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감한 나이는 아니나 딱 좋은 나이에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작은 일들에 가벼운 흥분과 기대, 설레는 마음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아침에 뜨는 해는 신비롭고 고마운 존재다. 새벽이 오고 밝음이 있고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된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순간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면 새벽바람이 내 심신을 신선하게 해준다. 환기를 주는 것만 으로도 내 머리는 가벼워지며 오늘 하루는 어떤 일들로 분주하며 감당해 낼까하는 설렘이 기대가 된다. 일상 속에서 나에게 설렘을 일게 하는 일들은 참으로 많으나 대충 아래와 같은 소소한 것들이다.
이침에 마시는 커피, 그 향기는 즐거움이며 설렘 그 자체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설렘으로 시작한다. 컴퓨터가 놓여 있는 책상으로 간다. 밤사이 무슨 소식들이 전송되어 왔을까, 또 무슨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을 까, 나를 설레게 한다.
좋은 글을 읽었을 때 느끼는 희열이나 감동, 글 속에서 기막히게 절묘한 한 줄의 시를 만났을 때, 인생과 사물을 분석하는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을 발견했을 때,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쾌한 논리, 인생을 사랑하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 이런 것들을 글에서 만났을 때, 나는 가슴 저린 감동을 깊이 느끼며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충만한 기쁨과 희열의 극치를 경험한다.
누구와 동행 없이 생각의 길로 홀로 산책하는 시간, 그 시간은 나만의 언어로 문장을 만드는 작업의 시간으로 고뇌의 세계로 나를 실어가나 정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문학을 나누는 문우들과 함께 하는 시간, 만나는 순간부터 반갑고 기분이 좋다.
문학을 발견하는 눈을 통해 감성을 서로 나누고 마음에 소통을 공감하는 시간이 아닌가. 귀를 신선하게 해주는 바람소리 같은 문학이야기들을 나의 정과 진심을 담아 성실히 들려주고 싶고 또 그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 하면서 가슴 설렌다.
즐겨보는 사극 드라마, 그 저녁시간을 기다린다. 그 시간이 가까워오면 설렘으로 즐겁다. 이번 회에서 그 주인공은 어떻게 될까, 팔자에 없는 걱정을 즐겨하며 때론 완전 감정 몰입으로 눈물도 흘리나 한 편의 드라마가 평범하게 흘러간 내 하루에 악센트를 넣어준다.
무엇이라도 좋다. 내 스스로 설레는 즐거움으로 매일 살아가야 한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자신이 만들어 낼 때 내 뇌 속에는 온통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흐르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켜 활력과 의욕이 넘치는 기분 좋은 날들을 지내게 한다.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환경에서 그 스스로의 환경을 이끌어 주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창조해야 한다.
설렘의 즐거움은 생활 전반을 활기차고 긍정적이며 삶의 보람과 기쁨이 넘쳐나게 하며 행복지수를 높여 준다. 설렘이 있는 초로의 내 인생, 건강하고 즐겁고 멋지지 않은가.
눈으로 울고 마음으로 울고
구정 아침의 일이다. 몇 문우들의 새해 인사를 전화로 받고 돌아서는 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손자의 전화였다. 반가움에 손자의 이름을 부르며 잘 지내고 있느냐고 했을 때, 할머니 나 지금 많이 슬퍼하면서 흐느껴 운다. 순간 심장이 뛰면서 가슴이 내려앉는다. 몸이 아프냐고 했더니 아니 안 아퍼, 그런데 마음이 아프다는 뜻밖에 대답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가슴에 슬픔이 괴었을 때 그 슬픔의 늪에서 끌어 올려줄 누군가의 손길이 할머니라고 생각한 마음이 아픈 손자에게 이 순간 무슨 말로 위로를 해주어야 할 텐데 내 안에 모든 말들이 증발된 것처럼 말문이 막혔다.
나는 손자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슬픈 마음을 얘기 하라고 했다. 손자의 얘기는 친한 친구가 그 동안 정부보조금, 학비로 학교를 다녔는데 어떤 문제가 생겨 더 이상 학비보조를 받을 수가 없게 되고 부모님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 오늘 학교를 떠나게 되어 자기가 친구 짐을 옮겨주고 배웅하며 작별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슬퍼서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20대의 청년 학생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현실, 그 냉혹함의 아픔, 듣는 나도 가슴이 아파오는 사연에 눈으로 울고 마음으로 울었다. 이별은 이처럼 애틋해야만 하는지. 꿈 많은 청년들에게 삶은 왜 기쁨보다 슬픔을 먼저 가져다주는지 참으로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은 원석을 갈고 닦아 가장 찬란한 광채를 내 뿜을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자기를 발견하는 곳이 아닌가. 적을 두었던 대학을 떠나야만 하는 학생이 좌절에 빠져 무너지지 않고 이 시련이 힘이 되어 전화유복의 기회가 되어 자신을 일으킨 미래가 밝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친구를 위해 우는 가슴을 가진 손자의 인성이 고마웠고 그들의 우정이 아름다웠다. 친구와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가장 외롭고 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친구가 되어 주며 따뜻한 가슴을 나누면 친구는 새로운 길을 찾아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손자를 위로 하면서도 모든 추억을 가슴에 묻고 떠난 친구의 뒷모습이 그려져 가슴이 아팠다.
