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대교를 뒤로하고 서울로 향하는(그러니까...6.2일 오후의 일이다) 관광차 안에서 못다푼 회포가 있는 분들이 몇 분 있었나 보다. 전날 아주 잘하는 노래실력을 뽐내던 두 분과 동행한 분들중 가장 연세가 많아보이는 나이드신 숙녀- 할머니라 해도 무방하나 웬지 이리 표현하고 싶다-분의 대화는 길도록 이어졌는데...
니체니 데카르트니 하는 철학가들의 얘기들이 나오면서 젊은시절의 꿈들까지 이어지는 그분들의 이야기는 마치 고등학교때 미팅에서 만난 여고생들과의 대화가 연상되고 나이는 이만큼 먹었으되 한때 꿈많은 소년, 소녀였음을 설파한다. 눈감고 자는척하며(사실 끼어들기엔 난 어린애일 뿐이다) 노인들의 추억담으로 귀기울여 듣고 있었는데 대화가 계속되면서 그분들(특히 나이드신 숙녀분)의 지난 고난의 세월을 보상받고 싶은 절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다니며 비뚤어진 사회에 대한 분노로 꿈많은 소녀의 삶을 포기하고, 전태일 열사의 죽어가는 모습을 본 어린 소녀는 그 뒤를 이어 죽음 못지않은 고문과 징역을 살고 난 인생의 뒤안길에서 나도 여자였고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던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표현...아니 조용히 조근조근 말했지만 그건 분명 절규였다.
내 인생을 돌려줘!!!
두 달이 지난 일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역사에 관심이 있어 선생님을 자주 만나게 되고 우연찮은 자리에 참석하여 현대사의 산 증인들을 뵌 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에 한참 고민하다가 저분들의 삶의 한부분에 끼어들기로 했다. 두 달 정도의 배움에 지금은 몇 가지 창을 외워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뒷풀이에 참석하여 막내로 온갖 시중(?)과 재롱을 떨어가며 같이 하는 시간이 더 좋다.
처음에 참석할때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이지만 감옥 근처에도 못가봤고 고문은 커녕 돌 던져 방패를 깬 기억밖에는 없는 사람이 들어올 자격이 있느냐고 농담삼아 한 말에 총무님이 한 말씀 하셨다.
"이 험악한 시대를 사는 사람이야 다 가슴에 응어리가 있지.그러니 딴 생각말고 들어와~~"
길음동 성당 옆의 '성가소비녀회' 건물. 가는데 두시간이 꼬박 걸리는데 주마다 거르지 않고 나간다. 사실 선생님을 여기서 볼 수 있으니 애써 선생님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술값도 아주 적게 들고 ...
저 婢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름을 저리 만든 이유야 있겠지만...
창을하며 소리를 내는 걸로 잊지못할 고문과 억울한 옥살이 그리고 그 신체적, 사회적 후유증이 어찌 치료가 되겠냐만.....그저 진보하는 역사의 한 과정이라고 체념해야 하나? 아직도 악몽을 꿀 지 모르겠지만 창을 하고 같이 술마시며 대화하는 동안만큼은 즐거워 보인다.
가끔 공연을 하는데 언젠가 한 번 큰 목청 낼 일이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실력이야 뭐 둘째치고...
마이크 잡은 분이 임진택 명창님이다. 개인적으로 기존의 전래된 판소리만 부르던 현 판소리계에서 창작판소리를 개척한 분이신지라 누군가 대를 이어줬으면하는데 본인도 안타까우신 모양이다.
첫댓글 흰머리 소녀는 씨알이었읍니다.
기나긴 인간의 역사에서 못다 핀 꽃송이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만, 조근조근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 그분들의 희생에 의해서 우리가 현재를 누리고 있는가 봅니다.
산인은 어디가도 어울리는 멤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