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NGO로 Servas라는 단체가 있다. 회원간에 여행객이 되거나 호스트가 되어 숙박을 제공받거나 제공하는 비영리 국제 친선 단체로 servas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We Serve라는 의미이다. 6월 23~26일 3박4일간 나는 92세의 미국노인 Edwin 씨와 그의 25세 된 외손자 Dan을 맞아 호스트를 하면서 홈 스테이와 정읍, 고창 지역 관광지 안내, 해설을 했다. 92세로서는 대단한 건강이지만 노인은 역시 노인이었다. 역 개찰구에서 표 투입 더듬거리는 모습, 계단에서 손자의 부축을 받는 것을 보는 순간, 이번 호스트는 다소 어렵겠다고 직감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 92세의 미국 노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으며, 연륜에서 오는 깊은 신중성, 고령에도 해외여행에 도전하는 그 패기와 열정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몸은 노인이지만 정신은 청년이었다.
에드윈 씨는 바로 사무엘 울먼의 시 그 “청춘”이었다. 나는 지금 너무 늙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또 92세의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외국여행을 그것도 불편한 servas를 통한 여행을 하는 25세의 미국의 젊은이를 보면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의 현주소를 재확인해보게 했다. 가장 열악한 환경과, 조악한 음식을 경험했을 에드윈 씨 일행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체험해주고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은 극 노인이라는 특수한 이번 여행자의 경우에는 그것이 나의 과욕이었다고 생각해본다. 손님을 보내고 받는 호스트들 간의 일사불란하고 완벽한 공조체제가 인상적이었다. (호스트 기간 중 메모 해 둔 일기를 대충 요약하여 올려봅니다. 많은 부분을 생략했어도 좀 장황하고 산만한 글이 되어 쑥스럽습니다.)
6. 23. 토. 비 장대비가 퍼붓는 속을 운전하고 정읍 역에서 Dan과 그의 외조부를 집으로 안내 한 것은 오후 5시 경. 인사를 나누고 제시한 미국 servas 소개장을 확인하고 방명록 기록을 부탁했다. 간단한 선물을 주고받았다. 내가 접는 부채와 안동 하회탈목걸이를 선물하자 전갈이 그려진 줄목걸이를 선물한다. 각자 자기소개들을 하고 나는 아내를 소개했다. 1916년생인 Edwin M. Woolverton 씨는 불가지론자며, 목각 예술가로 오리사냥용 목각오리 제작 전문가라고 한다. 낚시, 카누타기 등을 즐기며 겨울 전후 6개월은 미네소타를 떠나 플로리다에서 보낸다고 했다. 1983생인 Dan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웹 개발 부사장이라고. 아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거실에서 대화를 했다. 저녁 식사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오늘 저녁은 우선 우리가 평소 먹는 대로 챙기고 불고기 등 특별 메뉴를 준비해 보자고 함. 모든 일정을 나에게 의존하여 일정을 대충 작성하여 보여주니 좋다고 한다. 옆 동 아파트에 사는 아들 내외와 손녀가 왔다. 5살 손녀는 낯설어하며 인사하래도 머뭇거린다. 6:00에 7명이 테이블에서 식사했다. 평소 먹던 반찬에다 불고기와 계란 후라이, 집에서 만든 빵과 야채를 추가했다. 댄은 밥을 잘 먹는데 에드윈 씨는 밥은 손도 안대고 빵을 불고기 국물에 찍어 맛있게 먹는다. 내가 만든 빵이라고 하니 정말이냐고 놀란다.
식사 후 과일과 커피를 들고 아들 동훈이 포함 넷이 대화. 보청기를 낀 에드윈 씨는 내 서툰 발음을 손자가 다시 통역을 해야 한다. 틀린 발음은 교정도 해준다. 가족에 관하여, 내일 가볼 고창 고인돌과, 영국 스톤헨지, 영미문학, 해전사, 이순신 장군 이야기 등이 화제에 올랐다. 탄생과 동시에 한 살을 먹는 우리의 나이계산의 합리적인 점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이해 못하다가 인간의 생명의 시작은 어머니의 몸 속에서 시작한다는 사실과 동서양 동일하게 태교를 하는 이유는 모태의 생명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내 말에 수긍을 한다.
