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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 좌담
세월호 침몰 참사가 주는 근본적 물음
일시; 2014년 6월 5일 오후 2시부터
장소; 옹달샘터(대전 은행동)
참석자;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이남곡(연찬문화연구소장)
김조년(씨알의 소리 주간)
정리; 이선하
김조년 : 오늘 두 분 선생님 멀리서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난 봄 부터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일어나면서 국민들 사이에 또는 씨알들 사이에 정부와 국가가 과연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많이 있었고 특히 작년 겨울에 고대생이 시작해 많은 논의가 되었던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질문이 그렇습니다. 또 4월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전혀 안녕하지 않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서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사회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시면서 특히 최근에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과 어제 있었던 6•4지방선거와 결부해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탄탄하고 아름답게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협동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자유롭게 두 시간 남짓 이야기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무슨 주제를 정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 저녁 개표 결과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다’고 그랬는데 도대체 민심이란 또 천심이란 것이 무엇인지 우리 고전에도 많이 나와 있듯이 그런 얘기를 풀다 보면 얘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남곡 : 사실은 전에 우리 사회나 나라의 장래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입장을 많이 얘기할 때도 저는 낙관적인 견해를 많이 피력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해방이후에 달성한 성과에 여러 가지 모순이나 문제가 많이 내포되어 있지만 성과들을 봤을 때 신생 독립국가들 중에서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모순을 안은 채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까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총량면에서 물질적인 토대가 상당히 갖춰졌다고 봅니다. 예컨대 외형적이긴 합니다만 제가 대학 다닐 때 GNP가 80달러였는데 지금은 3백배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수준도 제도적인 절차이지만 신생독립한 나라들 가운데서는 이만큼 제도가 갖춰진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외형적인 발전이 안고 있는 내부의 모순과 문제로 눈을 돌리면 매우 비관적으로 보게 되지만 저는 그것 보다는 이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보면서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업그레이드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질적으로 업그레이드 될 때가 왔는데 그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 사회적 바탕이 갖춰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총체적인 변혁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최근 세월호 참극을 보면서 이 시기에 결국은 달성했던 기초적인 조건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안에 갖고 있는 문제점들이 곪아 터져서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조건들 자체는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기초로 봐야 합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저는 인문운동가의 입장에서 오늘은 역순으로 거꾸로 얘기하고 싶어요. 마침 여러 가지 현상들이 반영된 선거도 있었습니다만 이것은 사회의 업그레이드 측면으로 볼 때 결국은 싫든 좋든 정치를 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저는 정치에 대해서 언급을 많이 안하는 편이었습니다. 희망도 보이지 않고 좀 우회적이지만 인문운동을 통해서 정치가 변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에만 치중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면 지금은 큰 정치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봅니다. 크다고 하는 이유는 이제는 정치 공학적으로 풀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낡은 진영논리, 낡았다고 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관념화 돼버린 진영논리, 딱딱하게 현실과 괴리된 그런 논리와 정서가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한 큰 정치는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실제로 여야가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잡는 형태로 해서 보다 진보할 수 있다고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 볼 때는 그것이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요즘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이 있습니다. 한국형 연립정권입니다. 여러 가지로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해방 이후 우리 정치를 보면 실제로 그런 진영논리와 당파이익이라든지 권력에 대한 문제를 떠나서 보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국형 연립정권을 향해서 수렴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한국형 연립정권을 막고 있는 장애가 무엇인가 찾다 보니까 여러 가지 사회적 토대라든지 깊게는 인문적 토대가 대단히 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무현정부 당시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이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비아냥의 대상이 됐습니다만, 또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 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 당시에 실제로 정권은 잡은 현실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그것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장난하느냐는 비아냥을 받으면서도 사실 노무현 정부로서는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론의 준비도 없었고 전반적인 정세가 부족해지만 그것을 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우리 정치가 그 방향으로 수렴돼야 한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김경재 :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순 비리 혼돈 혼란은 사실이지만 너무나 비관적으로 절망적으로만 보지 않고 질적 도약 내지 성장과 변혁을 위한 토대로 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미래를 내다보자는 말씀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그 말은 현실에 그런 가능성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신학자 입장으로 봤을 때 데아루 샤르땡이라는 고 생물학자가 있었죠.
그 분의 진화론적이고 고생물학적 세계관과 그리스도교의 역사이해에 대해서 결국 인류의 문명은 질적 도약을 거치면서 전진한 것이고 생명체 꽃을 필거라는 낙관적 얘기를 했을 때 그것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친 낙관주의라고 비판했을 때 떼아루 샤르땡이 ‘비관 아니면 낙관 중 하나인데 그렇다면 비관하자는 말이냐? 비관한다는 것은 다 죽는다는 것인데 얄팍한 낙관주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희망을 가지고 보자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라고 했는데 지금 선생님의 말씀이 그런 취지로 들려서 동의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우리사회에서 큰 틀을 먼저 말씀하셨지만 이야기의 순서를 하나 하나 풀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건이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현대사회의 대중교통의 재난사건으로 치부해 버리면 그렇게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국사회에서 그렇게 누가 주장한 것도 아니고 정치사회 학술회를 통해서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만 한국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침몰 사건 이전과 이후로 갈라졌다고 봅니다. 그건 정치도 그렇고 모든 종교, 학문의 이론, 심지어 제가 종사하는 신학계에서도 그런 말을 합니다. 유럽사회에서는 독일의 아우슈비츠 600만 홀로코스트 이전과 이후 시대는 확연히 다른 의식을 가지고 신학을 하고 신의 문제를 논하듯이 한국 사회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서 저도 옳다는 동의를 합니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하는 것이 뭐냐?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깊이 본질을 분명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도덕적으로 부패 고리를 끊고 관피아를 없애자 등등 그건 어떠한 도덕적 정치적 개혁과 각계 기관의 정리와 더불어 종교계마저도 각자 각자의 잘못이라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가 죄인입니다’ ‘제 탓이로소이다’ 이런 개개인의 도덕적인 성찰과 반성이 기본입니다만 그런 정도로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사건의 본질이 하나의 거대한 상징적인 사건으로서 크게 보면 문명사회와 한국사 발전에 있어서야 60년부터 지금까지 소위 말하는 산업화와 근대화란 말로 압축적으로 단시기안에 초과 달성하기 위해서 달려온 단순한 시간적인 무리한 수행 때문에 생긴 결과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속도를 늦추면 문제가 없단 소리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쉽게 고쳐지거나 바꿔질 수 없는 문제지만 문명사와 연관되어서 우리 삶의 철학 혹은 국가의 국정지표의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볼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저는 목사이기도 한데요. 목사로서 성서에서 혹은 기독교에서 가르친 삶은 인간은 물질적인 욕구나 소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경전에 씌어져 있으니까 근검절약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교를 해야 하는데 못한단 말입니다. 근검절약 하라고 설교를 하면 그것은 곧바로 지구촌의 발전은 물론이고 당장에 박대통령은 세월호 사건 이후에 소비가 감소되어 중소기업인과 농민들이 직격탄을 맞으니 지갑을 열어서 많이 쓰십시오 한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교인들은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데 목사 말과 현실의 삶 사의 갭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딜레마에 쉽게 말해서 여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절대평화, 반전, 비폭력, 원수를 사랑하라는 관점에서 남북한 지도자들이 대치국면에서 서로 무기를 사들이고 동맹을 맺고 하는 것은 안 된다. 극단으로 말하면 동포들 사이에 총질하는 이 미친 짓거리는 당장 중지해야 한다는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이 목사의 길이지만 그 소리를 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위험한 발언이 되고 이해를 하는 사람마저도 현실을 너무 무시한 이상향이 아니냐고 합니다. 제가 기독교 목사로서 설교를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내가 바라본 기독교의 본질의 소리를 포기하든지 그것이 공명 노자 예수 붓다라는 인류의 성인들의 진리의 소리라고 한다면 세상이 바뀌어 지든지 해야 합니다.
