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가입 문제는 한국의 개신교 최대교파인 장로교회(예수교 장로회, 이하 예장)를 두 교단으로 분열시켰다. 한국의 예장은 이미 1930년대 아빙돈성경주석 사건부터 온건파와 보수파가 대립하던 양상을 꾸준히 보였으며, 1950년대에 예장의 WCC 가입시기에 이르러, 당시 WCC 총재가 네덜란드 개혁교회목사 호프트였는데도, 정작 회원교단이 아닌 천주교회와의 일치운동[4]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하는 장로교 보수파인 예장합동과 WCC 가입에 찬성하는 장로교 온건파 예장통합
한국의 예장 총회는 1956년 9월에 열린 제 41회 총회에서 WCC 문제로 찬성파와 반대파가 크게 대립하자 이 운동을 연구할 에큐메니칼 연구위원 8명을 발족했다.여기에 선정된 위원은 한경직을 위원장으로, 유호준, 안광국, 박형룡, 박병훈, 환은균, 정규오 등 8명이었는데 앞의 네 사람은 WCC에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뒤의 네 사람은 반대파였다. 이들은 다음해 열린 42차 총회에 발표한 첫 보고서에서 단순한 친선과 협조라는 측면에서는 WCC를 지지하지만 교회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즈음 박형룡은 장로교 신학지인《신학지남》에 WCC에 반대하는 견해를 발표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WCC는 교리적으로는 혼란한 자유주의 지도하에 움직이며 정책적으로는 세계 단일교회의 구성을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고로 복음주의에 입각한 교회의 전통적 신앙을 존중하며 보수하려는 교회와 신도로서는 이 운동에 방심하고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5]"
예장합동에서는 WCC 신학은 기독교만이 참 종교임을 포기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임을 부인하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내포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또 WCC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회원교단들이 있는데 그 모든 교단들을 하나의 연합체 안에 모두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교리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개혁주의 교회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를 주장하지만 WCC의 교회론은 머리되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교회의 본질보다 기능적인 차원의 교회론이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6]
세계교회협의회는 단체가 아니라 해당 교단이 가입하도록 되어있다. 동일한 교파라도 국가별 교단이 각각 가입하는 형태이다. 세계 약 110여 국가에 분포하는, 개신교인 루터교회, 감리교회, 성공회교회, 개혁교회, 장로교회 등의 국가별 교단들과 동방 정교회 국가별 교단들인 349개 기독교[7][8]
WCC는 교회론적으로 'Ecclesiam Unam Sanctam'을 표방하는데, 이 용어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인해 논란이 존재한다. WCC 측에서는 'Ecclesiam Unam Sanctam'를 사도신조 및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12]
그러나 근본주의 기독교 계열에서는 'Ecclesiam Unam Sanctam'를 지상위(至上位) 하나된 교회로 해석하여[13] WCC가 마치 바티칸의 종교권력과 같이 세계 개신교의 우위에 서려고 한다고 우려를 표한다. 특히, 교황 보니파스 8세와 프랑스 국왕 필립4세의 대립으로 교권 및 세금문제가 격화된 Unam Sanctam 칙령을 들어 WCC의 교회론은 교황 보파니스 8세의 단일 지상교회를 표방한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 특히 현실정치에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하는 WCC의 선교방식과 불가시적(不可視的)교회에 대한 WCC의 공식 성명이 전무하다는 점은 WCC의 교회론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바르문서(Baar Statement)에 나타나는 종교다원적 구원론은 Unam Sactam 칙령등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조적 교회론'과 결부시키기도 한다.[14][15]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we are, urged by our faith, compelled to believe, and we do firmly believe and simply confess that outside of it there is neither salvation nor remission of s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