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二十九回 晉惠公大誅羣臣 管夷吾病榻論相
제29회: 진혜공은 여러 신하를 죽이고, 관이오는 병상에서 재상을 논하다.
話說,里克主意,原要奉迎公子重耳,因重耳辭不肯就,夷吾又以重賂求入,因此只得隨眾行事。誰知惠公即位之後,所許之田,分毫不給,又任用虢射、呂飴甥、郤芮一班私人,將先世舊臣,一概疏遠,里克心中已自不服。及勸惠公畀地於秦,分明是公道話,郤芮反說他為己而設,好生不忿,忍了一肚子氣,敢怒而不敢言。出了朝門,顏色之間,不免露些怨望之意。及丕鄭父使秦,郤芮等恐其與里克有謀,私下遣人窺瞰。鄭父亦慮郤芮等有人伺察,遂不別里克而行。里克使人邀鄭父說話,則鄭父已出城矣。克自往追之,不及而還。早有人報知郤芮。
한편, 이극의 생각은 원래 공자 중이를 모셔와서 군주로 세우려 했으나, 중이가 사양하고 귀국하지 않았으며, 이오가 많은 뇌물로 입국하기를 요구하여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라 이오를 진(晉)나라 군주로 세웠다. 그러나 진혜공이 즉위한 후에 주기로 했던 땅은 전혀 주지 않았고, 또 괵석(虢射), 여이생(呂飴甥), 극예(郤芮) 등 측근들만 임용했으며, 선대의 옛 신하들을 모두 소원하게 대하니, 이극은 마음속으로 이미 불복하게 되었다. 게다가 진혜공에게 진(秦)나라에 땅을 떼어 주는 것이 공변된 도리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극예가 도리어 자기 이해를 위해 그런 소리를 한다고 반박하여 대단히 분했지만, 뱃속 가득한 분노를 참고 감히 발설할 수 없어 조당 밖으로 나왔다. 얼굴에 원망하는 마음이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정보가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자, 극예 등은 그가 이극과 음모를 꾸미지 않았나 의심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시켜 이극을 몰래 감시했다. 비정보도 역시 극예 등이 사람을 시켜 자기를 감시할 것을 염려하여 이극과 이별도 하지 않고 진(秦)나로 갔다. 이극이 비정보와 상의하려고 사람을 시켜 찾으니 그는 이미 성을 나간 후였다. 이극이 뒤를 쫓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어느새 감시하던 사람이 극예에게 보고했다.
芮求見惠公,奏曰:「里克謂君奪其權政,又不與汾陽之田,心懷怨望。今聞丕鄭父聘秦,自駕往追,其中必有異謀。臣素聞里克善於重耳,君之立非其本意,萬一與重耳內應外合,何以防之?不若賜死,以絕其患。」惠公曰:「里克有功於寡人,今何辭以戮之?」郤芮曰:「克弒奚齊,又弒卓子,又殺顧命之臣荀息,其罪大矣!念其入國之功,私勞也。討其弒逆之罪,公義也。明君不以私勞而廢公議,臣請奉君命行討!」惠公曰:「大夫往矣!」
극예가 진혜공에게 뵙기를 청하여 아뢰기를, “이극은 주군께서 그의 권한을 뺏고 또한 분양의 땅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원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들으니 비정보가 진(秦)나라에 사신을 가는데 이극이 직접 수레를 몰아 그 뒤를 쫓아갔다고 합니다. 그들 사이에 반드시 어떤 음모가 있습니다. 신이 평소에 듣기로, 이극이 중이를 좋아했지만, 주군을 세운 것은 그의 본뜻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이극이 중이와 안에서 호응하고 밖에서 합세한다면 어떻게 막겠습니까? 이극을 죽여서 그 우환을 끊는 것이 좋습니다.” 했다. 진혜공이 말하기를, “이극이 나를 세운 공이 있는데 지금 무슨 구실로 그를 죽이겠소?” 하니, 극예가 말하기를, “이극은 해제를 시해하고 또한 탁자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고명대신인 순식까지 죽여 그 죄가 큽니다. 주군을 입국시켜 군주로 세운 공은 사사로운 공로이고 어린 군주를 살해한 죄를 묻는 것은 공변된 의리입니다. 밝은 군주는 사사로운 공로로 공변된 의논을 폐하지 않습니다. 신이 청하옵건대 주군의 명을 받들어 이극을 토벌하게 해 주십시오.” 하니, 진혜공이 말하기를, “대부가 가서 처리하시오.” 했다.
郤芮遂詣里克之家,謂里克曰:「晉侯有命,使芮致之吾子。晉侯云:『微子,寡人不得立,寡人不敢忘子之功。雖然,子弒二君,殺一大夫,為爾君者難矣!寡人奉先君之遺命,不敢以私勞而廢大義,惟子自圖之!』」里克曰:「不有所廢,君何以興?欲加之罪,何患無辭?臣聞命矣!」郤芮復迫之,克乃拔佩劍躍地大呼曰:「天乎冤哉!忠而獲罪,死若有知,何面目見荀息乎?」遂自刎其喉而死。郤芮還報惠公,惠公大悅。髯仙有詩云:「纔入夷吾身受兵,當初何不死申生?方知中立非完策,不及荀家有令名。」
극예가 즉시 이극의 집으로 가서 이극에게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주께서 명을 내려 나로 하여금 그대를 잡아오게 하셨다. 진(晉)나라 군주께서 이르기를 ‘이극 그대가 아니었으면 과인이 군주가 되지 못했다. 과인이 감히 그대의 공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는 두 명의 군주를 시해하고 한 사람의 대부를 죽였으니, 그대 때문에 군주 노릇 하기가 어렵다. 과인이 선군의 유명을 받들어 감히 사사로운 공로로 인하여 대의를 폐할 수 없으니 오직 그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하니, 이극이 말하기를, “내가 해제와 탁자를 제거하지 않았다면 주군은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았겠는가? 죄를 주어 죽이고자 하는데 무슨 핑계인들 대지 못하겠는가? 신 이극은 주군의 명령을 알아들었소!” 했다. 극예가 다시 이극을 재촉하자, 이극이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땅에서 뛰어오르며 크게 외치기를, “하늘이여 원통합니다. 충성을 바친 결과 죄를 얻게 되었습니다. 죽어도 혼이 있다면, 무슨 면목으로 순식을 보겠는가!” 하고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극예가 돌아와 진혜공에게 보고하니, 진혜공이 크게 기뻐했다. 염선(髯仙)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가까스로 이오를 군주로 세워 제가 오히려 죽음을 당하니, 처음부터 어찌하여 신생을 따라 죽지 못했던고? 비로소 중립이 좋은 대책이 아닌 줄 알았으니, 순식의 아름다운 이름에 미치지 못했네.” 했다.