지금 세월호사건 이후에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크게 말하면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소위 신자유주의, 세계 문명과 그 뒤를 좇아가는 한국 정부의 국정지표의 철학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극대화 되면서 벌어진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압축하고 단축해서 시행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관과 철학 자체 속에 내재된 모순으로 인해 드러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개개인의 시민이나 개인으로서는 넋두리는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변혁할 힘도 없고 그 소리 자체가 공중에 들 뜬 소리같이 들리는 이 세태 속에서 제 자신도 지금 좌초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생마감을 해야 하는 노년의 눈으로 볼 때는 세상이 변해야지 예수나 공자 노자 붓다의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안 되거든요. 세월호가 그 이전과 이후로 바꿔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삶의 철학과 가치 지향성에 대해서 깊이 논의를 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김조년 : 그 부분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근본적으로 다 긍정이긴 한데 긍정의 세계로 가려면 지금 넘어야 할 이 부분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세월호사건을 보면서 저도 이 사건을 사고라기 보다는 사건으로 보고 있는데 이 사건 전 후가 달라져야 할 텐데 그것이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뭘까? 한 달 반 정도를 모든 국민이 무기력증에 빠지고 힘들어 했던 것은 스스로 어떻게 처방해야 할지 몰라서 라고 생각되는데 저는 우리 사회가 예수의 구원의 죽음과 같은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가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이나 후나 시간이 가면 그냥 사라져 버리는 다른 사건과 다름없이 처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전의 어떤 사건보다도 이 세월호사건을 훨씬 가슴 아파 하는 것들은 고뇌의 몸부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는지에 대한 아주 무서운 교훈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사고를 당해서 돌아가신 분들이야 말로 우리의 정치사회와도 무관하고 또 이제 배워가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도 상대적으로 적은 것인데도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말없는 그분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누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잘못하니까 하나님의 징계라고 하는 간단한 생각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남곡 : 두 분 말씀에 동감합니다. 사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과연 전후로 나누어질 만큼 분수령이 될 만큼 그런 준비와 주체가 형성이 될 수 있는가를 봤을 때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고 지금 잊지 말자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잊지 말자는 것이냐 했을 때 지금 목사님 말씀 하신 것처럼 분수령이 돼야 하지만 무엇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현상적인 슬픔과 분노와 미움 또는 자기성찰에만 그친다면 단편적이고 길게 가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저는 평소 생각하던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번 문제의 본질은 총체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곪아터진 사건이라서 본질을 정확하게 보면 잘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결국은 물신이 지배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낳고 있는 요즘 신자유주의로 표현되지만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고 봅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분수령을 할 만 하다고 하면 모든 정치든 사회든 사고방식이든 문명전환적인 것이 배경이 돼야 합니다. 성급한 사람들은 지금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한두 가지를 고쳐서 될 문제가 아니고 근본이 바뀌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지금은 혁명의 계절은 아닙니다. 혁명을 통해서 변혁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은 정확히 문제를 보고 해결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다시 말해 혁명이 요구되는 문제인데 혁명의 계절은 아니라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한다든지 붕괴시킨다고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습니다. 지금 현재 자본주의가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현재 인류 의식이 거기에 조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류의 의식 수준을 놔두고 무엇인가를 혁명한다는 것은 마치 사회주의 실패한 것과 같은 현상을 낳기 때문에 그렇다면 지금 자본주의 4.0이야기도 나오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제도 시스템 이와 같은 것을 돈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가개조라는 말을 하는데 저는 국가개조라는 표현보다는 총체적인 변혁이 필요한데 이러한 시스템들이 바뀌어서 성공적으로 정착을 하려면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양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도 옛날에 사회 변혁운동을 한 사람으로 실제로 사회변혁 이론이라는 것이 토대가 물질적 생산력입니다. 과거에 물질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가 발전하는 토대위에서 여러 가지 제도 의식 문화 종교가 서 있기 때문에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토대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도 사회과학 이론에서 전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뀌어야 할 시대라고 봅니다. 한 세기의 실험을 통해서 과거의 이론들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제는 어떤 제도나 시스템이 크게 변화해서 자리를 잡기위해서는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의식과 문화 생활양식이 바뀌는 것이 토대가 됐을 때 돈이 지배하지 않고 좀 더 인간적인 제도와 시스템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기둥, 즉 현상적인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과 의식을 변혁하려는 노력이 서로 삼투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단적으로 한국정치가 지향해야 할 부분이 한국형 연립정권이라고 할 때 이야기 할 게 많습니다. 그 배를 띄우기 위해서는 그 배가 뜨지 못하는 광범위한 원인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허약한 면도 있지만, 낡은 진영논리에 지배되고 있는 그런 사고방식들이 큰 원인으로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인문운동이라고 합니다만, 인문적 토대가 사회적 토대와 함께 변할 때 결국은 정치를 통해서 현실문제가 해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창조적인 연립정권이 뜰 수 있는 물이 형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이것을 형성할 수 있는 주체의 형성과 그것에 대한 총체적인 비전이라고 봅니다. 지금 이런 시도들이 도처에서 보입니다. 