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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 스크랩 학이편 제12장~제16장 해설
설중매 추천 0 조회 53 11.08.27 14: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12장>

有子ㅣ 曰禮之用이 和ㅣ 爲貴하니 先王之道ㅣ 斯爲美라 小大由之니라

유자 가로대 예의 씀이 화가 귀하니 선왕의 도가 이 아름다우니라. 작고 큼이 말미암느니라.

[본문 해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예를 쓰는데 그 가운데가 和가 가장 귀하다. 선왕의 도가 아름다운 것은 이 和가 있기 때문이며 크고 작은 것 모두가 和에서 나왔음이라. 예(體)와 화(用)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유자는 말하고 있다.

禮者는 天理之節文이오 人事之儀則也ㅣ라 和者는 從容不迫之意라 蓋禮之爲體ㅣ 雖嚴이나 然이나 皆出於自然之理라 故로 其爲用이 必從容而不迫이라야 乃爲可貴하니 先王之道ㅣ 此其所以爲美而小事大事ㅣ 無不由之也ㅣ라

예라는 것은 천리의 절도있는 무늬(글)이고, 인사의 거동과 법칙이라. 화라는 것은 종용하고 박절하지 않는(조급히 굴지 않는) 뜻이라. 대개 예의 체됨이 비록 엄하나 그러나 다 자연의 이치에서 나옴이라. 그러므로 그 씀이 반드시 종용하고 박절하게 아니하여야 이에 가히 귀함이 되니 선왕의 도가 이 그 써 아름다움이 되는 바이니 작은 일 큰 일이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느니라.

有所不行하니 知和而和ㅣ오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也ㅣ니라

행하지 못할 바가 있으니 화할 줄만 알아 화하고 예절로써 아니하면 또한 가히 행하지 못하느니라.

承上文而言이라 如此而復有所不行者하니 以其徒知和之爲貴하야 而一於和하고 不復以禮節之면 則亦非復禮之本然矣니 所以流蕩忘反하야 而亦不可行也ㅣ라 ○程子ㅣ 曰禮勝則離라 故로 禮之用이 和爲貴하니 先王之道ㅣ 以斯爲美而小大由之라 樂勝則流라 故로 有所不行者ㅣ 知和而和ㅣ오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이니라 范氏 曰凡禮之體눈 主於敬而其用則以和爲貴라 敬者는 禮之所以立也ㅣ오 和者는 樂之所由生也ㅣ니 若有子는 可謂達禮樂之本矣니라 愚는 謂嚴而泰하고 和而節하니 此ㅣ 理之自然이오 禮之全體也ㅣ라 毫釐有差면 則失其中正하야 而各倚於一偏이니 其不可行이 均矣라

상문을 이어 말함이라. 이와 같이 하고도 다시 행하지 못할 바가 있으니 써 그 한갓 화하는 것이 귀한 줄만 알고 화하는 데만 한결같이 하고, 다시 예절로써 아니하면 곧 또한 예를 회복하는 본연이 아니니 방탕한 데로만 흘러서 (예의 본체로) 돌아옴을 잃어 또한 가히 행하지 못하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예가 이기면 떠나느니라. 그러므로 예의 씀이 화가 귀하니, 선왕의 도가 이로써 아름답고 작고 큰 것이 이로 말미암느니라. 즐거움이 이기면 흐르느니라. 그러므로 행하지 못할 바가 있으니 화할 줄만 알아 화하고 예절로써 아니하면 또한 가히 행하지 못하느니라. 범씨 가로대 무릇 예의 체는 공경을 주로 하고 그 씀인즉 화로써 귀함이 되느니라. 경이라는 것은 예의 써 서는 바요, 화라는 것은 음악이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니, 유자같 은 이는 가히 예악의 근본을 통달했다고 이를만하도다. 우는 엄하되 통하고, 화하되 조절하니 이는 이치의 자연함이오, 예의 전체라. 터럭 끝만치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그 중정을 잃어 각각 한쪽에 치우치리니 그 가히 행하지 못함이 골고루함이라.

<제13장>

有子ㅣ 曰信近於義면 言可復也ㅣ며 恭近於禮면 遠耻辱也ㅣ며 因不失其親이면 亦可宗也ㅣ니라

유자 가로대 신이 의에 가까우면 말이 가히 회복되며 공순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하며 인하여 그 친한 이를 잃지 아니하면 또한 가히 종주가 되느니라.