惠公殺了里克,群臣多有不服者。祁舉、共華、賈華、騅遄輩,俱口出怨言。惠公欲誅之,郤芮曰:「丕鄭在外,而多行誅戮,以啟其疑叛之心,不可。君且忍之。」惠公曰:「秦夫人有言,托寡人善視賈君,而盡納群公子。何如?」郤芮曰:「群公子誰無爭心,不可納也。善視賈君,以報秦夫人可矣。」惠公乃入見賈君。時賈君色尚未衰,惠公忽動淫心,謂賈君曰:「秦夫人屬寡人與君為歡,君其無拒。」即往抱持賈君,宮人皆含笑避去。賈君畏惠公之威,勉強從命。事畢,賈君垂淚言曰:「妾不幸事先君不終,今又失身於君。妾身不足惜,但乞君為故太子申生白冤,妾得復於秦夫人,以贖失身之罪!」
진혜공이 이극을 죽이자 여러 신하들이 불만을 품게 되었다. 기거(祁擧), 공화(共華), 가화(賈華), 추천(騅遄) 등이 하나같이 혜공을 원망하는 말을 하였다. 진혜공이 그들을 죽이려고 하니 극예가 말하기를, “비정보가 나라 밖에 있는데 그 무리를 많이 죽인다면 의심하여 반란하게 할 것이니 안 됩니다. 주군께서는 잠시 참으십시오.” 했다. 진혜공이 말하기를, “진(秦)나라 군주의 부인 목희가 나에게 가군을 잘 돌봐 주고, 쫓겨난 공자들은 모두 귀국시켜 달라고 부탁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오?” 하니, 극예가 말하기를, “여러 공자들 중 누가 주군과 군주 자리를 다툴 마음이 없겠습니까? 결코 그들의 귀국시켜서는 안 됩니다. 가군을 잘 보살펴 달라는 진(秦)부인의 부탁은 들어줘도 됩니다.” 했다. 진혜공이 즉시 가군을 불러들여 만났다. 가군은 그때까지 미색이 시들지 않아 진혜공이 갑자기 음심이 발동해 가군에게 말하기를, “진(秦)부인이 과인에게 부탁하기를 그대와 즐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대는 거절하지 마시오!” 하고, 곧바로 가군을 안고 갔다. 궁인들이 모두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자리를 피했다. 가군이 혜공의 위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명을 따랐다. 정사가 끝난 후 가군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첩이 불행하게도 선군과 함께 죽지 않았다가 이제 다시 주군에게 몸을 더럽혔습니다. 첩의 몸은 아깝지 않으나 단지 주군께서 옛 태자 신생의 억울함을 밝혀 주십시오. 첩이 다시 진(秦)부인을 만나면 몸을 더럽힌 죄를 그것으로 속죄하고자 합니다.” 했다.
惠公曰:「二豎子見殺,先太子之冤已白矣。」賈君曰:「聞先太子尚藳葬新城,君必遷冢而為之立諡,庶冤魂獲安,亦國人之所望於君者也。」惠公許之。乃命郤芮之從弟郤乞,往曲沃擇地改葬。使太史議諡,以其孝敬,諡曰「共世子」。再使狐突往彼設祭告墓。先說郤乞至曲沃,別製衣衾棺槨,及冥器木偶之類,極其整齊。掘起申生之屍,面色如生,但臭不可當。役人俱掩鼻欲嘔,不能用力。郤乞焚香再拜曰:「世子生而潔,死而不潔乎?若不潔,不在世子,願無駭眾!」言訖,臭氣頓息,轉為異香。遂重殮入棺,葬於高原。曲沃之人,空城來送,無不墮淚。
진혜공이 말하기를, “두 어린아이가 이미 죽었으니 옛 태자의 원한은 이미 풀렸을 것이오.” 하니, 가군이 말하기를, “들으니, 옛 세자는 아직 신성(新城)에 초라하게 묻혀 있다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반드시 무덤을 옮기고 시호를 내려 원한을 풀어 주십시오. 이것은 나라 사람들도 역시 주군에게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했다. 혜공이 허락하고, 즉시 극예의 사촌 동생 극걸(郤乞)에게 명하여 곡옥에 가서 새로 묘지를 잡아 신생의 무덤을 옮기라고 했다. 또한 태사에게 신생의 시호를 의논하니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시호를 ‘공세자(共世子)’가 적합하다고 했다. 다시 호돌에게 명하여 곡옥으로 가서 그 묘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먼저, 곡옥에 도착한 극걸이 특별히 옷과 이불, 널과 덧널, 명기(冥器 ; 죽은 이의 명복(冥福)을 빌려고 제물을 담아 태우는 종이 그릇)와 나무 인형 등을 아주 극진히 준비했다. 신생의 시체를 무덤에서 파내니 그 얼굴색이 살아 있는 사람 같은데, 다만 악취가 심하여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인부들이 코를 막고 일을 했으나 구토가 자꾸 나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극걸이 향을 피우고 재배한 후 말하기를, “세자께서는 살아 계실 때는 몸이 청결하셨는데 죽어서는 불결하십니까? 만약 불결한 냄새가 세자의 것이 아니라면, 원컨대 인부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했다. 말이 끝나자 악취가 없어지고 기이한 향기로 바뀌었다. 곧이어 시체를 다시 염하여 관속에 넣고 고원(高原) 땅에 장사지냈다. 곡옥의 사람들이 성을 비우고 눈물을 흘리면서 장례 행렬을 따랐다.