작은 시냇물 수준에서 강을 이루면서 흘러갈 수 있는 기회로 살려 마침내 과거의 낡은 것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김경재 : 선생님이 큰 그림을 잘 그려주셨다고 보고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까 저의 문제로 풀어보면 지난 세월호사건 이후에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고 역사 속에 일어난 아주 작은 사건이 갖고 있는 의미를 삶을 통해서 재해석을 할 때 그것은 최소한 객관적인 역사적 사건으로서 한 시대를 가르는 전환점이 되듯이 이번 세월호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젊은 학생들이 Ep죽음을 당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것으로 보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리라고 봅니다. 그것이 단순히 모든 인류사 속에 일어난 큰일들은 작은 사건에서 나비효과 같은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세월호사건은 그 자체가 시대를 양분하는 의미를 갖고 있기보다도 그 속에서 이 시대를 사는 한국 사람이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담론을 형성해 가야 합니다. 그 사건을 겪고 나서 책임자들의 도덕적 정치적 비판이 일어나기 이전에 초기 열흘 만에 안산 올림픽공원에 추모관에 가서 느끼는 것은 거기에 모여든 사람들은 여야가 따로 없었습니다. 추모객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져 100만 인파가 모여든 것은 옛날 김수환 추기경 돌아가셨을 때 카톨릭이고 비카톨릭을 막론하고 그 겨울인데 명동성당에서 종로를 거쳐서 서울역 앞에까지 추모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말없는 수많은 시민들의 공통된 마음속의 울림이 무엇인가 했을 때 그것이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핵심이었습니다. 누가 왜 누구를 향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인가. 일차적으로는 살아남은 사람들인 어른들이 태평양 한 가운데도 아니고 눈앞에서 살리지 못한 죽은 애들에게 도덕적으로 미안하다는 마음이 발동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겉은 그렇지만 왜 아무것도 못했느냐를 더 깊이 보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죽은 희생자들만을 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물론 그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자기의 본래적인 자신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날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데서 인간의 본래적인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현실적 실존적 자아의 무의식적 차원에서 미안하다고 한 것으로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건도 너무나 쉽게 잊혀 질 것으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은 이 선생님 말씀대로 군사적 경제적 시민적 무력혁명을 통해서 사회가 급격하게 변혁하는 그런 혁명은 쉽게 일어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실은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런 단계는 넘었다고 봅니다. 그럼 혁명을 안 하자는 것이냐. 함 선생님 말씀대로 혁명이란 것이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강제적인 힘을 합해서 사회의 구조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이 혁명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글자의 뜻대로 보면 본래성의 회복이라고 하면 인간의 삶의 본래성의 회복 진면목의 회복도 혁명이고 그 혁명이 사회 전체의 혁명보다 즉 볼세비키 혁명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볼진대 우리사회가 근원적인 본래성의 회복으로 익어가고 있다 카이로스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그런 느낌을 점점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연립정권이 결국 이것과 통한다고 봅니다. 자본주의가 여러 자본주의가 있잖아요. 유럽 코뮤니티도 있고 미국식이나 일본식 자본주의도 있지만 한국에서 실행되고 있는 경제사회 질서는 신자유주의든 자본주의 시장경제든 가장 덜 성숙한 글자 그대로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양극화가 극대화되면서 정치도 똑같이 지난 대선 때도 52대 48일때도 48의 몫은 없이 완전 승자독식의 형태이니까 사회가 갈등구조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연립정권과 같은 조짐을 저는 선거와 관련시켜 얘기해 보면 안대희 국무총리 지명자의 낙마사건과 정몽준 7선 여당의 서울시장 낙선에서 우리 시대의 조짐을 봐요. 그것은 안대희씨가 총리지명자가 됐을 때 처음 일반 시민들이 그만하면 괜찮다고 한 것은 판검사 시절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잡아넣을 사람 다 잡아넣는 지조 있는 사람이라고 주목을 하다가 갑자기 6개월만의 16억 변호사 수임 사실이 밝혀지자 국민이 이것은 안 된다고 하는 의미는 가난한 국민이 잘사는 사람을 시샘하는 것이냐. 이건 미국사회에서는 통할 수 있는 소리지만 한국사회는 다릅니다. 안대희씨의 16억 수임료는 불법으로 강탈을 한 것이 아니지요. 그 수임료는 법적 규정에 맞게 정정당당한 수입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국민의 눈으로 볼 때는 용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대희씨도 국민의 이러한 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억울했을 거예요. 자신은 관피아는 아니라며 그러나 국민들의 맘을 상하게 했으니 물러난다는 입장이고 청와대에서도 조사를 했을 것 아닙니까. 정정당당한 변호사 수임료인데 무엇이 문제냐 하면 시끄럽긴 하지만 될 텐데 이것에 소위 한국사회의 상류계층의 의식구조하고 한 사회의 실질적인 나라의 주인인 민초들의 의식구조 사이에 굉장한 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몽준씨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막판에는 초조한 위기감이 있었는지 도덕적으로 졌다고 봅니다. 유치하게 색깔론을 내놓고 급하니까 박원순시장 부인을 통해서 네거티브를 해서 도리어 좌충수를 두어 버렸습니다. 그것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서울시민들이 정몽준씨가 시장이 되면 가난한 사람들을 잘살게 해준다는 측면만 봤으면 됐을 거예요. 그러나 표가 더 안 나온 쪽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국민 속에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자본의 논리로 획득한 돈은 재벌의 돈이든 개인의 돈이든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번 돈이기 때문에 이건 내 것이고 누가 손을 대서는 안 되고 나의 처분과 처리의 권리가 있다는 이런 철학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재벌의 돈이든 개인의 돈이든 이런 철학에 대해서 돈의 공공성을 묻는 것이예요. 절대 가난하다고 해서 약이 올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그 돈속에 계산되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의 50년 100년의 땀이 있다는 것입니다. 함 선생님 말씀대로 계곡의 난초가 꽃이 필 때 계곡의 썩어진 흙을 먹고 자라고 그 흙에 뿌리를 박고 핀 꽃인데 왜 그것이 너 혼자 핀 꽃이라고 자신만만 하느냐는 물음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하면서 지구촌의 전체를 끌고 가는 극단적 공산주의적 전체주의도 경험했고 극단적 자본주의도 경험해 보면서 인류가 수정을 해왔던 성숙한 자본주의인 유럽 코뮤니티의 작은 나라들의 모습을 향해서 과감한 전환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책적으로는 연립정권 형태가 될 것이고 제도적으로는 김조년 선생님이 전공한 보편적 복지정책이 아닌가 싶은데 좀 더 인간다운 사회로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2만 불 했으면 꼭 4만 불 5만 불 하면서 비인간적으로 갈 것이 아니라 인간적 사회로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 민초들의 가슴속에서 그들은 논리고 뭐고 없지만 직감적으로 그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안대희사건과 정몽준에서 봤습니다.
