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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27:1-36) 물 국수와 하나님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참 좋은 아침입니다. 말씀으로 드리는 오늘의 번제 에스겔서 27장으로 함께 합니다. 1-36절로 기록되었는데 우리는 1-6절을 같이 읽습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
3. 너는 두로를 향하여 이르기를 바다 어귀에 거주하면서 여러 섬 백성과 거래하는 자여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4.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5. 스닐의 잣나무로 네 판자를 만들었음이여 너를 위하여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다 돛대를 만들었도다
6. 바산의 상수리나무로 네 노를 만들었음이여 깃딤 섬 황양목에 상아로 꾸며 갑판을 만들었도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중심으로 <물 국수와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여러분! 1945년에 해방이 되고 3~4년 후쯤 되었을까요? 경상남도 김해에 18살 된 어떤 처녀가 시집을 갑니다. 시집가서 잘 살다가 그만 10년 만에 남편이 먼저 죽게 됩니다. 남편과 사별한 청상과부가 된 28살 과부가 친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28살 된 청상과부로서 친정에 와서 몸 붙여 살기가 너무 민망하고 죄송스럽습니다. 더군다나 그 당시 사회 속에서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결심을 하고 물 국수를 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52년 동안 지금까지 물 국수 하나만을 1959년부터 시작해서 팔고 있습니다.
그 메뉴가 너무 지루하셨는지 왕, 곱빼기, 보통, 메뉴판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물 국수 하나 파는데 왕 물 국수 4000원이고, 곱빼기 물 국수 3500원이고, 보통 물 국수 3000원입니다.
물 국수 하나 팔면서 52년이 되었는데 지금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항상 10분 내지 20분씩 기다려야 먹는 곳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땅에 지금도 저 남쪽 경상남도 김해시 한쪽 구석에 간판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여름에 치는 발 있지 않습니까? 그 발에다가 페인트로 뿌려서 "대동 할매 국수"라고 동네 아저씨한테 시켰든지, 너무나 조야한 글씨로 발을 내린 게 그게 간판입니다.
동네 한 가운데 있어요. 대한민국에 국수 명가로 우뚝 서게 됩니다. 청상과부가 28살부터 since 1959부터 50년이 넘도록 물 국수 하나만 팔아서 국수의 명가가 되었습니다.
자세한 주변 사항을 제가 모르니까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만, 추측컨대 이 대동 할매 국수의, 할머니께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한 일은 없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자식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28살 청상과부로 올 때 자식이 딸려왔는지 모릅니다. 할머니의 주변상황을 누가 아는 분 있으면 저희 카페에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물 국수 하나로 52년을, 도대체 28살 청상과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 세상이 아닌 세상에서 국수의 명가가 되기까지 오직 이 한가지만을 팔았습니다. 국수 사진보니까 별거 아니에요.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고 하는데 고명이라고 해봐야 부추 삶아서 올려놓고 노란 단무지 채 썰어서 올려놓고 땡초 다진 것 올려놓고 깨소금 올려놓고 양념장 올려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육수예요. 얼마나 멸치 국물을 짙게 했는지 그 육수에 별명이 붙었어요. 곰국이라고. 멸치 곰국이라고 해요. 굉장히 진하게 달이는 모양이에요. 그걸 10분 20분씩 기다리면서 먹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선민이 뭐하는 사람입니까? 평생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하나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물 국수 하나로도 청상과부가 50년을 넘게 잘 살고 대한민국 땅에 국수의 명가를 하나 탄생시켰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이 물 국수만 못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선택하셨습니까? 많은 사람은 돈 벌이, 가정 문제, 온갖 삶의 영역들의 문제들을 관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선택하신 이유는 '오직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 이름 하나만을 사랑하고 이름 하나만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이름 하나만을 과제로 삼고 살아라.'고 하시는데 이게 선민이에요. 물 국수 하나로도 너끈히 일평생을 성공적으로 사는데, 하나님의 이름 하나만 가지고 산들 못 먹겠습니까? 못 마시겠습니까? 못 입겠습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돈이 없어 못하겠습니까? 문제는 이렇게 믿는 선민이 없다는 것이에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하나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것을 일평생의 유일한 과제로 삼으면서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선민들이 다른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른 비전을 갖게 되었고 다른 관심사에 마음이 쏠리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만민에게 열려있는 만민의 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게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이 존재했습니다. 그 안에 성전을 모시고 있으면서.
그런데 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선민의 꿈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선민의 비전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평생 성전에 임재하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면 되었어요. 그 이름을 자랑하고 그 이름을 사랑하고 그 이름 때문에 살고 그러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선민의 관심사가 바뀌어 버렸어요. 바벨론이라고 하는 외부의 힘으로 깨어지기 전에, 선민들 스스로가 예루살렘이 만민의 문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되는 여호와의 이름만을 가지고 살겠다는 선민으로서의 정체의식을 포기해버리면서 이미 깨져버린 겁니다. 그 빗나간 선민의 비전, 왜곡되어진 선민의 비전을 가장 완벽하게 이룬 나라가 그 당시에 바로 두로였다는 거예요. 변질 된 선민의 비전을 가장 완벽하게 이룬 곳이 두로였습니다.
