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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제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 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단원 A. 합리적 역학의 개념작용. La conception de la mécanique rationnelle. 304.
단원 B. 비유클리드 기하학들Les géométries non euclidiennec 310
[1절] 사케리의 선구자들 Les précurseurs de Saccheri 313,
[2절] 신부 삭케리 Le P. Saccheri. 315
[3절] 로바체프스키와 리만 Lobatchevski et Riemann 318
[4절] 메타기하학 Les métagéométries 321
단원 C. 분석학 과 연속성 L’analyse et la continuité 325
[5절] 18세기에서 문제 Le problème au XVIIIesiècle 325
[6절] 뽕슬레에게서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Poncelet 327
[7절] 꼬쉬의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Cauchy 330
[8절] 분석의 자치 L’autonomie de l’analyse 334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5권 서론]341
제15장 수의 독단론 Le dogmatisme du nombre 344
[1절] “수의 법칙” La “loi de nombre” 345
[2절] 상징론의 이론 La theorie du symbolisme[상징주의] 348
제16장 산술학의 유명론 Le nominalisme arithmétique 354
[1절] 분석론의 산술화 작업 L’arithmétisation de l’analyse 354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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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5권 서론]
[4권에서 분석학(복소수와 불연속적 함수 포함)이 자치를 조성할 때(변형론 또는 변환론), 산술학은 진화한다. (58VMH)]- [왜 진화한다고 했을까? (59QLJ)]
[4권은 동역학에서 새로운 대수와 함수로 표현하는 해석학이 성립했다. 5권은 산술학은 논리학의 구조 안에서 성립하고, 어떤 영역에 적용할 성립할까? (59QLJ)]
§202. [산술학은 논리적인가? 또는 논리학의 일부로서 산술학인가? ]
고대 사유가 걸어왔던 여러 다른 단계들을 다시 그려보면, 우리는 3가지 논리적 건축물들의 형성에 참여해왔다. 이 세 가지 건축물은 100년간의 영속성에 의해서 그것들의 구조의 견고함이 검증되었다. 그 세 가지란 수의 논리학(la logique du nombre), 등급[집합, 계층]들의 논리학(la logique des classes), 공간적 관계의 논리학(la logique des relations spatiales)이다. (341)
수의 논리학에 위에서, 퓌타고라스주의자들의 산술학적-기하학적 사색이 확립되었다. 이런 사색은 비합리적인 것들의 발견에 의해 타협되었다. (341)
등급들의 논리학은, 문법적 형식들의 분석에 관해 면밀히 투사되었고 그리고 초기의 자연적인 분류[등급]작업들의 성공에 의해 확정되었다. 이 논리학은 일반논리학처럼 해석되었고, 이 일반논리학은 개별적인 과학들 그 위에 배회하고 있었고 인간 정신의 모든 조작작업들을 주도 했다. (341)
에우클레이데스와 아르키메데스의 논리학에서 공간적 직관은 주도적인 정의(定義)들의 구성을 위하여 그리고 공리들과 요청들의 형식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용되었고, 이 논리학은 근대 수학자들이 그들의 유산을 받아들인 그 논리학이며, 이들이 원리들을 깊이 탐구하는 그 논리학이며, 이는 원리들을 순화하게 하면서 동시에 원리들을 확장하면서이다. 방법서설과 실증철학강의로부터 우리는 이 논리학의 영고성쇠를 따라갔다. 우리는 어떻게 이 논리학이, 공간의 직관과 연속성의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이었던 수학적 분석학을 구성할 목적으로, 무한소 계산의 발견에 의해 일으켜진 시도들에서 잔존했는지를 제시했다. 공간은, 칸트와 더불어 필연적인 매개자로, 콩트와 더불어 특권적인 매개자로 남는데, [전자와 더불어] 과학을 구성하는 추상적 연관들의 연결을 위하여, 그리고 [후자와 더불어] 실재성을 구성하는 경험적 사실들의 연관을 위해서 이다. (341)
그런데 실증과학의 진보들은 비판 철학과 실증주의의 토대들 중의 하나였던 것을 뒤엎어 놓았다. 기하학은 현상들의 필연적인 수용체(le réceptacle)일 것이라는 유일 공간의 과학이 아니다. 수학적 분석학은 공간적 표상의 법칙들에 종속되지 않는 하나의 대상을 갖는다. 수학자는 기하학자와 더 이상 섞이지 않는다. 공간의 논리학은 과학의 무게를 지탱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342)