2차대전시 지중해 카사블랑카 주변 해역에서 독일 잠수함 공격의 위험 속에서 화물선, 유조선에 승선, 제빵, 요리사로 복무했다고 한다. 내가 영화 카사블랑카가 생각나 화제를 돌리자 노인은 여주인공 잉그리드 버그만을 말하면서 눈에는 빛이 났다. 제빵 기술은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해군 복무, 월남전 참전 등을 이야기했고 취미로 제빵을 집에서 한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공유 부문의 확인으로 친밀감이 더욱 각별해졌다. 9시에 그들은 방으로 가서 취침. 더블 침대 한방을 쓰는 것 좋다고 한다.
6. 24. 일. 짙은 구름. 어제 오전에 집안 청소를 한다고 과로 탓인지 간밤에 오한과 두통으로 잠 설치며 악몽으로 신음하다 6시에 잠이 깸. 에드윈 씨는 벌써 일어나 거실 소파에서 큐빅을 맞추고 있다. 1년 전부터 하는데 아직도 못 맞추고 있다고. 가까운 뒷산 소나무 숲 산책 30분간 같이 거닐며 대화 나누다가 돌아 와 아침 식사 함. 몸살은 좀 나아졌다. 아침 식단은 빵(집에서 어제 오전 내가 만든 것)과 샐러드와 햄, 버터, 치즈, 우유, 불고기 등. 밥 보다 더 잘 먹는 것 같다. 아들 동훈이가 와 오늘 몸 안 좋은 나대신 운전하겠다고 한다.
9:20 경 동훈이 차에 나도 타고 30분 걸려 고창 고인돌 공원에 도착하여 고인돌 돌면서 설명. 마침 선운사 유칠선 씨가 와 있어 반갑게 맞아준다. 준비 안 된 고인들의 전문용어에 대한 영어 해설은 너무 힘들었으나 내가 전하고자 말은 그런 대로 전해진 것 같다. 많은 질문에 유인물을 보면서 답했다. 세계문화유산 등록 상황에서부터 공원 조성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고인돌 축조과정, 움집까지 살펴보고 바로 고창읍성으로 향함.
다리가 아프다고 에드윈 씨는 성안의 바위에 앉아 쉬고 셋이 객사 동헌 돌며 동훈이와 내가 설명. 성을 나와 판소리 박물관에 들려 관람하고 판소리 체험관에서 북장단 맞춰 화면을 보며 따라 해보라는 권유에도 사양한다. 내가 북을 치며 호남가를 불러봤더니 박수가 요란하다. 공예품 전시관에서 자수 병풍과 목각공예품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서예전시실을 보고 나서 점심 식당을 찾다가 횟집 어떠냐고 묻자 싫다고 한다. 노인은 식사 때에 의자에 앉아야 한다는데 의자 있는 식당은 너무 허름하여 알맞은 식당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에드윈 씨의 제의로 피자집에 가서 큼 피자 한 개 시켜 넷이 먹었다. 노인은 小食 습관이 장수와 관련 있는 듯. 한,미 두 노인은 모두 콜라를 안 마시고 한,미 두 젊은이는 모두 콜라를 마신다. 식후 국립공원 내장산으로 직행하여, 50분 걸려 도착, 차로 절 앞에까지 가 절 안 둘러봤다. 내가 사찰의 악기 사물을 설명하니 댄은 이미 전 여행지 절 안내문에서 읽었다고 잘 알고 있다. 내일은 황토현 기념관 전시실 휴관일이어서 오늘 다녀오기로 하고 차를 내일 가기로 했던 황토현으로 몰아 3:30경 황토현 기념관에 도착하여 30분경 관람하고 귀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설명에 미국혁명에 대하여 에드윈 씨는 이야기 해준다. 조상이 독립전쟁에 참전 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저녁식사는 외식을 대접하자는 아내의 의견대로 경양식점에 가서 식사. 나와 에드윈 씨는 돈가스, 댄은 이태리 식 치즈 있는 것을 주문하다. 