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9 서울둘레길 20코스
나라를 생각하며 걷는 길
화계사입구~북한산 우이역 7.1km 3시간 30분
어젯밤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상으로는 밤늦게 비오다 그친단다.
시기적으로 건기라 별 문제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망설이는 마음을 읽으셨는지 율리아님이 ‘우산 쓰고 걷는 것도 운치 있다.’라고 하신다. 힘이 된다.
출발하며 하늘을 보았다. 다행히도 파란 하늘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감사~
오늘은 둔촌동역-보문역-화계역 2번을 갈아타야 한다. 그래도 총 이동시간은 55분으로 아주 준수한편이다. 2칸 짜리 우이선 경전철로 갈아타니 웬지 도심에서 빠져나가는 듯하며 기분이 업되는 느낌이다.
화계역 2번 출구로 나와 북한산의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을 바라보며 대략 10분 정도 걸어 화계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시작점 표시하는 빨간우체통이 우리를 반긴다. 직진해 오르면 화계사가 나온다.
화계사는 조선왕가의 원찰(願刹)로 1522년(중종 17) 신월(信月)선사가 화계사라 이름 짓고 창건하였다. 이후 1618년(광해군 10)에 화재로 전소되기도 하였으나 중건되어 명부전에 있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地藏菩薩三尊像)및 시왕상 일괄'은 2014년 3월 보물 제1822호로 지정되었다. 명부전 현판의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 전해진다. 유래를 고려 광종(949~975)부허동에 창건부터라고 보면 1,000년이 넘는 셈이다.
서울둘레길 20코스는 일주문 지나 초입에서 오른쪽 경사로 계단을 오르게 되어 있다. 산능선을 향해 옆으로 치고 올라가는 코스로 시작부터 쉽지 않다.
보폭을 줄여 걷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 길을 뛰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그들은 뛴다.’ 그러고보니 가슴과 등에 번호를 달고 있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알아보니 서울시 주최 ‘서울 국제 울트라 트레일 러닝대회’ 10.19~20(2일간)다. 서울 주요명산, 둘레길, 한강 등 서울의 대표 자연,역사,문화 명소들로 100km, 50km, 10km 3종류로 나뉘며 각각 서울광장에서 시작해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대부분은 젊은 남녀들이지만 간혹 중년들,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과연 이 힘든 달리기를 등 떠밀려 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름 오늘을 즐기고 있는거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훗날 이 시간은 멋진 젊은 날의 추억으로 간직될거다. 모두 모두 힘내서 안전하게 완주했으면 좋겠다.
그들은 우리와 반대로 뛰고 있어 걸으며 계속 그들을 만나고 있다. 꽤나 가파른 능선이지만 다들 힘들다 말 한마디 없이 걷는다. 걷기 시작한지 3~40분 되었을까 산중마을에 이르렀다. 뭔가 떠들썩한게 마을 축제 느낌이다. 현수막을 보니 이곳은 인수봉 숲길마을이고 ‘온마을을 품다.’라는 마을 행사인데 6회째란다. 마침 ‘전’과 막걸리를 판다. 잠시 쉬어갈 겸 막걸리 한잔씩 하고 가자고 제안하니 이의가 없다. 우리가 자리를 만들어 앉자 기다렸다는듯이 ‘가을 음악회’가 시작된다. 해금 연주자이며 가수가 우릴보고 가만있지만 말고 추임새를 넣으란다. ‘좋다. 얼쑤~’ 역시 막걸리는 함께 해야 맛이 난다. 이 행사는 ‘마을주거환경 개선’이 주목적으로 보인다. 모두 머리를 맞대다보면 상생의 지혜가 나오리라.
막걸리도 한잔했고 밥을 먹자니 아직 11시라 다소 이른감이 있다. 좀 더 걷다가 먹기로 하고 걸었다. 길옆에 멧돼지 덫과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런데 안에 먹이가 없다? 무슨 뜻일까? 누군가가 보았지만 그리 심하게 출몰하지는 않는 걸로 보인다. 그러나, 만사불여튼튼이니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이제 ‘흰구름길 구간’이 시작된다. 하늘을 바라보니 파랗다. 흰구름이 지나간다. 나뭇잎사이로 햇살이 뿌옇게 비쳐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쑥물빛’ 그대로다. 경치보다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비온 뒤 먼지 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날 북한산길이다. 날을 제대로 잡았다. 지난달 ‘서울둘레길 19코스’도 좋다고 했는데 그보다 더 좋다. 피톤치드 흠뻑이다.
어느덧 ‘아카데미하우스 국립통일교육원’앞이다. 마을버스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종점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수유역까지 운행한다. 우이역까지 남은 거리가 5.2km, 아치모양의 ‘순례길 구간’문을 지난다.
