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다
《나를 읽다》를 읽고
김정옥
시인이 출간한 에세이집을 보내왔다. 책 제목부터 범상치 않았다. 나를 읽다니….
저자와 알고 지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녀는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 마스크로 얼굴을 반 이상이 가렸음에도 또랑또랑한 눈빛과 고운 눈매가 곱살했다. 한들한들한 코스모스 같은 날씬하고 가냘픈 체구이다. 그녀는 어디에 그런 심오한 시적 사유를 담고 있을까.
책을 열자 차례부터 그녀의 톡톡 튀는 상큼한 향기가 전해왔다. <환대! 하고 말고> < 중요한 거, 그거> <걱정 탐구생활> <존재의 삑사리>‘ 마치 한 마디 툭 던져 놓고 나 몰라라 하고 시치미를 떼는 듯 엉뚱 발랄한 젊은 감성적인 글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프롤로그에서 ‘그림책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몇 단어 안 되는 글과 그림이 제 속에 들어와 허락 없이 막 자랐다.’ ‘나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 그림책 사유다. 이 책이 나에게로 가는 고샅길이다’라고 한다. 그림책과 소통하는 발상이 시인답게 기발하다.
‘그림책’은 어린아이들만 보는 책인 줄 알았다. 글자가 몇 문장 되지 않으니 독자에게 무슨 깊은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림책에서 빛의 원천, 창조력이 있음을 깨닫고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려고 글쓰기를 시작했단다.
그녀가 읽은 ‘나’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녀가 알게 된 나와 타자인 나는 무엇이 다를까. 일단 타자의 그림자와 함께 아웅다웅 행복에 겨워 즐겁게 살고 싶은 그녀 속에 빠져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저자에게 말을 건 40편의 그림책은 내가 읽지 않은 책이 거지반임을 고백해야겠다. 그럼에도 듣도 보도 못한 그림책이 나에게도 말을 거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림책 제목 아래에 친절하게 한 마디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책이 걸어온 말에 제대로 된 답을 하기 위해서인가. 그녀는 수많은 철학자를 동원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가 등장하고 고대 그리스 철학파 쇼펜하우어와 그의 영향을 받은 니체, 그리고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입장한다. 그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는지 소설과 영화와 시, 산문집이 한몫 거들며 그녀의 답에 든든한 뒷받침을 한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영화 《기생충》 이종수의 《부시다》 등 받침의 가지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뻗는다. 그녀가 인용한 글귀를 품은 책을 나열한다면 가히 작은 도서관 책장에 그득 채우고 남겠다.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만남, 판단, 순간, 직감, 논리 앞에 판단 보류하는 마음을 먹는다. 그럼 괜한 절망이나 실망의 나락으로 뛰어들지 않아도 된다. 방해받지 않는 고요함 속에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 절실해진다면 그때 마음먹기 요리를 해도 늦지 않다. <마음 맛집>
《마음먹기》 그림책이 걸어온 말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에 대한 명확한 부연 설명이며 마음 다스림이었다. 그녀에 마음 맛집에 내가 선뜻 들어섰다. “바로 그거야” 끙끙대다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하나 풀은 듯 무릎을 ‘탁’ 쳤다.
프로필에서 시인이 되는 것보다 시처럼 살고 싶다는 저자다. <처음 가는 여행>에서 갱년기로 나른함을 경험하며 풀죽은 육체로 생활이 싱거워지지 않도록 소금기 더러 묻은 시詩적인 삶을 꿈꾼다. 되잖은 죽음을 생각하며 혼자 서글퍼하지만 먼 미래 나의 죽음이 빛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한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밍밍한 삶보다 소금기가 묻은 시적인 삶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대환영이다.
거울에 비친 나는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객관적 자기인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거울이 원하는 생을 강요받고 압박 속에 있다면 거울은 독이든 성배다. 거울 너머에 있는 나와 비슷한 여성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함께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도구가 아니라면 그 거울,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거울 버리자>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우냐?”에 대답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외면이 아닌 사실만을 말하는 거울이 있다면 고작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야 하겠는가. 여성의 외모를 정체성의 전부로 여기는 일이 아직도 종종 있는 세계에 경종을 울린다. 그런 거울은 과감히 버리라고.
《나를 읽다》 속에 곳곳에 퍼져 있는 톡톡 튀는 젊은 감성과 다양한 비유를 덤으로 배웠다. 저자는 그림책을 통하여 자신을 읽고 폭넓은 세상을 읽었는데 나는 그를 통해 나를 찾았다. 이제 그와 다른 세상도 한편에 있을 터이니 둘레둘레 찾아봐야겠다.
오래전 손자가 읽었던 그림책 《브레멘의 동물 음악대》가 책장 구석에서 먼지를 덮고 있다. 그도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을까.
첫댓글 독후글, 그것을 다시 독후글로 쓰는 맘이 산뜻하게 하네요.
나를 읽은 방법이 독서,, 여행, 멍때리기 등 다양할 텐데-.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시인 님은 무엇으로 나를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