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당집 제9권[2]
[대광 화상] 大光
석상의 법을 이었다. 휘諱는 거양居讓이요, 속성은 왕씨이며, 장안長安 사람이다. 옷깃을 여미고 스승과 도를 찾아다니다가 남쪽으로 와서 석상石霜 보회의 문하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1, 2년 동안 남몰래 북탑에다 과일 나무를 키우고, 베옷과 짚신으로 생활하였는데, 침울해 보이고 꾀죄죄하였지만 뜻은 도에 있었다.
어느 날 대중들의 배움의 깊고 얕음을 징험하고자 보회가 질문을 하였다.
“나라에서 해마다 5백 명을 급제시키는데, 조정이 좋아졌는가?”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어떤 한 사람은 거기에 나아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명예를 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한번은 보회가 병이 들자, 그것으로 인해 설법하였다.
“오늘 말고 다른 때가 또 있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그는 ‘오늘이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에 석상이 말했다.
“나도 오늘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느니라.”
이에 보회가 인정하였다. 이렇게 몇 마디 주거니 받거니 해보니 뚜껑과 함이 꼭 맞듯 하였다. 그래서 20여 년 동안 한 곳에 머물러 지냈다.
이때 호공胡共이라는 단월檀越이 가족을 이끌고 귀의하여 대광산에 주석하기를 청했다.
어떤 학인學人이 물었다.
“혼돈混沌이 분명해지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특별히 누구더러 대답하라는 것인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문 밖을 나서지 않고 천하의 일을 안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문 밖을 나서지 않고 천하의 일을 아는 것입니까?”
“그래도 여전히 두 번째 집 가장[家主]이니라.”
“어떤 것이 천하의 일입니까?”
“맑은 것이다.”
“어떤 것이 위로 향하는 일입니까?”
“문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문 밖을 나가지 않는 것입니까?”
“이별하느니라.”
“어째서 이별합니까?”
“대중과 같이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또 매양 다음과 같이 시중하였다.
“당대의 가르침은 오직 당대의 사람들을 수습하기 위함일 뿐이다. 설사 철저하게 깎아낸다 하여도 겨우 깨우침을 이룰 뿐이니, 그대들은 누더기 밑의 일만으로써 감당하려 하지 말라. 그러므로 그대들에게 말하나니, 49년 동안 다 밝히지 못했고, 49년 동안 다 드러내지 못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달마達磨는 조사입니까?”
“조사가 아니니라.”
“조사가 아니라면 무엇 하러 동토東土에 왔습니까?”
“그대들이 조사를 모르기 때문이니라.”
“안 뒤에는 어떠합니까?”
“비로소 조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느니라.”
“보임保任한 사람이 한 생각을 잃을 때는 어떠합니까?”
“항상 머무르게 되느니라.”
“큰 마왕魔王이 되었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잠시 동안이니라.”
“말후末後의 일은 어떠합니까?”
“여기에 없느니라.”
“자취가 끊어져서 현묘해질 때는 어떠합니까?”
“새의 길[鳥道]이란 말을 일찍이 들은 적이 없느니라.”
“어떤 것이 사문의 행입니까?”
“바다를 건널 때 배를 타지 않느니라.”
어떤 좌주座主가 경산徑山에게 물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는데, 하나조차 남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경산이 대답했다.
“하나도 남지 않느니라.”
좌주가 긍정하지 않고 곧 강서로 가서 운거雲居에게 물으니, 운거가 말했다.
“만법이 아니니라.”
그가 또 긍정하지 않고 선사에게 와서 물으니,
선사가 대답했다.
“다 없애 버리지 못하느니라.”
이에 좌주가 긍정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안에서 쪼고 밖에서 쪼는 것이 같은 시각임은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달걀 속의 닭이 우는 소식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 소식을 들었는가?”
“어떤 것이 비밀한 방입니까?”
“사방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비밀한 방에 있는 사람입니까?”
“멀고 길도 없느니라.”
이로부터 선사의 현묘한 말씀이 멀고 가까운 곳에 쫙 퍼졌다.
선사가 천복天復 3년 계해癸亥 9월 3일에 편안하게 입적하니, 춘추는 68세요, 승랍은 36세였다.
[비전 복 선사] 肥田 伏
석상石霜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諱는 혜광慧光이니, 그의 행적을 보지 못해 그 생애의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다.