에드윈 씨는 고기는 절반 정도 남기고 밥도 안 먹고 빵은 먹는다. 와인 맛은 좋다고 한다. 귀가하여 9:20경 일찍 취침. 6. 25. 월. 흐림, 보슬비 9:30 경 두 사람 태우고 먼저 정읍사 공원으로 이동했다. 비탈을 오르는 것이 힘든 에드윈 씨를 위하여 차를 높은 곳에 대고 내려오게 하고 갈 때는 차를 돌려 아래 주차장으로 와 계단을 내려오게 하여 태우고 이동. 외손자 댄의 할아버지 돌보는 정성은 대단하다. 20 여분 망부상 여인을 설명하고 부조되어 있는 정읍사의 슬픈 전설을 들려줬다. 전라좌수사 부임 직전 초대 정읍현감으로 부임했던 충무공을 기리는 위하여 세워진 충열사 공원으로 이동하여 둘러 봄. 다시 어제 갔던 황토현 쪽으로 차를 돌려 오늘 내가 문화관광해설사 봉사 근무해야 하는 황토현으로 향함. 어제 못 본 전봉준 장군 동상과 구 기념관의 기록화를 둘러보고 영문안내문을 꼼꼼히 일어본다.
전봉준 고택을 거쳐 말복장터에 도착하니 12시 경. 면사무소 앞에 있는 의자 있는 허름한 백반집(5천원 짜리)을 찾아 들어갔으나 에드윈 씨는 여전히 밥은 안 드신다. 젊은 안 주인이 미안해하며 슈퍼에서 사온 단 크림빵을 조금 떼어 국에 찍어 조금 드신다. 남편과 할머니까지 나와 낯선 이방인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밥 안 드시는 것을 걱정한다. 할머니는 식탁 앞에 다가와 나물 접시들을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찌를 듯이 가리키며 못 알아듣는 우리말로, 손수 가꾼 무공해 채소임을 침을 튀기며 열심히 강조하신다. 나는 할머니의 쓸데없고 성가신(?) 참견을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통역하자 에드윈 씨는 나물들을 먹기 시작한다. 밥에 앉은 파리를 잡으러 미국 노인은 오른손바닥을 펴 겨냥하더니 손바닥을 날려보지만 파리는 용케 빠져 나간다. 미국 노인에게 잡힐 한국의 파리가 아니지! 파리 사냥법은 우리와 똑 같다는 것도 알았다. 댄은 밥을 다 비운다. 무공해 오디 주라면서 안 주인이 에드윈씨에게 따라 주니 석 잔을 마신다. 밥을 안 먹는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독신이니 잘 한번 해보라”고 농담을 하니 나이를 묻는다. 92세라는 말에 “오메 어쩐데야.” 하며 기겁을 하며 놀란다.
아주머니는 잘생긴 미국 총각하고 사진을 같이 찍어야겠다고 하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할머니는 에드윈와 저녁에 마시라고귀한 오디 주 한 병을 내게 선물한다. 또 텃밭에서 무공해(?) 오이를 따오더니 저녁에 해주라고 싸 준다. 2시 경에 출발하여 오는 길에 근처 보물 ‘천곡사지 7충 석탑’ 구경하고 오늘 관광은 피곤하니 그만하자고 하여 집에 돌아 옴. 세탁물을 달라고 하여 아내가 세탁기 돌려 건조해줌. 저녁식사는 에드윈 씨는 빵과 샐러드만 먹는다. 식후에 여흥 시간을 갖고 내가 북장단을 치면서 판소리 한가락 들려주니 좋아한다. 동훈이가 보여주는 국궁 활에 에드윈 씨는 깊은 관심을 보인다. 오늘 6.25 57주년이 화제로 올랐다. 댄은 오늘 휴일 아니냐고 묻는다. 동훈이도 참여 한 넷이서 6.25 이야기, 남북분단, 통일문제, FTA와 한미 관계 등 피해야 할 민감한 정치적 내용의 대화로 발전 되었다. 다소 급진적인 발언을 하는 동훈이 주장에 댄은 다소 공감하고 나와 에드원씨는 함께 젊은이들 의견을 견제하는 쪽으로 이야기는 흘렀다. 댄이 우리에게 카드 매직을 보여주기에 나는 노끈 잇기 마술을 보여 줬다.