葬之三日,狐突賷祭品來到,以惠公之命,設位拜奠,題其墓曰「晉共太子之墓。」事畢,狐突方欲還國。忽見旌旗對對,戈甲層層,簇擁一隊車馬,狐突不知是誰,倉忙欲避。只見副車一人,髮發斑白,袍笏整齊,從容下車,至於狐突之前,揖曰:「太子有話奉迎,請國舅那步。」突視之,太傅杜原款也。恍惚中忘其已死,問曰:「太子何在?」原款指後面大車曰:「此即太子之車矣。」突乃隨至車前。見太子申生冠纓劍佩,宛如生前,使御者下引狐突升車,謂曰:「國舅亦念申生否?」突垂淚對曰:「太子之冤,行道之人,無不悲涕。突何人,能勿念乎?」
장례가 끝난 지 3일 만에 호돌이 제사에 쓸 물건들을 가지고 도착했다. 진혜공의 명에 따라 위패를 세우고 제사상에 절을 한 다음 ‘진나라 공태자의 묘(晉共太子之墓)’라고 쓴 비석을 세웠다. 제사를 끝낸 호돌이 바야흐로 도성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갑자기 깃발이 휘날리고 창과 방패를 들고 첩첩이 에워싼 군사들 속에서 한 대의 거마가 나타났다. 호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여 창망 중에 몸을 피하려고 하는데, 뒤따르던 수레 중에서 한 사람이 머리칼은 반백이고 전포에 홀(忽)을 단정하게 잡고 조용히 내려 호돌의 앞에 이르러 읍하며 말하기를, “태자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모셔 오라고 했습니다. 청컨대 국구께서 저를 따라오십시오.” 했다. 호돌이 보니 태부 두원관이었다. 호돌은 정신이 황홀하여 두원관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묻기를, “태자는 어디에 계시는가?” 하니, 두원관이 뒤에 있는 큰 수레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 수레에 타고 계십니다.” 했다. 호돌이 두원관의 뒤를 따라 큰 수레 앞으로 갔다. 태자 신생이 머리에는 관을 쓰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신생이 마부에게 명하여 호돌을 수레에 오르도록 인도하게 했다. 신생이 말하기를, “국구께서도 신생을 생각하십니까?” 했다. 호돌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기를, “태자의 원통함은 행인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호돌이 누구이건대 어찌 잊을 리 있겠습니까?” 했다.
申生曰:「上帝憐我仁孝,已命我為喬山之主矣。夷吾行無禮於賈君,吾惡其不潔,欲卻其葬,恐違眾意而止。今秦君甚賢,吾欲以晉畀秦,使秦人奉吾之祀,舅以為何如?」突對曰:「太子雖惡晉君,其民何罪?且晉之先君又何罪?太子舍同姓而求食於異姓,恐乖仁孝之德也。」申生曰:「舅言亦是。然吾已具奏於上帝矣。今當再奏,舅為姑留七日。新城之西偏有巫者,吾將託之以復舅也。」杜原款在車下喚曰:「國舅可別矣!」牽狐突下車,失足跌仆於地,車馬一時不見。突身乃臥於新城外館。心中大驚,問左右:「吾何得在此?」
신생이 말하기를, “상제께서 나의 어질고 효성스러움을 불쌍히 여기시어 나에게 교산(喬山)의 주인으로 명하셨소. 이오가 가군(賈君)에게 무례를 범하여 내가 그 불결함을 싫어하여 나의 시신을 개장하는 것을 물리치려고 악취를 풍겼으나, 여러 사람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중지했소. 지금 진(秦)나라 군주가 아주 현명하여 내가 진(晉)나라를 진(秦)나라에 주어 진(秦)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려는데 국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했다. 호돌이 대답하기를, “태자께서 비록 진(晉)나라 군주를 싫어하시나 그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또한 진(晉)나라 선군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태자께서는 동성(同姓)을 버리시고 이성(異姓)으로부터 음식을 얻어 드시려고 하시니 어질고 효성스러운 덕에 벗어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하니, 신생이 말하기를, “국구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미 상제에게 아뢰었으므로 오늘 마땅히 다시 아뢸 것이니, 국구께서는 잠시 이곳에 7일간만 머무르시다가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신성의 서쪽 외딴곳에 무당이 한 사람 살고 있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부탁해 두겠으니 국구께서는 그때 무당을 찾아가 물어보십시오.” 했다. 두원관이 수레 밑에서 호돌을 부르기를, “국구께서는 돌아가셔야겠습니다.” 하고, 호들을 잡아끌어 수레에서 내리려고 하다가, 호돌이 실족하여 땅에 넘어졌다. 그 사이에 태자 신생이 탄 거마가 보이지 않았다. 호돌이 잠에서 깨어 보니 자기는 신성의 성문 밖 여관에 누워있었다.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 좌우에게 묻기를, “내가 어째서 여기에 있느냐?” 했다.
左右曰:「國舅祭奠方畢,焚祝辭神,忽然仆於席上,呼喚不醒。吾等扶至車中,載歸此處安息。今幸無恙。」狐突心知是夢,暗暗稱異。不與人言,只推抱恙,留車外館。至第七日未申之交,門上報:「有城西巫者求見。」突命召入,預屏左右以待之。巫者入見,自言「素與鬼神通語。今有喬山主者,乃晉國故太子申生,託傳語致意國舅:『今已覆奏上帝,但辱其身,斬其胤,以示罰罪而已,無害於晉。』」狐突佯為不知,問曰:「所罰者,何人之罪?」巫曰:「太子但命傳語如此,我亦不知所指何事也?」
좌우의 시종들이 말하기를, “국구께서 제사를 다 지내고 축문을 불사른 후에 갑자기 자리에 쓰러지셨습니다. 저희가 흔들어 깨웠지만 정신을 차리시지 못해 우리가 부축하여 수레에 태우고 이곳으로 모시어 쉬게 했습니다. 오늘 무사히 깨어나니 다행한 일입니다.” 했다. 호돌이 자기가 꾼 꿈이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에게 말하지 않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그 여관에 계속 머물렀다. 꿈에서 이야기한 7일째 되는 날 미시(未時 ; 오후 2시경)에서 신시(申時 ; 오후 4시경)로 넘어가려는 시간에 문을 시키는 사람이 와서 보고하기를, “성의 서문 쪽에 사는 무당이 뵙기를 청합니다.” 했다. 호돌이 들어오라고 하고, 미리 좌우에 있던 사람을 물러나 기다리게 했다. 무당이 들어와서 호돌을 뵙고는 스스로 말하기를, “평소에도 저는 귀신과 말을 합니다. 지금 교산(喬山)의 산신은 지난날 진(晉)나라 태자였던 신생입니다. 그 태자가 자기의 말을 국구에게 전해 달라며, ‘오늘 이미 다시 상제에게 아뢰었으니 다만 그 몸을 욕되게 할 것이며, 그 자손을 참하여 그 죄에 대한 벌을 내릴 것이고, 진(晉)나라에는 해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했다. 호돌이 짐짓 모르는 체하고 묻기를, “벌 받는 것은 누구의 죄라고 하던가?” 하니, 무당이 말하기를, “태자가 단지 이 말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역시 무슨 일을 가리키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했다.
