짓 하나하나라도 놓칠세라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숨을 내 쉬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다가 행여 다른 사람이 눈치를 채기라도 하면 얼굴을 붉히며 어둠 속으로 꽁무니를 뺀다.
그 중에서도 인기는 단연 상쇠인 만복이 형이 최고였다. 시골 농사꾼답지 않게 흰 얼굴이며 시꺼먼 눈썹에 조각 같은 옆얼굴 모습은 물론이려니와 훤칠한 키와 탄탄한 몸매에 자신에 넘치는 표정으로 전체 풍물단을 이끌어 가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였다. 쇠가락이 바뀔 때마다 꽹과리를 높이 쳐들고 고갯짓을 하며 강한 울림으로 가락을 바꾸면 다른 잽이들도 눈길을 맞추며 따라 바꾸곤 하였는데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감탄사를 쏟아내곤 하였다. 이런 흥겨운 놀이판이 벌어지면 이웃 마을에서도 구경을 오곤 하는데 특히 고요한 밤에 울리는 징소리는 굉장히 멀리까지 울려나가서 밤이면 10여 리 떨어진 먼 이웃 마을까지 아련히 울려 퍼지는데 그 소리를 들리면 공연히 마음이 들뜨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