가난은 엄연한 현실로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손에 가진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픈 사람들도 많다. 유행가 가사에 돈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돌고 돈다고 해서 돈이라는 이름이 부쳐졌다고 하는 것이다. 하기야 돈은 돌고 도는 것이다. 화폐가 순환을 해야 그 기능이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많이 가진 자가 조금만 돌려주었어도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교정을 떠나야 하는 애통한 일은 당하지 않았으련만, 돈이란 것은 참으로 못된 성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많이 있는 곳에만 찾아가는 버릇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돈의 기능이 돌고 도는 것이라면 이곳저곳 골고루 펴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지폐의 고독으로 인해 교정을 떠나야 하는 학생들의 슬픈 이야기가 없는 세상이 그리워진다.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의 주머니에도 돈이 좀 들어갔으면 좋겠다.
이별한 친구의 상처를 함께 마음 아파하며 눈으로 울고 마음으로 우는 손자의 마음은 아름다운 인정이다. 꿈과 현실이 이율배반적인 갈등의 요소가 된다 해도 그것은 언제라도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미래로 연결되는 희망으로 키워가야 하리라,
삶은 가슴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 친구를 위해 우는 가슴을 가진 내 손자는 마음이 아프더라도 착하고 선한 따뜻한 사람이다.
은빛 천사의 마음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사람은 보는 이의 눈에 기쁨을 주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사람은 보는 이의 영혼에 기쁨을 준다. 살아가면서 영혼에 기쁨을 주는 사람을 만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의 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며칠 전 복용하는 약을 주문했었는데 약을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고 약방에 갔던 날이었다.
약을 찾고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이 있어 마켓에 들렀다. 필요한 물건을 골라 카트에 실고계산대 앞으로 갔었을 때, 계산을 하려는 사람들로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나도 그 줄에 끼어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계산을 했다. 계산한 금액이 내가 가진 돈에서 2불이 더 초과 되어 모자라 난처한 순간 이었다. 돈이 부족하니 산 물건 중에 어떤 것을 빼야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면서 계산하던 남자가 물건을 빼려할 때 갑자기 내 등 뒤에서 ‘노(no)’ 하는 여자의 소리가 들렸고 2불이 남자의 손에 전해졌다. 돌아보니 흑인여자였다. 번개처럼 날아온 감동에 잠시 나는 말을 잃고 서있었다. 흑인여자의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주소를 알려주면 우편으로 지불한 돈을 보내겠다고 했다. 흑인여자는 환히 웃으면서 ‘노(no), 노(no)’를 연거푸 말하며 오늘 너처럼 돈이 부족한 사람이 있을 때, 그때 그 2불을 쓰라고 하면서 ‘빠이(bye)’ 하며 뒤도 안 돌아보며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참 서서 그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경우에 은혜를 입는다. 오늘 내게 은혜를 베푼 저 여인도 도움의 은빛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면서도 늘 충분하지 못해 결핍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기에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인심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일 외에는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 없이 산다. 특히 인정사정도 없고 의리도 없는 것이 돈이기에 다른 사람의 단 돈 1불이라도 내 주머니로 옮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
지난 시간 속에 잊을 수 없는 감동의 기억이 있다. 수술을 앞두고 수술비 걱정을 하는 딱한 지인에게 거금의 돈을 선뜻 내주던 한 여인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떠나지 않는다. 그 여인과 흑인 여자,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 숨은 도움의 천사들이었고 크고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사람들로 밝은 빛을 비춰주는 천사의 거룩한 행위였다. 길에서 생활하는 한 노숙자가 자기가 얻은 빵을 다른 노숙자에게 반쪽을 나누어 주며 같이 먹는 훈훈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나누어 가질 것이 없어서 못 나누어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 장면이었다. 어려울 때, 더불어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는 배려와 역지사지의 마음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진실 된 것, 착한 것, 아름다운 것은 사람을 감동케 한다. 감동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멋있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감동을 받으면 사람은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흑인여자에게 은혜를 입은 이후, 나는 그 여인의 뜻을 따르기 위해 지갑에 2불짜리 현금 한 장을 꼭 넣고 다닌다. 내 인생 여정에서 한 번쯤은 누군가의 도움을 주는 은빛천사의 마음이 되어 영혼에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싶어서이다.
김영중
재미 한인 수필가.
yongckim37@hanmail.net
중앙대학교 영문과 졸업, ICCD 상담학교 상담학 수료. 『창조문학』(1990)으로 등단. 재미 수필문학가협회 회장, 국제 펜 미주 서부지역위원회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여성문학회 회원. <제1회 조경희 문학상> <제1회 한국수필 해외문학상> <국제 펜 해외 작가상> 등 수상. 수필집 『초록편지』 『사람과 사람 사이』 『건너집의 불빛』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