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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수가 좋다오(2091.2021.7.11)
잠4:1-9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힘을 얻는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상주에 계신 목사님이 5월20일 오후3시20분에 전화를 주셔서 받았는데 목사님 카페에
백두산도 다녀오셨네요 해서 성도들과 함께 중국으로 해서 백두산으로 두만강가서 북한을 보고 통일기도회도 다녀왔다고 했더니 자기는 아직 못 가보았다고 그래서 제가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한라산도 가고 울릉도 독도도 가고 많이 다니고 있는데 아직 금강산을 못 가보았는데 갈 기회가 되어지면 성도들과 함께 금강산도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금강산은 못가도 노래는 부를 수 있습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이름도 아름답고 신기하구나’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소떼와 금강산 그리고 잠수정 사건으로 한동안 희비가 엇갈리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금강산을 구경갈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길이 열려서 금강산을 구경하고 돌아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단절이 되었지만 또 가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도 금강산 가는 길이 열리면 함께 가기를 바랍니다. 백두산도 다녀오고, 한라산도 다녀오고, 울릉도도 다녀왔는데 금강산도 가리라고 믿어봅니다. 오래전에 정주영씨가 5백마리의 소떼를 몰고 3.8선을넘어 북한으로 들어가서 고향땅을 둘러보고 금강산을 구경하고 우리들의 꿈인 금강산 구경을 이룰 수 있다는 선물을 분단 53년만에 안고 돌아왔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꿈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그것은 소떼를 선물한 우리에게 잠수정이라는 것을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금강산을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습니다. 우리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다가 금강산을 구경갈 수 있다면 한 번 가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믿는 성도들은 성지순례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금강산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에 비해서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면 더욱 좋겠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세상에 살고 있는 그런곳도 너무 좋아서 그곳에서 살았으면 하는데 그곳보다 더 좋은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도 생각하시고 예수제일 주의로 신앙생활 하며 살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교훈을 아들에게 전해줍니다. 그것은 지혜를 사랑하고 지키면 그 지혜가 너를 보호하고 영화롭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스승이 되어 자녀에게 지혜를 가르칩니다. 아버지가 전하는 지혜는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한때 그도 어리고 젊은 시절이 있었고, 그의 부모에게서 지혜를 배워 여기까지 지혜가 이끄는 축복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자식에게 어떤 삶이 생명이 되는지를 분명히 말해 줄 수 있습니다. 내 말, 내 명령은 단지 아버지의 사견이 아니라 대대로 이어져 온 하나님의 말씀, 곧 지혜입니다. 이 지혜를 주는 교회와 가정, 이 지혜의 언어를 가진 부모가 되게 해달라고 구합시다.
아버지는 지혜를 행한 태도와 그 유익을 설명합니다. 지혜와 명철을 얻고, 사랑하며, 절대 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지혜를 붙들면 나중에는 그 지혜가 나를 붙들어줄 것입니다. 내가 지혜를 사랑하고 지키면, 그 지혜가 나를 지켜줄 것입니다. 지혜는 내가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온 몸으로 체득하게 해줍니다. 참된 신앙교육은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덜 가치 있는 것을 내려놓으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이것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혜를 위해 희생하고, 스스로 고난을 취하는 것을 우리 자녀가 보았습니까?
