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초니에레 272
by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삶은 달아나면서 잠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은 뒤에서 아주 빠르게 오고,
현재의 일들과 과거의 일들은 나에게
고통을 주고, 미래의 일들도 그러하며,
기억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이쪽저쪽에서 심장을 찌르니, 솔직히
나 자신을 향한 연민이 없다면, 나는
벌써 이런 생각에서 벗어났을 것이오.
슬픈 가슴에 혹시 달콤한 것이 있었다면
앞으로 나와 보라.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내 항해에 혼란스러운 바람들이 보이고,
항구에도 폭풍이 보이고, 내 키잡이는
이미 지쳤고, 돛대와 밧줄은 부서졌고,
내가 바라보던 아름다운 빛은 꺼졌다오. (김운찬譯)
[단상] 이탈리아 시인이자 인문주의자인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h, 1304~1374)는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며,‘읽고 쓰는’인간이다. 로산나 벳타리니는 서양 시문학사를 통틀어 수 세기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된 단 한 권의 책으로 페트라르카의《칸초니에레Canzoniere》를 지목한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총 366편. 그 중 대다수인 소네트가 317편(프란츠 리스트는 페트라르카의 소네트에 영감을 받아 연가곡‘페트라르카의 3개의 소네트’를 작곡), 칸초네 29편, 세스티나 9편, 발라드 7편, 마드리갈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인 라우라(Laura)에게 헌정하는 형식을 취한 이 책은 고통과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인간 존재의 깊은 사색과 통찰이 담겨 있다. 안톤 슈낙은『내가 사랑하는 여인들』에서“라우라는 내게, 거의 느낄 수 없이 미동하며 물가 바위를 핥는 저 남방의 호반 위로 여름날 정오의 뙤약볕이 비치고 있는 풍경을 환영으로 안겨다 준다. … 이때 둥근 아치형 창문 그늘 아래 앉아 어른거리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 그녀는 라우라”라고 적고 있다.
272곡에 해당하는 이 시는 사랑의 상실과 생사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라우라의 죽음에 따른 시간의 비가역성과 죽음의 공포. 과거와 미래, 즉 기억과 기대는 오로지 폐부를 파고드는 현재만을 직관-응시하고 있다.‘나’는 과거의 추억도 현재의 고통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그 어느 것에서도 위안을 얻지 못하는 삼중의 절망에 처해 있다.“슬픈 가슴에 혹시 달콤한 것이 있었다면 앞으로 나와 보라.”의 대목은 내 삶에 과연 위로나 기쁨, 달콤한 기억 따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는지를 탄식, 반문한다. 깊은 슬픔과 허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후반부에서 인생이 항해라면 폭풍우 치는 바다, 지친 사공, 부서진 돛대와 밧줄의 비유는 시인의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보여준다. 이는 우리나라 작자미상의 사설시조에 나오는 도사공의 마음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대천(大川) 바다 한가온대 일천석(一千石) 시른 배에 노도 일코 닷도 일코 뇽총도 근코 돛대도 것고 치도 빠지고 바람 부러 물결 치고안개 뒤섯계 자자진 날에 갈 길은 천리만리(千里萬里) 나믄듸 사면(四面)이 거머어득 져뭇 천지적막(天地寂寞) 가치노을 떤는듸 수적(水賊) 만난 도사공(都沙工)의 안”이 그것. 마지막 행에서는 유일한 희망인 빛마저 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빛이 아름다운 라우라의 눈동자에 상응한다면, 구원의 빛은 숫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런 절망감은 소네트의 비극성을 가일층 극대화하고 있다. 여기서 라우라의‘눈(眼)’의 이미지는 페트라르카의 시와 사랑을 이해하는 지남(指南)이 된다.“그토록 사랑스러운 눈은 본 적이 없네/ 우리 시대에나 태초에나,/ 태양이 눈을 녹이듯 나를 녹여버리는, … 내 생을 순식간에 강가로 이끈 그 두 눈”(C30)이나,“나의 어둠을 밝은 대낮의 하늘로/ 만들었던 그 눈빛 … 사랑의 빛이 그토록 뜨겁게 머무는/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시선”(C37)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라우라에 대한 시인의 시선은 온통 눈에 집중되어 있어, 눈은 시인의 문학적 원천이자 영감의 표지(標識)다. 라우라에 대한 사랑은 문학에 대한 사랑에 다름아니다. 그런 아름다운 눈빛이, 사랑이 야속하게도 흑사병에 의해 무참히도 꺼져 버린 것이다. 이 어둠의 심연에서“우리는 어떻게 꽃처럼 피어나는 말의 복수적 의미에 가 닿을 수 있을까?”(루스 이리가레) 그것은 타자와의 차이를 존중하고 감각적·생태적 관계를 회복하는 다중적이고 유연한 소통 방식에서 가능하지만, 이 시의 경우 나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시작(詩作)에서 찾아진다. 사랑이 행간(stanza)이라면. 13세기 시인들에게 스탄차는 핵심 요소로 자리한다. 조르조 아감벤에게 이 행간은 시의 거주지 시의 피난처이다. 시의 행간은 모든 예술의 요람인 것을. 페트라르카의 못다한 말과 뜻은 이제 이 시행에서 드러나고 행간 속에 감추어져 있다. 은현(隱現)의 미학은 그 문면과 이면 사이를 읽는 데서 찾아진다.
한편, 프랑스 아비뇽 근처 방뚜산(1912m)을 오른 최초의 등반가 페트라르카는 산정에서 고대 로마 시인들의 저작을 읽거나 묵상하며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성찰한다. 서쪽으로 프랑스와 에스파냐를 가르는 피레네 산맥과 리옹 주변의 야트막한 야산, 남쪽으로 마르세유 만에 부서지는 지중해의 파도와 흘러가는 론강을 바라보며 즐긴다. 지상의 광경 뿐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던 그는 갑자기 어떤 경외심에 사로잡혀, 갖고 다니던 아우구스티누스의『고백록』을 꺼낸다. 펼쳐진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사람들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센 파도와 넓게 흐르는 강과 별들을 보며 놀라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미감과 자의식은《칸초니에레Canzoniere》가 서양 근대 서정시의 정전(正典)으로서 성격을 갖게 한다. (김상환)
첫댓글 페트라르카위 시 "칸초니에레" <단상> 잘 읽었습니다. '사랑의 상실과 생사' 문제, '은현(隱現)의 미학' 발견은 탁월한 안목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