이때부터 수학 철학은, 근대 사유가 이 입장들을 항상 넘어섰다고 믿으면서 포기했던 지위[입장]들에게, 그리고 수의 논리학 또는 등급들의 논리학이 수학의 건축을 지탱하기 위하여 새로이 불러일으켰던 입장들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로부터 하나의 역설적 광경이 나온다: 수학 철학의 학설들은, 우리 시대부터 매우 강하게 구성되었는데, 마치 고대 형이상학들의 재부흥 또는 재탄생들처럼 소개되었다: 즉 네오-퓌타고라스주의(néo-pythagorisme) 또는 네오-아리스토텔레스주의(néo-aristotélisme)이다. (342)
우리는 다음을 믿지 않는다: 즉 이런 기원에 대해 고대는 우리가 지금 검토해야만 한 학설들에 반대하여 편견을 창조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반대로 기원은 자연적으로 이 학설들이 지지 받았던 근본적 용어들의 영속성을 밝히게 될 것이다. 르누비에(Renouvier, 1815-1903) 또는 메레(Méray, 1835-1911)는 퓌타고라스를 회고적으로 정당화하며, 그리고 거꾸로 이들은 퓌타고라스에 의해 정당화된다. 마찬가지로 프레게(Frege, 1848-1925)와 러셀(Russell, 1872-1970)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회고적으로 정당화할 것이고, 그리고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당화될 것이다. (342)
그렇다고 해서 발생[창조]를 잘 이해하는 것이, 또 근대의 산술주의(arithmétisme)와 동시대의 논리계산(logistique, 기호논리학)이 관여하는 철학적 용어들의 탄생의 날짜를 보유하는 것이,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학설들은 과학 속에서 몇 가지 새로운 학설들 사이에 매혹적인 접근들을 제도적으로 설립하였다. 분석학의 산술화작업(l’arithmétisation), 즉 집합론(théorie des ensembles) 그리고 고대 철학에서 정식으로 인정된 몇 가지 원리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 학설들이 원리들의 확장과 적용에서 난점들을 만났다는 것은 있을 수 있으리라. 마찬가지로 난점들이 그 학설들 자체에 있다는 것도 일어날 수 있으리라. 그것들은 퓌타고라스학자들의 산술학적 독단론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스콜라학파의 존재론적 실재론이 이미 부딪혔던 학설들이다. 이 경우에 난점들 사이에서 출발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쉬울 것인데, 이 난점들은 현실적 과학의 기술에 의해 효과적으로 일으켰던 난점들이고 또한 사람들이 근대 사변에 재도입했던 난점들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고대 실재론의 요청들을 다시 다루는 경솔함에 빠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고를받는다: [하나] 메레가 완전수[정수]의 계산과 비합리수[무리수]의 계산 사이에서, 한편 진실한 과학을 다른 한편 허구적 상징의 조합을 만드는, 근본적 분리를 확립했을 때, [둘] 어떤 르누비에또는 어떤 에블랭(Evellin, 1835-1910)의 유한주의가 근대 수학들의 실증적 해석에 반대하여 엘레아학파 제논의 모든 미묘함과 모든 파라독사들을 새롭게 했을 때, [셋] 프레게의 알쏭달쏭하고 깊이있는 조합이 등급들의 전체성과 더불어 하나의 등급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불가능성 앞에서 좌초하기에 이를 때, [넷] 어떤 러셀같은 이의 변증법이, 영원하다고 믿을 수 있었던 잠에서 에피메니데스(전556경활동)를 깨우는 것을, 그리고 그에게 거짓말쟁이의 연쇄추리를 새로이 거짓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결과를 삼을 때, 그 때에 이런 물음이 생겨난다: 그들에게 제시되었던 풀 수 없는 곤경들이 근대 과학의 정복들에서 객관적으로 연결되었는지, 또는 이것이, 역사에서 사람들이 흔적들을 이미 재발견할 수 있는, 그리고고대의 형이상학에 내속하는 귀결들을 새로이 일어나게 했던, 논리적 필연성이 아닌지를 묻는다. (343)
이 예고는 그[메레?]가 도달해야하는 보다 넓은 범위를 가질 것이다. 퓌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뒤처진 제자들과 동시에, 퓌타고라스학자들과 아리스토텔레스학자들이 문제들을 제기했던 항목들 안에서, 중세 시대의 학파들이 피할 수 없었던 양자택일(l’alternative, 대안)에 복종하였던 항목들 안에서, 그 문제들을 토론하고자 받아들였던 반대자들의 제자들은, 독단론에게 그리고 실재론에게 유명론에 의해서 그리고 회의주의에 의해서 답변을 유지한다고 믿었다. (343)
제15장 수의 독단론 Le dogmatisme du nombre 344
§203. [수가 단위인가, 수가 사물들(물질이든 혼이든)을 대상으로 표시할 수 있는가?]