선사가 다음과 같이 송했다.
많은 묘용妙用을 닦는 것, 공부가 아니요
근원에 돌아간다는 것도 큰 어리석음이로다.
옛 부처님 닦아서 증득한 것이 아니니
설사 현묘함을 얻었다 해도 역시 구차한 꼴이로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장경長慶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많은 묘용을 닦는 것이 공부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그런 것을 써서 무엇 하겠는가?”
“어떤 것이 ‘근원에 돌아간다는 것이 큰 어리석음’이라 하는 것입니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어떤 것이 ‘옛 부처님은 닦아서 증득하지 않았다’ 하는 것입니까?”
“원래가 그대이거늘 다시 닦아서 무엇 하겠는가?”
“어떤 것이 ‘설사 현묘함을 얻었다 해도 역시 구차한 꼴이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오직 그대가 망령되게 밖으로 향하기 때문이니라.”
선사가 또 다음과 같이 송했다.
마음이 고요하면 근심이 들기 어렵고
근심이 없으면 재앙이 침범하지 못한다.
도가 높으니 용과 범이 굴복하고
덕이 중후하니 귀신도 흠모한다.
[용천 화상] 涌泉
석상石霜의 법을 이었고, 태주台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경흔景忻이고, 선유현仙遊縣 사람이다. 백운산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계를 받은 뒤에는 조사의 도를 찾아다니다 석상을 뵙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학인學人이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왔으니, 들어갈 곳을 스님께서 지시해 주소서.”
석상이 대답했다.
“나는 젓가락 세 개도 던져 버리지 못한다고 말하노라.”
이에 선사가 바로 현묘하게 계합하고, 다시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어느 때 강康과 덕德, 두 스님이 절에 오다가 선사가 길에서 소를 먹이는 것을 보았으나 선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굽과 뿔이 무척 분명하건만 소를 탄 이가 알지 못하는 것이야 어찌하랴?”
그들이 그대로 계속 가다가 중간에서 차를 달였는데,
선사가 소의 등에서 내려 인사를 하고는 그들과 같이 앉아서 차를 마시던 차에 다음과 같이 물었다.
“최근 어디서 떠났는가?”
스님들이 대답했다.
“저쪽에서 떠났습니다.”
“저쪽 일은 어떻던가?”
스님이 찻종지를 들어 보이니, 선사가 말했다.
“이 역시 굽과 뿔이 매우 분명한 소식일 뿐이다. 저쪽 일은 어떻던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자, 선사가 말했다.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 말라.”
그리고는 자리를 떠나 버렸다.
복선이 대신 말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도자道者를 어떻게 알아보겠습니까?”
또 대신 말했다.
“앉아서 차나 드십시오.”
초경招慶이 물었다.
“위로부터 전하는 종승宗乘의 일을 화상께서는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눈앞의 것을 제창하지 않소.”
“눈앞의 것을 제창하지 않으시는 것은 잠시 그만두고 종승의 일을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허공이 땅 위에 떨어지거든 그대에게 말해 주겠소.”
초경이 긍정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화상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소?”
초경이 말하였다.
“나는 알지 못하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보자報慈가 대신 말했다.
“날씨가 차가우니, 눈이 섬돌 위에 가득하느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얼음 속의 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얼음으로 얼려지지 못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물속의 얼음입니까?”
“6월이 되어도 녹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 개의 해가 떠도 녹이지 못하겠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두 쥐가 왕래하여도 관계치 않느니라.”
[남제 화상] 南際
석상의 법을 이었고, 강서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승일僧一이고, 처음에는 남제산南際山에서 살았고, 그 다음은 종릉鍾陵 대왕大王의 청으로 말산에서 살았으며, 나중에는 민왕閩王의 청으로 서원에서 살았다. 민왕이 황제에게 자의紫衣를 주청하여 하사받았고, 시호를 본정本淨 대사, 탑호塔號를 무진無塵이라 하였다.
세상에 계실 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천 성인의 지위 가운데 배석陪席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있느니라.”
“어떤 것이 배석하지 않는 것입니까?”
“분명히 용이건만 비늘이 없고, 분명히소이건만 뿔이 없느니라.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걸어서 물에 드니 그 깊이를 알지 못하고 바다 속 용궁을 부질없이 찾는다.”