[본문 해설]
유자가 말을 상당히 어렵게 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논어를 암만 읽어도 어렵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문구중의 하나이다. “信近於義면 言可復也”는 말과 의리를 결합하여 말한 것으로, 말을 믿음직하게 하여 그 말을 옳게 내뱉었을 때 의에 가까우면 그 사람이 말한대로 회복된 것이라는 뜻이고, “恭近於禮면 遠耻辱也”사람이 살면서 부끄럽거나 욕된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공순한 행동에 달려있다. 따라서 공순한 행동을 하되 예절에 가까운 행동을 하면 평생 살도록 치욕이 멀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그 친한 이를 잃지 아니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종주가 될 것이다.

信은 約信也ㅣ오 義者는 事之宜也ㅣ라 復은 踐言也ㅣ오 恭은 致敬也ㅣ오 禮는 節文也ㅣ라 因은 猶依也ㅣ라 宗은 猶主也ㅣ라 言約信而合其宜면 則言必可踐矣요 致恭而中其節이면 則能遠恥辱矣요 所依者는 不失其可親之人이면 則亦可以宗而主之矣라 此는 言人之言行交際에 皆當謹之於始하야 而慮其所終하니 不然則因仍苟且之間하야 將有不勝其自失之悔者矣니라

신은 약속을 믿게 하는 것이오, 의는 일의 마땅함이라. 복은 말을 실천함이오, 공순은 공경을 이룸이오, 예는 절도있는 무늬라. 인은 의지함과 같음이라. 종은 주와 같음이라. 말을 약속대로 믿게 하고 그 마땅함에 합하면 곧 말이 반드시 가히 실천함이오, 공순을 이루되 그 절차에 맞게 하면 능히 치욕을 멀리할 것이오, 의지하는 바가 그 가히 친한 사람을 잃지 아니하면 곧 또한 가히 써 으뜸이 되어 주장하니라. 이는 사람이 언행 교제에 다 마땅히 처음에 삼가해 그 마칠 바를 염려하니, 그렇지 아니하면 인습이 되어 인하여 구차한 사이에 장차 그 스스로 잃음의 후회하는 것이 있으리라.

<제14장>

子ㅣ 曰君子ㅣ 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이오 就有道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니라

공자 가라사대 군자가 먹는데 배부름을 구하지 아니하며 거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아니하며, 일에 민첩하고 말에 삼가고 도 있는 데에 나아가 바루면 가히 배움을 좋아한다 이르느니라.

不求安飽者는 志有在而不暇及也ㅣ오 敏於事者는 勉其所不足이오 謹於言者는 不敢盡其所有餘也ㅣ라 然이나 猶不敢自是하고 而必就有道之人하야 以正其是非면 則可謂好學矣니라 凡言道者는 皆謂事物當然之理니 人之所共由者也ㅣ라 ○尹氏 曰君子之學이 能是四者면 可謂篤志力行者矣라 然이나 不取正於有道면 未免有差니 如楊墨이 學仁義而差者也ㅣ라 其流ㅣ 至於無父無君하니 謂之好學이 可乎아

편안하고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 자는 뜻이 있음이 있어서 (安飽에) 미침에 여가하지 못하고, 일에 민첩하다는 것은 그 부족한 바에 힘씀이오, 말에 삼간다는 것은 감히 그 남음이 있는 바를 다하지 못함이라. 그러나 오히려 감히 스스로 옳다 여기지 말고 반드시 도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써 그 옳고 그름을 바룬다면 가히 배움을 좋아한다 이를 것이니라. 무릇 도라고 말한 것은 다 사물 당연의 이치를 이른 것이니 사람이 한가지로 말미암은 바이라. ○윤씨 가로대 군자의 배움이 능히 이 네 가지에 능하다면 가히 독지역행자(뜻을 돈독히 하고 행동에 힘쓰는 자)라 이를 것이라. 그러나 도 있는 데에서 바름을 취하지 아니하면 어긋남이 있음을 면치 못하니, 양주 묵적이 인의를 배우고도 어긋남과 같으니라. 그 흐름이 아비도 없고 인군도 없음에 이르렀으니 배움을 좋아한다 이르랴?

<제15장>

子貢이 曰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호대 何如하니잇고 子ㅣ 曰可也ㅣ나 未若賓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ㅣ니라

자공이 가로대 가난해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해도 교만함이 없으되 어떠하니잇고? 공자 가라사대 가하나 가난해도 즐거워하며 부해도 예를 좋아하는 자만 같지 못하니라.

