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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보기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매바우
1940년, 역사상 최악의 시베리아 강제 노동수용소라 불리는 '캠프 105'! 7명의 수감자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살을 파고드는 시베리아의 살인적인 추위와 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운 고비사막의 폭염을 이겨내며 오직 자유를 찾아 6,500KM라는 믿을 수 없는 거리를 탈주한 이들의 리얼 감동 실화가 시작된다!
평점 9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들이 빠지는 한 가지 고민은 바로 극적인 드라마틱함과 리얼함 사이에서 일종의 크레바스 같은 위험지대를 적절히 잘 통과하는 일일 것이다. 드라마틱함을 추구하다보면, 영화는 실화와 멀어지며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반대로 지나치게 리얼함을 추구하다보면 자칫 무미건조해서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으니,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들이 '흥행이나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수월해보이는 듯해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영화 '웨이 백'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철저히 후자쪽이지만, 일체의 겉멋과 드라마틱함을 배제한 이 영화의 충직함이 오히려 더 감동스럽다. 한 사람이 아닌, 집단이나 몇 사람 중심의 인물들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여타 영화들처럼 흔히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 사이의 갈등 구조, 그 갈등이 봉합되는 과정 등 관객 입장에서는 수도 없이 보아왔던 익숙한 스토리텔링에서도 이 영화는 비교적 자유롭다. 그야말로 6500km, 자그만치 '산티아고 순례길' 그 800km의 대장정길을 여덟번 이상 걷는 것과 같은 거리를 오로지 걷고, 걷고, 또 걸어서 시베리아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벳으로, 티벳에서 인도국경을 넘어 마침내 자유의 품에 안긴 이들의 그 질긴 자유와 생을 향한 집념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 영화는 그들과 함께 관객마저도 사막을 걷고, 광활한 시베리아 눈보라를 뚫고 걸어가듯 시종일관 그들의 여정을 체득하게 만들어버린다. |
도중에 누군가는 죽어가고, 최초 탈출자들과 더불어 어느 순간 불청객처럼 새로운 인물이 이들 일행에 추가되어도 그녀를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약간의 의견충돌 이외에 이 영화 속엔 다른 영화적 요소들마저도 '그들의 길고 긴 여정'에 숨죽은 채 잦아들어있다. 요란하게 다른 요소를 부각시키려 굳이 애쓰지도 않으며, 그 흔한 ost하나 그들의 그 건조하고도 힘든 여정에 단비 같은 요소로 제공되지 않는다. 실화 영화임에도 이처럼 충직하고, 이처럼 정직한 영화를 보는 일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싶다.
"이곳엔 감옥이 따로 없다. 바로 시베리아가 너희들의 감옥이며 교관이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이 의미심장한 대사 한 줄과 오픈 크레딧부터 슬로우 모션처럼 낮은 배경음악 속에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깔리는 'The Way Back'이란 타이틀의 등장만으로도 이 영화가 얼마나 건조하고도 천천히 진행될 것임을 미리 짐작케 한다.
등장인물들이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속사정이 어떻든간에, 그들이 그곳을 탈출하는 시점부터 영화가 끝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눈보라, 끝도 없는 광활한 사막,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모래 폭풍 속에서 관객들마저도 단순히 그들을 지켜보는 제 3자의 입장이 아니라, 마치 내가 그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 이유! 바로 이 영화의 이런 정직함 때문이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란 그 욕망이 통제될수록 그 욕망을 향한 의지는 더 강해지는 법이다. 이 영화는 바로 6,500km의 대장정을 오로지 걸어서만 탈출에 성공한, 영화 속 살아남은 이들의 기적 같은 실화에 대한 정직한 보고서인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생을 향한 의지에 보내는 뜨거운 헌사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가 많은 부분 '127시간'의 그것과 유사한 소재, 유사한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127시간과는 또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127시간과는 달리 겉멋이나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일체 배제했다는 데 있다. 이 영화에서 드라마틱함은 그들이 탈출에 성공했다는 그 결과물 뿐이지, 과정에서는 오히려 드라마틱함보다 건조함 쪽에 가깝다.
영화는 초반과 후반의 짧은 한 컷을 제외하곤 거의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을 모두 그들의 여정, 'way back'의 여정에 할애하고 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나이 지긋한 '야누시'의 아내가 젊은 시절, 현관문을 들어서는 남편의 장교시절의 모습을 회상하며 짓는 회한의 눈빛과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의 나이 지긋한 모습의 그들의 포옹이 눈물 겨운 이유도 바로 그 질긴 여정길을 지루해할 관객들의 입장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뚝심있게 표현해낸 감독의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정이 부실했다면, 그들의 재회를 다룬 마지막 씬의 단 한 컷이 어떤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나.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 많이 알려진 바와 이 영화에서 아내의 밀고로 졸지에 '간첩'의 누명을 쓰게 되어 시베리아로 보내진 주인공 '야누시'역의 폴란드 장교의 실제 이름은 '슬라보미르 라비치'이다. 영화 속에서처럼 1939년, 독일이 폴란드 서쪽을 점령하고 소련이 폴란드 동부를 공격함으로써 두 나라에 의해 폴란드가 두 동강이 나버린 때로부터 1941년,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하여 1956년 이 기적같은 이야기가 실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 밖으로 나오고도, 1990년 폴란드가 완전히 공산주의를 포기하기까지의 긴 여정을 간단한 엔딩 크레딧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원작소설의 제목처럼 길고도 길었던 그들의 'The long Walk', 관객들이 실화 영화들에서 원하는 것은 약간의 드라마틱함과 거기서 오는 감동이지만, 때때로 이런 요소들이 철저히 배제되고서라도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 '웨이 백'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참여한 광활한 대자연을 그대로 렌즈 안에 담은 이 영화의 살아숨쉬는 자연미와 위대함은 그 속에 한낱 점처럼 표현된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대비시키는 동시에 그럼에도 그런 존재의 의지를 한층 부각시키는 데 일조를 담당하고 있다. 이 영상을 두 시간 내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충분히 '야누시'가 되고 '토마시'가 되고 '이레나'가 되며, '미스터 스미스'가 될 수 있다.
촬영기간 내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은 배우들(특히 콜린 파렐의 변신)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
이 음악 웰이 백 ost 앨범 목록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는 곡입니다.
http://www.56.com/u68/v_NTk1NjMzODU.html
http://www.56.com/u43/v_NTk1NjM2MjQ.html
http://www.56.com/u14/v_NTk1NjY3NjM.html
http://www.56.com/u33/v_NTk1NjY3ODI.html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할게요
저두요 여행다녀와서 봐야할듯.
이 영화를 보니 우리의 야영 생활은 최 특급 호텔 야영이구만여........ 그래서 중단
좋아하는 콜린파렐이 나와서 보려했는데 악역이라 그의 매력도
잔인하고 보기에
담에 봐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