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어산 은하사(神魚山銀河寺) /전통사찰
- 경남 김해시 삼방동
은하사 입구에도 주차장이 있다.
이곳 삼거리에서 은하사까지는 200m쯤. 우측엔 '신어산동림사' 일주문이 있다.
2001년 11월 개봉한 영화 '달마야 놀자' 주촬영장인 은하사.
차도(車道)가 생기기 전, 은하사 가는 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숲 속에 비석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작은 연못이 나온다.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엔 보살상이 있다.
연못에 먹을 게 있는 모양이다. 왜가리의 모습이 안스럽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 편액이 없는 일주문이 있다.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 자연석으로 조성된 계단, 운치가 있는 길이다.
편액이 없다.
보제루의 역할을 하고 있겠다.
절마당까지 들어온 승용차들...그렇게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다.
(수정, 취운루)
범종각, 범종각과 보제루 사이로 올라가면 대웅전 마당이 나온다.
석가탄신일(5월 12일)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정면 3칸, 맞배 지붕으로 다포식이다. 조선시대 양식이다.
협시보살이 없다.
참배하는 이들이 많아 대웅전 안에 들어가기 어려웠다(마음이).
'대웅전벽화'가 있는 모양인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2호이다.
대웅전 좌우측 벽면에 그려진 그림. 그림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보기 어려운 그림이다.
대웅전 앞에서 본 전경. 시야가 터져 있고 마을을 내려 볼 수가 있어 좋은 자리이다.
선정당
<서림사(西林寺)>란 편액이 걸려 있는 당우.
조실, 회주, 방장, 주지 등등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 주지는 알겠지만.
암튼 은하사의 어른이 거하는 요사채이다.
출입금지 구역이니 함부러 들어 갈 수 없다. 신도가 아닌 내가 어른을 뵈러 갈 일도 없다.
2002년도 김해시장에 출마한 인사와 함께 들어가 조실에게 차 대접 받은 적이 있다.
은하사에 오면 이 경치가 좋다.
석탑이 앙증맞다.
응진전
명부전
지장보살께서 주재하시겠지?
창살무늬가 예쁘다.
서기 42년 구지봉, 알 6개에서 아이들이 나왔다. 알에서 나온 아이들은 곧장 성인이 되었다.
가장 먼저 나온 이가 수로(首路)이다. 그는 김해 김씨의 시조이며 금관가야의 왕이 된다.
다른 아이들도 아라가야, 대가야 등 5가야의 족장이 된다.
한반도가 아닌 타지역에서 어떠한 세력이 들어와 이곳에서 왕국을 건설하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 김수로왕 : 출생 - 미상 / 재위기간 42년~199년
이 기록을 보면 수로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왕이 되었고 157년을 살았다.
건장한 청년이 이 땅에 와서 왕이 되었다면 180세 전후로 생존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수로왕 6년(48) 인도 아유타국 태자이며 승려인 장유(長遊)화상이 전한 것이 된다.
장유화상(허보옥/許寶玉)은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許黃玉)의 오빠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장유사는 서기 48년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
(다음카페-김해팔도산지기-절을 찾아서 -장유사 편)
신어산 동쪽에 '동림사(東林寺)', 서쪽엔 '서림사(西林寺)'가 있었다.
신어산의 옛 이름은 '은하산'이였고 서림사는 어느 해인가 '은하사'로 개칭되었다.
서기 48년에 장유화상이 '서림사'와 '장유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다시 기록하여야 한다.
고구려, 신라, 백제 등 당시의 기록이 거의 없다.
중국이나 일본의 기록, 고려시대(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기록에 기초를 하고 있다.
당대의 기록이 아닌 까닭에 기록의 신빙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어산이 옛날에 은하산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그런데 이런 기록의 출처는 알 수가 없다.
아래 글은 DAUM에서 검색한 내용이다.
삼국시대의 국가가 불교를 공인한 기록(책 '불교의 모든 것' - 곽철환)
- 고구려 : 소수림왕 2년(372) 전진(前秦/중국)의 승려 순도(順道),
이듬해에 전진에서 승려 아도(阿道)가 옴.
- 백제 : 침류왕 1년(384)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
385년 경기도 광주 남한산에 처음 절을 지었다고 함.
- 신라 : 눌지왕 대(417~458년)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불교를 전파.
이차돈(506~527년)의 순교로 법흥왕 14년(527) 공인함.
