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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장엄경론 제7권
17. 도섭품(度攝品) ①
[업이 모이는 여러 바라밀]
[釋] 이미 업을 일으키는 방편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업이 모이는 여러 바라밀에 대하여 이제 마땅히 말하겠다.
이 가운데서 먼저 우다나(憂陀那)의 게송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수(數)와 상(相)과 차례와 이름과
수습과 차별과 섭행(攝行)과
치장(治障)과 공덕과 호현(互顯)의
바라밀의 열 가지의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釋] 여기에서는 여섯 가지의 바라밀에 열 가지의 뜻이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제수(制數)요, 둘째는 나타난 모양이요, 셋째는 차례요, 넷째는 이름을 풀이함이요, 다섯째는 닦아 익히는 것이요, 여섯째는 차별이요, 일곱째는 섭행(攝行)이요, 여덟째는 치장(治障)이요, 아홉째는 공덕이요, 열째는 호현(互顯)이다.
이 가운데 여섯 게송의 제립(制立)이 있으니, 여섯 가지 바라밀의 수가 오직 여섯 가지가 있다.
게송으로 말한다.
자생(資生)과 신(身)과 권속과
발기(發起)는 처음의 네 가지를 성취하는 것이고
제5는 혹(惑)이 물들지 아니함이고
제6은 업이 전도되지 아니함이다.
[釋] 이 게송은 자기 이익의 세 가지의 일을 섭(攝)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첫째는 증진(增進)이요,
둘째는 물들지 아니함이요,
셋째는 전도되지 아니함이다.
그러기에 바라밀을 세운 수를 세운 것이 오직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의 네 가지 바라밀은 그의 순서대로 능히 네 가지의 일을 증진하게 함이니,
첫째 자생을 성취함은 보시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둘째 자기의 몸을 성취함은 계율 가짐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셋째 권속이 성취됨은 인욕(忍辱)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인욕을 행하는 자는 많은 사람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넷째 발기(發起)가 성취함은 정진으로 말미암기 때문으로, 모든 사업이 이로 인하여 성취된다.
다섯째 참선하는 바라밀은 능히 번뇌에 물들지 않게 하여 번뇌를 꺾어 굴복시킴이 이 힘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여섯째 지혜의 바라밀은 업이 전도되지 않게 하여 모든 짓는 것을 여실(如實)하게 알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자신에게 베풂과 번뇌하지 않게 함과
번뇌를 참는 것은 남을 이롭게 함이요,
인이 있음과 마음이 머묾과
해탈은 자기를 이롭게 함이다.
[釋] 이 게송은 두 가지 이익을 섭수하는 것의 여섯 가지의 일을 나타내 보이기에 바라밀의 수를 세운 것이 오직 여섯 가지이다.
처음은 남을 이롭게 하는 세 가지의 일을 섭수하기 위하여 앞의 세 가지 바라밀을 세워서 정근(正勤)을 일으키게 하였으니, 그 순서대로이다.
첫째는 자신에게 베풂이요, 둘째는 번뇌하지 아니함이요, 셋째는 자신의 번뇌를 참는 것이다.
뒤에는 자기 이익을 위한 세 가지의 일을 섭수하였다.
그러기에 뒤의 세 가지 바라밀을 세워서 정근을 일으킨 것이 그 순서대로이다.
첫째는 인이 있음이니 정진함을 의지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마음이 머무는 것이니 마음이 정하지 못했던 것을 정하게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셋째는 해탈이니 마음이 이미 정하여졌음으로 말미암아 해탈하게 함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모자라지 않게 하고 또한 번뇌하지 아니하며
번뇌를 참고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고
돌아와 향하고 좋게 말하는 것이
남을 이롭게 하고 곧 자기를 성취한다.
[釋] 이 게송은 남을 이롭게 하는 여섯 가지의 일을 섭수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그러기에 바라밀을 세운 수가 오직 여섯 가지이다.
