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자리에서 사명의 자리로” (행 1:6–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승천주일입니다.
우리는 승천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가신 사건으로만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승천을 단순한 이별의 장면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승천은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 오르신 사건이며,
동시에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시는 파송의 사건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었습니다.
그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질문입니다.
신앙은 은혜 받은 자리에 머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가 귀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반드시 삶의 자리로 흘러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서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특별히 123년의 신앙 전통을 이어온 우리 공주제일교회는
오랜 세월 이 지역 가운데 복음의 등불을 지켜온 교회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교회를 위해 기도했고,
헌신했고, 눈물로 섬겨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신앙의 유산 위에서 다시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어디로 보내시는가?”
“내가 품어야 할 한 영혼은 누구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세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의 시선이 “언제”에서 “누구”로 바뀌어야 합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제자들의 관심은 “언제입니까?”였습니다.
언제 이스라엘이 회복됩니까?
언제 기다림이 끝납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라를 세우십니까?
이 질문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다려왔습니다.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회복을 기다리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십니다.
사도행전 1장 7절입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예수님께서는 “언제인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향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언제”에 머물 때가 있습니다.
“내 기도는 언제 응답될까?”
“내 자녀는 언제 돌아올까?”
“내 가정은 언제 평안해질까?”
“내 몸과 마음은 언제 회복될까?”
이 질문들은 우리의 삶에서 실제적인 질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계속 “나의 때”와 “나의 문제”에만 머물면,
하나님의 마음이 향하는 사람을 놓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시선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기도는 언제 응답될까?”에서
“지금 내가 기도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로,
“나는 언제 위로받을까?”에서
“오늘 내가 위로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로,
“내 문제가 언제 해결될까?”에서
“주님이 지금 찾으시는 한 영혼은 누구인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4절에서 주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아흔아홉 마리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마음이 멀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당 안에 앉아 있지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때 믿음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지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처와 개인 사정으로 교회와 멀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언제만 묻고 있느냐?”
“이제 누구를 바라보겠느냐?”
“내 마음이 머무는 그 한 사람을 보겠느냐?”
중보자적 제자(MD)사역은 바로 이 시선의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따뜻하게 안부를 묻는 것입니다.
신앙은 “언제”를 붙잡는 자리에서 “누구”를 바라보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우리의 힘의 근원이 내 열심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나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말하라고도, 먼저 계획을 세우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명은 내 힘만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을 세우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중보자적 제자(MD)사역은 단순히 친절하게 인사하는 일이 아닙니다.
상처 입은 마음을 품는 일입니다.
닫힌 마음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멀어진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입니다.
때로는 거절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 일은 성격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말재주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열심만으로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열심으로 할 수 있습니다.
책임감으로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칠 때가 있습니다.
연락해도 답이 없고, 마음을 다해 다가갔는데 오해받을 때도 있습니다.
도와주고 싶지만 상대가 마음을 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도 힘든데 누구를 돌볼 수 있을까?”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을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권능은 단지 특별한 능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하는 힘입니다.
상처받고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입니다.
내 마음으로 품기 어려운 사람을 주님의 마음으로 품게 하는 힘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4장 13절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 안에 사랑이 부족할 때,
성령께서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내 안에 용기가 부족할 때,
성령께서 다시 다가갈 힘을 주십니다.
내 안에 인내가 부족할 때,
성령께서 기다릴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중보자적 제자(MD)사역에서 중요한 기도는 이것입니다.
“주님, 저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제게 부어주십시오.”
“주님, 제 감정이 아니라 성령의 마음으로 대하게 하십시오.”
“주님, 내 열심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섬기게 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에게 다시 연락하는 것이 망설여지십니까?
상대의 반응이 두려우십니까?
과거의 상처 때문에 마음이 닫혀 있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내 힘으로 더 애쓰기 전에 먼저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 제 마음을 먼저 회복시켜 주십시오.”
“성령님, 두려움보다 사랑이 크게 하십시오.”
“성령님, 저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품게 하십시오.”
중보자적 제자(MD)사역은 사람을 억지로 끌어오는 기술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사역입니다.
내 힘으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랑으로 기다리고 찾아가는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문자를 보내기 전에, 전화를 걸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아도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찾아가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3. 하늘만 보지 말고 땅 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9절부터 1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이 말씀은 단순히 “왜 위를 보고 있느냐”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 멈춰 서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받은 말씀을 붙들고 사명의 현장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신앙에는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배가 필요합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거기서만 끝나면 안 됩니다.
하늘을 바라본 사람은 다시 땅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시 사람에게로 가야 합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은 삶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여기서 ‘땅 끝’은 지리적으로 먼 곳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땅 끝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닫힌 가족,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는 성도,
상처받고 조용히 멀어진 사람,
외로움 속에 있는 이웃,
예배당 안에 있지만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우리의 땅 끝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람에게로 보내십니다.
“하늘만 쳐다보지 말라.”
“이제 그 사람에게 가라.”
“그 이름을 기억하라.”
“그 손을 잡아라.”
“그 마음을 두드려라.”
“내가 사랑하는 그 영혼에게 가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우리 주변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이 지친 사람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아픔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따뜻한 안부 한마디일 수 있습니다.
조용한 기도일 수 있습니다.
다시 손 내미는 사랑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을 한 번에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주님께서 맡기신 한 사람에게 신실하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한 번의 연락으로, 한 번의 인사로, 한 번의 방문으로
마음이 금방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쌓입니다.
기도는 쌓입니다.
기다림은 쌓입니다.
진심은 언젠가 마음의 문 앞에 도착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중보자적 제자(MD)사역은 빠른 성과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의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명을 말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머무는 자리에서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언제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천사는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이제 우리도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내 문제, 내 상처, 내 편안함 안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은혜 받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문제만 보지 말고, 주님이 아파하시는 그 영혼을 보십시오.
내 열심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섬기십시오.
하늘만 바라보는 신앙이 아니라, 한 영혼을 찾아가 손잡는 신앙이 되십시오.
승천주일은 주님이 우리를 떠나신 날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 속으로 보내신 날입니다.
123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 공주제일교회를
이 땅에 세우시고 지켜오셨습니다.
이 교회는 믿음의 선배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헌신으로 섬기고, 사랑으로 세워온 어머니교회입니다.
이제 그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은 우리가 다시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한 주간,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는 우리 각자의 땅 끝을 생각해 봅시다.
내가 연락해야 할 한 사람,
기도해야 할 한 영혼은 누구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머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만이’ 사명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땅 끝으로 걸어가는 증인이 됩시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이웃 가운데서,
그리고 이 공주 땅에서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주님,
우리가 내 문제와 내 때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이 향하는 한 영혼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내 힘과 열심으로 사역하려 하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권능으로 사랑하고 섬기게 하옵소서.
하늘만 바라보며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 한 영혼을 찾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123년 동안 우리 공주제일교회를 지켜주신 주님,
이제 우리도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이 시대의 한 영혼을 품게 하옵소서.
이번 한 주간 우리에게 맡겨주신 땅 끝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곳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화목의 다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