이차돈이 흥륜사(興輪寺)를 지으려다 순교, 법흥왕 22년 착공, 진흥왕 5년(544) 완공.
이와 같이 나도 교과서를 통해 배운 기억이 난다.
삼국시대 '최초의 사찰'을 검색하니 각양이다.
- 고구려 : 초문사(국내성, 순도 거주), 이불란사(지역 모름, 아도 거주)
- 백제
1) 385년 경기도 광주 남한산에 처음 절을 지었다고 함./ 위의 글
2) 불갑사(佛甲寺) : 384년 행사존자(行士尊者/마라난타의 다른 이름) 창건.
마라난타는 영광 법성포(法聖浦)를 통해 입국, 불갑사를 창건하였다.
법성포의 의미가 마라난타를 가르킨다. (다음백과 등)
- 신라
1) 흥륜사/경주시 : 265년(미추왕3) 고구려 승려 아도가 창건. 꽃이 내려 흥륜사라고 칭함.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나라 한국사1)
2) 흥륜사 : 이차돈이 흥륜사를 지으려다 순교, 법흥왕 22년 착공, 진흥왕 5년(544) 완공.
(위의 글)
3) 도리사/구미시 : 440년(눌지왕 24) 고구려 아도화상이 창건.
한 겨울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어서 도리사로 함.
(대한민국 구석구석)
4) 도리사/구미시 : 눌지왕 대(417년) 아도화상이 창건.
(도리사 홈페이지)
* 눌지왕, 눌지마립간, 내지왕....신라19대 왕
출생 : 미상 /재위기간 : 417~458년
어느 기록을 기반으로 한 백과사전인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내가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어느 것이 바른 자료인지 모르겠다.
절에 대한 기록도 후대의 기록이 대부분이고 절들이 실제 창건보다 더 위로 잡는 경향이 있다.
요즘에 생긴 개인 암자들, 100년쯤 흐른 뒤 그 절에 기거하는 어느 승려가 중수하면서
요즘의 유명한 승려가 창건하였다고 한다면 그게 사실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
영구암 /전통사찰
은하사에서 500m 떨어져 있다.(직선거리?)
은하사의 부속 암자가 아니다. 30여 분 등산을 하여야 한다. 중급 정도의 오르막.
계단이 끝나는 곳, 200m쯤 올라와 한숨을 돌린다.
바위에 새겨진 법구경의 말씀이 성경의 어느 구절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10여m 절벽 아래 불단을. 절벽엔 이름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다.
영구암은 공사 중이다. 문화재가 있어 김해시가 지원을 하는 모양이다.
석축을 다시 쌓고 있다. 사용하지 않는 허름한 건물을 헐고 새로 짓고 있다.
돌로 지은 대웅전, 언제 지었을까? 좁은 공간에 전각이 서너개 있다.
삼신당....가서 볼 마음은 없다.
3층석탑이 있는 마당. 거북이의 머리쯤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이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면 고요해 진다.
강 건너 부산의 북구, 사상구가 보이고 멀리 다대포의 몰운대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지금은 김해평야라 할 수 없다.
옛날, 아주 먼 옛날의 가을날.
저녁 놀이 김해평야에 누렇게 익은 벼에 내려앉는 전경을 상상해 본다.
금벌, 김해란 이름이 그저 얻어진 게 아니다.
삼층석탑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3호
영구암에서 본 경치, 미세 먼지로 제대로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칠성탱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4호
영구암에서 신어산 정상까지 400m쯤. 자연동굴에 다소곳한 부처를 모셨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오랜만에 신어산 산행을 했다.
하산길에 햇살이 남았으면 동림사를 촬영하려고 했지만 길을 잘못 들었다.
입구의 일주문만 찍었다. 은하사와 영구암은 '전통 사찰'이지만 동림사는 아니다.
고증에 따라 예전의 터에 지금의 동림사를 지었는 지 모르겠다.
1995년 12월 초, 김해로 이사왔을 때 동림사가 있었다. 아마 그 시기쯤 동림사가 지어졌다.
첫댓글 5월10일...구미 도리사.
아도화상이 묵호자였다고 한다.
아도화상이 373년 고구려에 왔을 땐 30대초반이었을까?
아도화상이 417년 신라에 왔다면 고구려 입국 후 43년이 지났으니 60대말이나 70대 중반이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