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陵里 팽나무
류윤모
지나간 일은 다 부질없는,
뜬 구름 같은 것
훅 불면 날아갈 듯
상흔 같은 낮달이
정수리에 걸려도
이젠 무심해질 나이
생의 절정도,
마음을 얻으려던
안타까운 직진도 반납하고
심장에서 끓던
뜨거운 피마저 삭여낸,
주춧돌 같은 무르팍으로
스스로를 다스린
색을 버린 노화는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던
세월의 편린마저도
허공이나 응시하며
묵묵히 견디는
거대한 침묵의 면적
어린 눈으로 우러르던
세월의 거울에 비춰
일 만권의 책보다 무거운
고독의 자서전을
어느 깊은 눈 있어
속속들이 다 읽고 가는가
사위四圍가 잠든 깊은 밤
낡은 세월이나
삐그덕 거리며
온몸으로 우렁우렁 우는
천년 고목의 속울음을
잠 못이루는 어느 귀 있어
들어는 보았는가
구도자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제 안을 들여다보는
웅숭깊은 심연
청동빛 거무튀튀한
팽나무 한 그루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인기척조차 없는
빈 골짜기의 적막을 다스린다
포항 물메기탕
류윤모
허구헌날 술 텀벙 물 텀벙 셈 속없이 살아가는 벗이 있다면
"왜, 왜, 어딜 가자고…". 하는 말대꾸조차도기차표 속에 밀어 넣고는
후줄근한 입성 그대로 "따라와, 가보면 알아"
겁에 질린 표정까지도 은근짜로 즐기며
호미자루에 위태 위태 걸린 포항이라는,
낡아가는 항구까지 덜커덩 덜커덩 가보는 거라
게 가서 손금처럼 갈라진 비린내 나는 골목을
어깨동무하고 갈之 자로 휘적휘적 걷다가는
만만한 물 메기탕 간판 속으로 입수해 버리는 거라
"여기 물 메기 탕 大 자 하나에 쐬주 일병" 하고
호기 있게 시키면
그제 사 사태를 파악한 우리 술 텀벙 물 텀벙께서도
입이 바지게 만하게 벌어지겠지
오가는 길손들의 고단한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삐걱거리는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손 등 툽툽한 주모가 가마솥에 설설 끓는
흐뭇한 토막토막을 텀벙텀벙 건져
인심까지 철철 넘치도록 담아내 오겠지
큼직큼직한 물 메기 허벅 살덩어리에
알싸한 대파 숭숭 비주얼 좋게 띄운
고춧가루 팍팍, 국물까지 후루룩 거리다보면
일찍이 일손을 놓고 실의에 빠져 지내던
우리 술 텀벙 물 텀벙 께서도 눈물 콧물 지분거리시겠지
세상살이에 어혈 든 만만한 벗들
혹독한 겨울추위를 한 방에 날려버릴
올 겨울 포항 가서 물 메기탕 한 뚝배기 어떠신지
빙어 회라니
류윤모
육식 동물의 뼈처럼
딱딱한 얼음 붕대로
결박 당했던 은자의 영혼 같은 ,
골짝 골짝 졸졸졸
물소리로 빚어낸 초식의 언어를
꼼지락 거리는 활자로 변환했을지도 모를 ,
비등점아래 얼음장 밑에서만 생멸하는
형상 기억의 착한 수평들.
시린 몸에 거짓 없는 마음을 섞어
창백한 제 안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
창자 속 죄 마저 까뒤집어
투명하게 보여주는 시간의 뼈.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는
공룡 발자국 소리에도 자지러졌을
이 천진난만을,
간에 기별도 안 갈 이 어린 것을
무슨 대단한 먹을거리라고 초고추장 찍어
유리잔 깨부수듯 한 입에 잔인하게 으깨 버리는
육식동물의 야차 같은 식욕이란 참.