양의 완전수[정수, 양수의 자연수]의 관념을 토대로 삼는 수학의 이론은, 아주 모호하고 아주 불확실한 과학의 원리들들 몰아내는 소위 말하는 합법성을 지닐 수 있다. 왜냐하면 어느 것도 명석판명하한 이상적인 것(l’idéal), 즉 단순한 지적인 요소의 이상적인 것(l’idéal)에 더 잘 응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꾸르노(Cournot, 1801-1877)가 말하기를, “수(un nombre)는 단위들의 무리(un groupe) 또는 모음(une collection)이며, [더하여] 다른 그룹들로 분해할 수 있는, 다른 그룹들의 재통합에 의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되게 허용할 수 있는 단위들이다. 이로부터 수들에 대한 덧셈과 뺄셈의 관념들, 매우 수들을 지적하기에 충분한 단순한 관념들이 나온다. [게다가] 이로부터 판단들이 나온다. 이 판단들 중에 몇가지 판단들은 속담같은 인용문으로 이용되고, 이 판단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얻어진 동일한 수들의 동일성을, 다른 수들의 보태기와 빼기에 의해, 인정하기에 이른다.” (344)
꾸르노의 논평은 사람들이 수학자들의 상식(le sens commun des mathématiciens) 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부합된다. 우리는, 과학의 엄격한 논리를 그것의 완전성에까지 밀고 나가는 매우 많이 고심하는 수학자들에게서 이것의 표현을 재발견한다. 로뱅(G. Robin, 1855-1897)이 말하기를, “우리는, [사람들이] 구별된 대상들을 센다고 또는 다 조사한다(dénombrer)것이 무엇을 말하고자 원하는 지를 분명하게 이해한다.”「바이에르슈트라스에 따르면 함수들의 이론의 산술적 토대들에 관하여」라는 최신 교신에서, 미탁-레플레(Mittag Leffler, 1846-1927)는 동일한 질서의 확신을 진술하였다. “내가 보기에, 결국에는 사유 전체에 공통하는 수학들의 출발점은, 정수(nombre entier)의 용어이다. 그 귀결로서 모든 시도는, 마치 앞선 있는 것처럼 당시에 고려되었던 다른 용어들에 의해 정수에게 정의(定義)를 내리는 모든 시도는 마치 헛된 것으로 보였다.” (345)
관념의 투명성으로부터, 양의 정수들의 현존과 관계들을 의심하는 것에 대한 불가능성이 결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수들이란 관계들의 항목들이다. 그의 학위논문에서 몰크(Molk, 1857-1914)의 언어는 너무나 특성이 있어서 이렇게 재생산하지 않을 수 없다. “산술학과 대수학은 … 아주 잘 정의된 영역이다. 양의 정수들, 즉 양의 정수계수의 정수함수들(fonctions entiers à coefficients entiers)에 의한 정수들의 체계들은 산술학과 대수학에서 현존하는 것으로서, 동역학에서 운동과 자연과학에서 물질로서 고려되었다.” (345)
알 수 있는 것과 실재적인 것의 연결은, 수의 용어에서 매우 명증하게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양의 정수에서 실재성의 척도를 그리고 유일한 척도를 찾고자 시도했다. 이 발걸음은 수학자들에 의해 뛰어넘었으며, 이 수학자들은 추상수학을 기하학적 직관과 독립적이게 하면서 꼬쉬(1789-1857)에 의해서 추상 수학을 재조직했다. (345)
제1절, “수의 법칙” La “loi de nombre” 345
§204. [꼬쉬의 수열(la suite)에서 다룬 무한 수열의 개념을 르누비에가 발전시킬 것이다. 다음 단락은 르누비에를 다룬다.] / [‘수의 법칙’이란 용어는 2절 §206.에 등장한다.]
1833년에 신부 므와뇨(Abbé Moigno, 1804-1884)에 의하여 보존되었던 꼬쉬의 튀린에서 행한 일곱 강의(1833)에서, 사람들은 꼬쉬가 갈릴레이의 논평을 다시 다룬다는 것을 본다. 우리는 이 논평의 반향을 퐁뜨넬(1657-1757)의 무한의 기하학(1727)에서 재발견했다. 꼬쉬는 양(+)의 정수들의 수열(la suite)과 제곱수들의 수열을 비교한다. “만일 정수의 수열이 현실적으로 무한히 연장된다고 가정할 수 있었다면, 제곱의 항들도 거기에서 매우 큰 ‘소수(minorité)’로 있게 될 것이다.”따라서 정수들의 수열은 제곱수들의 수열보다 더 크다. 그럼에도 두 수열들은 무한하게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정수들은 제곱수들을 갖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갈릴레이는 아주 부정적인 결론을 끌어내는데 그쳤는데, “동등한(égal), 더 큰(plus grand),더 작은(plus petit)의 속성들은 무한들에서 적합하지 않다. 사람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와 연관에서 더 크다고, 더 작다고, 또는 동등하다라고 말할 수 없다.”그러나 꼬쉬는 수들의 무한 수열의 개념작업에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이런 결론에게 실증적이고 형이상학적 범위를 부여한다. “사람들은, 분명한 모순들 속에 빠지지 않고서, 존재들의 또는 현존하는 대상들의 무한 수의 중첩을 인정할 수 없다.” 말하자면 양의 정수들의 계산에 상대적 법칙들은 자연 속에서 주어진 사물들에게, 예를 들어 별들에게 필연적으로 알맞다. 그 법칙들은선천적으로성격들을 규정하는데 쓰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자기모순인 것처럼 생각되기에 앞서 유한 수들의 산술학과 모순이다. (346)
그러한 개념작업은 산술학적 형식의 추론들 속에서 과학의 틀을 넘쳐나는 암묵적 요청들을 도입한다. 꼬쉬는 이들에 대한 권위를 불러온 것 같다. 따라서 개념작업은 인식의 이론을 참조한다. 인식이론을 분간해내는 것은 철학자에게 속한다. (346)
1854년에 르누비에는 자신의 일반 비판론의 첫 시론에서 체계적인 형식 하에서 이런 이론을 소개했다. 그는 이론을 이전부터 끈기 있게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가지고 체계적 형식을 발전시켰다. 우리는 그에게서 산술학적 철학을 구성하는 본질적 흔적들을 빌려올 것이다. (346)
