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달성공원에 올랐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 했드라면,충분한 사전답사를 통해 질서정연한
전개를 했을텐데 , 갑작스런 시작으로 두서없는 글을 올리게됨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공원 정문에서 불과 50M이내 에서 살면서 눈뜨면 공원에올라 놀고 자란 나로선는
감회가 새로웠다.
단단히 마음먹고,조수까지 대동하고,하나하나 메모 하며 세밀히 살펴 보았다.
오른쪽 토성위 觀風樓만 제대로 남아있고,그외에 尙火詩碑 하나 위치 옮겨 남아있을뿐
그많든 수목,기념비 는 언제 자취를 감추었는지?
더 놀라운것은 관풍루 남쪽 맞은편 지금 코끼리 사육장에서 관리사무소 중간쯤 서울 남산 팔각정 보다 좀 크고 운치있는 정자가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엉뚱한 비석2개가
자리잡고 있었다.안타까운 일이다.그 이름은 望京樓다.
지방 문화재 정도는 될텐데~~ 복원이라도 했으야 될일인데,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 한량 없는 일이다. 1970년에 분명히 존재함을 내눈으로 확인 했었다.
그외에 없어진것은 기념비 몇개,시대청산(과거청산)적 훼손은 다음에 거론 하겠다.
옛날 달성공원(1)의 상화 기념비의 원래 위치는 코끼리 사육장을 바라보면서 좌측
조금 낮은 지대에 위치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래서 코끼리 사육장뒤 높은곳에
옮겨 졌고,
옛날 달성공원(2)의 촬영장은 바다사자 사육장 과 호랑이 사육장 자리이다.
그런데 그일대 울창한 숲은 어디로 갔는지~~ 山賊들이 가져갔나보다.
옛날 달성공원에는(3)
활터(國弓場)이 있었다.위치는 토성 오른쪽 끝 지금 연못과 새장 이 있는곳,
재미있는 것은 원래 이 곳은 연못이 없었다. 그저 지대만 낮았을뿐,6.25이후 언젠가
큰 비후 갑자기 물이 고여 연못을 이루고, 자연적으로 생기다 보니 배수가 않되고
흙탕물 범벅이었다. 겨울이면 얼어붙어 나무판자로 썰매를 만들어 타고,성이차지
않으면 지금 바다사자 사육장 뒤로 토성을 넘으면 지금 서부시장 전체가 "사리못"
이라는 저수지가 있었다.그때 어린시절에 보면 바다 만 했지.
마음껏 어름 지치기를 할수 있었고, 익사 사고도나고,옷도 젖어서 말리기도 하고
사리못은 달성공원 부설 수영장이고 스케이트장 이었다.
다시 공원으로 되돌아가서,연못이 생기기전 그곳에 국궁장이 있었다.
사대는 연못 동쪽끝이고 과녁은 서쪽 토성밑에 있었다.
5,6명씩 사대에서 활을 쏘면 과녁 멀직히 비켜서있든 15,6세된 소년이 깃발을 들고
한발,한발 과녁에 명중 여부를 표시 하는 것이다.
그당시 다른곳에는 활쏠만한 자리가 없기에,아마도 국궁 동호회 정도 거나 대구시
대표 선수 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여성 회원도 더러 있었다.
오늘 이자리를 살펴보니, 참 원시적 시설이었고 ,바로 옆의 뚝위가 많은 사람이 오가는
산책로이고, 양궁은 거의 수평조준을 하는데 비해 ,국궁은 거의 하늘을 향하다 싶이
상향 조준을 하는데,좀 세게 힘을 가하면 토성 서쪽 부분 산책 객이 맞을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 인데도 안전시설도 하나도 없이 활을 쏘아 됐으니,~~끔찍하고,오싹하네요.
과녁에 있는 소년도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피해 다녔으니, 그때 혹시 해외
토픽에 다른나라 뉴스에 보도는 않됐는지? 모르겠다. 그뒤 자연적으로 연못이 조성 되니
활터는 폐쇄돼었고 그다음 부터는 흙탕물 천지로 개구장이 놀이터가 되었다.
그래도 그런 활터라도 있었기에 오늘날의 "양궁한국"이 존재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안전 불감증이 그때부터 유래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답사를 위해 공원을 살피든 중에 마침 운동 나온, 최원규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더 기뻣고 참 반가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