보살이 육바라밀을 행할 때에 그 순서대로 수용함이 모자라지 않게 하기 때문이요, 그를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요, 괴로움을 참기 때문이요, 짓는 것을 도와서 물러서지 않게 하기 때문이요, 신통의 힘으로써 돌아와 향하게 하기 때문이요, 법을 잘 말함으로써 그들의 의심을 끊어 주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기의 이익이 되고 남을 위해서 짓는 것이 곧 자기가 짓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큰 보리를 얻는다.
게송으로 말한다.
물들지 아니함과 극히 공경함과
불퇴(不退)에 두 가지가 있으니
둘에 분별이 없으면
갖추어 대승의 인을 섭수한다.
[釋] 이 게송은 대승의 네 가지 인을 섭수하였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그러기에 바라밀을 세운 수가 오직 여섯 가지이다.
첫째는 물들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극히 공경함이요,
셋째는 물러서지 아니함이요,
셋째는 분별이 없는 것이다.
보살은 보시를 닦아 행할 때에는 곧 재물에 물들지 않는다. 그것은 돌아보아 연착함이 없기 때문이다.
계를 받아 가질 때에는 온갖 배우는 곳에서 극히 공경함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인욕과 정진을 행할 때에는 이 둘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인욕은 중생과 중생이 아닌 것들이 짓는 온갖 괴로움을 참아서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요, 정진은 수행에 좋은 때에 물러서지 않음을 얻기 때문이다.
또는 선정과 반야를 행할 때에 이 둘에서 분별이 없으니, 그것은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毗鉢舍那)를 평등하게 섭수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인은 일체 대승의 인을 섭수하여 다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집착하지 아니함과 어지럽지 아니함과
버리지 아니함과 또한 증진함과
청정한 혹(惑)과 지장(智障)을
이 도에서 다 섭수한다.
[釋] 이 게송은 대승의 여섯 가지의 도를 섭수하였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그러기에 바라밀의 수를 세운 수가 오직 여섯이다.
[문] 도라는 것은 어떠한 뜻이 있습니까?
[답] 방편이 있는 것은 도라 한다.
이 가운데 보시 바라밀은 온갖 자재(資財)에서 집착되지 아니함이 도라 한다.
그것은 보시로 말미암을 때에 경계에 있어서 물들고 집착함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계율 바라밀에서는 모든 경계에 있어서 어지럽지 않음을 도로 삼는다.
그것은 계율받기를 구할 때에 일체의 마음이 어지러운 것을 조섭하여 머물게 하기 때문이며,
비구로서 머물러 보호하는 자가 경계를 구할 때에 일체 업의 어지러움이 이를 능히 전(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욕 바라밀로 중생에 있어서 버리지 않음을 도로 삼는다.
그것은 일체 요익(饒益)하지 못한 일에 있어서 싫어함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정진 바라밀로서 모든 착한 것을 닦아서 증장함을 도로 삼는다.
그것은 정진함으로 말미암아 발기해서 증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선(禪) 바라밀로써 온갖 번뇌의 장애를 청정하게 함을 도로 삼는다.
지혜 바라밀은 온갖 지혜의 장애를 청정하게 함을 도로 삼는다.
이와 같이 여섯 가지의 도로써 일체 대승의 도를 섭수하여 다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세 가지의 학(學)을 섭수하기 위하여
바라밀에 여섯 가지가 있음을 말하였으니
처음의 세 가지에서 둘은 처음의 1이요,
뒤의 둘은 심학과 혜학을 말하고, 1은 삼학에 통한다.
[釋] 이 게송은 세 가지의 증상하는 학에 섭수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그러기에 바라밀을 세운 수가 오직 여섯이다.
이 가운데 처음의 세 가지 바라밀을 세운 것은 처음의 1인 계증상학(戒增上學)을 섭수하기 위한 것이다.
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취(聚)와 권속이다.