이남곡 : 아까 말씀하신 본래성의 회복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본래성이란 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철학적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견해가 있겠지만 인간으로서의 길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동물로부터 진화했던지 신이 창조했던지 인간으로서의 길이 있을 텐데 이것은 문명이전의 원시사회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문명과정을 거치면서, 문명과정은 물질적 사회적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만, 그 속에서 인간이 오히려 소외되고 물질이 지배하고 인간의 아집이 많아져서 결국 서로 타투고 소유에 의해서 불평등과 착취등 양극화가 심해지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또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과정을 거치면서 온실(원시적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인간 본래성을 회복한다고 할 때 그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저는 그걸 하기 위한 운동이 사실은 사회주의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부분이 토대와 상부구조에 관한 근대적인 사회적 실천의 명제들이 근본적으로 재조명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간의 본래성의 회복이라는 의식과 문화로의 이행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처음에 목사님께서 현실에 대하는 성직자의 입장에서 말씀하셨어요. 설교를 하실 때 설교를 하는 내용하고 실제 사람들이 서 있는 바탕하고 대립이 된다는 이야기이죠. 그만큼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물신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설사 신자유주의를 열렬히 반대하는 사람조차도 자기 삶속에서는 그것이 깊숙이 들어와 있어요. 저는 본래성을 회복하는 운동이 인문운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바탕이 넓어져서 그 위에 아까 얘기했던 새로운 정치형태라든가, 보편적 복지정책도 경제 시스템이기 때문에 최고의 시스템은 기본소득제 같은 것입니다만, 만일 기본소득제가 확립되면 거의 무소유 사회로 나가는 과도적 과정이라고 봅니다. 표현을 달리해서 그렇지 사실 이런 것들이 설 수 있기 위해서는 의식과 문화와 생활양식의 근본적 변화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는 종교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교인들에게 하기 힘들어 진다고 할 때 바로 해버리는 것이 제교 불교 카톨릭 할 것 없이 성직자들이 설법이나 맘껏 강론을 하실 수 있는 흐름이 된다면 말이죠. 아까 말씀하셨던 본래성 회복의 인문적 바탕이 마련될 때, 이것이 정치 경제의 변화와 아까 말씀드렸던 보편적 복지의 최고 형태인 기본소득제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초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든지 도덕적인 해이가 일어나면 그것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과 똑같은 길을 걷는 것이지요. 결국 지금은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본래성의 회복이란 표현은 인간의 본래성을 찾아가는 운동이고요. 물론 자기 성찰이 바탕이 돼야겠지만 이런 운동이 종교계를 비롯해서 학계 시민운동 등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이런 물결들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사실 자본주의의 소비지향적인 문화가 거대한 탁류이지 않습니까. 이것에 물을 조금 떨어뜨려서는 금방 동화되고 말아서 계속해서 맑은 물 붓기라는 프로젝트는 맑은 물이 많이 들어와야 되거든요. 세월호 이후에 목사님이 말씀하신 백성들이 정확하게 이론적으로 몰라도 뭔가 꿈틀거리는 것. 이것이 천심 같아요. 어떤 면에서 본다면 선각자들이랄까 그런 것들을 해내는 새로운 변화의 주체들이 형성되는 시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흐름들을 모아야 하는데 사실 운동하는 사람들도 아집들이 굉장히 강해서 하나가 돼도 힘이 될까 말까 한데 서로 하나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인문운동을 할 때 두 가지가 핵심인데 하나가 물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자는 것과 두 번째로 아집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이 운동의 바탕위에서 제도의 개혁에 대한 것들이 서로 삼투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어 봅니다.
김조년 : 저도 일련의 이번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원적인 모순이랄까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물질 없으면 생활을 못 하니까 그걸 다 희망하지만 정당한 물질획득이 아니고서는 안 되겠다는 것과 정치와 권력에 대한 갈망이 다 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는 것들이 계속해서 인식이 돼가고 이 두 가지가 일반사람들에게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민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씨름해왔던 정치권력 자본과 같은 것들로는 사람다운 삶을 살기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 끊임없이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최근에 이 물질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때 두 가지가 와서 마음에 닿는데 하나는 물론 성경에 바탕을 두고 썼지만 영국의 돈 더스킨이 쓴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결국은 성경에 나오는 과수원에 아침 9시 3시 6시에 간 사람이지만 마지막은 정산할 때는 다 똑같이 준다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제입니다. 또 구약에 있던 만아가 아침에 왔는데 그날 먹을 가지고 왔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벗어나서도 안 되지만 부족하지도 않다는 인식들이 차차 퍼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시간이 이제까지 강력하고 안전하다고 했던 자본주의나 국가나 정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 스스로 일반 사람들에게 굉장히 강하게 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인문운동을 통한다든지 아니면 선각자적인 발설을 통한다든지 끊임없이 본원적인 부분을 때려주고 이야기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선각자가 마치 가르치는 것처럼은 안될 것이고 자기반성적인 얘기들이 끊임없이 나올 때 한 발씩 가는 그룹들이 형성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경재 :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 가면서 저는 마르크스 이후에 근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소위 상하부 구조론이 그 당시의 사회진단에 있어서는 탁견이겠지만 인류의 몸과 정신 중에서 어느 것 하나가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변증법적인 관계가 그 관점을 강조하였는데 그 관점이후에 소위 사회주의 철학자마저도 인간과 사회 발전에 있어서 의식화 토대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고 상호변증법적인 연관 속에서 함께 발전해 간다는 이 철학자 신념이라도 철저하게 갖는다면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거듭 말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배웠다는 진보적인 지식인마저도 그것을 안 믿는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도 인간의 의식과 마음먹기를 중요시 하면서도 결국은 물질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토대결정론의 제자들이 아닌가하는 솔직한 심정이 듭니다. 놀랍게도 종교계마저도 그렇습니다. 종교계가 한국사회 속에서는 서양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저는 종교계가 인간의 본래적인 인간 얼굴을 하도록 끊임없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교계 자체가 시대적 변화의 시대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시대를 지배하는 거대한 물질의 힘인 맘모니즘과 타이타니즘에 완전히 포로가 되어 있어서요. 저 자신은 목사이고 성직자이지만 종교개혁 500주년이 2~3년 뒤에 다가오지만 근본적인 메타크리틱을 하지 않고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한 예를 들면 한국의 개신교의 대형교회가 저 세계 교회의 대형교회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데 그들이 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심지어는 카톨릭의 프란체스카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신다는데 거대한 종교의 의미 있는 행사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듣고 어느 신부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개신교 은퇴 목사가 카톨릭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소리인데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프란체스카의 이미지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카톨릭이 그 중요한 종교 행사를 어째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한단 소리냐. 사람이 6~70만이 모이면 지금 조성되고 있는 경기도 여주 땅의 카톨릭 성지에서 하든지 명동성당에서 하든지 해야 하는데 이는 카톨릭 자체를 위해서 후회할 일이라고 했는데 이게 결국 맘모니즘과 타이타니즘에 종교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염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개인주의적 윤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개신교 일부 원로 목사들이 종로 5가에서 종아리 걷어 올리고 자신이 스스로 회초리를 치는 쇼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회계를 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요. 물론 종교가 변혁되겠지만 그래서 이제 다른 차원으로 이야기를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데요.