突命左右以金帛酬巫者,戒勿妄言。巫者叩謝而去。狐突歸國,私與丕鄭父之子丕豹言之。豹曰:「君舉動乖張,必不克終。有晉國者,其重耳乎?」正敘談間,閽人來報:「丕大夫使秦已歸,見在朝中復命。」二人遂各別而歸。卻說,丕鄭父同秦大夫冷至,賷著禮幣數車,如晉報聘。行及絳郊,忽聞誅里克之信,鄭父心中疑慮,意欲轉回秦國,再作商量。又念其子豹在絳城:「我一走,必累及豹。」因此去住兩難,躊躇不決。恰遇大夫共華在於郊外,遂邀與相見。鄭父叩問里克緣由,共華一一敘述了。
호돌이 좌우에게 명하여 금과 비단을 무당에게 주고 이 이야기를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무당이 머리를 숙여 감사하고 물러갔다. 호돌이 도성으로 돌아와 몰래 비정보의 아들 비표(丕豹)에게 꿈과 무당에게서 들은 것을 말했다. 비표가 말하기를, “주군은 하는 일마다 도리에 어긋나니 반드시 명대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진(晉)나라를 가질 사람은 중이 공자가 아니겠습니까?” 했다.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문지기가 들어와서 고하기를, “비대부(丕大夫)께서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조정에서 복명하고 계십니다.” 했다. 두 사람은 마침내 각각 헤어져 돌아갔다. 한편, 비정보는 여러 수레의 예물을 가지고 진(晉)나라에 답례로 방문하는 진(秦)나라 대부 냉지(冷至)와 함께 도성 바깥에 이르러, 갑자기 이극이 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비정보가 심중에 의심이 일어나 수레를 돌려 진(秦)나라로 돌아가려 하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도성에 있는 아들 비표가 생각나서, ‘내가 진(秦)나라로 도망친다면 반드시 그 화가 비표에게 닥치리라!’고 했다. 이로 인해 비정보가 진퇴양난에 빠져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마침 대부 공화가 성밖에 있다가 서로 만났다. 비정보가 이극이 살해된 연유를 묻자 공화가 일일이 그 전말을 서술했다.
鄭父曰:「吾今猶可入否?」共華曰:「里克同事之人尚多,如華亦在其內,今止誅克一人,其餘並不波及。況子出使在秦,若為不知可也。如懼而不入,是自供其罪矣。」鄭父從其言,乃催車入城。鄭父先復命訖,引進冷至朝見,呈上國書禮物。惠公啟書看之,略曰:「晉秦甥舅之國,地之在晉,猶在秦也。諸大夫亦各忠其國,寡人何敢曰必得地,以傷諸大夫之義。但寡人有疆場之事,欲與呂郤二大夫面議。幸旦暮一來,以慰寡人之望!」書尾又一行云:「原地券納還。」惠公是見小之人,看見禮幣隆厚,又且繳還地券,心中甚喜,便欲遣呂飴甥郤芮報秦。
비정보가 말하기를, “내가 지금 도성으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하니, 공화가 말하기를, “이극과 같이 일을 도모한 사람이 아직 많은데, 나도 역시 나라 안에 있습니다. 지금은 다만 이극 한 사람만이 살해되었을 뿐이며 그 나머지 사람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대부는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었기 때문에 만약 이 일을 모르고 있는 척만 하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입니다. 대부께서 두려워하여 들어가지 않으신다면 스스로 죄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 됩니다.” 했다. 비정보가 그 말에 따라 수레를 몰아 도성에 들어가서 먼저 복명한 후에 냉지를 인도하여 진혜공을 뵈었다. 냉지가 국서와 예물을 올리니, 혜공이 국서의 봉함을 열고 읽었다. 국서에 대략 이르기를, “진(晉)나라와 진(秦)나라는 사위와 장인으로 맺어진 나라입니다. 땅이 진(晉)나라에 있는 것은 진(秦)나라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부들도 각기 자기 나라를 위하여 그 충성을 다 하는 것이니, 과인이 어찌 감히 반드시 그 땅을 달라고 하여 여러 대부들의 뜻을 상하게 하겠습니까? 다만 과인은 우리나라의 변경에 일이 있어 이 일을 여이생과 극예 두 대부와 의논하고 싶습니다. 다행히 급히 한 번 와서 과인의 바라는 바를 위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했다. 또한 국서의 끝에 다시 한 줄로 이르기를, “본래 저에게 써 주신 땅문서를 돌려 드립니다.” 했다. 진혜공은 소견이 좁은 사람이라 예물이 많고 또한 지권도 돌려주고 해서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여 곧 여이생과 극예를 진나라에 보내려고 했다.
郤芮私謂飴甥曰:「秦使此來,不是好意。其幣重而言甘,殆誘我也。吾等若往,必劫我以取地矣。」飴甥曰:「吾亦料秦之懽晉,不至若是。此必丕鄭父聞里克之誅,自懼不免,與秦共為此謀,欲使秦人殺吾等而後作亂耳。」郤芮曰:「鄭父與克,同功一體之人,克誅,鄭父安得不懼?子金之料是也。今群臣半是里丕之黨,若鄭父有謀,必更有同謀之人。且先歸秦使而徐察之。」飴甥曰:「善。」乃言於惠公,先遣冷至回秦,言:「晉國未定,稍待二臣之暇,即當趨命。」冷至只得回秦。
극예가 은밀히 여이생에게 말하기를, “이번에 온 진(秦)나라 사신은 결코 좋은 뜻으로 온 게 아닙니다. 폐백이 많고 언사도 달콤하니 이것은 우리를 유인하려는 술책입니다. 우리가 만약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간다면 틀림없이 우리를 협박하여 땅을 취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니, 여이생이 말하기를, “나도 역시 진(秦)나라가 우리나라를 기쁘게 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비정보가 이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화를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진(秦)나라와 공모하여, 그들을 시켜 우리들을 살해한 후에 변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했다. 극예가 말하기를, “비정보와 이극은 같이 공을 세운 한 몸과 같은 사람들인데, 이제 이극이 살해되었으니 비정보가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자금(子金 ; 여이생의 자)의 생각이 맞습니다. 지금 신하들 중 반이 이극과 비정보의 무리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에 비정보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 틀림없이 함께 모의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진(秦)나라 사신을 돌려보낸 후 천천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했다. 여이생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고, 즉시 진혜공에게 아뢰어 냉지를 진(秦)나라로 돌려보내면서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아서, 여이생과 극예 두 신하는 짬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곧 명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했다. 냉지가 어쩔 수 없이 진(秦)나라로 돌아갔다.