이 두로의 상황이 오늘 27장 우리가 읽지 않은 부분에 보면 아주 구구절절 나옵니다.
우리가 읽은 부분 처음 1절과 2절에 애가를 부르라고 하시기 전에, 그 애가를 부름이 의미가 있게 전달되기 위해서 두로가 얼마나 아름답고 잘 살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과정 중에 3절에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5절부터 11절까지는 두로를 아름다운 화려한 배가 건조되어지는 장면으로 비유하면서 그 두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타이타닉호가 건조되어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그 당시에 구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답고 비싼 재목들을 다 가지고 와서 배를 건조합니다. 그게 바로 두로였다는 거예요. 그렇게 아름답게 건축되어진 게 두로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12절부터 25절까지는 정말 수없이 많은 나라와 민족들과 교역을 했던 그 교역 내용들이 무역 되었던 품목까지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자세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걸 대충 읽어봐도 어느 정도로 두로가 잘 살았는가 하는 것을 어느 정도로 두로가 지중해를 장악하면서 해상 무역로를 통하여 떼돈을 벌어들였는가 하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어요. 마지막 25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다시스의 배는 떼를 지어 너의 화물을 나르니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매우 크도다”라고 합니다. 그 당시 어떤 도시나 어떤 국가도 누리지 못한, 물질적 풍요를 극에 달하도록 누린 것이 두로였습니다.
그런데 선민의 비전이 두로가 누리던 물질적인 풍요였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왜 몰라요? 이세벨이 엣바알의 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로의 왕 이름이 엣바알이에요. 바알이 중심이 돼서 종교생활을 했던 나라가 두로입니다. 바알이 풍요와 다산의 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에 바알 숭배와 아세라 숭배가 만연하게 됩니다.
풍요와 다산의 우상을 온 나라 안에 가득하도록 숭배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들의 소원이 뭐고 꿈이 뭐고 비전이 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두로가 이룬 그 물질적인 풍요입니다.
지중해를 장악함으로서 돈 때문에 만민을 향해 열려있는 만민의 문으로서 두로가 벌어들인 그 돈과 물질과 풍요로움이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선민의 꿈이었습니다. 그 선민의 꿈을 두로가 완벽하게 이루어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완벽한 풍요를 이룬 두로가 한 순간에 망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애가를 부르라는 겁니다.
여러분! 진짜 애가를 불러야 될 대상이 무엇입니까? 이방인 나라인 두로가 선민의 비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진짜 애가를 불러야 될 대상이었다는 겁니다. 진짜 마음을 찢고 슬퍼해야 할 것은 두로가 이방 나라요, 바알 숭배 우상에 젖어있는 나라인데 그 나라가 바로 선택받은 백성들의 소원을 모범적으로 이루어냈다는 그 사실이 슬프고, 슬프고, 슬픈 일이라는 겁니다. 선민이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을 두로가 이방인 나라로서 이루었기 때문에 배가 아프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방인도 이룰 수 있는 그런 비전과 꿈과 소원을 선택받은 백성들이 가질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선민의 꿈과 비전은 절대로 이방인은 가져서는 안 되고 가질 수도 없고 이룰 수도 없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이방인들의 꿈은 혹시 하나님의 뜻이 계신다면 선민에게 이루어 질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 이 부귀와 영화는 진시황도 원했던 것이고 세종대왕도 원했던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다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솔로몬에게 허락을 하십니다. 이방인들이 원하는 것이 선민에게 뜻이 해당 될 경우에는 이루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어떻게 선민이 갖는 비전이 이방인이 이룰 수 있는 그런 비전일 수 있느냐는 겁니다. 개탄하고 통탄하고 정말 오호통재라 가슴을 치며 슬퍼해야 할 일이 이 일이라는 거예요. 두로가 망한 게 슬픈 것이 아닙니다. 두로도 예루살렘이 살아야 두로도 살았어요. 예루살렘이 망하니까 두로도 망하는 겁니다. 만민의 문인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로에 강력하게 전해야 됐었는데, 돈 때문에 열린 만민의 문인 두로에서 부터 바알 숭배가 예루살렘 안에까지 들어와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결국 두로도 망하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여러분의 꿈이 이건희씨가 이룬 것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이건희씨가 여러분의 꿈을 모범적으로 이룬 것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럴 수 없어요. 선민의 꿈은 절대 불 신앙인이나 이방인이 이룰 수가 없어야 그게 선민의 꿈입니다.
