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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성 무에타이 원문보기 글쓴이: HANUMAN
[격투기] 나는 왜 무에타이가 좋을까 2003.3.16
일요일 세계에는 수많은 무술들이 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거의 모든 민족들이 각 민족들만의 독특한 호신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 무술로 발전한 것도 있고, 아직까지 체계화되지 않는 채 조상에서 후손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도 있다. 태권도나 유도, 카라테와 같이 세계적인 규모를 가진 무술이 있는가 하면 아마존 촌구석의 원시민족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자신들만의 호신체계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무술들 가운데 수많은 코믹스의 소재로 이용되며 사람들 사이에서 최강의 입식격투기라 불리기도 하는-물론 무술간의 우열은 결정할 수 없지만- 것이 바로 태국의 국기 무에타이이다. 무예타이라고 발음하지 마라. 칼맞는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무에타이와 킥복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두 무술간의 기술체계가 유사한 탓도 있겠으나 국내 무에타이계와 킥복싱계의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한 만큼 독립적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양자간의 구분을 헷갈리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즉 무에타이 선수들과 킥복싱 선수들이 같은 링에 올라 조율된 룰에 의해 경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무에타이를 그저 난폭한 무술, 팔꿈치와 무릎을 사용하는 강력한 무술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만이 무에타이의 전부는 아니다. 필자는 K-1도 좋아하고 Pride도 좋아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들보다 무에타이 경기를 더 좋아한다. 그만큼 무에타이 경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맛이 있다.
지난번 앤디 훅에 관련된 기사에서 필자는 제롬 레 배너와 녹비드 데비의 경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당 경기는 95년 K-1 월드그랑프리 개막전으로 열렸던 것이다(참고로 한국의 유일한 K-1 출전선수인 김옥종 선수의 경기도 95년 K-1 개막전에서 이루어졌다. 얼마전 출전했던 김진우 선수의 경우에는 K-1 Max에 출전하였고 Max는 K-1 그랑프리와 체급차가 있는 관계로 엄밀히 말해 K-1 그랑프리와는 구분된다 하겠다). 현재 K-1 공식홈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는 제롬 선수의 체중은 122킬로다. 당시에는 지금보다는 체중에 좀 적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100킬로는 나갔을 것이다. 반면 상대였던 낙무아이 녹비드 데비는 당시의 체중이 70킬로 정도-원래는 라이트급 선수라고 한다-였던 걸로 기억한다. 줄잡아 30킬로 정도의 체중차가 나는 핸디캡매치였다. 본 필자의 기억으로는 33킬로였던 것 같다. 경기는 제롬 레 배너의 3-0 판정승이었다. 30킬로의 체중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판정승이란 것은 이겨도 부끄러울 만한 경기이다. 더군다나 경기가 끝난 후 제롬은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절룩거리는 듯이 퇴장하였고 패자였던 녹비드 데비는 여유로운 웃음과 관중들의 환호를 뒤로한 채 유유히 퇴장했다. 30킬로 정도의 체중차라면 커버 위를 타격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충분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도 녹비드 데비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체력과 30킬로의 체중차를 무색케 만드는 절정의 내구력으로 제롬 레 배너를 몰아붙였다. 제롬 레 배너와 녹비드 데비의 경기는 복싱으로 치면 오스카 델라 호야와 마이크 타이슨 간의 경기다. 뻔한 결과였고 실제 결과 역시 제롬의 승리였지만 본 필자 단언하건대 당시의 경기는 녹비드 데비의 우세였다. 커버 위를 수없이 강타한 제롬의 공격에 가산점이 주어졌는지 아니면 간간이 녹비드 데비의 가슴과 복부에 처넣은 킥이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묘하게도 판정결과 제롬 레 배너의 승리였다. 아마도 적극도 즉 공격을 많이 시도한 쪽에 유리한 점수를 주는 판정기준이 크게 작용한 듯 싶다. 솔직히 말해 제롬의 공격빈도는 높았으나 유효타는 별로 없었다. 만약 당시의 룰이 팔꿈치공격을 허용하고 있었다면 녹비드 데비의 압도적인 승리가 됐을지도 모를만한 경기였던 것이다. 제롬 레 배너는 그렇게 수준 낮은 선수가 아니다. 더군다나 95년은 제롬 레 배너가 K-1에서 준우승을 한 해였다. 그런 선수가 자신보다 30킬로나 가벼운 선수에게 밀려 코너에 몰렸던 것이다.