계율 바라밀은 취가 되고, 보시와 인욕은 권속이 된다.
왜냐하면 보시는 받기를 구할 때에 자산과 재물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요,
인욕은 보호하여 가질 때에 치고 꾸짖어도 갚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뒤의 두 바라밀을 세운 것은, 그의 순서대로 심증상학(心增上學)과 혜증상학(慧增上學)의 두 가지 증상학을 섭수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네 번째의 정진 바라밀을 세운 것은 이 바라밀이 세 가지의 증상학에 갖추어 섭수되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것은 정진이 세 가지의 증상학에 짝이 되기 때문이다.
[6바라밀의 모양]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수를 제정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모양을 나타내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여섯 가지 바라밀의 체를 분별하여 보니
하나하나에 네 가지의 모양이 있어
치장(治障)과 합지(合智)와
만원(滿願)과 또한 성생(成生)이다.
[釋] 모든 보살이 여러 바라밀을 닦으면 하나하나에 다 네 가지의 모양이 있으니,
첫째는 치장이요, 둘째는 합지요, 셋째는 만원이요, 넷째는 성생이다.
‘치장’이라 함은 보시 바라밀 등의 여섯 가지 행이 그 순서대로 간탐과 파계(破戒)와 성냄과 게으름과 어지러운 마음과 우치를 대치하기 때문이다.
‘합지’라 함은 다 분별이 없는 지혜와 더불어 행함이니, 그것은 법무아에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만원’이라 함은
보시는 재산을 구하는 자에게 있어서 그 바라는 대로 주는 것이며,
계율은 계를 구하는 자에게 있어서 그 바라는 대로 몸과 입과 뜻으로써 보호하여 교수하는 것을 말한다.
인욕은 허물을 뉘우치는 자에게 있어서 환희를 주는 것이다.
정진은 업을 짓는 자에게 있어서 바라는 대로 돕는 것이다.
선정은 선정을 배우는 자에 있어서 바라는 대로 법을 주는 것이다.
지혜는 의심이 있는 자에 있어서 바라는 대로 결단(決斷)하는 것이다.
‘성생’이라 함은
먼저 보시로써 섭수하고 뒤에 삼승(三乘)의 법으로써 그들이 응하는 바에 따라 성숙하게 하며,
먼저 계율 등을 편히 세우고 중간과 뒤에 삼승의 법으로써 성숙하게 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6바라밀의 순서]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모양을 나타냈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순서를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앞과 뒤와 아래와 위의
거침과 미세함의 순서대로 일으켜서
이와 같이 여섯 가지의 바라밀을 말하니
어지럽지 않는 데는 세 가지의 인이 있다.
[釋] ‘여섯 가지 바라밀’의 순서에는 세 가지의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앞과 뒤이며, 둘째는 아래와 위이며, 셋째는 거칠음과 세밀함이다.
‘앞과 뒤’라 함은 이른바 앞에 의지하여 뒤가 일어남을 얻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재산에 연연해하지 않기 때문에 계행(戒行)을 받아 가지게 되고,
계를 가졌으면 능히 인욕을 일으키고,
인욕을 하였으면 능히 정진을 일으키고,
정진을 하고서는 능히 선정을 일으키고,
선정을 하고서는 능히 참다운 법을 알기 때문이다.
‘아래와 위’라 함은 앞의 것은 아래가 되고, 뒤의 것은 위가 된다.
아래는 보시이고 위는 계율이며,
아래는 선정이요, 위는 지혜이다.
‘거칠고 미세하다’고 함은 앞의 것은 거친 것이 되고, 뒤의 것은 미세함이 된다.
거친 것은 보시를 하고 미세한 것은 계율을 가지며,
거친 것은 선정을 하고 미세한 것은 지혜이다.