함석헌 선생님이 오늘날은 옛날 종교의 성직자들이 그 사회속에서 할 역할을 오늘날은 성직자가 아니라 언론인이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지난 6•4지방선거에서 근본적으로 큰 사회적 조짐이 교육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7군데 중에서 10군데가 소위 진보교육감이 선출되었습니다. 더구나 정당의 공식적인 로고도 없이 했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을 합니다만 종교인은 그것을 총체적으로 감안하면서도 늘 뜻을 밝히려는 속성이 있으니까 주어지는 아주 중요한 의미라고 봅니다. 4년 만에 큰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번 기회를 못 살리면 정말 저는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교육계의 혁신 그리고 언론이 얼마나 장난을 쳤습니까. 민초들의 눈을 가리고 왜곡된 문명을 호도하고 변호하고 그래서 언론계와 교육계 특히 이번엔 교육계의 교육감들에 대한 국민들의 성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물론 교육계에서 더 잘 알겠지만 정말 심층적 의미 해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남곡 : 네 좋은 기회입니다. 사실은요 그런 기회를 살리려면 교육감 한 사람 갖고 되는 것도 아니지요. 박원순 시장이 한 일의 하나가 협동조합과 마을운동이 상당히 붐을 일으켰습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를 업그레이드하는 사회적 경제적 기초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제가 인문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많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문제냐면 우리가 협동조합을 하려는 마인드가 축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장이 그런 기회를 많이 줘도 그 내용을 살리지 못하면 결국 뿌리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분수령이 되려면 모든 지혜와 힘을 모아야 되는데 그것을 모으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극복을 해 내야 합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아까 말했지만 계속 그런 길을 가는 한 쇠퇴해서 소멸의 길을 가게 돼 있습니다. 아마 종교계 안에서도 분명히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아까 말씀하신 맘모니즘과 타이타니즘을 못 벗어나면 결국 소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목사님들 모임에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그곳에 대단히 열정적인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다 소규모 교회와 또 교회 아닌 분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오히려 그런 데에 주목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과거에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지금도 진보성을 표방하는 경우에 실천영역에서는 사회의 약자의 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진보라고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스스로가 진보라고 할 때는 생각이 진보적이어야 합니다. 아집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진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보면 영역은 진보인데 사람은 굉장히 보수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아주 완고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대학을 보면 옛날에는 대학이 진보의 산실이었습니다. 한국의 보수적인 수구 정권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보다 진보가 진보답게 성장을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완고하기 때문에 진보가 책임을 통감을 해야 합니다. 더구나 힘을 모아도 부족할 텐데 서로 여러분파로 나뉘어서 어찌 보면 한국 진보가 당면하고 있는 그 동안의 속성처럼 돼버린 오히려 반 진보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토대와 상부구조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그게 근본적인 생각이 필요하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관념론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저는 관념론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자체에 대한 실사구시적 통찰 이예요. 과거에 사회에 대한 통찰은 매우 깊이 들어가 있는데 인간 자체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합니다. 심지어 마르크스를 보면 아담 스미스보다 인간에 대한 성찰이 약한 면이 있어요. 그래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얘기가 아니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실사구시적 통찰에 바탕을 두지 않는 사회적 실천은 미래에 대해서 제대로 설계도 할 수 없고 비전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가 인문운동이라고 하는 표현은 서구의 근대화가 시작될 때 르네상스의 인문적 토대 위에서 근대사회가 성립됐습니다. 이건 적절한 예는 아닐지 몰라도 일본의 메이지 유신 당시에 일반 사람들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한 사회가 근본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 르네상스라는 인문운동에 바탕을 두고 근대화가 성립된 것처럼 그런 거대한 인문운동이 들불처럼 퍼져야 합니다. 지금 그런 기미들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사랑방들이 많이 생겨서 저도 몇 곳에서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모두 작은 모임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될 때 그 물의 토대위에 한국형 연립정권도 가능한 것이고요. 저는 머릿속에 그려지거든요. 이것은 한국정치가 수렴해야 하는 방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대립을 해결하는 화쟁이나 화해의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걸 하기 위한 바탕이 너무 허약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정치에 대해서 조금 도외시 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럴 일도 아닙니다. 정치도 발전을 해나가고 있으니까 이것을 서로 삼투해서 생각해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조년 : 지금 말씀하신 그와 같은 인문운동이라든지 기초운동들을 여러 곳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 구체적인 몇 가지를 이야기 하면 좋겠고 하다 보면 처음에 말씀하셨던 연립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했으면 합니다.
김경재 : 우리 사회가 군부독재를 거치고 2천년까지 한 40여 년 동안 서구가 3~4백 년 동안 했던 것을 단축해서 해 보려고 몸부림 쳤습니다. 제3세계가 부러워 할 만큼 산업화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던 사례적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우리 깨어있는 각 계 각 층의 사람들이 해줘야 할 말은 극히 표피적인 모습이고 정치는 민주주의 삼권분립이라는 것과 산업화로 보면 컴퓨터 만들어 내는 것 까지는 성공했는데 서구가 4백 년 동안 거쳐 온 내면적 정신의 성숙 내지는 진화 발전은 막스베버나 칸트가 말한 것처럼 근대사회의 핵심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사고를 하고 인간이 주체적인 주인으로서 비판적인 이성의 주인으로서 남의 하수인의 역할을 벗어버리는 성숙한 계몽된 시민으로서의 우리 사회가 그것을 거쳤냐 하는 의문으로 볼 때 여전히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지역별 학벌의 나뉨에 갇혀 있단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컴퓨터는 만들어서 삼성재벌을 만들었는데 소위 베버가 말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근대적 합리적 사고 또 비판적이고 주체성의 사고를 사회 구성원 전체가 세례를 받듯이 거쳤는가를 봤을 때 저는 그것이 안돼서 오늘 세월호 문제까지 터진 것 같습니다.