참고로 필자가 본 경기 중에서 가장 체중차가 큰 핸디캡(?) 경기는 스모였다. 무사시마루가 출전할 경우 약 100킬로 정도의 체중차가 날 때도 있다. 일본스모협회 공식홈페이지에 개재된 무사시마루의 체중은 빅쇼보다도 무거운 237킬로이다. 물론 WWE의 빅쇼가 출전하는 경기의 경우 그보다 더한 핸디캡 매치도 가능하지만 일단 엔터테인먼트적인 성격이 강하니까 말이다. 지금까지의 글은 제롬 레 배너와 녹비드 데비의 경기에 국한된 것이다. 태권도 선수들 가운데도 맷집 좋은 사람이 있고 무에타이 선수들 가운데도 맷집 졸라 약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무술에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은 그 무술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보다는 한두 가지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힉슨을 좋아해서 그레이시 유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최배달이 좋아서 극진카라테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으며 코믹스 권아를 보고 팔극권 좋아하게 된 사람도 많다. 이 글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쓰여진 것임을 잊지 마시라. 참고로 내구력에 대한 말이 나와서 말인데 각종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강이단련에 관한 질문들이 참 많다. 일본 코믹스에 주로 등장하는 "맥주병으로 정강이 단련하기"등에 대한 질문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필자가 알고 있는 무에타이인들로부터는 결코 그러한 단련법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뼈를 상하게 한다면서 나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아항∼ 하는 사람도 있고 엥?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이 무엇인 고하니 무에타이 경기 후 세컨드를 보던 코치진이 자신들의 선수를 돌보기 이전에 상대선수를 불러 물을 먹여주는 장면을 가리키는 것이다. 무에타이인들은 이러한 장면을 가리켜 "상대선수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열심히 싸웠으니 물 한 잔 먹고 힘내라는 의미 정도일까? 대부분의 무술경기에서 경기가 끝나고 나면 선수들간에 악수도 이뤄지고 코치진도 상대선수의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하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긴 하다만 자신의 선수보다 상대선수를 먼저 챙겨주는 장면은 실제로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물론 무에타이 경기라고 해서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무에타이 경기는 격렬하다. 때문에 그 겉모습이 낙무아이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이용될 때가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무에타이는 무에타이만의 철학체계가 있고 정신세계가 있다. 태권도나 유도, 카라테에는 무도정신이 있고 무에타이에는 없다고 말한다면 큰 착각이다.
강력한 팔꿈치와 무릎도 무에타이 경기의 묘미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강력한 무릎차기에 재수 없는 곳을 당하면 별로 그렇게 생각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팔꿈치와 무릎의 파괴력은 펀치와 킥의 파괴력을 훨씬 상회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말해 펀치가 닿을 거리에서 반발 짝만 내딛어도 팔꿈치공격이 가능하고 킥이 닿을 거리에서 반발 짝만 내딛어도 무릎공격이 가능하다. 실력 있는 선수는 펀치나 킥의 사정거리에서 팔꿈치나 무릎공격을 명중시키기도 한다. 대부분의 무술경기를 보면 반드시 서로의 몸에 가깝게 접근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한 경우 룰에 따라 심판이 두 선수를 갈라놓을 때도 있고 조금 지켜보다 영 아니면 갈라놓기도 하고 웬만하면 안 갈라놓기도 하는데 무에타이가 바로 웬만하면 안 갈라놓는 스타일의 경기다. 무에타이 특유의 잡기싸움 때문이다. 처음 무에타이 경기를 접하는 사람들은 잡기싸움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마치 그레플링 경기를 처음 보면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양손으로 상대방을 목을 잡는가 하면 상대방의 양 겨드랑이 사이에 자신의 팔을 밀어 넣기도 한다. 상대방의 양팔 사이로 자신의 팔을 밀어 넣고는 상대방의 턱에 팔꿈치공격을 가하기도 하며 상대방의 무릎공격이 시도될 때 상대방의 몸을 획 돌려 공격을 무산시키기도 하고 스스로 몸을 돌려 피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동안 잡기기술-무에타이 용어로는 "빰"이라고 부른다더라-을 수련한 선수들은 중심 무너뜨리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서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공구어야 하는데 솔직히 정신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을 힘으로 공군다고 해서 그게 잘 되냐 이 말이다. 때문에 상대방의 가드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중심 무너뜨리기가 잡기기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효과적인 중심 무너뜨리기는 호쾌한 공격을 동반한다.
하지만 계속 듣다보면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특유의 리듬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무에타이 경기를 관람하다보면 마치 링 위의 선수들이 음악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듯 보이기도 한다. 무에타이 경기는 흥겹다. 약간 촌스럽다고도 느껴질 수 있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선수들이 공격을 시도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오레이∼" 비스무리한 발음으로 흥을 돋군다. 마치 투우경기에서 관중들이 투우사의 움직임에 맞춰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직까지 일반관중들은 무에타이 경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외침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시끄러운 음악이 깔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외침 속에 한 번 어울리기 시작하면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다. 활발한 무에타이 경기와 경쾌한 사라마 음악의 리듬감 그리고 거기에 어우러진 주변 사람들의 외침은 다른 무술경기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것이다.
무에타이나 킥복싱은 그 겉모습 때문에 많은 편견에 시달린다. 앞서 말했듯이 경기에서 보여지는 격렬함 때문에 난폭한 사람들로 여겨질 수도 있고 왠지 모르게 양반들은 무에타이를 수련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생각해봐라. 니가 판검사쯤 되면 무에타이 배울래 아니면 검도 배울래? 무에타이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정신 그리고 무술자체의 훌륭함은 여타 무술에 뒤질 것이 전혀 없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다른 무술도 마찬가지다. 거의 대부분의 무술들이 겉모습이나 주변의 상황들에 의해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인기도 별로 없다. 웬만하면 주변에서 열리는 무술경기 눈 딱감고 한번 구경해 보시라. 참고로 주변에 붙어 있는 킥복싱이나 무에타이 대회포스터를 보고 "아 씨바. 입장료가 10000원이네"라고 말하는 넘들. 무턱대고 함 찾아가 보시라. 대부분 기냥 꽁짜로 들여보내 준다. 꽁짜로 들여보내서라도 관중석을 채워야 할 만큼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공짜가 아니었다고 불평하지 말고 "아. 관중이 좀 많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음 기회를 노려라). Dynamite에 9만 명이 모였다는 것과 비교되지 않냐? K-1이나 Pride에 열광하고 있다면 주변을 함 돌아보고 무술경기 구경 좀 가라. 녹비드 데비가 제롬 레 배너를 몰아붙였던 것처럼 K-1과 같은 규모 큰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만이 최고는 아니다(물론 그 넘들이 졸라 잘하는 파이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한발만 더 다가서면 편견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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