어떤 이가 물었다.
“학인이 다행히 스님을 뵙게 되었으니 지시해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만일 요지를 지시해 준다면 그대를 모독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학인은 어찌해야 합니까?”
“절대로 시비를 따지지는 말라.”
“어떤 것이 납승의 숨결입니까?”
“그대에게 풍긴 적이 있었던가?”
“어떤 것이 법신法身의 주인입니까?”
“넘치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비로자나입니까?”
“초월하지 않는 것이니라.”
[운개 화상] 雲蓋
석상石霜의 법을 이었고, 담주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원선源禪인데, 행장을 보지 못해 그 생애를 기록할 수 없다.
선사가 석상에 있을 때,
어느 날 문안을 드린 끝에 물었다.
“만호萬戶를 모두 연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만호를 모두 닫은 때는 어떠합니까?”
석상이 되레 물었다.
“그 안의 일은 어떠한가?”
“지위가 없습니다.”
“무엇에 의지하는가?”
선사가 그때에는 대답을 못하다가 반년이 지난 뒤에야 말했다.
“그를 제접할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석상이 말했다.
“말이야 참으로 잘했으나 겨우 10중 8, 9정도만 얻었을 뿐이다.”
이에 선사가 화상에게 대신 말해 주기를 청하니, 석상이 말했다.
“그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느니라.”
[구봉 화상] 九峰
석상石霜의 법을 이었고, 강서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도건道虔이요, 속성은 유劉씨이며, 복주의 후관현候官縣 사람이다. 석상의 비밀한 뜻을 깨달은 뒤로부터 바로 구봉에서 살다가 나중에는 늑담의 보봉선원寶峰禪院에서 교화를 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간의 사람은 어떤 행을 행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축생의 행을 행하느니라.”
“축생은 다시 어떤 행을 행합니까?”
“무간 행을 행하느니라.”
“그것은 여전히 장생長生의 길 위에 있는 사람이겠습니다.”
“그대는 생명을 함께하지 않는 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생명을 함께하지 않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오래 사는 가문은 항상하지 않느니라.”
선사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들이여, 목숨을 알고 있는가?
목숨을 알려면 샘물처럼 흐르는 것은 목숨이요, 맑고 고요한 것은 몸이요, 천 파도가 다투어 이는 것은 문수文殊의 경계요, 맑은 하늘이 한 길로 뻗는 것은 보현普賢의 평상이다.
그 다음에 한 구절을 보탠다면 달을 가리킴이요, 그 안의 일은 달을 이야기함이니라.
예로부터 종문의 일은 마치 절도사의 깃발과 같나니, 제방에서의 선덕禪德들이 그렇게 많은 명목을 세워 설명하기 이전에는 여러분은 어떤 결실을 기준하여 따져 헤아렸는가?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세 치의 혀를 빌리지 않고 설명해 보아야 하며, 귀를 빌리지 않고 들어야 하며, 눈을 빌리지 않고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말하기 전에는 던져 버리지 못하고, 말한 뒤에는 그 모습을 숨길 수 없다’ 하니,
온 건곤이 온통 그대들 자신의 당체當體이다. 어느 곳에다 눈ㆍ귀ㆍ코ㆍ혀를 두겠는가?
뜻만으로 헤아리고 분별해서 견해를 짓지 말라. 세상이 다하여도 쉴 때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마음과 뜻으로써 현묘한 법을 배우려 하면 흡사 서쪽으로 가려는 이가 동쪽으로 향하는 것 같으니라.’ 하였으니,
겁劫에 빠져 어그러지게 되는 것이다. 형제여.”
어떤 이가 물었다.
“궁궐에서 소식이 끊겼는데, 은혜로운 사면[恩赦]은 어디서 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유광流光이 비록 두루 하나 문턱 안에까지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문턱 안과 유광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푸른 물에 파도가 일고, 푸른 산은 산색山色이 수려하니라.”
“사람마다 이익 되기를 청해서 묻는다 하는데, 스님께서는 무엇으로 중생을 구제하시렵니까?”
“그대는 큰 산에 한 치의 흙이 없으리라 여기는가?”
“그렇다면 사해四海에서 찾아드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연야달다演若達多의 머리가 혼미하여 마음이 저절로 미쳤느니라[狂].”