呂郤二人使心腹每夜伏於丕鄭父之門,伺察動靜。鄭父見呂郤全無行色,乃密請祁舉、共華、賈華、騅遄等,夜至其家議事,五鼓方回。心腹回報所見,如此如此。郤芮曰:「諸人有何難決之事?必逆謀也。」乃與飴甥商議,使人請屠岸夷至,謂曰:「子禍至矣,奈何?」屠岸夷大驚曰:「禍從何來?」郤芮曰:「子前助里克弒幼君,今克已伏法,君將有討於子。吾等以子有迎立之功,不忍見子之受誅,是以告也。」屠岸夷泣曰:「夷乃一勇之夫,聽人驅遣,不知罪之所在。惟大夫救之!」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은 심복을 시켜 매일 비정보의 집 문밖에 잠복해 동정을 살피게 했다. 비정보는 여이생과 극예가 전혀 자기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비밀히 기거(祁擧), 공화(共華), 가화(賈華), 추천(騅遄) 등을 청하여 밤에 그의 집에서 일을 의논하다가 새벽 4시경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심복이 돌아와서 본 것을 빠짐없이 보고했다. 극예가 말하기를, “여러 사람이 어떤 어려운 일을 결행하려고 했을까? 틀림없이 역모를 꾸몄을 것이다.” 하고, 즉시 여이생과 상의하여 사람을 시켜 도안이를 불러서 말하기를, “그대에게 화가 이르렀는데 어찌하겠는가?” 했다. 도안이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저에게 무슨 화가 닥친단 말입니까?” 하니, 극예가 말하기를, “그대가 옛날 이극을 도와 어린 군주를 시해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극이 법에 따라 죽었으니 주군께서 장차 그대에게도 죄를 물으려 하네. 우리는 그대가 주군을 영접한 공도 있고 하니 그대를 죽이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네.” 했다. 도안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저는 단지 힘이 조금 센 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며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도 못하니 오직 대부들께서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 했다.
郤芮曰:「君怒不可解也。獨有一計,可以脫禍。」夷遂跪而問計。郤芮慌忙扶起,密告曰:「今丕鄭父黨於里克,有迎立之心,與七輿大夫陰謀作亂,欲逐君而納公子重耳。子誠為懼誅者,而見鄭父,與之同謀。若盡得其情,先事出首,吾即以所許鄭父負葵之田,割三十萬以酬子功。子且重用,又何罪之足患乎?」夷喜曰:「夷死而得生,大夫之賜也。敢不效力!但我不善為辭,奈何?」呂飴甥曰:「吾當教子。」乃擬為問答之語,使夷熟記。是夜,夷遂叩丕鄭父之門,言有密事。鄭父辭以醉寢,不與相見。
극예가 말하기를, “주군의 분노를 풀 수는 없네. 오직 한 가지 계책이 있는데 그대로만 한다면 화를 면할 수 있네.” 했다. 도안이가 무릎을 꿇으면서 그 계책을 물었다. 극예가 당황하여 도안이를 붙들어 일으키며 은밀히 말하기를, “지금 비정보는 이극의 당을 거느리고 새로운 임금을 모시려 하네. 그래서 그는 일곱 대부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주군을 쫓아내고 공자 중이를 맞아들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네. 그대가 진실로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비정보를 만나서 그들과 함께 모의에 참여하게. 그래서 그 사정을 모두 파악하여 일이 터지기 전에 먼저 나에게 알려주면, 내가 즉시 주공께 말씀드려 비정보에게 주기로 약속한 부규(負葵)의 땅 중 30만 평을 떼어 그대가 세운 공로의 대가로 주도록 하겠네. 그대가 중용되면 어찌 죄를 근심하겠는가?” 했다. 도안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제가 죽음에서 살아난 것은 모두가 대부의 은혜입니다. 어찌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말을 잘하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여이생이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그대에게 가르쳐 주겠네.” 하고, 묻고 대답할 말을 예상하여 도안이에게 숙지하게 했다. 그날 밤 도안이가 마침내 비정보의 집을 찾아가 대문을 두드리면서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비정보가 취하여 잔다면서 만나지 않았다.
夷守門內,更深猶不去。乃延之入。夷一見鄭父,便下跪曰:「大夫救我一命!」鄭父驚問其故。夷曰:「君以我助里克弒卓子,將加戮於我,奈何?」鄭父曰:「呂郤二人為政,何不求之?」夷曰:「此皆呂郤之謀也。吾恨不得食二人之肉,求之何益?」鄭父猶未深信,又問曰:「汝意欲何如?」夷曰:「公子重耳仁孝,能得士心,國人皆願戴之為君。而秦人惡夷吾之背約,亦欲改立重耳。誠得大夫手書,夷星夜往致重耳,使合秦翟之眾,大夫亦糾故太子之黨,從中而起,先斬呂郤之首,然後逐君而納重耳,無不濟矣。」
도안이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밤이 깊어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들어오게 했다. 도안이가 비정보를 보자 문득 무릎을 꿇으며 말하기를, “대부께서는 저의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 했다. 비정보가 놀라 그 까닭을 묻자, 도안이가 말하기를, “주군께서 내가 이극을 도와 어린 탁자를 시해했다고 생각하여 장차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하니, 비정보가 말하기를,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이 정사를 맡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들에게 가서 사정해보지 않으시오?” 했다. 도안이가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여이생과 극예의 음모입니다. 저는 두 사람의 고기를 먹어도 시원치 않은데 그들에게서 무엇을 구한단 말입니까?” 했다. 비정보가 그래도 깊이 믿지 못하고 다시 묻기를, “그대는 어떻게 하고자 합니까?” 하니, 도안이가 말하기를, “공자 중이는 어질고 효성이 있으며 선비들의 마음을 얻어서 나라 사람들이 모두 군주로 모시고자 합니다. 진(秦)나라 사람들도 주군이 약속을 어긴 것을 미워하여 역시 중이로 바꾸어 세우고자 합니다. 만약 대부께서 친필로 편지 한 통을 써 주시면 제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중이 공자에게 가서 편지를 전하고 진(秦)나라와 적(翟)나라의 군사를 모으게 하고, 대부께서는 옛 태자를 따르는 무리들을 규합하여 안으로부터 일어나면, 먼저 여이생과 극예의 목을 벤 후에 이오를 몰아내고 중이를 모셔 와서 일이 성공할 것입니다.” 했다.