늪의 약력
류윤모
1억 4천 만년전부터 지구상에 현존햇었다는기원의
우포늪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한결같은 신의 사랑으로
온갖 식생을
청태낀 질척거리는 눈동자 속에
품어 길러온 우주의 자궁
태초부터
생성과 소멸의 먼 길을
심장 박동으로 걸어왓으니
놀라워라
어림할 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도
명쾌히는 측량해 낼 수 없는
먼먼 우레같은
세월의 깊이
생각해보면 동식물 간에
살가운 제살 같은
물로 빚지 않은 것이 그 무엇인가
물버드나무 그늘에서 제 풀에 놀란
쇠물닭이 푸르르 날고
달개비 풀 사이 물뱀이 스르르
자취를 감추는 데도
그린 듯이
뜷어질 듯
수면만을 응시하는 저 왜가리의 포즈는
허공 한자락 접어 만들었든가
동식물 간에
물의 산물 아닌 것이 그 무엇이던가
거대한 늪을 가득 채운
공존 공생의
함께 출렁거리는 양수
눈 속에 푸른 늪을 새겨
녹내장하는 나 또한
한 방울의 물로 빚은 염색체
손 잡고 걸어가는 한쌍의
저 젊은 아베크족도
이 거대한 생태의
모자이크 한조각이 아니든가
창조주의 뜻대로
서로 품어 웅숭 깊이 사랑하라는,
고등어
류윤모
제 어미 뱃속에 염장이나 지르던
집 나간 자식
마침내 어미 소원인
등 푸른 고등어 족이 되어
찾아왔건만
임종도 못한
즐비한 생선 목판의
저 눈들은 누가 감겨 주나
돈 벌이가 더 좋다는 꼬임에
이승을 버리고 저승의
목 좋은 자리로 옮겨갔나
비가 오나 눈나 오나
한 겨울 곱은 손으로
공꽁 언 고등어 배를 갈라
내장 긁어내고
숭덩 숭덩 토막쳐
검정 비니루에 척척 담아 건네던
툽툽한 손등
생선 목판 하나로
아들 좋은 대학 보내고
행세깨나 한다는 집에
장가 보낸 보람을
주위에 자랑삼던
자부심의
먹물깨나 든 그 하늘같은 자식
좋은 집안에 장가들어
처가에서 장사치라며 멸시하고
똑 부러지는 마누라 눈치코치에
언제부턴가
생선 냄새에 촌티 풀풀 풍기는
제 어미를 짜증부리며
가뭄에 콩 나듯
발길조차 뜸했었다네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근심걱정 나누어온
피붙이 살붙이같은 시장 이웃들에겐
자식 하나 잘되었으니 여한이 없다고 ..
뒤늦게 부음을 받고
손톱깎기 하나 사들고 찾아든
그 잘난 자식
가여운 우리 엄니
손톱 자랄 새도 없이 닳아 없어져서
평생 이 손톱깎기 한번 써본 적이 없다고
창자를 끊듯
토막토막 흐느껴
주인 떠난 생선 목판 앞에 뒹굴며
몸부림치건만
그게 다 무슨 소용
그러게 있을 때 잘하라 않던가
저승에서나 자랄 텐가 그 손톱
자식 학자금 보낸다고 밝게 웃으며
꼬기 꼬기 치마 말기에 구겨 넣던
비릿한
눈 먼 돈
물가면 팔수도 없는데 ~
주인 떠나 떨이 못한
생선들의 저 부릅뜬 두 눈들은
어느 손이 일일이 덮어 감겨 줄텐가
뒤늦게 찾아든
오매불망 그 잘난 자식이 감겨 주고 갈텐가
첫댓글 제 집옆에 싱싱한 가락동 수산시장이 있습니다.
집에서 걸어가도 10분 안팎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니
후각이 좋은 저에겐 여름날이면 멀리서 비릿한 생선냄새가 느껴지기도 하는 곳입니다.
오늘 류 시인님 글을 읽다가
수산시장 안에서 살아 숨쉬는 싱싱한 생선들이 팔딱이는 이야길 듣는 것 같습니다.
귀한 시를 읽을 수 있는 행운과 행복을 나눠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밑에 남겨주신 주소는 핸드폰에 꼭꼭 눌러서 저장을 해두겠습니다.
지금 류 시인님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적어놓고보니 선생님이 어제 저녁 제게 주신 전화를 지금 봤습니다.
어제는 일찍 퇴근을 했었는데, 이상하게 잠이 쏟아져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습니다.
조금 전 자정을 넘긴 시간에 잠깐 제 방에 들어와 컴을 열어보다가 폰에 선생님 전화를 주셨던 걸 이제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깊은 밤이라 전화를 드릴 수 없으니 내일 전화를 드려야겠네요.
처음 주신 전화를 그냥 허공애 흘려버렸으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오늘은 편히 주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