§205. [르누비에의 수에 대한 관점: 신칸트주의자. – 한편으로 대상을 대신하는 수(추상 항목), 다른 한편 대상에 적용 또는 대응하는 단위(상징)을 만든다. . ]
르누비에는 서로 서로 상호 연관하여 또 평행하여 전개될 수 있을 뿐인 두 함수들의 연결에 의해 인식을 정의 한다. 재현적(représentatif) 함수와 재현된(représenté) 함수가 있다. 전자는 일반 언어에서 주관적함수라 하고 르누비에의 용어상으로 객관적함수라 하며, 후자는 일반 언어에서 객관적함수라 하고 르누비에의 용어상으로 주관적함수라 한다. “어떠한 재현작용도 그 재현작업과 동일한 실재성으로부터 재현된 것(un représenté)없이 있지는 않으며, 모든 재현작업의 바깥에서 아무리 재현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또 그 귀결로서 인식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따라서 내속적 가지성은 과학에게 진리의 가치를 부여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거기에 구체적 대상을 보태야만 한다. 인식의 조건은 순수 사유와 경험적 직관에 대한 연결과 상호성이다. “수학 과학의 자료들(les données)은 선천적으로표상되는 것과 동시에 후천적으로검증할 수 있고 검증되는 것이다.” (346)
이러한 상응성(la correspondance [대응성])의 필연성이 특이한[단독적] 정확성을 상대주의 일반적 주제에 기여 한다. 사물의 직접적 관점에 근거하는 사유의 과정을 지지하게 해주는 근본적 관계 조성(composition)의 관계이다. 여기에 결정적 원문이 있는데, 그 원문이 그 귀결의 길에서 우리에게 르누비에의 사변적 학설을 암시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조성과 관계는 서로 동반하여 등장하는 두 성질들이다. 사람들은 조성[작용]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때는 사물의 재현작용이 마치 사물의 부분들처럼, 사물의 수들처럼, 사물의 요소들처럼 제공되는 어떤 다른 사물들의 재현작용을 끌어낼 때이고, 서로 상호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사물이 들어가 있는 전체의 개념작업에 의해 이해할 때이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사물에 대해 사물이 상대적이라고 말하는데, 이때는 사람들이 사물을 마치 조성된 것처럼 또한 다른 어떤 사물에 비추어서 조성하는 것처럼 이해할 때이다. 조성의 관념은 그것[관념]의 가장 넓은 수락작업(son acception)에서 이렇게 파악되기에, 관계를 확립하는 것, 연관을 정의하는 것, 그것은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 연결되게 하는 조성의 도움으로 사물을 정의하는 것이다.” (347)
전체와 부분들의 연관은 수(le nombre)의 용어를 무매개적으로 태어나게 한다. 수란, 르누비에게 그것을 이해하는 의미에서, 말하자면 마치 구별된 단위들의 합처럼,어떤 등급[차원]에서도 기술적인 정교한 작업의 생산물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점점 더 복잡하게 점점 더 미묘하게 되기라고 불리었을[명명하기를] 관계들의 체계에 대한 첫 분절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물들의 탄생에 대한 자발적이고 보편적 조건이고, 따라서 반성에 예약된 유일한 역할은 수(le nombre)가 항목(un terme)인 동시에 원리(un principe)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있다. 전체와 부분들의 근본적 연관을 회피하는 것이 우리를 넘어선다. 그리고 왜냐하면 수가 “실재성의 노동자(ouvrier de realité)”이기 때문에, 수는 실재적인 것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난다. “퓌타고라스가 수를 이해했던 방식은 모든 사람의 방식이다. 나는[르누비에] 어떻게방식을 그 자체로 공고하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의 작업은, 각 작업이 수를 이해하는 대로, 어떻게 규정된 모든 본질들이 수들과 더불어 동일화 될 수 있는지를 찾는데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이 수의 적용에 반역하는(rebelle) 것에게 무한(infini)이란 단어를 부여했다. 이런 대립은 기발한 착상(un trait de génie)이며, 무한(infini)과 수(nombre)라는 단어들의 부조리한 접근으로부터 심취했던 우리의 무한주의자들이 반영해야 했던 착상이다.” (347)
수란 용어는 단순한 방법론적 명령법(imperatif méthdologique)과 아주 다른 것에 상응한다. 그 용어는 형이상학적 직설법(indicatif métaphysique)의 가치를 갖는다. 수의 원리는 사물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물들이 효과적으로 계정(un compte, 셈)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들은 부분들에 의해 구성되어 있으며, 그 부분들 이쪽에는 분할(division)이 더 이상 없다. 사물들이 전체를 형성하는데, 그 전체 저쪽에서는 더하기(addition)가 더 이상 없다. 르누비에는 아마도 칸트의 의도들에게 충실한데, 칸트에게서는 도덕 용어들의 질서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우주의 모방에 흥미가 있었으며,그리고 반대로 모순적인 형이상학들 사이에 편드는 인간 정신을 영원히 면제해야만 하는 비판의 사변적 결과에는 반대이다. 르누비에는 수의 원리위에 네오-비판주의(néo-criticiste)[신칸트주의]의 체계를 세운다. 신비판주의의 본질적 주제는 존재들의 수의 규정작업, 세계의 시초, 현상들의 불연속성과 우연성일 것이다. (348)
제2절, 상징론의 이론 La théorie du symbolisme[상징주의] 348
§206. [르누비에의 산술학은 퓌타고라주의를 토대로 성립한다. 그는 엘레아 제논의 불합리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정수에서 나눌수 있는 것과 나눌 수 없는 것을 구별하였다.]
