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심의 심적 압증을 씻어내던 청계천 길
광진구 구의동 동서울터미널 바로 앞에서 약 5년 생활하던 때는 호기심으로 간간이 변화된 청계천 일대를 돌아보곤 했다. 이때는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때라 주상복합아파트에 살았어도 주말에만 아파트의 답답한 구조와 번잡한 주변 환경들로 인한 심적 부담을 조금 느꼈었다.
그러나 정년퇴직 후에 서울 중구 황학동에서 주중에도 오랜 시간 기거하게 되면서부터는 주상복합아파트 구조상의 압증을 매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첫째는 양쪽 창문을 열어 바람이 시원하게 내닫게 할 수 있는 구조가 못 되는 문제였다. 둘째는 승강기가 여러 대 있고 속도가 빨라도 땅에서 먼 18층을 매일 오르내려 다니는 것은 번잡한 일이었다. 살던 곳이 지하철 신당역 2번 출구에서 5분 이내 거리에 위치한 소위 역세권이었는데, 지방 널찍한 곳에서 자유롭게 오래 생활하던 습관이 배여 있던 때라 평온한 일상생활마저 긴장된 외지에서 시작하는 듯 했다. 아파트단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매일 늘 모르는 사람들과 부딪쳐 긴장을 해야 했다. 바로 앞이나 옆 큰 폭의 도로는 늘 모르는 차량들로 가득 차 있고 소음들과 먼지들과 신호등 대기시간들과 늘 함께 하곤 했다. 매일 발이 부딪치고 스치는 옷깃을 피해야 하는 불유쾌함과 긴장상태도 이어져 일상생활이 평온하지 않음은 물론 소위 내 공간과 내 시간들이 점점 줄어져가는 느낌마저 들곤 했다. 그런 생활 중에 아침 일찍 일어나 집사람과 청계천 산책길들을 걷곤 했는데 걷는 약 2시간 중, 점점 좁아지고 줄어드는 내 시간과 공간을 되찾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걷는 길에서는 막히고 답답한 일상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고 넓은 공간과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는 길에서는 움츠러진 가슴이 펴이는 듯 했다. 그렇게 청계천길을 걷다보니 60년대 말에 서울에 올라와 청계천 근방에서 생활을 개척해 온 초등학교 동기동창생 친구를 반갑게 만나기도 했다. 청계천 일대에서 50여년 살아온 친구의 일대기가 흥미로워 중앙시장을 끼고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골목길도 같이 걸어보고 오래 일궈온 사업장에 가서 생활을 버티게 해준 소담스런 기기장비들도 돌아보니 청계천의 숨은 역사가 다채로워지는 듯 했다. 더러 글 쓰는 몇 선후배 문우들과 어울리는 경우엔 환담에 곁들여 주고받는 막걸리 잔들로 기분 좋게 취하는 경우들이 꽤 있었다. 그럴 경우엔 청계천 산책길을 가곤 했는데 환담과 산책이 길게 이어져 신당동에서 청계천 한 끝인 광화문광장 쪽 동아일보사옥까지 주유천하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