더 나가서 서구에서는 막스 혁명 이후에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각성을 우리 사회가 거쳤는가를 보면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것에 갇혀 있습니다. 지금은 지구촌 전체 문명은 생태학적 영성의 각성까지를 요청하는데 그것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지금은 인문학은 인문학대로 종교 신학계는 나름대로 각자 자기 분야에 따라서 담론의 모임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면서 서로 통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불길은 앞으로 10~20년 동안 활발하게 계속 일어났으면 좋겠고 우리의 씨알의 소리 같은 잡지가 공헌을 한다면 그런 자료에서 읽을거리, 토론할 거리와 문제거리를 자꾸 제공해 주는 것은 큰 공장 몇 개 세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남곡 : 저는 요즘 협동조합과 마을운동과 혁신학교 선생님들과 일부 정치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저는 저 자신을 얘기할 때 인문운동가라고 말하는데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은 인민운동가로 알고 있습니다. 결혼식 사회로 저를 소개하는데 인민운동가라고 소개를 해서 많이 웃습니다. 그만큼 인문운동에 대해서 잘 몰라요. 저는 저의 정체성을 인문운동가라고 얘기하고 주로 사고방식의 바탕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제가 주로 도구로 쓰는 것은 2천 5백년간 동양철학을 이끌어 온 공자입니다. 공자를 얘기 하는 바탕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질과 정신의 조화에 대해 공자가 대단히 탁월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에 부분은 근대적인 과학이론과 거의 같습니다. 일단 물질이 토대가 돼서 정신이 성숙한다는 것이고 하나 더 나아가는 것이 인간에 대한 통찰입니다. 이는 근대 사회변혁 이론인 마르크스보다도 앞선 것으로, 정신의 성숙을 하는 데는 공자는 가르칠 교(敎)를 쓰는데 그것은 노력을 하는 것 이예요. 그 부분이 바로 목사님께서 인간의 본래성을 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통찰이 없는 것입니다. 주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또 협동조합은 사람들끼리 아집이 부딪혀서 동업하면 실패하듯이 어렵습니다. 그 자기 중심적인 것을 넘어서는 길에 대해서 공자는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없다’ 그렇다면 무지(無知)를 자각하는 바탕에서 끝까지 찾아 가겠다는 것이 평범하게 보이지만, 제가 8년 동안 무소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했던 의사소통 방식인데 그 방식을 논어의 그 문장 안에 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보통사람들에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일반사람들이 과학적인 메카니즘에 의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 가 있습니다. 그 바탕에 서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실제로 협동조합과 마을 운동을 성공할 수 있는 토대가 생깁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외부적인 외형은 많이 만들어 놓는데 안의 내용을 만들어 나가기는 너무 부족합니다. 축적이 돼있지 않아서 입니다. 제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주로 그 쪽 일을 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실제로 그런 것을 강의나 배움을 통해서 변한다는 것은 알지만 쉽지는 않죠. 그런 흐름 속에서 안에서 피드 백 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싶어서 지금 제가 관여하고 있는 것이 연찬 문화 연구소입니다. 매월 2박3일정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목표는 힐링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리더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회운동 안에서 사이좋게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을 하는 지금의 토론문화보다 업그레이드된 리더를 양성하는 목적입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새로움에 대한 요구는 많이 있는데 이 요구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에 대해서 축적된 것이 없어서 서로 지혜를 모아서 확대 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합니다. 우리시대에 전체를 아울러서 화쟁할 만한 원로들이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진영에 속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느 진영에 들어가 버리면 희석돼 버리기 때문에, 개인에게 기대하기 보다는 집단적 문화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즉 문화적 권위를 형성하자는 것이지요. 이렇게 될 때 연립정권의 철학적 사고방식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삼투해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경재 : 아까 말한 교육감의 다수가 진보진영에서 나왔고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혁 못지않게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 김조년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뭔가 하고 묻고 싶고 그것을 묻는 이유는 유교의 대가이니까 제가 20살 때는 유가의 전통에서 자랐는데 난데없이 돌연변이처럼 집안의 내력도 없는 신학적 문제로 고민하다가 결국 목사까지 됐는데 그 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지금 돌이켜보면 인간의 근본적인 자기중심적 성향 위버 같은 미국 학자는 원죄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기심이라고 했는데 모든 종교철학은 그 개인적인 성향은 허위위식이고 인간은 자기중심적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아버지가 유가의 교육자였는데 교육을 통해서는 저는 인간을 근원적으로 바꾸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덕이나 교육보다는 좀 더 독한 약이랄까 그게 종교가 아닐까 해서 제가 신학을 한 것이거든요. 돌이켜보면 대답은 그 쪽에 있는데 그것을 현실에서 처방을 해서 실효를 내려면 또 교육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가령 유가의 핵심도 저는 예수나 붓다도 다 마찬가지로 보는데 공자의 말씀대로 내 가르침의 핵심은 충서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말씀을 고리타분한 얘기로 내치지 말고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그것을 쉬운 말로 교육을 시키고 수행을 해보는 프로그램을 유치원부터 중 고등학교에 까지 이르러 시행했으면 합니다. 그것을 실패한 윤리교사를 부활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학교에서도 영성훈련을 시키는 전공교수를 따로 둔다고 해서 목사 후보생들이 영성교육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 학교의 분위기와 전 전공의 교수들이 함께 달려들어서 하는 것이 영성교육이지 영성신학을 전공한 교수 몇 명이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초중고교 교육과정에서는 아직 어리니까 인간성이 형성되어 가는 가능성이 많은데 그것을 너무나 없애 버렸다는 생각입니다. 과거처럼 수신 교과서를 따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살아보니까 자본주의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휘몰리지 않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번에 교육감에 당선된 사람들이 특목고와 자사고를 어떻게 하겠다는 제도적인 문제보다도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 공동발의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남곡 : 사실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교육 개혁을 이야기 하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못 끊고 있습니다. 교육감 한 사람이 아무리 진보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악순환의 고리를 못 끊는데, 그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지금 목사님 말씀하신 게 참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컨텐츠가 너무 약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자체가 좀 변해야 할 것인데 교육감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까. 또 교과과정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만 그런 제도적인 한계에서도 어떻게 할 것인가. 우연히 조우를 하게 된 이번에 서울시 교육감이 된 조후보를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마침 제가 협동조합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조후보가 기억을 하고 있어서 인사를 하면서 그 때는 교육감 될 가능성이 희박했는데 자신이 교육감 되면 협동조합이나 마을 만들기 같은 새로운 사회운동을 교육과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다행히 됐습니다만 본인이 그런 의지가 있다 하드래도 실제로 그것을 교육과정에 내용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은 전교조가 그런 방향의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그동안의 낡은 진영논리의 틀을 과감하게 벗고 진보의 모습으로 인간의 본래성을 토대로 둔 사회의 모습을 하기 위한 노력에 힘썼으면 합니다. 전교조는 사실 굉장한 보배입니다. 낡은 진영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것이 없으면 생명력은 고갈됩니다. 그래서 마침 진보교육감이 많이 등장했을 때 전교조도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스스로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 가면서 진화해야 합니다. 지난번에 혁신학교에 참여하신 선생님들이 얘기를 해 달라고 해서 느꼈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방향으로 내용을 채워 나갔으면 하면서 씨알의 소리도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조년 : 저는 이번 교육계 선거가 정치계 선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은 우리 시대의 소리를 시민들이 그렇게 반영해 준 것으로 봅니다. 정치 문제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과 가장 근본적인 부분인 교육이 지금까지의 모습을 벗고 참신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봅니다. 그러나 거기에 담을 내용은 함 선생님도 인간혁명을 말씀하시면서 국민적 성격이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는 한 두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들불처럼 퍼져나갈 때 전체 문화로 형성이 되는 것처럼 지금 이미 이것들이 몇 년 전부터 흐르고는 있는데 이것을 수렴하는 길은 제도가 받혀줘야 할 것으로 봅니다. 이번에 교육감 선거 결과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국민들에게 던져주고 있다고 봅니다. 교육 내용은 일차적으로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억압당하고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개발할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과 교육제도와 교사는 그런 것들을 촉발시켜 주는 역할이지 마치 자기들이 끌고 나가는 것처럼은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든 운동은 수행차원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수행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내가 이미 이뤘으니 나를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교육도 인문운동도 종교운동도 그런 소그룹으로 가면서 나도 함께 가자고 하는 운동으로 진행하다 보면 길이 열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상당히 큰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봅니다.