鄭父曰:「子意得無變否?」夷即嚙一指出血,誓曰:「夷若有貳心,當使合族受誅!」鄭父方纔信之。約次日三更,再會定議。至期,屠岸夷復往。則祁舉、共華、賈華、騅遄皆先在,又有叔堅、累虎、特宮、山祈四人,皆故太子申生門下,與鄭父屠岸夷共是十人,重復對天歃血,共扶公子重耳為君。後人有詩云:「只疑屠岸來求救,誰料奸謀呂郤為?強中更有強中手,一人行詐九人危。」丕鄭父款待眾人,盡醉而別。屠岸夷私下回報郤芮。芮曰:「汝言無據,必得鄭父手書,方可正罪。」夷次夜再至鄭父之家,索其手書,往迎重耳。
비정보가 말하기를, “그대의 마음이 변하지 않겠는가?” 하니, 도안이가 즉시 손가락 하나를 깨물어 피를 내어 맹세하기를, “제가 만약 두 마음을 품는다면 마땅히 제 종족들은 주살하십시오.” 했다. 비정보가 비로소 겨우 믿었다. 다음날 삼경에 다시 만나 의논을 하자고 약속했다. 다음날이 되자 도안이가 다시 비정보의 집에 와서 보니, 기거, 공화, 가화, 추천 등이 먼저 와 있었고, 또 숙견(叔堅), 누호(累虎), 특궁(特宮), 산기(山祇)등 네 사람도 같이 있었는데, 옛 태자 신생의 문하였다. 비정보와 도안이를 합하여 모두 열 사람이 다시 피를 입술에 바르고 하늘을 향하여 맹세한 후에 다 같이 힘을 합하여 공자 중이를 모셔와 군주로 삼기로 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구원을 청하는 도안이를 의심했을망정, 여이생과 극예의 간교한 음모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으니, 한 놈의 거짓말 때문에 아홉 명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구나!” 했다. 비정보가 모인 사람을 맛있는 음식으로 접대하여 모두 취하여 헤어졌다. 도안이가 몰래 극예에게 보고했다. 극예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증거가 없다. 반드시 비정보의 편지를 얻어야만 비로소 그의 죄를 물을 수 있다.” 하니, 도안이가 다음날 밤에 다시 비정보의 집에 가서 친서를 써주면 중이를 모셔 오겠다고 했다.
鄭父已寫就了,簡後署名,共是十位,其九人俱先有花押,第十屠岸夷也。夷亦請筆書押。鄭父緘封停當,交付夷手,囑他:「小心在意,不可漏泄。」屠岸夷得書,如獲至寶,一逕投郤芮家,呈上芮看。芮乃匿夷於家,將書懷於袖中,同呂飴甥往見國舅虢射,備言如此如此:「若不早除,變生不測。」虢射夜叩宮門,見了惠公,細述丕鄭父之謀:「明日早朝,便可面正其罪,以手書為證。」次日,惠公早朝,呂郤等預伏武士於壁衣之內。百官行禮已畢,惠公召丕鄭父問曰:「知汝欲逐寡人而迎重耳,寡人敢請其罪!」
비정보는 이미 중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놓았다. 편지 끝에 열 명의 이름 과 아홉 명의 화압(花押 ; 자필 표지, 싸인)이 되어 있었다. 도안이도 붓으로 화압을 했다. 비정보가 정성스레 봉함을 하여 도안이에게 건네주면서 당부하기를, “조심하여 비밀이 누설되지 않게 하시오.” 했다. 도안이가 밀서를 받아 들고 마치 대단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간직하고는 한달음에 극예의 집으로 달려가서 밀서를 바쳤다. 극예는 도안이를 자기 집에 숨겨 놓고, 밀서를 소매 속에 넣고 여이생과 함께 국구 괵석(虢射)을 만나서 자세히 말하기를, “만약 이들을 빨리 제거하지 않는다면 변란이 예측할 수 없는 사이에 발생할 것입니다.” 하니, 괵석이 밤중에 궁궐의 문을 두드려 혜공을 뵙고 비정보의 음모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말하기를, “내일 아침 일찍 조회에서 그들을 잡아 죄를 물으십시오. 이 편지가 증거입니다.” 했다. 다음날 혜공이 아침 일찍 조회에 나가 여이생과 극예에게 명하여 미리 무장한 병사들을 벽 안의 장막 뒤에 매복시키고 기다리게 했다. 백관의 예식이 끝나자 혜공이 비정보를 불러 묻기를, “그대가 과인을 쫓아내고 중이를 세우려는 음모를 알고 있다. 과인이 그 죄를 묻고자 한다!” 했다.
鄭父方欲致辯。郤芮仗劍大喝曰:「汝遣屠岸夷將手書迎重耳,賴吾君洪福,屠岸夷已被吾等伺候於城外拿下,搜出其書。同事共是十人。今屠岸夷已招出,汝等不必辯矣。」惠公將原書擲於案下。呂飴甥拾起,按簡呼名,命武士擒下。只有共華告假在家未到,另行捕拿。見在八人,面面相覷,真個是有口難開,無地可入。惠公喝教:「押出朝門斬首!」內中賈華大呼曰:「臣先年奉命伐屈,曾有私放吾君之功,求免一死,可乎?」呂飴甥曰:「汝事先君而私放吾主,今事吾主,復私通重耳,此反覆小人,速宜就戮。」賈華語塞。八人束手受刑。
비정보가 변명을 하려는데 극예가 검을 잡고 큰소리로 외치기를, “너는 도안이에게 편지를 주어 중이를 맞아 군주로 세우려고 하지 않았느냐? 주군께서 복이 있어서 우리 정탐병이 성밖에서 도안이를 잡아 그 편지를 찾았다. 같이 공모한 사람이 열 사람이고 도안이는 이미 자백했으니 너희들은 변명해도 소용없다.” 했다. 혜공이 편지를 책상 아래로 던지자 여이생이 주어서 편지에 적힌 사람의 이름을 불러 무사들이 포박했다. 다만 공화는 휴가를 고하고 집에 있다가 조회에 나오지 않아서 따로 잡아들이게 했다. 여덟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만 할 뿐 진실로 입은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었고 기어들어 갈 땅도 없었다. 혜공이 소리쳐 명령하기를, “조정의 문 앞으로 끌고 나가 모두 참수하라!” 하니, 그중에서 가화가 큰소리로 외치기를, “신이 옛날에 선군의 명을 받들어 굴성을 치러 갔을 때, 일찍이 몰래 주군을 놓아드린 공이 있습니다. 한번 죽음을 면하게 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하니, 여이생이 말하기를, “너는 선군의 명을 받고도 몰래 주군을 놓아주었다. 지금은 주군을 모시고 있으면서 또다시 몰래 중이와 내통했으니, 이 반복무상한 소인배를 빨리 처단함이 마땅하다.” 했다. 가화는 말문이 막혔고, 여덟 사람은 속수무책으로 형을 받았다.