꼬쉬의 추론과 같은 추론 속에 함축되어 있었던 이 모든 귀결들을 분간해 내면서, 르누비에의 학설은 19세기 한 가운데에서 퓌타고라스의 산술학을 회생시켰다. 그 학설은 성공했다. 아마도 말할 수 있다면, 그 학설은 존재론적 실체 전체를 표현했다. 이런 회복의 “역설적 과감함”[무모함]은 정신들[학자들]을 당연히 유혹했다. 정신들은 철학적 사색 속에 깔끔하고 선명한 선들의 취향을, 명석하고 아주 한정된 지평들의 취향을 가져온다. 그러나 과학적 관점으로부터, 그리고 특히 수학들의 해석을 위하여, 수학적 해석이 새로운 문제들을 일으켰다는 것을, 보다 정확하게 그 해석이 비합리적인 것[무리수]의 발견을 그리스인들에게 제기 했던 문제들을 끌고 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문제들이 [엘레아의] 제논의 변증법을 야기했던 문제들이었다는 것을 회피할 수 없었다. 르누비에는 역사의 깊은 인식과 더불어, 또 그의 정신의 강한 성실성과 더불어, 그가 보기에 이 변증법이 견고하다는 것을, 그리고 변증법이 정의상으로 수의 법칙의 파생명제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제논의 논증들은 정교한 형식들로 수도 많고 차이도 많다, 그 토대에서 논증들은, 정확하게 단순하고, 그리고 최소한으로도 회피할 없는, 하나의 유일한 명제로 되돌아온다. 끝날 수 없은 수나열[기수법]은 도달할 수 없고, 그 귀결로서 무한에서(in infinitum) 세는 것의 어느 것도 다 퍼올릴 수 없으며, 결국에는 규정될수 없고 완수될 수 없다.” (349)
단지 근대 수학들의 발전은, 사람들이 거기서 토론하는 것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만일 사람들이 갑작스론 거절(fin de non-recevoir, 소송 불수리사유)을 과학의 부분에게 대립 시킨다면, 스스로를 단죄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과학의 부분들이란 기본 산술학의 진리를 넘어서는 것이고, 또 그만큼 더 정확하고 그만큼 더 풍부하게 표출되는 것을 뜻한다. 고대의 독단론르로 갑작스런 회귀에 의해 신-비평주의가 형이상학으로부터 쫒아냈던 이율배반(l’antinomie, 안티노미)은 그 당시 과학의 핵심에 다시 나타났다. 르누비에에 따르면, 한편 “양과 척도의 과학에 나타나는 관계들은 항상 수적 관계들의 바탕(깊이) 안에 있다. 관계들은 값을 지닌 양들 사이에 방정식들에 의해서 표현되거나, 또는 방정식의 각 단위들에게, 다시 말하면 수들에게 연관되어 있다.”다른 한편 “공간과 시간은 양의 법칙들에 주제들(sujets)인 한에서 모든 현상들의 일반 함수들이다. 어떤 다른 주제들은 어떤 관점 하에서 마치 수학적 함수들처럼 소개될 수 있는 것은 [일반] 함수들을 매개로해서 이다.” (349)
만일 이율배반(안티노미)이 해결되어야만 한다면, 나눠질 수 없는(indiscrète) 수적 순서의 양들과 연속적인 공간적 또는 시간적 순성의 양들은 진리의 동일한 평면 위에 속하지 않는다. 표상적인 것과 표상된 것 사이에 연결은 거기여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할을 경계삼은 것은 현실적 표상작용이다. 반면에 분할가능성은 단지 가능한 표상작용에만 응답한다.” (349)
§207. [르누비에서 산술학의 양의 두 종류 구별: 십진법의 나눗셈(la division)과 분수(la fraction)]
따라서 양의 과학은 이중성격을 지닌다. 이 과학은 수의 영역에서 유지되는 한에서, 이 과학은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이며, 과학은 항목의 충만한 수락(l’acception, 수용) 안에서 과학이다. 이를 넘어서 과학은 단지 주관적이다(또는 르누비에의 용어에 따르면 객관적이다). “우리는 양들에 대해 말하기를 원합니까? 만일양들이 분산될 수(discrète, 나눌 수 있는)있다면, 분할은 단위(l’unité)에서 멈춘다. 그 단위는 이 관점 하에서, 단위의 조성된 자연[본연]이 다른 시각에 있다고 할지라도, 수적으로 단순한 사물로 뛰어넘을 수 없는 경계를 제시한다. 만일양들이 연속적이라면, 조성작업은 무한정(l’indéfini)으로 가지만, 그러나 심지어 이로부터 우리는 양의 이런 형식은 순수하게 객관적이라는 결론을 끌어냈다.” (349)
따라서 양의 정수들의 계산의 바깥에서 산술학의 최소한 진행방식은, 예를 들어 완전수를 둘로 또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가짐[참여]은, 인간적 지식의 원리와 보증이었던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사라지게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실재성의 범위(la sphère)로부터 사람들은 상징들의 영역(la région)으로 떨어진다. “추상적 산술학에서 q + ρ(rho, 로)처럼혼합된 수들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명석한 용어들을 전복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q는 단위를 수단으로 형성된 것이다, ρ는 다른 단위를 수단으로 형성된 것이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람들이 행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분수의 수들(nombres fractionnaires)에 대해 말할 때, 그리고 사람들이 이것들을 수들의 분수들(les fractions des nombres)이라고 부를 때…” 그러나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나누어지는 단위의 문제는 몇몇 구체적 크기들에서 마음대로 해결된다. 