여인을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듯 지혜를 대하면, 지혜도 신부가 신랑을 단장하듯 우리를 존귀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며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워줄 것입니다. 자신을 제일로 여기는 자를 제일로 섬겨주는 신부처럼, 지혜도 우리를 제일로 여겨줄 것입니다. 그러니 집안과 학벌과 소유로 우리를 단장하려는 이 세상을 품에 안은 채 거짓 만족에 취해 살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가 제일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이 제일 좋습니다. 충청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시골띠기 꼴띠기를 건져주셔서 청년때에 서울 북성교회에서 어린이 전도로 노방 전도 많이 하게 하시더니 목사가 되어서 청소년부흥사로 한참 쓰임받다가 상주감리교회로 보내주셔서 여러분들과 20년 넘게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힘쓰게 하고, 감리교의 꽃이라는 감리사도 8년전에 역임 하게 하고, 상주시 총기독교연합회 회장과, 성시화운동본부장도 하게 하시고, 상주경찰서 경목도 2005년도부터 지금까지 하게 하시고, 경북 성시화 운동본부 부회장도 하게 하시고, 회장은 돈이 많이 들어가서 안했습니다.ㅎㅎㅎ
금년에 삼남연회 협성대학교동문 회장도 하게 하시고, 협성대학교 신학동문회 수석부회장으로 추천이 되어서 수락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이 대표기도 할 때 마다 삼남연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목사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앞으로 두 개가 더 있습니다. ㅎㅎㅎ 맞습니다.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삼남연회 부흥단장이 되는 것이 하나 있고, 연회 감독이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부터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라서 ㅎㅎㅎ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져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면 그것도 주시는대로 하면 될줄로 믿습니다. 돈이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협성대학교 수석부회장이니 다음번에 당연하게 회장이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회장하려면 이천만원 내야 하므로 지금 회장님 도와서 일만 열심히 하고 이년후에 생각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예수 제일주일 주의로 살아가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제일 좋습니까? 예수 없이는 하루도 살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제일로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권력, 명예, 학벌, 가문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제일로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가문과 그의 배경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복음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감옥에서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좋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빌3:5-9절‘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리고 골1:24절‘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모세도 포기했습니다. 히11:24-26절‘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했습니다. 모세는 예수를 본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1,500년전부터 예수를 위하여 능욕을 받으며 예수의 길을 모세는 닦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기에 능히 고난도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바울도 예수님 때문에 좋은 것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외에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만 좋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좋은 것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너무나 예수가 좋았기에 예수외에 다 버릴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제일로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제일로 여기고 있습니까? 육체에 속한 것들은 꽃 처럼 피었다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이세상의 것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렇게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도 전1:2절에 보면 짧은 구절속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5번이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귀영화를 누렸던 왕도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로마의 시저도 27군데 칼에 찔려 쓰러지면서 그 암살단에 친구가 끼어 있는 것을 보고 ‘세상에는 친구가 없구나’라며 탄식하고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제일로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가 제일입니까? 예수를 제일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좋은 것을 어떡합니까? (찬송: 예수님이 좋은걸 어떡 합니까? 정말 좋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좋습니까?
본문 7절에 보면 ‘지혜가 제일이니’했습니다. 앞절에서는‘그가, 그를’이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단어를 인격자로 지칭을 했습니다. 이는 곧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즉 예수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사1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위에 강림 하시리니’라고 말함으로서 지혜는 곧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오늘 드려지는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도 바꿀 수 없는 분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분입니다. 그 분을 제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예수 제일주의로 살기를 바랍니다. 예수 제일주의로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예수 보다 귀한 것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제 예수를 제일주의 살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서 인생을 성공의 길로 이끄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인생을 성공의 길로 걸어가보시기를 바랍니다. 지식은 배워서 되지만, 지혜는 배워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지혜를 구해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약1:5절‘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로 배워서 되로 풀어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이 배웠어도 응용을 하는데는 둔한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은 많지만, 지혜롭지 못해 무용지물인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반면, 되로 배워 말로 풀어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식은 작지만 지혜가 풍부한 것입니다.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지식이 습득한 정보라고 한다면 지혜는 이것을 삶 속에 적절히, 그리고 때에 따라 잘 활용하여 많은 유익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많다하여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며, 지식이 적다하여 지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할머니의 놀라운 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지혜를 얻으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솔로몬이 최고의 통치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지혜가 준 혜택이었습니다. 스데반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부어주셔서 사용하셨습니다. 지식을 소유하기는 쉬워도 지혜를 갖기는 어렵습니다. 참된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소유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면, 지혜가 우리를 보호합니다, 지혜가 우리를 지켜줍니다. 지혜가 우리를 영화롭게 할 것이며, 지혜가 우리를 성공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습니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고, 그 어떤 것에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지혜의 우편에는 장수가 있고, 좌편에는 부귀가 있습니다.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평강의 길이며,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입니다, 축복입니다(잠3:13-18). 그러므로, 지혜를 얻읍시다. 지혜의 귀중성을 깨달읍시다. 지혜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기에, 우리에게 그렇게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일까요?
지혜는 판단과 선택을 잘 하게 해줍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것을 기특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줄꼬 하고 물으셨습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을 잘 재판할 수 있는 분별력을 달라고 했습니다(왕상 3:9). 이 때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물질과 부귀까지 허락하셨고 이후 솔로몬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대접받았습니다(왕상4:30). 분별력을 갖춘 솔로몬은 모든 재판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었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왕을 두려워했습니다. 왕상3:28절‘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하나님의 지혜가 주는 통찰력이 아니고는 급변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말에 분별력을 줍니다. 잠12:18절‘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지혜로운 자는 그 말에서 지혜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말이 지혜로운 자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듣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속이는 영과 진실한 영을 분별합니다.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영들 분별의 은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듣는 것과 말하는 것에 분별력이 있으며, 그 입에 참된 말이 있습니다.