김경재 :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을 4년 동안 다 이룰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첫 주춧돌을 놓을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기회이고 이것은 한 두 사람으로는 어려운데 다행히 열 몇 명이 한 목소리를 낸다면 사회의 큰 변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예를 들면 김상곤교수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데 그가 가령 무상급식을 할 때 경제적인 측면만을 얘기하지 말고 도시락을 싸올 수 없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인다는 측면만 이야기 하지 말고 빈부의 상관없이 어린 아이들이 밥 한 끼를 같이 나누면서 배우는 인성교육을 이야기 할 텐데. 경영학도라서 그런지 무상급식을 경제 사회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 프로그램의 뜻을 반감시킬 뿐 아니라 보편 복지의 부당함을 말하는 보수 성향의 상대편의 공격을 스스로 자초했다고 봅니다. 소위 진보진영의 교육감 자체가 인문학적인 깊은 교육과 성찰과 사색과 독서를 해야 합니다.
이남곡 : 아까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기본적인 주춧돌이 뭐냐 하는 것에 합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자기 임기 동안에 무엇을 하려고만 하는데 그런 인지상정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깊은 통찰을 한다면 이번 기회에 함께하는 팀이 됐을 때 주춧돌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 져야 하는데 씨알의 소리가 다 모아서 합의를 이루게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모두 웃음) 교육감 업무 시작 전에 2박3일이래도 집중적인 논의를 해서 스스로 주춧돌을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김경재 : 다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걸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꼭 씨알의 소리가 아니래도 자체적인 논의를 통해서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건 하늘이 준 기회입니다.
이남곡 : 사실 이번 지방선거가 재미있는 것이 교육과 권력을 병렬 해 놓았어요. 한 쪽은 지방권력이고 다른 한 쪽은 교육으로 평행선을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중앙권력도 그래야 합니다. 교육 자체가 현재의 자본주의 안에서 좌지우지 되고 있기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 속에 있는데 학부모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바꿔봐야 큰 진전이 없습니다. 인성교육 한다고 하면 학원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기본적인 인문운동이 들불처럼 퍼지기 위한 토대가 생겨야 뭔가 올바르게 축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상부구조와 토대에 새로운 시각이 있어야 하는데 아까 말한 교육과 권력이 제도적으로 병립이 돼있는 자체를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한국적 연립정권을 얘기할 때 한국적 특수성에 바탕을 두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것인데 연립정권이 설 수 없는 바탕은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화합해야 한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적대적인 관계를 못 벗어나고 있고 간단하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말로 하자면 ‘대 긍정에 바탕을 둔 문명국가’의 건설입니다.
대 긍정이라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산업화와 민주화라고 하는 건국과정을 대연정하는 것인데 이는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힘듭니다. 대 긍정에 바탕을 두고 목표는 새로운 문명국가의 건설이다. 이것이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목표가 아주 구체적이면 또 부딪히기 때문에 약간 여지를 두고 담아가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보수주의와 시장경제입니다. 두 번째는 사회 민주주의입니다. 하나 더 하자면 녹색주의입니다. 이건 독일 연방이 하나의 예지만 우리 한국이 갖고 있는 복합적인 모순 때문에 상당한 인류사적 의미를 갖고 해 볼만 합니다. 실제로 그 방향이 아니면 우리 문제를 풀 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것하고 교육이라는 것이 병립하다는 것은 교육이 사실 인문운동의 총본산 아닙니까. 정치권력과 인문운동의 총 본산인 교육이 병립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교육이 아까 걱정했던 자본주의와 정치권력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바로 설 수 있느냐는 교육감들이 우선은 의식이라도 선명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김경재: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우리가 말하는 행동반경이 자유롭지 못하는 것은 남북 분단과 동아시아의 정치적 족쇄 때문에 우리의 몸부림의 실현이 어렵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민초들은 구체적인 것은 몰라도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옳은 길이 보이듯이 저는 이 자리가 씨알의 소리이기 때문에 씨알의 입장에서 볼 수밖에 없는데 제가 75세된 크리스찬 목사로서 또 맏형이 육군중위로 전쟁에서 전사한 유가족이고 그 형수와 어린 두 아이가 폭탄에 다 죽었는데 아버지가 국립 현충원에 아들을 묻지 않고 불쌍한 며느리와 두 아이들을 무등산 어느 골짜기에다 공동 묘를 썼습니다. 전방에서 뼈 가루가 왔어요. 1953년 무렵으로 제가 12살쯤으로 기억이 또렷한데 그 형님의 자손들이 모두 죽어버려서 지금까지 동생들이 벌초도 했는데 우리 죽으면 그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자료가 있으니 형님이라도 현충원에 모시자고 하는데 이상하게 내 맘속에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에 대한 생각이 둘인데 아버지는 그것을 몰라서 안했겠는가 하는 생각과 또 하나는 씨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대한민국의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이지만 점점 더 형님을 비롯해서 한국 동란의 죽음이 한둘이 아닌데 민족의 거대한 재물 같은 생각이 들면서 현충원에 간다는 것은 한쪽 젯상에만 올리고 다른 한 쪽은 안올리는 심정이 듭니다. 문익환 목사말대로 DMZ에서 남북한의 죽은 병사들의 썩은 살을 한 삽씩 떠서 공동으로 묻자는 것과 같은 생각이 내가 늙으니까 자꾸 듭니다.
제일 견디지 못하는 것은 민초들이 원하지 않는 남에서는 국방비로 비싼 무기 사들이고 미군부대 와서 군사훈련을 하고 북한은 핵폭탄 만든다고 난리인데 정말 나라의 주인인 남북의 민초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군사문제니까 입을 열 수 없는 실정입니다. 국회예산에서 국방비는 따로 따질 수 없는 이런 것들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생각 속에서 소위 미일 한국으로 편성돼 중국을 적대시하는 동아시아의 신냉전체제를 전체의 민초들의 이름으로 우리는 이런 낡아빠진 문명시대의 유산은 지나갔다고 본다. 우리는 전쟁 반대이다. 어떤 정권이 됐든 군사무기 증강 반대, 폭력 혁명 반대. 지금 북한이 망할 것이라며 흡수 통일 붕괴론을 은근히 내놓는 남한의 정치권력들아 정신 차려라. 우리를 원치 않는다. 일단 유엔에 가입한 대신 민중이 원하는 것은 함석헌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면 그것을 요청했을 거라고 봅니다.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기 여권으로 떳떳이 평양을 방문하는데 동족인 남한은 왜 방문하지 못하느냐. 그것을 막는 놈이 누구냐. 박근혜든 오바마든 김정은이든 남북의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 실체가 누구냐는 것을 밝히고 따지는 운동부터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 나이에 무서울 것이 뭐있겠습니까. 나는 꼭 내가 바보천치 같아요.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통일은 50년 후든 100년 후든 제발 남북체제가 다르면 다른 대로 떳떳하게 여권을 가지고 방문을 하도록 하는 정권을 원합니다. 이런 소릴 해서는 왜 안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10년 전에는 감옥 갈 발언이지만 그러한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남곡 :선생님도 아픈 가족사를 가지셨는데 저도 제 아버지가 오히려 그 반대쪽에서 그렇게 됐는데 저는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아주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한 정권이라고 봅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정권도 아니고 왕조 드라마를 봐야 이해가 되기 때문에 남한하고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남과 북은 전혀 다릅니다. 30년 이상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연립정권을 얘기 할 때는 거기까지 보고 있습니다. 우선 남한에서 그런 정권이 탄생하면 통일을 대비하는 모습이 보이고 더 나가서는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상이 보입니다. 지정학의 역발상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주변 열강 때문에 흔들렸다면 이제 역발상을 해보면 이게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명국가의 건설이라는 게 21세기 인류가 요구하는 보편적 이상이 합치하는 국가입니다. 그것을 세울 수 있는 단초가 연립정권이라고 저는 보고 있기 때문에 목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그것을 풀어가는 주체는 역시 남쪽에서 움직임이 가시화 외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의 악순환의 고리를 풀어가는 것은 그렇게 출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남남갈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해결하기는 힘듭니다.