卻說,共華在家,聞鄭父等事洩被誅,即忙拜辭家廟,欲赴朝中領罪。其弟共賜謂曰:「往則就死,盍逃乎?」共華曰:「丕大夫之入,吾實勸之。陷人於死,而己獨生,非丈夫也!吾非不愛生,不敢負丕大夫耳!」遂不待捕至,疾趨入朝,請死。惠公亦斬之。丕豹聞父遭誅,飛奔秦國逃難。惠公欲盡誅里丕諸大夫之族。郤芮曰:「『罪人不孥』,古之制也。亂人行誅,足以儆眾矣。何必多殺,以懼眾心?」惠公乃赦各族不誅。進屠岸夷為中大夫,賞以負葵之田三十萬。
한편, 공화가 집에 있는데 거사 계획이 누설되어 비정보 등이 잡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망 중에 사당에 절을 올려 작별을 고하고 조당에 나가 죄를 받고자 했다. 그 동생 공사(共賜)가 말하기를, “가시면 곧 죽을 건데 어찌하여 도망가지 않소?” 하니, 공화가 말하기를, “비정보 대부를 들어오게 한 것은 실은 내가 권유해서였다. 사람을 함정에 빠트려 죽여 놓고는 자기만 살겠다는 것은 장부가 아니다. 내가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게 아니라 감히 비정보 대부를 배반할 수가 없다.” 하고, 잡으러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조당에 달려가서 죽음을 청했다. 혜공이 또한 그를 참수했다. 비표가 부친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듯이 진(秦)나라로 달아나 난을 피했다. 진혜공은 이극과 비정보의 종족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였으나, 극예가 말하기를, “죄는 그 가족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법입니다. 반란을 꾀한 자를 주살한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충분히 경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필 많은 사람을 죽여 백성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겠습니까?” 했다. 진혜공이 이에 그 종족들을 죽이지 않고 용서한다고 했다. 이어서 도안이를 중대부로 삼고 부규의 땅 30만 평을 상으로 주었다.
卻說,丕豹至秦,見了穆公,伏地大哭。穆公問其故,丕豹將其父始謀,及被害緣由,細述一遍。乃獻策曰:「晉侯背秦之大恩,而修國之小怨,百官聳懼,百姓不服。若以偏師往伐,其眾必內潰,廢置惟君所欲耳。」穆公問於君臣。蹇叔對曰:「以丕豹之言而伐晉,是助臣伐君,於義不可。」百里奚曰:「若百姓不服,必有內變,君且俟其變而圖之。」穆公曰:「寡人亦疑此言。彼一朝而殺九大夫,豈眾心不附,而能如此?況兵無內應,可必有功乎?」丕豹遂留仕秦為大夫。時晉惠公之二年,周襄王之三年也。
한편, 비표가 진(秦)나라에 도착하여 진목공을 뵙고 땅에 엎드려 크게 울었다. 진목공이 그 까닭을 묻자 비표가 그의 부친이 거사를 계획하였다가 처형당한 연유를 상세히 이야기하고, 한 가지 계책을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주가 진(秦)나라의 큰 은혜를 배신하고 나라 안의 작은 원한을 사고 있습니다. 백관들은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한 떼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친다면 진(晉)나라 군사들은 반드시 내란으로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진(晉)나라 군주를 폐하고 세우는 일은 군주의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여러 신하에게 물으니, 건숙이 대답하기를, “비표의 말을 듣고 진(晉)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신하를 도와 그 군주를 치는 일이라 의리상 옳지 않습니다.” 했다. 백리해도 말하기를, “만일 백성이 불복한다면 반드시 안에서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그 변란이 일어날 때를 기다렸다가 일을 도모하십시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과인도 또한 비표의 말을 의심하고 있소. 진(晉)나라 군주가 하루아침에 아홉 대부를 죽였는데, 백성들이 따르지 않았다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었겠소? 하물며 우리가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가더라도 안에서 내응이 없다면 반드시 공을 세울 수 있겠소?” 했다. 비표는 마침내 진(秦)나라에 머물러 대부로 벼슬했다. 그때가 진(晉)나라 혜공 2년이고, 주양왕 3년(기원전 648년)이었다.
是年周王子帶,以賂結好伊雒之戎,使戎伐京師,而己從中應之。戎遂入寇,圍王城。周公孔與召伯廖悉力固守。帶不敢出會戎師。襄王遣使告急於諸侯。秦穆公晉惠公皆欲結好周王,各率師伐戎以救周。戎知諸侯兵至,焚掠東門而去。惠公與穆公相見,面有慚色。惠公又接得穆姬密書,書中數晉侯無禮於賈君,又不納群公子,許多不是。教他速改前非,不失舊好。惠公遂有疑秦之心,急急班師。丕豹果勸穆公夜襲晉師,穆公曰:「同為勤王而來此,雖有私怨,未可動也。」乃各歸其國。
그해에 주나라 왕자 대(王子帶)가 뇌물로 이수(伊水)와 낙수(雒水)의 오랑캐와 결탁하여 오랑캐를 시켜 경사(京師)를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성안에서 내응하기로 했다. 오랑캐들이 마침내 쳐들어와서 왕성을 포위하자 주공 공(周公孔)과 소백 요(召伯寥)가 있는 힘을 다하여 성을 지켰다. 왕자 대가 감히 나가서 오랑캐의 군사들과 호응하지 못했다. 주양왕이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 위급함을 알리자, 진(秦)목공과 진(晉)혜공이 모두 주나라 양왕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각기 군사를 이끌고 오랑캐를 물리쳐 주나라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오랑캐가 제후들의 구원병들이 이른 것을 알고, 왕성의 동문을 불 지르고 노략질한 후에 물러갔다. 진(晉)혜공은 진(秦)목공을 만나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다. 진혜공은 또한 목희가 보낸 편지를 전해 받았는데, 편지에는 진혜공이 가군을 욕보였을 뿐만 아니라 망명 중인 공자들을 불러들이지 않는 등 많은 잘못을 질책했다. 그리고 진혜공에게 과거의 잘못을 빨리 고쳐서 진(秦)나라와 우호 관계를 잃지 말라고 했다. 진혜공은 마침내 진(秦)나라의 속셈을 의심하여, 급히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비표가 과연 진목공을 권하여 진(晉)나라 군사를 야습하라고 하니, 진목공이 말하기를, “함께 주양왕을 돕자고 여기에 왔는데, 비록 사사로운 원한이 있다고 하지만 밤중에 습격할 수는 없소.” 하고, 이에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時齊桓公亦遣管仲將兵救周,聞戎兵已解,乃遣人詰責戎主。戎主懼齊兵威,使人謝曰:「我諸戎何敢犯京師?爾甘叔招我來耳!」襄王於是逐王子帶。子帶出奔齊國。戎主使人詣京師,請罪求和,襄王許之。襄王追念管仲定位之功,今又有和戎之勞,乃大饗管仲,待以上卿之禮。管仲遜曰:「有國高二子在,臣不敢當。」再三謙讓,受下卿之禮而還。是冬,管仲病,桓公親往問之。見其瘠甚,乃執其手曰:「仲父之疾甚矣。不幸而不起,寡人將委政於何人?」時甯戚賓須無先後俱卒。管仲嘆曰:「惜哉乎,甯戚也!」
그때 제환공도 역시 관중에게 군사를 주어 주나라를 구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오랑캐의 군사들이 이미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사람을 보내 오랑캐 군주를 질책했다. 오랑캐 군주가 제나라의 군사가 강함을 겁내어 사람을 보내어 사죄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오랑캐가 어찌 감히 왕성을 범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들의 왕자 대가 감언으로 우리를 불러서 출병했을 뿐입니다.” 했다. 주양왕은 이에 왕자 대를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왕자 대는 제나라로 망명해 왔다. 오랑캐 군주가 사자를 왕성에 보내 죄를 청하고 화의를 청하자 주양왕이 허락했다. 주양왕은 옛날 관중의 계책으로 주나라의 왕위를 물려받게 해준 것과, 지금 또 오랑캐와 화의를 맺도록 해준 노고를 생각하여 관중을 위해 큰 잔치를 열어 상경의 예로 대접했다. 관중이 겸손히 말하기를, “우리 제나라에는 국씨(國氏)와 고씨(高氏)가 있는데, 제가 어찌 감히 상경의 대우를 받겠습니까?” 하고 재삼 사양하여 하경의 예를 받고 제나라로 돌아갔다. 그해 겨울 관중이 병이 나서, 제환공이 친히 문안하러 가서 보니, 매우 수척했다. 제환공은 관중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중보의 병이 위중합니다. 불행히 일어나지 못한다면 과인은 장차 누구에게 정사를 맡겨야 합니까?” 했다. 그때는 영척과 빈수무가 모두 세상을 뜬 후였다. 관중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아깝습니다. 영척이여!” 했다.