지혜는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줍니다. 시119:98절‘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원수보다 지혜롭다는 말은 원수보다 더 생각이 앞서 있다는 뜻입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앞을 내다봅니다. 더 멀리까지 생각할 줄 압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 보고 대처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지혜의 상징이 올빼미라고 합니다. 올빼미는 캄캄한 밤에도 앞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도 갖게 됩니다.
지혜는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줍니다. 인생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울려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흔히들 인간 관계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어울려 사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대인관계를 성공으로 이끕니다. 전10:10절‘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지혜는 관리에 성공하게 합니다. 마 24:45절‘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지혜는 재산을 잘 유지하게 합니다. 잠12:11절‘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지혜를 얻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지혜를 주십니다.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요셉과 다니엘과 스데반은 성령으로 충만했고, 또한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했던 인물들입니다. 단 5:14절‘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행 6:10절‘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성령님은 지혜의 원동력입니다. 우리에게 지혜의 은사를 주십니다. 고전 2:13절‘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12:8절‘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호14:9절‘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시 19:7절‘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골 3:16절‘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딤후 3:15절‘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약 1:5절‘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골 1:9절‘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고, 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며, 말에 분별력을 주며, 앞을 내다보는 눈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줍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2.예수를 제일로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6절에 나타난 말씀 처럼 ‘지혜를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지혜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잠5:7절‘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곧 지혜의 근본인 말씀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거나 소홀히 여기곤 합니다. 잠3:11절‘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그럴지라도 우리만큼은 하나님의 지혜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혜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를 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예수님은 우리 손을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손을 놓은 순간 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 하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손을 굳게 잡고 다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버렸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사람이 어떻게 이 땅위에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예수와 항상 동행하는 사람이 예수제일 주위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항상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때로는 어렵고 힘들어도 용기를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처음믿으면 참 기쁨니다. 왜 진작 예수를 믿지 않았나 하고 후회도 합니다. 그런데 은혜받고 나면 이상한 일이 생겨나기 시작을 합니다. 사업이 안되기도 하고, 몸이 아프기도 하고, 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여길 때도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을 버리시면 안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시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고통뒤에 있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6절에 그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지혜의 근본인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시119:97절‘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사랑하면 어떻습니까? 자주 읊조리게 됩니다. 시119:97절‘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그것을 얻고자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7절‘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세월이 흘러도, 시대가 변해도 항상 사랑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말세를 당하면 사람들은 딤후4:10절에 자기사랑, 돈사랑, 쾌락사랑을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을 참으시면서 자기의 물과 피를 한방울도 남기지 않으시고 다 쏟으시기 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나같은 죄인이 죽어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주시며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주셨으니 그 사랑을 받은 이 몸이 어찌 주님이 사랑스럽지 않겠습니까?
죄는 내가 짖고 죽기는 내가 죽어야 하는데 우리 예수그리스도는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 주님을 어떻게 배반 할 수 있습니까? 그 주님을 사랑합시다. (따라합시다: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 사랑해요: 찬송 411장--예수사랑 하심을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권세 많도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기도에서 ‘주여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원치 아니하나이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3번이나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습니다.(옆사람과: 주님을 사랑합시다.3번)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지혜를 높여야 합니다. 잠4:8절‘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또 무엇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지혜를 높일 것입니다.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높일 수 있길 바랍니다. 이같이 우리가 지혜를 높이면 어떻습니까? 지혜 역시 우리를 높여 줍니다.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높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8절에 ‘그를 높이라’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만 존귀히 여기고 그를 찬양하며 경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높이시면 그 분은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높잎을 받고 싶으면 예수님을 높이시면 됩니다. 예수를 제일로 여기시면 여러분도 어느 곳에 가든지 제일로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을 제일로 여기면 남편들은 밖에 나가도 제일로 여김을 받는 것이고, 남편들은 아내를 제일로 여겨주면 어디 가서도 제일로 여김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자기 남편과 아내를 깍아 내리면 어디가서도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제일로 여기면 어느곳에 가든지 제일로 여김을 받는 것처럼 우리 믿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제일로 여기고 높여드리면 주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시인 렘이라는 사람은 ‘섹스피어가 들어온다면 모두 다 일어서도록 하자 그러나 예수께서 모습을 보이면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되지’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를 가슴속에 품어야 합니다. 지혜를 품어야 합니다. 잠4:8-9절‘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지혜를 품으라고 했습니다.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품으라고 입니다. 이같이 우리가 지혜를 품으면 어떻습니까? 지혜 역시 우리를 영화롭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날마다 지혜를 품고 있습니까?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품고 있습니까?