왜냐하면 거친 데는 들어가기 쉽고 짓기 쉽기 때문이며
도한 미세한 것은 들어가기 어렵고 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6바라밀의 이름]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순서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이름을 풀이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가난함을 없애고 또한 서늘하게 하며
성냄을 깨뜨리고 착함을 세우며
마음을 가지고 참[眞]을 아는 것
이를 여섯 가지 행의 뜻이라고 말한다.
[釋] ‘가난하고 궁한 것을 능히 제거한다’ 하여 보시라고 이르며,
능히 ‘맑고 시원하게 한다’ 하여 계라고 이르니,
계율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경계의 모양 가운데서 번뇌의 열이 쉬기 때문이다.
능히 ‘성냄을 깨뜨린다’ 하여 참는다고 이르니, 참음은 성냄을 깨뜨려서 다 없애기 때문이다.
능히 ‘착함을 세운다’ 하여 정진이라 이르니, 착한 법을 세움이 이 힘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능히 ‘마음을 가진다’ 하여 선정이라 이르니, 안의 뜻을 조섭하여 가지기 때문이다.
‘능히 참법을 안다’ 하여 지혜라고 이르니, 그것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알기 때문이다.
[6바라밀의 수습]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이름을 해석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수습(修習)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물건과 생각과 마음과
방편과 아울러 세력(勢力)이니
마땅히 알아라. 여섯 가지의 행을 닦는 데는
다섯 가지의 의지가 있음을.
[釋] 여러 보살이 모든 바라밀을 닦아 익히는 데는 다섯 가지의 의지가 있다.
첫째는 물건의 의지요, 둘째는 사유의 의지요, 셋째는 마음의 의지요, 넷째는 방편의 의지요, 다섯째는 세력의 의지이다.
‘물건의 의지’로 여러 바라밀을 닦는 데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의지하는 인이니 종성의 힘을 의지하여 닦아 익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의지하는 보(報)이니, 자기 몸의 성취하는 힘을 의지하여 닦아 익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의지하는 원(願)이니, 옛부터 세웠던 원력을 의지하여 닦아 익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의지하는 수(數)이니, 지혜의 힘을 의지하여 닦아 익히기 때문이다.
‘사유의 의지’로 여러 바라밀을 닦는 데 또한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믿는 사유이니, 여러 바라밀과 서로 응하는 가르침에 있어서 믿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다.
둘째는 맛의 사유이니, 여러 바라밀 가운데 있어서 공덕의 맛을 보기 때문이다.
셋째는 따라 기뻐하는 사유이니, 모든 세계에 있어서 일체의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바라밀을 다 따라 기뻐함을 내기 때문이다.
넷째는 희망하는 사유이니, 자기의 몸과 남의 몸에서 미래의 가지고 있는 뛰어난 바라밀에 희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음의 의지’로 여러 바라밀을 닦는 데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요, 둘째는 넓고 큰마음이요, 셋째는 뛰어나게 기쁜 마음이요, 넷째는 승리(勝利)의 마음이요, 다섯째는 물들지 않은 마음이요, 여섯째는 착하고 청정한 마음이다.
무엇을 일컬어 보시를 닦는 여섯 가지 마음이라 하는가?
만일 보살이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은 수의 세계에 가득한 일곱 가지의 보배와 몸과 목숨으로써 한 찰나에 한 중생씩을 보시하며
이와 같이 중생의 세계가 다하도록 원하는 것이 위없는 보리를 성숙하게 하여 이 문으로써 보시하는 마음에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는,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보시를 닦는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은 모양으로 보시하여 처음부터 서로 이어서 부처님이 될 때까지 찰나에도 끊어짐이 있지 않고 줄어듦이 있지 아니하게 하면,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보시를 닦는 넓고 큰마음을 닦는 마음이라고 이른다.
만일 보살이 보시로써 남을 조섭할 때에 극히 무거운 기쁨을 내기를 받는 자가 재물을 얻을 때에 기쁨을 내는 것 이상으로 하는,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보시를 닦는 뛰어나고 기쁜 마음이라고 이른다.
