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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5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12: 그곳에 <오리지널>이 있었네.. 04/02 13:41 145 line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났었습니다.
1박 2일로 충주를 다녀 왔습니다. 중부고속도로로 가면 편할 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대전으로 갔다가, 대전에서 갈라지는
고속도로가 중부고속도로가 아니고 호남고속도로임을 확인한 다음
부터는 중부권을 왔다리 갔다리하면서 간신히 충주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서울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분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제천을 들러 올라오는 길에는
도로표지판 보이는대로 따라 오다가 문득 봉평이라는 지명을
발견하고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하면서 메밀묵이나
먹자고 방향을 틀었고, 평창에서 막국수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평창에서 주천까지 평창강을 끼고 도는 길은 정말 좋더군요.
산이 있고 흐르는 강이 있고 맑은 하늘이 있고
그리고 주말이라 널널한 시간이 있고
이래저래 나 자신을 한 번 돌아 볼 수 있었던 기분좋은 나들이였습니다.
만우절이었다고는 하지만 자연은 내게 아무런 거짓말도 하지 않더군요.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서울하늘도 저렇게 맑을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좌우간 우연찮게 시작한 낙서이고, 이왕이면
<이대단상>을 쓰면서 옛날기억이나 더듬어 보자고 끄적거리던 낙서인데
<이대단상>이 아니라 <이대생단상>이 되고 있음이 조금은 안쓰럽네요.
그래서 오늘은 이화여대에서 가장 유명한 <오리지널 튀김집>에 대한
이야기나 좀 해 볼까 합니다.
지금 이화여대를 다니시는 분, 그리고 과거에 이화여대를 졸업하신 분,
지금 이화여대생을 친구로 두고 계신 분, 그리고 과거에 이화여대생을
친구로 두었던 분들은 거개가 <오리지널>이라는 세계화된 명칭을 지닌
지극히 토속적인 튀김집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혹시 <오리지널>을 모르시는 분 가운데는 <오리지널>이 오리고기
파는 곳이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리..>가
들어간다고 전부 오리고기와 연결짓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붕어빵에 붕어없고, 가래떡에 가래침 안뱉듯이,
빈대로 빈대떡 만드는 것 아니고,
헤르만 헤세의 <바퀴아래서>라는 책에 바퀴벌레 이야기가 한 마디도
안 나오는 것은 오리리카바 화장품이 오리고기 지방으로 만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결국 <오리지널>은 오리고기 영양식당이 아니라, 오징어 튀김, 즉석
떡볶기, 감자 및 야체튀김, 깻잎튀김 등과 함께, 냉면, 쫄면, 라면사리와
맛탕, 겨울에는 빙수, 여름에는 팥죽(요건 아니던가?) 등을 잡다하게
파는 이대앞의 명물식당이랍니다. 참, 참고로 이곳에서 술은 안 팝니다.
어쨌거나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하신 제 이종사춘 누님 세 분도 기억하고
계신 <오리지널>은 이제 그 분들의 딸들도 마찬가지로 애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리지널>의 오징어튀김을 먹어 보지 않은 자, 감히 이화여대에
대해 논하지 말 것이며, <오리지널>의 즉석떡볶기를 즉석에서 주문해
보지 못한 자, 감히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랬기에 저랑 비교적 나이터울이 있었던 사촌누이 세 분은 모두 입을
모아 의미있는 대학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오리지널>에서
튀김과 떡볶이를 사먹으라고 적극 추천해 주셨으며, 혹시라도
<리바이벌>이라는 유사품에는 속지말라는 말씀까지도 해 주셨던
것입니다.
비단 대를 이은 이러한 추천과 경고의 말씀들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리바이벌>은 망했고 <오리지널>은 흥해서 지금도 이대생들의
코묻은 돈을 챙기면서 떼돈을 벌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오징어튀김에 대한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사는 사람입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엄격한 가정교육을 표방하시던 저희
어머님께서는 첫 출근, 아니 첫 등교하기 전 날, 제게 길에서 파는 음식은
절대로 사먹지 말라는 말씀부텀 하시더군요. 모두가 불량식품이라는 것
이었습니다. 전 그 때 속으로 사먹을 돈도 안주면서 별말씀만 하신다고
혀를 빼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엄마손을 잡고 아장아장 출퇴근하던 연수기간이 지나고, 이제
적어도 집에 오면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성숙
되었던 어느 날, 떼거지로 몰려 집으로 오던 저희 친구들 중 한 명이
갑자기 오징어 튀김을 사먹고 가자는 제안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 혜화동 로타리 근처에는 고소한 냄새로 우리를 유혹하던 오징어
튀김전문 포장마차가 한 군데 있었습니다. 마침 그 친구는 가진게 돈밖에
없다고 어깨를 으쓱거렸고, 우리들은 모두 입에 침을 머금으며 그
포장마차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개중에 어떤 친구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 친구의 가방을 대신 들어 주는 날렵한 사회성을 발휘하기도
하였습니다. 한 개에 5원하던 오징어 튀김은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오징어를 튀겨
내는 그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음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할 정도였습니다.
