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요?
김태실
“우리 남편이 요즘 행복해 해요. 그 사람, 거짓말을 못 해요. 특히 눈빛이 그래요. ○○씨 덕분이죠.” 뭔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의아한 척했으나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어쩜 부인인 그녀가 가장 먼저 눈치챘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나에게 부끄러운 미소와 경이로움을 섞은 그 눈빛을 보내는 것을.
30대 초반, 또래가 비슷한 아이들이 함께 놀면서 젊은 부부들이 모였다. 그는 활기가 넘치고 다정한 사람이다. 주변 사람 들에게 관심이 많고 친절하다. 아이들하고 잘 놀아주었다. 반 소매에 드러난 내 하얀 팔뚝에 곤충이 느닷없이 앉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재빨리 날아와 풍뎅이를 쳐서 떨쳐 보낸 사람은 곁에 앉았던 남편이 아니라 건너편에 있었던 그였다. 남편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그는 유심히 지켜보다가 해결해 주는 것이다.
관심을 받는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여자로 바라봐 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결혼하기 전에 동아리 모임에 나갈 때 그 기분, 화장에 공을 들이고 무슨 옷을 입을까 고 른다. 넣어 두었던 귀걸이를 달아보고 블라우스 단에 향수를 뿌린다. 선배나 동기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흥얼거리는 노래도 경쾌하다.
햇살 좋은 어느 날, 그가 전화했다. 남편이 막 출근한 후였다. 2주 정도 출장을 간다며 아이들이 그동안 심심해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 이 사람, 뭐지? 나한테 보고까지 하나? 처리 해야 할 일로 머릿속이 꽉 찬 남편은, 출장길에 나나 아이의 안부를 걱정한 적이 없었다.
항상 일이 먼저였다. 내가 가정을 잘 돌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변명하겠지만 서운한 적도 많았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하면서 우연히 창 밖을 보게 되었다. 그는 내가 사는 아파트 위를 쳐다보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이나 서성이다가 담배를 한 대 물고 다시 위를 쳐다보더니 사라졌다. 베란다 한 쪽에서 숨어서 보던 나는, 뭐랄까. 그가 걱정되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즐기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죄책감도 들고 약간 두렵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막연한 ‘로맨틱’을 꿈꾸기도 했다.
출장을 다녀온 후, 그는 우릴 초대했다. 분주하게 주문한 것들을 직접 손질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뭘 먹이기를 좋 아하는 사람이었다. 부엌에서 함께 저녁상을 준비하던 그의 부인이 덧붙였다. “근데, 그게 알아요? 우리 남편,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결혼하고 삼 년 후인가, 함께 운동하던 어떤 여자한테 쏙 빠져 서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죠. 좋아하면 다 주고 싶어하죠. 나한테 프러포즈할 때도 그랬어요. 그땐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줬죠.”
그날, 저녁을 어떻게 먹었는지. 흔들리고 있는 남편을 바라 보는 아내의 배신감을 담담하게 말해주는 그녀의 나긋한 말투는 언제든지 내리칠 수 있는 비수였다.
그가 나에 대해 작은 연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당연한 듯, 모르는 척, 따뜻한 햇살을 받고 쭉쭉 기지개를 켜듯 하늘로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처럼 그렇게 싱싱하게 빛나던 나의 설렘이 뚝 끊어져 버리는 기분이었다.
핑계를 대고 멀어지고 있는데 마침, 남편이 새 근무지로 발령을 받았다. 이사한 후에도 그는 일 년에 한 두어 번 전화해 서 안부를 묻곤 했다. 언제나 그냥 알고 지내는 지인의 말투로 그를 대했다. 그의 아내를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둘째를 낳고 나서 연락이 끊겼다.
살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만남을 즐겁게 이끄는 사람들이 있다. 끌린다. 그 사람이 남자일 때는 더 그렇다. 아내고 엄마 이고, 정해진 테두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고 어떤 역할이나 책임에서 벗어나 일탈하고 싶다. 간혹 밥을 먹자고 한다. 둘이 먹고 있는데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포장하고 어색해 해야 하는 장면이 싫어 웃으면서 ‘다음에요’라고 말한다. 왠지 씁쓸했다.
‘아, 어쩜! 저이의 귀는 어째서 저렇게 생긴 걸까?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라고 실망하는 안나처럼 남편에게 소원해지는 권태기를 누구나 겪는다. 남편과 환희라고 생각했던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할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쁨으로 미소 짓던 그 눈빛을 잊은 지 오래다.
남편은 나와 점심 약속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먹고 싶은 것이나 내가 지출하는 거액의 병원비에 대해서 아까워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데미지>라는 영화에서는 다 가진 남자가 아들의 약혼녀인 ‘안나 바튼’과 사랑에 빠져 자신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잃는다. 아들은 죽고 아내는 떠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안나 카레니나’는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택한 남자에 대한 사랑의 불신으로 기차에 뛰어든다. 반면에 실제로 부와 명예를 가진 남자들이 30년 이상을 산 아내에게 거액의 재산 분할을 해주고 젊은 여자와 새 삶을 시작한다. 부럽다. 그들이 누리는 행복이 궁금하다.
흔들리고 싶은가? 흔들릴 자신이 있는가? 배우자와 자녀를 설득할 수 있는가. ‘그거 알아요?’ 하는 그의 아내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면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