우리의 꿈은 뭡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하나로 이 세상을 이기며 사는 것이에요. 이게 우리의 꿈이에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존재의 의미와 당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에게 집어넣어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십자가 그 하나를 가지고 사는 것이 선민이라는 거예요. 대동 할매 국수의 할머니가 물 국수 하나로 52년을 살아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주님의 십자가 그 하나로 이 세상을 너끈히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대동 할매 국수집 할머니보다 어떻게 그 물 국수로 산 삶보다, 십자가 하나 붙잡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 한 메뉴만 일평생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자랑하며 사는 것이 왜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믿으세요. 여러분! 십자가 하나면 된다는 것을.
우리 꿈이 뭡니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십자가에 온전히 연합하여 죽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십자가의 증인이 될 것인가? 주님의 십자가에서 약속 되어진 모든 약속들에 대한 증인이 되어 질 것인가입니다.
십자가로 사는 게 뭐예요?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 돈 때문에 동분서주 할 때, 급하면 급한 대로 주차장 차 안에서 아니면 화장실로 찾아들어 가서라도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돈 문제의 개가 나를 쫓아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내 마음이 가게 해주세요.’
여의도 증권가 화장실에서 기도하는 겁니다. 종로 한 복판 종각 옆에서 조용히 도로 반대편에 서서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이 세상에 죽게 해주셔서 아버지 계신 하늘로 지금 내 마음이 올라가게 해 주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모든 문제들 욥에게서 일어난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 다 떨어져나가게 해주세요. 그래서 오직 아버지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아무것도 마음에 담은 것 없이 아버지와 대면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할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가 놔두고 등지고 아버지께로 가느라고 다 떼어버렸던 이 세상 모든 것들 위에 천국이,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건강 문제도 마찬가지고, 가정 문제도 마찬가지고, 십자가 하나로 살아가는 겁니다. 십자가 하나로 살아가는 거예요.
물 국수와 하나님, 물 국수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3000원 짜리 물 국수, 그 경상남도 바닷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멸치 가져다 푹푹 삶아서 만든 육수에다 말아주는 그 물 국수, 부추와 단무지 채 썰어 올려놓은 물 국수, 양념간장 타서 먹는 물 국수, 그것으로도 52년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교회에서 목회할 때 참 많은 남자 성도님들을 보았습니다. 큰 꿈과 야망과 열심과 생에 대한 충성과 성실과, 제가 볼 때 대동 할매 국수집 할머니보다 돈 더 많이 번사람 많지 않아요. 제가 아는 백 사람 중에 두 사람, 세 사람도 대동 할매 국수집보다 돈 많이 못 벌었어요. 그렇게 큰 비전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젊었을 때부터 계획을 몇 번 세웠습니까? 열 번, 스무 번, 백 번? 소용없어요. 그 당시 부산은 모두가 다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 바람에 다 휩쓸려 갈 때입니다. 아무도 물 국수 따위를 쳐다보지 않을 땝니다. 28살 청상과부가 그저 잘 될 거라는 생각도 못한 채, 할 일이 없어서 국수 말아주기로 결정하고, 국수 말아서 팔기 시작한 거예요. 그 때 3000원 이었겠습니까? 몇 원이었겠죠. 1원, 2원 했을까요? 그리고 52년 동안 대한민국 국수의 명가로 서게 됩니다. 28살에 국수로 결정한 거예요.
우린 늦었어요. 빨리 십자가로 결정합시다. 십자가로 사는 방식이 있고, 국수 한가지로 팔기 위해 사는 방식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바닷가에 가서 멸치 사옵니다. 삶습니다. 부추 사서 올려놓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것처럼, 십자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게 뭐예요? 식모 누나의 원리요, 욥의 원리요, 백합화의 원리요, 전동버스의 원리입니다. 주기도문 할 때 다 했잖아요. 그거 한 가지로 사는 거예요. 십자가 붙잡고. 십자가 하나 붙잡으면 다 돼요. 물 국수 하나 붙잡아도 다 됐는데, 십자가 하나 붙잡고 안 될 리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외아들이시고 영원하신 영존하신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사건이 오늘 일어났어요. 성 금요일에. 그 사건 하나면 됩니다. 무슨 문제든지 그 주님의 십자가에 붙잡고 연합하여 함께 죽으면 된다는 거예요. 물 국수와 하나님, 물 국수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여러분! 기억하세요.
힘없고 빽 없고 후원자 없는 28살 청상과부가 물 국수 하나로 국수의 명가를 이루어냅니다. 지금도 아무것도 없어요. 오직 왕 물 국수, 곱빼기 물 국수, 보통 물 국수 밖에 없어요.
우리에게는 주님의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아버지가 계시고, 선물로 받을 성령님이 계십니다. 이 하나로 평생을 살기로 결심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도 신앙의 명가가 될 수 있을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오늘 성 금요일,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금요일입니다. 물 국수 하나로 평생을 명가로 일구어낸 할머니처럼, 우리도 이제 십자가 하나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결심할 수 있게 우리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아멘!! 오직 십자가만 붙잡고 살겠나이다.
하나님의 명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