먹는데 눈이 뒤집혀서 다른 애들이 하나 먹을 때, 저는 와작와작 두개를
먹었고, 다른 애들이 두 개째 먹기 시작했을 ㎖, 저는 네 개째를 집어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이나 채 먹었을까, 갑자기 그날의 전주였던
친구는 이제 그만 먹자고 일방적인 선언을 하고는 계산을 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가진게 돈밖에 없다던 녀석의
호주머니에서는 달랑 10원짜리 다섯 개만 들어 있었으며, 지불해야 할
돈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지요.
"야, 두 개 이상 먹은 놈 누구야?"
모두들 눈치를 보더군요. 물론 저는 네개째 먹고 있었습니다만, 분명
다른 놈 중에도 세 개를 집어 먹은 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옆 집에 살던 규형이란 놈이 세 개째 집던 것을 전 분명히
보았었으니까요? 그러나 아무도 이실직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모두들 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눈초리가 올라가던 튀김집
아줌마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규형이가
저를 손가락질하며 "성한아, 너네 개 먹었잖아, 빨리 손들어!"하며
고자질을 하더란 말입니다. 그지같은 놈, 자기도 분명 세개나 먹었으면서
고자질을 하다니. 브루터스에게 칼부림을 당해서 피범벅이 되었던
씨이저의 마음이 이해되더군요. 그렇다고 먹은걸 안 먹었다고 할 도리는
없고, 전 다만 얼굴만 빨개질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주를 자처하던 녀석은 의리없이 달랑 50원만 내고는,
"아줌마, 나머지는 재한테 받으세요!"하면서 줄행랑을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 법이 어딨냐?"
제가 아무리 항의했지만, 이미 다른 녀석들은 꼬랑지가 빠져라 도망을
쳤고,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에, 만들면 법인것을 몰랐던 저는 졸지에
무전취식자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아줌마는 돈갖고 와서 가방가져 가라며, 제 가방을 잠시 보관(?)하였고,
돈도 돈이지만, 불량식품 사먹었다고 혼날 생각에 제 발걸음은 차마
떨어지지 않더군요. 적어도 두 시간은 그 포장마차 안에 서 있었던
같습니다. 그 아줌마를 때로는 불쌍해 보이는 눈으로, 때로는 살기등등한
눈초리로 쳐다 보았지만 5원짜리 오징어 튀김 팔아 떼돈을 벌리 없었던
튀김아줌마는 아예 제 가방을 구루마 밑으로 집어 넣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애새끼가 학교 갔다 없어져 버렸다고 안절부절하시던 어머님께서 급기야는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고자질한게 마음에 걸렸던 규형이놈이 제가
인질로 잡혀 있음을 어머님께 알려 준 후였습니다.
저는 그날 좌우간 생오징어 마른 오징어 될때까지 쥐어터졌고,
불량식품 사먹으면 개새끼라는 각서까지 썼으며,(내가 개새끼면 엄마는
개가 된다고 이성적으로 설득하였지만, 엄마는 차라리 개처럼 살자고
하시면서 제 논리를 감정적으로 거부하셨습니다.)
오징어튀김에는 대장균이 만 마리가 넘는다는 교육까지 받았던
것입니다.(몇 년 후에 집안모임으로 어느 일식집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어머님께서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모듬튀김을 시키시는 것을
보면서 느꼈던 배신감까지는 차마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쨌거나 전 그 날 이후로 오징어 튀김은 전혀 먹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리지널>에는 꼭 들어 가 보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이대생들로 차고 넘치는 그 곳, 꿈과 희망이 있고,
미래에 대한 비젼이 있으며, 사랑과 인생과 자유와 젊음이 있는
그 곳, 아아, 해방이화와 민주연세가 만나는 그 곳.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성한의 <오리지널> 등정기를 연재할까 합니다...