댄이 자기 카드를 혼자 만지다가 개임을 한 가지 가르쳐 준다고 하여 두 손님과 나 셋이 카드 게임을 배우며 했는데 너무 단순하고 싱겁다. 내가 화투를 보여주며 월별 그림들과 개임 법을 설명하자 그들은 신기하고 재미있어 하며 화려한 그림에 매료된다. 구입 방법을 묻기에 마침 새것이 하나 더 있어 선물 하니 좋아한다. 동훈이 식구는 저희 집으로 가고 저녁에 두 손님과 아내와 나 넷이서 민화투를 가르쳐가며 같이 쳤다. 돈 내기해야 재미있고 빨리 배운다고 말은 했으나 내기는 안 하고 취침 전(10:05)까지 10번 정도 쳤다. 손자는 쉽게 룰을 습득하여 몇 번을 이겼으나 노인은 습득이 더디다. 매우 재미있어 한다.
6. 26. 화. 맑음 모두 7시 경에 일어났다. 아내는 교회 행사 있다고 바쁘게 아침을 채려 놓고 나간다. 토스트 굽고 오트밀, 치즈, 버터, 야채와 우유, 드레싱 몇 가지 곁들여 채려 놓고 나간다. 수프는 댄은 안 먹고 에드윈 씨는 댄의 수프까지 먹는다. 13:30에 다음여행지 광주로 간다고 함. 집에서 휴식하고 싶다고 하여 점심시간까지 무료한 시간에 에드윈 씨와 내가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침 집에 있는 재료들을 사용하여 노인은 바게트 빵을, 나는 식빵 식 빵을 만들었다. 에드윈 씨는 밀가루 세 컵과 온수 한 컵, 드라이 이스트 반 티스푼 좀 못되게 석고 반죽을 한다.
인스턴트 드라이이스트가 아니어서 물에 녹여야 하고 좀 더 넣는 것이라는 설명에도 내말은 안 듣는다. 나는 5 컵의 밀가루에 물 1 컵, 우유 0.8컵, 계란 반개, 설탕, 소금, 버터 넣고 반죽했다. 에드윈 씨는 잘 부풀지 않자 온수를 부은 큰 그릇에 반죽 그릇을 넣고 덮어 발효를 기다리다. 나와 같은 방법이다. 주방과 식탁을 두 노인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한미 노인 제빵 경연대회”를 벌렸다. 나는 절반은 피자, 절반은 빵을 두 판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발효는 좋지 않았으나 에드윈 씨의 바게트 보다는 내 것이 더 풍미 있는 빵이 되었다. 오븐에서 빵과 피자를 꺼내고 내가 만든 피자와 우유로 점심을 들었다.
모두 피자 맛이 좋다고 극찬. 발효가 좀 부족했으나 에드윈 씨의 빵도 그런대로 부풀어 담백한 바게트 빵이 되어 있었다. 에드윈 씨는 일기를 꼼꼼하게 쓰고 있는데, 오늘 쓴 일기 끝 부분을 내게 보여준다국에서 best baker를 만나 빵 굽는 체험을 같이 한 것이 정말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라고. 13:10에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 시간 확인하니 광주직통 13:30. 댄이 매표소에 가서 매표한다. 광주 호스트에게 버스 도착예정 시간 알려주고 광주행 직통 버스에 태우고 운전기사에게 두 미국인 한국어 못하니 도중 간이 정류소에서 안 내리도록 부탁했다. 버스 차창 사이로 서로 흔들며 작별 후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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