諂은 卑屈也ㅣ오 驕는 矜肆也ㅣ라 常人은 溺於貧富之中하야 而不知所以自守라 故로 必有二者之病이라 無諂無驕면 則知自守矣나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ㅣ니라 凡曰可者는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ㅣ라 樂則心廣體胖하야 而忘其貧이오 好禮則安處善 樂循理하야 亦不自知其富矣니라 子貢은 貨殖하니 蓋先貧後富而嘗用力於自守者라 故로 以此爲問에 而夫子ㅣ 答之如此하시니 蓋許其所己能而勉其所未至也ㅣ라

첨은 비굴이오, 교는 자랑하고 방자함이라. 보통 사람은 빈부 속에 빠져서 스스로 지켜야 할 바를 아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반드시 두 가지의 병이 있음이라.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으면 곧 스스로 지킴을 아나 능히 빈부의 바깥을 뛰어넘지 못하느니라. 무릇 가로대 가하다는 것은 겨우 가하기만 하고 다하지 못한 바가 있는 말이라. 즐거워한즉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살져서 그 가난함을 잊어버리고, 예를 좋아하면 편안히 선한데 처하고 즐거워하면서 이치를 따라 또한 스스로 그 부를 알지 못하니라. 자공은 재물을 불리니 대개 먼저 가난하고 뒤에 부해서 일찍이 힘을 스스로 지킴에 썼느니라. 그러므로 이로써 물음에 부자가 대답을 이와 같이 하시니 대개 그 이미 능한 바를 인정해주시고 그 이르지 못한 바를 힘쓰게 하심이라.

子貢이 曰詩云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ㅣ라 하니 其斯之謂與인저

자공이 가로대 시에 이르기를 끊는 것과 같고 가는 것과 같으며 쪼는 것과 같고 가는 것과 같다 하니 그 이를 이름인저?

詩는 衛風淇奧之篇이라 言治骨角者는 旣切之而復磋之하고 治玉石者는 旣琢之而復磨之하니 治之已精而益求其精也ㅣ라 子貢이 自以無諂無驕로 爲至矣라가 聞夫子之言하고 又知義理之無窮하야 雖有得焉이나 而未可遽自足也ㅣ라 故로 引是詩以明之하니라

시는 위풍 기욱편이라. 골각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끊고 다시 갈고, 옥석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쪼고 다시 가니 다스리는 것을 이미 정하게 하여 더욱 그 정함을 구함이라. 자공이 스스로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음으로써 지극하게 여겼다가 부자의 말씀을 듣고 또한 의리의 무궁함을 알아 비록 얻음이 있었으니 가히 문득 스스로 족하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이 시를 인용하여 써 밝혔느니라.

子ㅣ 曰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ㅣ온여

공자 가라사대 사는 비로소 가히 더불어 시를 말하리로다. 저 감을 가르치니 옴을 아온여!

往者는 其所己言者요 來者는 其所未言者라 ○愚는 按此章問答이 其淺深高下를 固不待辨說而明矣나 然이나 不切則磋無所施요 不琢則磨無所措니라 故로 學者ㅣ 雖不可安於小成이나 而不求造道之極致하며 亦不可騖於虛遠이나 而不察切己之實病也ㅣ니라

왕이라는 것은 이미 말한 바요, 내라는 것은 말하지 않은 바라. ○우는 이 장의 문답이 그 얕고 깊고 높고 낮음을 진실로 변설해서 기다리지 아니해도 밝아지나 그러나 끊지 않으면 닦는 것을 베풀 바가 없고 쪼지 않으면 가는 것을 둘 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비록 가히 조금 이루는데 편안하지 아니하나 도의 극치에 나아감을 구하지 아니하며, 또한 가히 허무하고 먼데 치닫지 아니하나 몸의 절실한 실제 병을 살피지 않느니라.

<제16장>

子ㅣ 曰不患人之不己知오 患不知人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사람 아지 못함을 근심할 지니라.

尹氏 曰君子는 求在我者라 故로 不患人之不己知요 不知人則是非邪正을 或不能辨이라 故로 以爲患也ㅣ니라

윤씨 가로대 군자는 구함이 나에게 있음이라. 그러므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한다고 근심하지 말고, 남을 아지 못하면 시비 사정을 혹 능히 분별하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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