#8106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13: 그곳에 오리지널이 있었네 2.. 04/05 15:58 169 line
매일 글올리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네요.
그래도 먹고 사는게 중요한 일이구, 여러분의 펜레터(?) 한 통보다는
아직은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명세표 한 장이 보다 절실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하루가 멀다고 꼬박꼬박 낙서를 올리기는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옛거나 이대동이 손님의 글쓰기를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단상>을 올리고자 합니다.
관심주시는 분, 메일보내주시는 분, 그리고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국위선양을 위해 애쓰시는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니할 말로 "내 얼굴은 철판이다"를 시도때도 없이 외치시는
남자분들이라 할지라도 오라지 여자들만 모여서 시끌벅적대는 곳에
가게 되면 당연히 주눅이 들 것입니다만, 저처럼 아예 낯짝이
광물성이 아닌 동물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남정네들이라면,
아예 여자들만 웅성웅성거리는 곳에는 차마 발을 들여 놓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였을 겁니다. 학교행사 포스터를 붙인다고
모여학교엘 찾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는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장, 또는 창가에 있다가 저희들을 보더니 온갖 괴성을
지르고, 유리창을 흔들어 대고, 난리가 아니더군요. 그 때 얼굴 한 번
못들고 그 고성방가의 현장에서 난감해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뭐 꼭 그 때의 기억때문만큼은 아니겠지만, 좌우간 떼거지로 몰려 있는
여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제게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렇게 ㉤많은
놈이 이대동엔 어케 낙서를 올리누?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낙서니깐 이 지랄을 하는 것이지 대놓구 떠들어라 하면 저는 벌개진
얼굴로 말이나 더듬다가 말겠지요. 그래도 순진한 게 죄가 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성한아, 입술에 침은 발랐냐?)
어쨌거나, <오리지널>도 제게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특히나 <오리지널>이 위치한 골목어귀는 <그린하우스 제과점>이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신촌역앞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는
이대생들이 가장 길게 돌아갈 수 있는(?) 골목길임으로 해서
대현골에서도 가장 여성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라고 갤럽조사연구소의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으며, 서울리서어치에서는 그 말이 맞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고, 1995년 4월 첫주의 이대학보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논평기사도 게재하지 않으므로서 묵시적인
인정을 한 그런 지역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지역은 대현골을 목표로 한 헌팅족들이 최우선으로 찾는
지역이며, 모두들 이 골목길에 들어서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게 웬 떡인가 하노라"를 외치는 바로 그런 곳인 것입니다.
물론 이 자들중에 몇 마리의 늑대가 "흐흐흐 하나 건졌으므로
행복하였녜라"를 외치면서 돌아갈런지는 저로서도 아는 바 없습니다.
어쨌거나 쓰잘데 없는 말이 길어졌군요. 요지는 <오리지널>에서 맘껏
튀김이라도 먹어 보고, 즉석떡볶기라도 먹어 볼라면 적어도 이대에
다니는 연인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제부터라도 보람찬 대학생활을 시작해 보겠다고 굳게 결심을 굳힌
제 스무 살의 어느 날, 저는 바야흐로 보람찬 대학생활의 제 1전제조건인
<오리지널> 등정을 위해 신발끈을 굳게 고쳐 매고 대현골로 향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힘찬 행보를 시작한 데에는 다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 날 "보람찬 대학생활을 위한 <오리지널>탐방에 필요한
파트너 확보를 목표로 하는 소개팅"이라는 거창한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서 대현골을 향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희생양이 된 그녀는
이화여대 음대 성악과에 재학중인 미모의 여학생이었습니다. 미의
기준이야 다양할터이지만 어㎎거나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만큼은
"에구 이쁜 내 딸"할 정도의 수려한 용모는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저처럼 "저게 자식이냐, 웬수냐?"하는 소리만 들으면서
불우하게(?) 성장해 온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성장배경이 다른건데요.
나이도 동갑이고 학년도 같았지만, 저는 그녀와 처음 호구조사를 하면서
재수를 해서 대학을 왔고, 비록 방위지만 병역의 의무도 마쳤노라고 온갖
뻥을 다 쳐댐으로서 그녀로 하여금 <머리는 나쁜게 나이만 많구나>하는
인상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놓았고, 옛날에 삼선교 깐돌이하면 울던
애도 웃었다는 쓰라린 과거를 고백함으로써 까불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분위기까지 조성시켜 놓았습니다.