만일 보살이 보시로써 남을 조섭할 때에 남이 받은 물건이 나에게 극히 요익함을 보더라도 내가 스스로 씀이 극히 요익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보시로 말미암아 남을 조섭하여서 나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의 인을 성취시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보시를 닦는 뛰어나고 이익되는 마음이라고 이른다.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이 널리 보시하고도 은혜에 보답함과 과보를 구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보시를 닦는 물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이른다.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이 널리 보시하여서 생겨나는 것의 복 무더기와 얻어지는 과보를 일체 중생에게 보시하기를 원하고 스스로 받기를 바라지 아니하며,
또는 일체 중생들과 더불어 함께 하여서 위없는 보리에 회향하면,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보시를 닦는 착하고 청정한 마음이라고 이른다.
무엇을 일컬어 계율을 닦음 등의 여섯 가지 마음이라고 이르는가?
만일 보살이 항하의 모래와 같은 수의 자기 몸이 있고,
하나하나의 몸에 다시 항하의 모래와 같은 수의 겁(劫)과 수명(壽命)이 있으며,
하나하나의 수명 가운데서 다시 일체의 자생(資生) 있고,
이 가운데 다시 불 무더기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면
보살이 이렇게 많은 몸으로 이 많은 수명을 지나도록 이 불 무더기에 있어서도 네 가지의 위의를 일으켜서 한 찰나에 다만 한 가지의 계를 닦아서
이와 같이 하여 모든 계의 무더기가 다하고, 모든 지혜의 무더기가 다하도록 하여서 능히 위없는 보리를 닦으면
보살은 이를 닦아서 마음에 싫어함도 만족함도 없게 한다.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일러 계율 등을 닦아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고 이른다.
만일 보살이 처음 계율을 닦음으로부터 지혜를 닦으면서 도량(道場)에 앉기에 끊어짐이 없게 한다면,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계를 닦는 등의 넓고 큰마음이라고 이른다.
만일 보살이 계율 등을 닦아 남을 조섭할 때에 극히 무거운 기쁨을 내기를 조섭을 받은 자가 이익을 얻을 때에 기쁨을 내는 것 이상으로 한다면,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계율 등을 닦는 뛰어나고 기쁜 마음이라고 이른다.
만일 보살이 계율 등을 닦아 남을 조섭할 때에 남이 이익을 얻는 것이 나를 극히 요익하게 함을 보고서 나 스스로 이익됨이 극히 요익됨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계율을 닦음 등의 뛰어나게 이익되는 마음이라고 이른다.
만일 보살이 계율 등을 닦을 때에 은혜를 보답함과 과보를 구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계율을 닦는 등의 물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이른다.
만일 보살이 널리 계율 등을 닦아서 나는 것의 복 무더기와 얻는 것의 과보를 일체 중생들에게 베풀기를 원하고 자기가 받으려 하지 아니하거나 또는 일체 중생들과 더불어 함께 하여 위없는 보리에 회향한다면,
이와 같은 모양의 마음을 계율을 닦는 것 등의 착하고 청정한 마음이라고 이른다.
‘방편의 의지’로 여러 바라밀을 닦는 데는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은 곧 3륜(輪)이 청정한 것이니, 이 청정은 분별이 없는 지혜로 말미암아 방편을 삼기 때문이다. 이 방편으로써 일체의 작의가 다 성취함을 얻는다.
‘세력의 의지’로 여러 바라밀을 닦는 데는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의 세력이요, 둘째는 행의 세력이요, 셋째는 말의 세력이다.
몸의 세력이라 함은 부처님의 자기 성품의 몸과 수용하는 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한 행의 세력이라 함은 부처님의 화신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화신으로써 일체의 모양에서 일체의 중생들을 위하여 모든 착한 행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말의 세력이라 함은 이른바 여섯 가지의 바라밀과 일체종지를 연설하여서 모든 때에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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