桓公曰:「甯戚之外,豈無人乎?吾欲任鮑叔牙,何如?」仲對曰:「鮑叔牙,君子也。雖然,不可以為政。其人善惡過於分明。夫好善可也,惡惡已甚,人誰堪之?鮑叔牙見人之一惡,終身不忘,是其短也。」桓公曰:「隰朋何如?」仲對曰:「庶乎可矣。隰朋不恥下問,居其家不忘公門。」言畢,喟然嘆曰:「天生隰朋,以為夷吾舌也。身死,舌安得獨存?恐君之用隰朋不能久耳!」桓公曰:「然則易牙何如?」仲對曰:「君即不問,臣亦將言之。彼易牙、豎刁、開方三人,必不可近也!」桓公曰:「易牙烹其子,以適寡人之口,是愛寡人勝於愛子,尚可疑耶?」仲對曰:「人情莫愛於子。其子且忍之,何有於君?」
제환공이 말하기를, “영척 이외에 어찌 사람이 없겠습니까? 내가 포숙아에게 정사를 맡기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포숙아는 군자입니다. 그러나 정사를 맡기면 안 됩니다. 그는 선악을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분명합니다. 무릇 선을 좋아하는 것은 좋지만, 악을 미워하는 것이 너무 심해서 사람들이 누가 견디겠습니까? 포숙아는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평생토록 잊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의 단점입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습붕은 어떻습니까?” 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습붕이라면 거의 무던합니다. 습붕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집에 있을 때에도 공사(公事)를 잊지 않습니다.” 했다. 말을 마치고 휴우하고 한탄하더니 말하기를, “하늘이 습붕을 내어 저의 혀 노릇을 하게 하였습니다. 제 몸이 죽으면 어찌 혓바닥이 홀로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주군께서 습붕을 오래도록 쓰실 수 없을까 걱정됩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역아(易牙)는 어떻습니까?” 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주군께서 물어보지 않았더라도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저 역아, 수초, 개방 세 사람은 절대로 가까이 두면 안 됩니다.”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역아는 그의 자식을 삶아 요리를 해서 나의 입맛을 맞추었습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그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니 어찌 의심을 하겠습니까?”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사람의 정은 자식보다 더 사랑하는 게 없습니다. 그 자식을 그처럼 잔인하게 했는데 어찌 주군에게 잔인하게 대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桓公曰:「豎刁自宮以事寡人,是愛寡人勝於愛身,尚可疑耶?」仲對曰:「人情莫重於身。其身且忍之,何有於君?」桓公曰:「衛公子開方,去其千乘之太子,而臣於寡人,以寡人之愛幸之也。父母死不奔喪,是愛寡人勝於父母,無可疑矣。」仲對曰:「人情莫親於父母。其父母且忍之,又何有於君?且千乘之封,人之大欲也。棄千乘而就君,其所望有過於千乘者矣。君必去之勿近,近必亂國!」桓公曰:「此三人者,事寡人久矣。仲父平日何不聞一言乎?」仲對曰:「臣之不言,將以適君之意也。譬之於水,臣為之隄防焉,勿令泛溢。今隄防去矣,將有橫流之患,君必遠之!」桓公默然而退。
환공이 말하기를, “수조(수초)는 스스로 궁형(거세)을 하여 과인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과인을 자기 몸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이니,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사람은 자기 몸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가 그 자신의 몸을 그렇게도 잔인하게 대했는데 어찌 주군에겐들 잔인하게 대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위나라 공자 개방은 천승국의 태자를 버리고 과인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는 과인의 총애를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그의 부모가 죽었음에도 달려가 상을 치르지 않았으니 이것은 과인을 부모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사람은 자기 부모보다 더 친한 것이 없습니다. 그 부모에게 잔인한 사람이니 또한 어찌 주군에게 잔인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천승국의 군주에 오르는 것은 사람이 가장 크게 바라는 것입니다. 천승국의 군주 자리를 버리고 주군을 따랐으니 그의 바라는 바는 천승국보다 훨씬 큰 나라입니다. 주군께서는 그를 버리고 가까이 두지 마십시오. 가까이 두면 반드시 나라를 어지럽힐 것입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이 세 사람이 나를 섬긴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중보께서는 평소에 어찌하여 한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까?” 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신이 평소에 말씀을 드리지 않은 이유는 주군의 뜻에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물에 비유한다면 신은 주군을 위한 제방이 되어 물이 넘치지 않게 했을 뿐입니다. 지금 제방이 무너지려고 하니 장차 물이 넘치는 환난이 없도록 주군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멀리하십시오.” 했다. 제환공은 말없이 물러나왔다.
畢竟管仲性命如何,且看下回分解。
마침내 관중의 목숨은 어찌 될까?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