“미치지 않는 이도 있습니까?”
“있느니라.”
“어떤 것이 미치지 않은 자입니까?”
“첫 새벽길에 눈을 뜨지 않는 자이니라.”
“어떤 것이 학인學人 자신입니까?”
“그 밖에 누가 있느냐?”
“그냥 그렇게 알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말했다.
“수미산이 수미산을 다시 이겠는가?”
“조사에게서 조사에게로 전했다 하는데, 무엇을 전하셨습니까?”
“석가는 인색하고, 가섭은 풍부했느니라.”
“필경에 전해 지닌 일이 무엇입니까?”
“동갑 노인들이 등불을 나누어 주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도 나의 도가 아니다’ 했는데, 어떤 것이 나의 도입니까?”
“나의 도는 모든 부처님들이 아니니라.”
“모든 부처님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나의 도를 세웁니까?”
“아까 잠시 불러들였다가 이제 쫓아 버렸다.”
“어째서 쫓아 버렸습니까?”
“쫓아내지 않으면 눈에 티가 돋느니라.”
“모든 곳에서 찾을 수 없다면 성인이 아니겠습니까?”
“성인이니라.”
“우두牛頭가 4조를 만나지 못했을 때 어찌 성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성인의 경계가 없지는 않았느니라.”
“두 성인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티끌 속에서 몸을 숨기는 기술이 있다지만 온몸으로 황제의 지방[帝鄕]에 들어가는 것만이야 하겠느냐?”
“듣건대 옛사람이 말하기를,
‘온 건곤이 모두 눈[眼]이다’ 하는데, 어떤 것이 건곤의 눈입니까?”
“건곤이 그 속에 있느니라.”
“건곤의 눈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건곤의 눈이니라.”
“밝게 비칠 수 있습니까?”
“세 가지 광채의 세력을 빌리지 않느니라.”
“세 가지 광채를 빌리지 않는다면 무슨 근거로 건곤의 눈이라 부릅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해골바가지 앞에서 귀신을 보는 사람이 무수하리라.”
“한 붓으로 단숨에 단청을 하면서 어째서 지공志公의 사진은 그리지 못합니까?”
“승요가 지공을 인정하였느니라.”
“그러면 지공도 승요를 긍정하였습니까?”
“지공이 긍정한다면 승요는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승요는 누구의 종지를 받았기에 지공을 인정했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오구烏龜가 수미의 기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진심이다, 망심이다’ 하는데, 이 뜻이 어떠합니까?”
“이는 진眞을 세워 망妄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진심입니까?”
“잡되게 먹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망심입니까?”
“반연하여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다.”
“이 두 가닥을 떠나서 어떤 것이 학인의 본체입니까?”
“본체는 떠나는 것이 아니니라.”
“어째서 떠나지 않습니까?”
“공덕천功德天을 공경하지도 않는데, 누가 흑암녀黑暗女를 미워하랴.”
“경계를 대하여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큰 힘을 가진 사람입니까?”
“경계를 대하여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니라.”
“아까는 어째서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집에 있을 때는 쉽다고 말했지만 막상 통발을 들고서야 비로소 고기 잡기가 어렵다는 것을 아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도는 명칭을 초월한다’ 하였는데, 명칭 밖의 도를 누가 세웁니까?”
“이름을 빌리어 도라고 할 뿐이지, 도가 스스로 이름을 짓지는 않느니라.”
“스스로가 도라고 이름을 짓지 않았다면 노 행자는 어떻게 안 것입니까?”
“아는 곳은 노씨의 경계가 아니니라.”
“어떤 것이 노씨의 경계입니까?”
“샛별을 뒤로 하고, 소를 거꾸로 타는 것이니라.”
“미륵은 원래 석가의 스승이었는데, 석가에게 무슨 증험이 있어서 현묘하게 9겁을 초월했습니까?”
“보배로운 곳은 멀고 가까움이 없지만 늦고 빠름의 차이는 있다.”
“빠르고 더딘 것 외에 또 나눕니까?”
“어찌 나누지 않겠는가?”
“어떻게 나눕니까?”
“석가는 먼저 도달하지 않았고, 미륵은 뒤에 이르지 않았느니라.”
“그렇다면 계족산에서 옷을 들고 누구를 기다린 것입니까?”