그리고 … q + ρ그 위에 지수(le quotient)는 연속적인 양의 부분인 한에서 기호작용을 취급한다. 이때에 사람들은 ρ 대신에상징(le symbole) r/b를 채택하는 것이 편한데, [이는] 제기된 나뉨수[피제수]인 양(量) r을 평가[계산]하기에 이용하는 단위들보다 최소한의 여러 번으로 단위들 b를 r로 재현하기 위해서이다.” (350)
§208. [르누비에의 콴툼(quantum)이란 최소 단위는 플라톤의 크기와 달리 제기한 것이다. 아마도 르루니베의 양의 최소치에 분수를 넣었고, 플라톤은 분수가 아니라 나누기를 생각한 것 같다. 르누비에는 적분에서 무한소를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오류라고 보았다. ].
“분수들은 완전한 연속의 표현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과학 속에서 수학자가 실행한 첫발자국부터 통약불가능한 크기들의 현존은 수학자들에게 폭로된다.” 그러나 크기들의 정의 자체에 의하여, 크기들은 수들에 의한 또는 분수들에 의한, 달리 말하면 “콴툼(quantum, 양)의 엄격한 정의에 따라서 추상적 양들에 의한, 모든 재현작업을 배제한다. 르누비에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콴툼에 전념하지 않는 잘못을 종종 범한다고 한다.”따라서 이 문제는 분수와 관계있는 문제보다 더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해답은 동일한 자연으로 나올 것이고, 해답은 단지 보다 복잡한 상징주의[기호주의]를, 즉 이차원의 상징중의를 요청할 것이다. 왜냐하면 항목들이 통약가능할 수 있는 한에서 b/a라는 소수에서, b와 a 수들[자연수, 정수]이다. [그런데] 통약불가능성의 가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b와 a라는 양들 사이에 연관(rapport)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관은 항상 양들 중에서 a라는 하나의 양 그리고 변할 수 있는 b +- ε라는 다른 양 사이에 항상 현존한다. 사람들은 그 후자의 양(b +- ε)이 할당된 양보다 더 적은 양인 b와 차이 있다고, 이 후자가 약간 작다고 할지라도, 가정할 수 있다 … b/a라는 형식의 연관들은 b +- ε/a라는 가능한 연관들의 상징[기호]이다.”이런 대체작업은 “통약불가능한 것들 자체들의 계산”에 내속하는 모순을 회피한다. 이런 대체는 무한소 분석을 허용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분석에게 엄밀한 진리를 부여 한다. 왜냐하면 b +- ε를 b로 대체작업은 ε이 정해진 양이 될 경우에서만 오류로 이끌 뿐이라는 것을 잘 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설 자체는 ε가, 어떤 할당된 양보다 적을 지라도, 비결정적이고 임의적인 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류는 비할당적일 수 있고 “흩어질 수 있고[정해질 수 없고], 무한히 축소될 수 있고”,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류는 0(nulle)이다. (351)
사람들이 이런 개념작업의 정확성에 대해 반대하여 일으켰던 반대작업들은 소위 말하는 과학과 어떠한 연결도 갖지 않는다. 그 반대작업들은 단지 형이상학적 편견에서 온다. “보상받은 오류들의 이론”을 통속화했던 카르노는 그 자신조차도 이 편견에서 회피하지 못했다.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수학자들에게 익숙해진[습관화된] 실재론은 카르노가 도입된 오류가 이미 없는(nulle, 0인) 오류이라고, 그리고 이것은 미분소들(les différencielles, 도함수들)의 정의를 갈망할 것이라고 보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게다가] 계산의 결과 안에서 다소간에 계산되었던, 미분소들이 이 결과를 변모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352)
§209. [르누비에의 입장: 자연수(정수)가 아닌 수들을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으로 구별하고, 과학자(기술자)들은 가능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으로 구별한다.]