이준열사묘역 입구에 위훈비가 세워져 있다. ‘애국지사 묘역 상세 위치도’에 따르면 이곳 일대에는 애국지사 15위의 묘역, 무후(無後) 광복군 17위의 합동묘소가 조성되어 있으며 국립 4.19민주묘지가 있다.
이곳 주변에 이준, 손병희, 이시영, 신익희, 김창숙, 이명룡, 여운형, 조병옥, 유림, 신숙, 김도연, 신하균, 서상일, 양일동 선생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역사책에서 배웠던 쟁쟁한 호국영령들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풀들이 아무렇게나 자라나고 곳곳이 관리가 잘 안되고 있는 느낌이다. 뉴스마다 대한민국이 부자나라가 되었다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 뭔가 공허해진다. 나만 그런 걸까?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전쟁에 목숨 바친 전범자들을 신사에 모시고 신격화한다. 사뭇 대조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묘소들 사이로 난 길 끝무렵에 데크 길이 놓여 있다. 김창숙, 유림, 이시영선생 묘역 이정표가 있다. ‘트레일 러닝코스’와 ‘둘레길’이 계속 겹치다 말굽자석처럼 생긴 코스를 만난다. 질러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침 트레일 러닝선수가 지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지름길을 알려주었더니 알았다면서도 가던 방향으로 계속 뛰어간다. 타협하지 않는 멋진 젊음이다.
걷다가 주말농장을 만난다. 시중에는 배추 한포기에 만원?이라는데.. 텃밭에 배추가 수확해도 될만큼 풍성하게 자랐다. 김장철이 다가오면 가격이 떨어지려나..걱정이다.
둘레길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부지에 보기에도 시원스럽게 큰 보광사가 보인다.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의 사찰로, 1788년 원담스님이 신원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으며, 1980년 정일스님이 보광사로 개명하였다.
국립 4.19민주묘지 전망대에 이르렀다. 잘 단장되어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양지바른 곳에 묘지가 아늑해 보인다. 뒤편으로 아파트로 빼곡한 서울시내가 보인다. 이승만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숨진 4.19 학생 및 민주열사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12시가 훨씬 지났으니 평소보다 늦은 점심이다. 식탁보가 없어 앉을만한 곳을 물색하다보니 그리 되었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 많이 아쉽다. 오늘 당장 산에서 내려가면 구입해야겠다. 아쉬운데로 산중마을 축제에서 선물받은 수건위에 투명비닐을 깔고 먹을 것들을 내놓았다. 나름 진수성찬이다. 사실 산에서는 무얼 먹어도 맛있다.
여기에 막걸리 한잔까지 더하면 금상첨화다. 과일에 건강차로 깔끔하게 입가심하고 일어섰다.
길은 내리막 길로 적송이 많은 솔밭근린공원으로 이어지는 듯 다시 산으로 오르고 있다.
오르막길 주변으로 대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조금 오르다보니 ’자수인생 100년 비단위에 아로새긴 오색의 아름다움’‘박을복 자수박물관’이 있다. 문이 열렸으면 들어가보았을텐데 아쉽다.
’소나무 숲길구간‘아치를 지난다. 여기서부터 소나무숲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솔향기는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좋아하는 나무중의 하나다. 곧이어 ’여운형선생‘ 묘지표시를 지난다. 지나다보니 ’근현대사 추리여행‘-사라진 열쇠를 찾아라-라는 표시가 자주 보인다. 스마트폰 검색결과 강북구청 주최로 2022.4.23.~2024.12.31. 북한산 둘레길 1, 2구간을 따라 떠나는 비대면 추리여행이다. 솔밭근린공원에서 미션지를 받아 미션수행을 하는 내용이다. 이 근처에 사는 분들이라면 더욱 좋겠다. 건강도 챙기면서 역사를 배우는 재미가 쏠쏠할거 같다.
’손병희선생묘‘ 1.0km, 서울둘레길(우이역) 1.8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이내 ’소나무 숲길구간‘ 끝을 통과한다.
조금 걸어나오니 ‘서울 국제 울트라 트레일 러닝대회’ 물, 음료공급 중간 경유지 29.5km가 나온다. 아직 운영되는 걸 보면 선수들사이에 기량차이가 꽤나 커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화계사 초입에서 선수들을 만났으니 3~4시간이 지났다. 진행요원에게 아직도 선수들이 남아있냐고 물어보니 10km, 50km, 100km가 있어 오늘과 내일 양일간동안 진행된단다.
사람들은 묘하다. 게으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뭔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본인의 선택이리라.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내려오니 우이동역과 연결된다. 모처럼 나라를 생각하며 걷는 시간 이었다. 오늘 산행으로 가을속으로 성큼 한걸음 다가선 느낌이다.
둘토산을 사랑하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 영육간 건강한 날들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