“먼 소식은 다만 보처補處에게나 전해야 하느니라.”
“전한 뒤에는 어떠합니까?”
“용화龍華 회상에 자씨慈氏가 없느니라.”
“보처補處, 그는 또 누구입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자씨에게 물어보라.”
선사가 상당하자 대중이 모였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허공에서 어떤 사람이 설법을 하는데, 그 소리가 범천을 진동시킨다. 여러분도 듣는가? 만일 듣지 못했거든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들어라. 오래 서 있었다. 잘 가거라.”
이에 대중이 막 흩어지려는데, 선사가 다시 대중을 불렀다. 대중이 고개를 돌리니, 선사가 말했다.
“이야기를 잘못 전하지 말라.”
“해가 한복판에 있을 때는 어떠합니까?”
“마치 한밤중과 같으니라.”
“그럴 때, 해는 어디에 있습니까?”
“한복판에 있느니라.”
“해가 한복판에 있다면 어떻게 한밤중과 같습니까?”
“한밤중에도 해는 역시 한복판에 있다.”
“빛은 비추기는 합니까?”
“흰 구름이 광채를 뿜으니, 달 속의 그림자가 퍼지지 않느니라.”
이에 선사가 다시 게송을 읊었다.
한나절에 해가 둥글어도 비치지 않다가
도리어 3경을 가리키자 잠시 사람들에게 보인다.
밝고 어둠으로 앞의 일만 없애려 하지 말라.
등燈 근처의 구족한 몸은 아니었노라.
“성인의 미혹과 범부의 미혹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성인의 미혹은 어둡기가 옻칠 같고, 범부의 미혹은 밝기가 해 같으니라.”
“성인의 미혹은 어찌하여 어둡기가 옻칠 같습니까?”
“죽은 스님의 면전이라는 말도 듣지 못했느냐?”
“범부의 미혹은 어째서 밝기가 해와 같습니까?”
“그대들의 의식이 맺힌 곳이 많기 때문이니라.”
“범부에도 성인에도 속하지 않는 경지境地를 어떻게 가려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천 개의 눈으로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세상 지혜와 부처 지혜는 이름은 같으나 본체는 다르다’ 했는데, 세상 지혜와 부처 지혜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그대는 반딧불이의 빛과 햇빛이 어떻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우수함과 열등함이 분명하겠습니다.”
“그대들이 하인이다, 주인이다 하기에 다르니라.”
“다르다면 어째서 옛사람이 ‘몸과 마음이 한결같아서 몸 밖에 다른 것이 없다’고 말하셨습니까?”
“사물이 만약 완전하다면 무슨 같고 다름이 있겠는가?”
법조 화상이 물었다.
“듣건대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문수는 용用이다’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소.”
“또 듣건대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문수는 방두(方頭:융통성 없는 사람)다’라고 하셨다면서요?”
“이것을 떠나 오늘부터 이것이 아닌 쪽으로 간다면 이 방두는 무엇이란 말이오?”
“방두도 돌아옵니까?”
“10명의 식구 중 9명이 떠드는데, 한 명은 알지 못하오.”
“알지 못한다면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문수를 방두라 하십니까?”
“천千 줄기의 강에 달빛을 나누어 주었지만 그 달빛 언제 푸른 하늘에서 내려온 적이 있던가?”
“그러할 때에 문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머금고 있는 사이에 예전의 이름을 잃었다.”
“아홉 사람이 그렇게 와서, 무슨 소식을 전합니까?”
“아홉 사람은 뜻을 얻지 못했다.”
“뜻을 얻지 못했다면서 무슨 소식을 전합니까?”
“바로 그것이 소식을 전하는 경지境地이다.”
“누구의 말을 전합니까?”
“차라리 혀를 끊을지언정 나라님의 휘자諱字를 범할 수는 없느니라.”
“법 비[法雨]가 골고루 적셔 주는데, 마른나무는 어찌하여 꽃이 없습니까?”
“듣지 못했는가? 높은 초원이 육지라는 말을.”
“끝내 꽃을 피울 때가 있겠습니까?”
“꽃을 피운다면 마른나무라 할 수는 없느니라.”
“옛사람은 어찌하여 ‘마른나무에 한 떨기의 꽃이 핀다’ 하였습니까?”