8절에 ‘만일 그를 품으면’했습니다. 품으라고 하는 것은 소중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소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중한 것은 우리 몸속에 품고 다닙니다. 자녀들이 얼마나 소중 합니까? 그러니까 추운 겨울에 어머니는 얼어 죽으면서도 자녀를 가슴에 품고 죽습니다. 그 만큼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 소중한 것을 그냥 버리시면 안됩니다.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어디를 가든지간에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이시요 부활이신 예수를 품을 때 영원한 생명을 얻고 마지막 날 생명의 부활로 나타나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까지 우리는 예수를 제일로 여기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예수를 버리지 말고,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를 높이고, 그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것이 예수를 제일로 여기는 사람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제일로 여기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예수님을 제일로 여기고 사는 신앙인에게는 어떤 것이 주어지는가?
우리가 예수제일주의로 살고 그 신앙을 가지고 살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상을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만 감사한 일인데 주님을 제일로 여기고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철저하게 보상을 주십니다. 본문 말씀에 나타난대로 살펴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보호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보살피다. 주시하다. 지키다 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제일로 여기는 성도를 그 능하신 팔로 안아주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458장--‘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마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사실 주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오늘 여기 까지 보호 해주신 것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다. 주님이 보호해 주심만이 절대 안정과 참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제일주의로 살면 시121편에 낯의 해와 밤의 달이 모든 환난이 해치지 못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항상 우편에서 그늘이 되어서 지켜주십니다. 물가운데로 가도, 불가운데로 지날지라도 보호 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지켜 주실 것입니다. 6절에 ‘지키심’이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보호 하신다는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만 지킨다는 것은 원수의 세력에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절대 능력으로 안전케 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하나님이 지켜주는 축복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바다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잘 지키고 있다라고 했는데 북한 잠수정이 동해앞바다 까지 들어왔습니다. 잠수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시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몇년전에도 잠수정이 들어와서 그것 해결하느냐고 군인들이 얼마나 많이 죽고 힘을 고생을 했습니까? 지금 소를 보냈더니 잠수정을 보냅니다. 그래도 다행이도 하나님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다리오왕 시대에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갔지만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니까 그것이 배가 아파서 다니엘을 사자굴속에 집어넣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두려워 하지않고 배고픈 사자의 굴속에 들어가서 앉아 있었는데 하나님이 지켜 주므로 배고픈 사자가 하품만 뻐금뻐금 하고 있었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그의 세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풀부불 속에서도 하나님은 지켜 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분은 어느 곳을가든지 지켜 주실줄 믿습니다.
예수제일 주의로 사는 사람은 주님이 높여 주십니다. 8절에 보면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리라’했습니다. 바로 조금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여러분이 이 땅위에서 높임을 받고 싶으면 예수를 높이시면 됩니다. 참된 성도의 성공이라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게 되면 우리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라서 우리를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 있을지언정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신다고 신28:13절에 약속을 하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9절‘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했습니다. 이런 면류관은 예수를 제일로 여기는 사람에게만 주는 것입니다. 이 면류관은 예수를 가슴에 품고 오직 예수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 신앙으로 산 사람에게 저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이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그러므로 이 면류관을 우리는 다 받아 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오늘부터라고 예수를 제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돈보다도, 권력보다도, 명예보다도, 자식 보다도 더 귀한 분인 것을 믿으시고 예수그리스도를 제일로 여기시면 주님께서도 가만히 계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 하시며 높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를 제일로 여기고 예수만 자랑 하십시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몸속에서는 항상 살아계신 예수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세상 부귀와 영화와 행복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내 대신 돌아가신 주님의 그 사랑 그 누구도 뺏앗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면 용기가 생겨납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면 능력이 생겨납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면 평화가 넘쳐납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면 기쁨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니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제일주의로 난 예수가 좋다오 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가 제일로 좋습니까? 그분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사랑의 표시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표시하지 않으면 짝 사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짝 사랑은 백날 해보아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선물도 주고 기뻐하고 즐거워 하도록 해주는 것처럼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은혜주시고 복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그 고백의 표시를 해야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중에는 물질도 있겠지만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주님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제일로 여기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의 삶속에서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영혼구원을 통하여 주님앞에 사랑의 표시를 하면서 예수가 제일좋다는 믿음으로 삶에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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