김경재 : 실질적으로 구체화를 하려면 우선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제도 질서가 1인 왕권과 같은 대통령으로부터 내각 책임자로 바뀌고 그 내각의 책임자는 정당이나 여러 정치권력을 연합해서 추진하자는 연립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그런 선진 국가의 구체적인 모습이겠네요.
현재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고 있는 새누리당이 정말 큰 틀을 보면서 자기를 버리고 결단하는 큰 그릇들이 있어야죠.
김조년 : 이번 정부가 무엇을 하느냐? 국가 무용론과 정부 무용론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 많이 논의 됐는데 그것이 책임정권과 책임정부를 묻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지금은 대통령 무책임제이기 때문에 진정한 책임제로 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겠다는 소리라도 생각합니다.
이남곡 :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이를 테면 정부 시스템에 대한 틀에 대한 논의가 있고 그 안에 담아야 할 내용이 연립정권이라고 할 때 틀에다 넣는다고 되지는 않거든요. 서로 지금처럼 싸우고 있으면 무정부 상태가 돼 버리니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정말로 연합정권으로서 작동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연합정권이 작동하기 좋은 틀이 뭐냐 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마 지금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그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지금 새누리당이든 아니면 새정치 민주연합이든 대통령 경선 할 때 공약으로 내걸 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차기 정권을 연립정권으로 하겠다는 뜻을 밝히면 아마 대대적인 정계개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인재들이 현재 정치권에 있느냐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일단은 새로운 물이 들어와야 합니다. 또 하나는 지금의 진보정당들의 난맥상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카운터 파트너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각 분야에서 그런 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성장해서 올라섰으면 좋겠습니다.
김조년 : 그런 개혁을 할 수 있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왜 없을까요?
이남곡 : 음...자랄 수 있는 여건이 못 됐다고 봅니다. 지금이라도 서로 키워줘야 하는데 아직도 그 문화가 없으니 그래도 현실의 바탕에서 해야 하니까 지난번에 만났던 우파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당신들이 대권을 생각한다면 대선 나올 때 차기 정권은 연립정권으로 하겠다는 뜻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론적 뒷받침은 부족했지만 감지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 하는 것도 실사구시하는 측면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북대의 김윤상 교수인데 지공주의라고 들어 보셨나요? 좌도우기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상은 좌측인데 실제로 펼치는 것은 우측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분이 만약 노무현 정권에서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것이 바로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하는 것인데 이 교수도 사실에 바탕을 두면 그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김경재 : 현실정치의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필려면 인류가 실험한 것은 정치제도로 말하면 사회 민주주의예요. 다른 이름을 붙이든간에 결국 사회 민주주의 길을 가겠다는 것인데 그건 정말 북쪽과 남쪽이 같이 살려면 북쪽이 경험했던 50년이 아무리 실패의 역사라도 북한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라고 보진 않지만 그 꿈을 가졌던 국가로서 남한도 역시 동시에 실패한 것을 인정하고 가자는 큰 그릇들이 나와야 가능할 것인데 저도 선생님의 논제에 동감을 하면서 개인의 큰 그릇들은 김구, 여운형등 정적이 죽이지 않으면 일제가 모두 죽였고 근대에 들어와서도 제명에 산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은 집단 지성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이고 시간이 다 끝나서 마지막으로 두 분 선생님의 좋은 말씀을 들으면서 결국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뿌리를 파고들어 가면 결국 인간문제에 부딪히고 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자신 속에 있는 짐승성과 사람성의 투쟁인데 우리 민족이 오늘 이 수준밖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싸움에서 그런 정도의 승리만 했다는 증거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 목사였던 저의 사부인 김재준 목사님은 80년대 진보적 기독교계의 스승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정말 갈릴리 예수의 십자가 뭔 줄 아느냐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는 세 가지 혁명의 근원적인 능력인데 세 가지 혁명은 인간혁명, 사화혁명, 종교혁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진짜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인간, 사회, 종교의 세 가지 차원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자꾸 떠오릅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계도 다시 한 번 예수의 갈릴리 복음의 정신으로 혁명되지 않는다면 소망이 없고 그건 사회도 마찬가지이고 인간은 더욱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사건과 지방선거를 통해서 우리가 이 시대로부터 받은 질문은 너희가 자신과 사회를 혁명할 의지가 있느냐는 물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남곡 : 저도 근본적으로는 동감입니다. 다만 저는 비과학적인 이야기일지 몰라도 국운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워낙 고생을 많이 한 나라라서 엄청나게 힘들게 달려온 길인데 지금 보면 그 때 그 때 마다 절실한 문제들을 해결해 왔습니다. 제가 초두에 연립정권이란 말씀을 드린 것도 이걸 한 번 뛰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어쩌면 그것이 성립함으로써 새로운 국운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걸 못하면 막히게 됩니다. 그걸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낡은 진영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 진영논리에 발목이 묶여 있는 한 문제를 보면서도 풀지 못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보면 국운을 믿고 싶습니다.
김조년 : 그것은 함 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하신대로 절대 긍정의 세계로 가는 것이고 요즘 국가개조라는 말이 있으니까 그것을 들을 적에 박정희 시절의 인간개조란 말을 떠 올렸는데 그것보다는 지금 말씀하신 인간혁명의 길로 가다보면 전체적인 집단적 지성과 집단적 영성이 계발될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매우 중요한 것은 어쨌든 절대긍정과 궁극적인 긍정의 길을 갈려면 지금까지 왔던 모든 역사적 미터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면서 그것 위에 새로운 토대를 쌓는 것이 수행하는 자세로 나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과 지금 대통령 되면 마치 자기도 성자가 된 것처럼 하지 않고 자기도 수행하는 수행자가 된다면 모든 사람들도 같이 걸어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오늘 긴 시간 참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