“한 사람은 말을 않고 한 사람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누가 혀가 없는 자인가?”
“털을 쓰고 뿔을 인 사람은 어떤 지위에 머뭅니까?”
“백은을 땅으로 삼고 황금으로 담을 만든다.”
“이 사람에게도 스승이 있겠습니까?”
“있느니라.”
“어떤 것이 이 사람의 스승입니까?”
“털도 쓰지 않고 뿔도 이지 않은 사람이니라.”
“옛사람은 어째서 ‘설사 털을 쓰지 않고 뿔을 이지 않아도 교섭할 길이 없다’고 말하였습니까?”
“옛사람은 다른 가운데 다른 것[異中異]을 밝히기 위하여 거듭 얼굴을 씻느니라.”
“중ㆍ하의 근기는 끊어 보내는 방편을 빌려야 합니까?”
“이는 간곡한 방편에 떨어지는 것이다.”
“상상上上의 근기도 끊어 보냄을 빌립니까?”
“집안의 가장은 씹던 밥을 먹지 않느니라.”
“옛사람은 어째서 ‘설사 상상의 근기라도 일깨워 주어야 된다’고 말하였습니까?”
“뚜렷하게 걷어 올리고서 떠나면 누가 있어 그대같이 흔들거리랴?”
“그렇다면 흔들거리는 것 역시 잘라 버려야 되겠군요?”
“그러하니라.”
“상상의 근기를 어떻게 일깨워 주어야 합니까?”
“달걀이 때를 넘겨도 놀라지 않는 사람이 있느니라.”
“큰 천제闡提에 속하는 사람은 어떤 짐을 꾸립니까?”
“칼날을 드러내고 칼을 치켜드느니라.”
“누구를 죽이려 합니까?”
“모든 성인과 부처와 조사를 항상 없애야 한다.”
“물리친 뒤에는 이 사람을 어디서 죽여야 합니까?”
“밥상 앞에 모인 자리에서 죽여야 하느니라.”
“죽인 뒤에는 어떠합니까?”
“해오라기는 눈 숲에 들어가지 않느니라.”
“금방 난 자식에게도 생애라는 것이 있습니까?”
“봉이 하늘에 오르나 푸른 구름은 알지 못하느니라.”
“문 안에 든 뒤의 일은 어떠합니까?”
“문 안에서는 흰머리를 잊어버리느니라.”
“그렇다면 나이 젊은 아비가 있는 줄은 모르겠습니다.”
“해오라기가 이미 눈 숲에 들어와 있느니라.”
“그러할 때에도 가릴 곳이 있겠습니까?”
“해오라기가 없지는 않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산 밑 단월檀越 집의 한 마리 수고우水牯牛가 되리라.’ 했는데, 그 수고우를 살쾡이나 흰 물소와 분별합니까?”
“분별을 왜 안 하는가? 해야지.”
“어떻게 분별합니까?”
“살쾡이와 흰 물소는 머리에 뿔이 없지만 산 밑의 수고우는 뿔이 다시 나느니라.”
“그렇다면 옛사람이 한 마리의 수고우가 되었겠습니다.”
“만일 한 마리의 수고우가 되었다면 옛사람을 굴욕되게 함이니라.”
“화상께서는 조금 전에 어찌하여 뿔이 다시 난다 하셨습니까?”
“다시 뿔이 나면 가엾어서 머리를 자르지 못하고 뿔이 없으면 무리에 들지 못하느니라.”
“위로부터 전하는 종승宗乘을 청해 묻는 것이 옳습니까? 청해 묻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3년 동안 크게 가물어도 동해 바다는 모르느니라.”
“그렇다면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안에서도 얻을 수 없느니라.”
“안에서도 얻을 수 없고 밖에서도 얻을 수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구족한 것도 아니요, 모자라는 것도 아니니라.”
“끝내 어떠합니까?”
“궁구해도 다하지 못하느니라.”
“불佛ㆍ법法 두 글자가 마치 원수와 같을 때는 어떠합니까?”
“토끼의 뿔은 그대 마음대로 가져도 되지만 토끼는 나에게 돌려다오.”
“토끼에게 어찌 뿔이 있겠습니까?”
“불ㆍ법, 두 글자는 무엇에 근거해 세웠는가?”
“세우지 않은 자는 어떠합니까?”
“토끼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