단지, 상대적 관념론[이상론]이 정의상으로 모호성들과 모순성들을, 18세기가 무한소 계산의 원리들로 둘러싸여 있었더 모호성들과 모순성들을, 흩어버렸다고 확신을 막 표현했던 찰나[즈음]에, 전통적 비판론을 다시 상기하고 다시 다룬다는 것이 르누비에게 일어났다. 독단론과 존재론[상층 형이상학들]으로부터 온 전통적 비판론은 무한소의 용어에 대립되어 있었다. “본질적으로 차이있는 다른 물음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다른 물음을 첫째 물음과 혼동하는 잘못이 있다. 그것은 이런 방법으로 행해지는 관념의 물음이며, 말하자면, 이 물음이 기하학에서 그리고 대수학에서 나의 견해로는 모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허락하는 한에서, 이 방법의 적용의 물음이다. 공약불가능성이 증명되는 양의 척도를 준다는 것을, 원주와 다각형 사이에 엄격한(rigoureuse) 동화를 허락하는 것을, 연속적인 무제한적 계산 작업에서 도달한 한계를 가정하는 것, 주어진 수 자체의 수(un nombre donnéen soi)와 수들의 무한정한 급수 – 이 급수의 수적인 합계가 실현 불가능한데 - 사이에 동화를 허가하는 것을, 결국에는 구체적 질서 속에서 물체를, 무한한 수로(en nombre infini)로서 실재적이고 주어진 요소들의 모음들로 형성된 것처럼 고려하는 것을, 허락하는 한에서 이다. 이런 연관 하에서, 나는 내가 절대적으로 엄격하게 주장하는 이 동일한 계산을 단지 근사치 계산처럼 그러나 무한정한 근사치 계산처럼 고려할 수 있는데, 이때는 사람들이 동일한 계산을 관념적[이상적]으로만, 그리고 어떤 실현화된 무한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협력들 속에서만 고려할 때이다.”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무한소 계산의 엄격한 이상성(관념성)은 그것[계산]을 마치 과학처럼 구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다른 의미에서, 이상성은 계산에게 진리의 충분한 가치를 수여하는데 충분하지 못하다. 그 계산에는 이상성에서 실재성이 부족하다. (352)
따라서 이상론자로서 르누비에가 소개했던 수학적 철학은 항목론의 명백한 동질성 하에서 아주 다른 두 개념작업들 함축하고 있다. 완전히 합리주의적인 첫째개념작업은 본질적인 역동주의[동력학]에서 지성으로 진행하면서 내적 연관인 한에서 관념을 구성한다. 또한 분수의 관념 또는 통약불가능한 크기의 관념은 상징주의가 분수로부터 토대를 마련한 근거들의 연쇄에 의해서 아주 엄격하게 정당화된다. 버클리(1685-1753)와 흄(1711-1776)의 경험주의에서 명백한 둘째개념작업에서, 관념의 구성적 관계는 외부적이지 내적이지 않다. 관념은 대상이 동반되는데, 그 대상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이며, 그러나 그 대상은 실재론적 직관이 관념에게 속성을 부여했던 본질적 성격을 이런 위치이동을 통하여 간직하며, 그 대상은 감각적 요소인 채로, 즉 구체적 개체성인 채로 남아 있다. 특권적이고 배타적인 역할은, 르누비에게가 완전수[정수]에게 보존하는 역할은, 관념론에 대한 순수하게 상상적인 해석으로부터 유래한다. (352)
관념론의 두 형식들이 양립할 수 있는가? 르누비에는 이 둘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잠재적인 것(un virtuel)과 현실적인 것(l’actuel)의 이런 구별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무한에 관한 제논의 파라독사들에 응답하기 위하여 상상했던 구별을, 불러오는 것으로 환원했다. 그리고 이런 구별이 그것[구별]을 태어나게 한 형이상학적 독단론을 함축하지 않는지를, 그리고 신-비판주의 속에 사실상 복귀하는 것이 아닌지를, 또 뒤링(Dühring, 1833-1921)과 에블랭(Evellin, 1835-1910)과 같은 사상가들이 더 잘 영감을 받지 않았는지, 적어도 수의 원리를 우주의 실재론적인 [솔직하게] 개념작업에 묶으면서 르누비에(1815-1903)보다 더 많은 귀결을 얻지 않았는지를, 안다는 것이 정확하게 의문이다. (353)
어째거나, 만일 우리가 르누비에주의로부터 과학과 연결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르누비에주의의 철학적 숙명을 옆으로 젖혀둔다면, 우리는 수학자들은 가능(le possible)과 실재(le réel) 사이에 사변적 구별들에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이해한다. 추상적 수학의 근본적 용어들이 가능한 즈음에, 이 용어들은 과학이 스스로를 구성하기 위하여 필요로 했던 실재성 전체를 갖는다. 이미 데자르그(1591-1661)가 썼다. “기하학에서, 사람들은, 양들이 효과적으로 현실태(en acte)로 또는 단지 잠재태(en puissance)로 현존한다는, 이런 구별을 양들과 더불어 추론하지 않는다.” 19세기의 과학자들에게서도 그것과 다를 수 없었다. 르누비에가 상징주의의 개념작업에 의해 참여했던 길을 따라갔던 과학자들 자체는, 그의 인식론이 그를 단죄했던 머뭇거림들과 제한들을 넘어섰다. 과학자들은 한계(la limite)[미분 극한]과 비합리(l’irrationnelle)[무리수]의 직접적인 정의를 부여했다. 르누비에는 이런 정의에 대한 내속적인 모순을 고발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들은 이것들을 분석학의 구성작업 속에 긍정적 자격으로 들어가게 했다. (353)
(12:21, 59QMG)
-*- 인명록
590경 에피메니데스(Epiménide, Ἐπιμενίδης, 556경활동), 고대 그리스 시인, 철학자. 샤만(iatromante (chamane)[ἰατρόμαντις, « médecin-devin »),
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490 제논(Zénon d'Élée, Ζήνων, 전490경-430경)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제자. 파라독사(paradoxes: παράδοξος, « contraire à l'opinion commune ») 또는 아포리아(aporie, ἀπορία, « absence de passage », « difficulté », « embarras »)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360? 에우클리데스(Euclide, Εὐκλείδης, 기원전 300년경 활동), 알렉산드리아 수학자. 원론(Éléments, Στοιχεία)(전300년경, 13권). - p.37 주1) Elém., IX, 36, éd. Heiberg, t. II, Leipzig, 1884, p. 408.