그녀의 집은 마포구 노고산동이었으며, 그녀의 아버지의 취미는
비단잉어 기르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서울 하늘 아래가 다 내
집이며 우리 아버지 취미는 낚시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집에서는 개를 가족처럼 키운다고 하면서 자기 방에는 아주
귀여운 치와아 2마리가 동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집에 가보지를 않았기에 그녀의 방에 동거하는 개가
치와아인지 똥개인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저는 우리 집에서는
가족들이 서로를 개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개를 키울 필요는
없고, 다만 비상식량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살많고 먹을거 많은
도사견 한 마리를 지하실 입구에 비끌어 매놓고 키운다는 말은
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한식보다는 양식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했고, 저는 한식이건
양식이건 없어서 못 먹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이따금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싱가폴 슬링> 한 잔 정도는 마신다고 이야기했고, 저는
<싱가폴 슬링>이 마시는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막걸리 한 빠께스 정도는 마신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
습니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 현혹될 제가 아니었습니다. 음대생과
함께 음악이야기를 하는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질문은
질문인지라 저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를 제일
좋아한다고 이야기 해주었고, 동해물이 먼저 마를지, 백두산이 먼저
닳아 버릴지 내기나 한 번 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녀는 제 진지한 제안을 유모감각이 풍부하다며 웃어넘김으로서 인간을
아주 우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배를 타고 가다가 난파하면 옛날 애인을
먼저 구할 것인지, 지금의 연인을 먼저 구할 것인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어느 미친 놈이 옛날 애인, 지금 애인 다 데리고 배를 타겠느냐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어쩌겠느냐고
간곡히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왜 자꾸 대화가 어긋나느냐고 항의쪼로 제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가 고파서 그렇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어차피 머리가 비었으니 배라도 채우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즉석떡볶기와 오징어 튀김을 좋아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녀도
배는 고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즉석떡볶기와 오징어튀김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꼭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서 살 수는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게 인생이라고
담배를 꼬나물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무슨 착각을 했는지 웨이터를 부르고는 비프스테이크를
시키더군요. 역시 듣던대로 양보심이 많다는 이야기까지 친절히
덧붙였습니다. 즉석떡볶기와 오징어 튀김이 졸지에 비프스테이크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오리지널>엘 가보자고 잔대가리를
굴리던 저로서는 그야말로 잔대가리 굴리다 골머리가 빠개지는 그런
절망의 순간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굶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저는 오므라이스를 시켰습니다.
돌씹는 기분으로 밥을 먹었고, 그녀가 고혹한 표정으로 입술옆에 묻은
A-1 소스를 닦아내는 것을 바라 보았습니다., 저는엿같은 표정으로
이를 쑤셨습니다. 비록 오므라이스를 먹었지만 쑤셔대니 걸려
나오는 것이 적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은 금. 공연히 아까운 시간을 죽일 이유가 없었고, 저는 디저어트나
먹자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녀와 함께 <오리지널>이 있는 그린하우스
골목길엘 접어 들었습니다.
"여기서 시원한 팥빙수나 먹고 가죠"
저는 그녀를 <오리지널>로 유도했습니다.
"아니에요. 차라리 저기서 팥아이스케익이나 먹죠. 이건 제가 살께요."
그래라. 그것도 안살려고 그랬니? 니가 파트너냐, 파토내냐?
새출발 기념으로 <오리지널> 오징어 튀김을 먹어 볼려고 했던 제 소박한
소망은 그지같은 여인을 만나 완전히 파토가 났습니다. 저는 그녀를
친절하게 버스 타는 곳까지 배웅을 해 주었습니다. 지네 학교 앞이니까
당연히 지가 배웅을 해야 할 터이었지만, 그래도 매너는 매너였습니다.
다시 돌아와 <오리지널> 근처에서 하염없이 그 곳을 바라보다, 그저
힘없이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리지널> 등정을 위한 제 첫번째 시도는 허무하게
끝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저는 새출발도 못하고
오징어 튀김도 먹어 보지 못한 채 하릴없이 신촌거리를 방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좌절할 저는 아니었습니다.
<오리지널> 등정기 다음을 기대해 주세요.....
P.S. 얼마전에 이대 앞에 가보니 <오리지널>이 아니라
<오리지날>이더군요.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지극히
토속적인 발음, <오리지날>, 좋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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