287 아르키메데스(Archimède de Syracuse, Ἀρχιμήδης, 전287경-212경), 고대 시실리에서 활동한 라틴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기술자.
O
1564 갈릴레이(Galilée, it. Galileo Galilei, 1564-1642) 피사(Pisa)에서 태어나, 피렌쩨의 아르세트리(Arcetri)동네에서 세상을 떴다. 이탈리아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1591 데자르크(Girard Desargues, 1591-1661), 프랑스 기하학자, 건축가.
1657 퐁뜨넬(Bernard Le Bouyer(Bovier) de Fontenelle, 1657-1757), 프랑스 작가, 극작가, 과학자. Éléments de la géométrie de l’infini, 1727.
1685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아일랜드의 철학자, 성공회 주교이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
1711 흄(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가.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89 꼬쉬(Augustin Louis, baron Cauchy, 1789-1857) 프랑스 수학자, 과학아카데미 회원,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
1794 뿌드라(Noël-Germinal Poudra, 1794–1901), 프랑스 기하학자, 기술자.
1798 꽁트(Auguste Comte, 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 1798-1857),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실증주의 창시자.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 (1830-1842)
1801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 프랑스 경제학자, 수학자, 철학자. Traité de l'enchaînement des idées fondamentales dans les sciences et dans l'histoire(1861)
1804 므와뇨(François Napoléon Marie Moigno, Abbé Moigno, 1804-1884), 프랑스 신부, 수학자. (혁명 때문에?) 화해주의 신봉자.
1815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의 작품이 있다. 칸트주의, 실증주의, 정신주의를 겸하려 하였다. Essais de critique générale, 4권)(1854, 1859, 3과4권 1864). [신칸트학파는 1870년에 독일 대학가에서 일어난다.]
1815 바이에르스트라스(Karl (Theodor Wilhelm) Weierstrass, Weierstraß, 1815-1897) 독일 수학자.
1833 뒤링(Eugen Dühring, 1833-1921), 독일 철학자, 경제학자.
1835 메레(Hugues Charles Robert Méray, 1835-1911), 프랑스 수학자. Sur les propriétés générales des racines d'équations synectiques (thèse de doctorat), Paris, Mallet-Bachelier, 9 juillet 1858, 31 p.
1835 에블랭(François Evellin, 1835-1910), 프랑스 철학자, 형이상학과 비판철학 전문가. 벩송은 EC에서 그의 무한과 양(Infini et Quantité, 1880)의 논증을 결정적(décisive)이라 한다. La raison pure et les antinomies : essai critique sur la philosophie kantienne, Paris, Alcan, 1907.
1846 미탁-레플레(Magnus Gustaf (Gösta) Mittag-Leffler, 1846-1927), 스웨덴 수학자.
1847 도리악(Lionel Dauriac, 1847-1923), 프랑스 철학자. 르누비에 제자. 미학 중에서 음악학 전문가.
1848 프레게(Gottlob Frege, 1848-1925) 독일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1852 세아이유(Gabriel Jean Raymond Séailles-Ransan, 1852-1922),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La Philosophie de Charles Renouvier, éd. Félix Alcan, Paris 1905.
1855 로뱅(Gustave Robin, 1855-1897), 프랑스 수학자, 소르본 응용수학 교수.
1857 몰크(Jules Molk, 1857-1914), 프랑스 수학자. 타원곡선 함수 전문, 1844년 베를린 대학에서 학위, 낭시대학 교수. 순수수학과학의 백과사전(22권)을 편집하였고, 독일에서 먼저 출판되고,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
1862 델보(Victor Delbos, 1862-1916), 프랑스 역사 철학자. 박사논문: Essai sur la formation de la philosophie pratique de Kant, 1903.
1862 브와(Charles) Henri (Édouard Émile) Bois, 1862-1924), 프랑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1872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영국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 [레오폴트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1823-1891) 독일 수학자. 정수론(nombres entiers). 그는 (Dieu a créé les entiers naturels, tout le reste est création de l'homme) 자연수는 신이 만들었고, 나머지 모든 것은 인간의 작품이다" - « Dieu a fait les nombres entiers, tout le reste est l'œuvre de l'Homme »
(14:23, 59QMG) (12:29, 59RK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