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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시간을 낼 수 있어 묻어 두었던 백두대간 한 구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제 백두대간도 두 구간만 가면 끝이 난다.(이 산행으로 태백산구간 하나만 남게 된다.) 2005년 10월말쯤 처음 시작하여 진행하는 중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진작 끝낼 수 있었겠으나 다른 산행에 밀려 완결이 자꾸 지연되어 왔다. 그러나 늘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한 구간씩 좁혀 왔고 이제 드디어 대미가 보인다. 이번 구간은 삼마골재에서 시작하여 석교산을 지나 우두령으로 이어지는 평이한 구간으로 서울에서는 제법 먼 구간이다. 따라서 자세한 실행계획을 짜야 한다.
해인산장에 숙소를 예약하고 기차표를 인터넷으로 사고 김천에서 부항행 시내버스시간을 확인하고 산행기를 읽어보고 지도를 인쇄하는 등 필요작업을 하다 보니 토요일(4월 25일)의 오전은 너무도 빨리 간다. 산행준비에 젖어있는 이 시간은 정말로 재미가 있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다. 금방 12시가 된다. 외출한 아내가 나가기 전에 차려 놓고 간 밥상의 밥을 부리나케 먹고 배낭을 지고 등산화 끈을 맨다.
4월 25일 12시 20분, 집을 나섰다. 문제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인데 차차 좋아진다고 하니 그냥 떠나기로 한다. 더 이상 백두대간을 미루기는 싫어 비가 오더라도 결행하기로 결심하고 떠나는 것이다. 작년 8월 30일 고치령에서 상월봉구간을 한 뒤로 대간길을 가지 못했으니 벌써 거의 9개월이나 지났다. 이번 산행을 무사히 끝내면 태백산을 넘는 차돌배기에서 화방재까지의 구간만이 남게 되고 그 구간을 5월 중에 끝내리라는 각오를 다져본다.
그 동안 백두대간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으나 다른 스케쥴에 밀리고 남은 구간이 먼 곳이라 밀리고, 겨울날씨에 밀리고 해서 늦어졌다. 그러나 봄이 되면 또 하나 나의 백두대간 산행을 막는 장애는 입산금지이다. 해마다, 보통은 5월 15일까지 계속되는데 산불을 막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봄철에 웬만한 산의 입산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급하다고 해서 백두대간을 급히 마치기는 쉽지가 않다..
각 도시의 산행금지에 대해서 어떠리라고 오늘도 보장은 못 한다. 다만 그 구간이 입산금지가 아닐 수도 있고 설사 입산이 금지되었더라도 요 며칠 비가 간헐적으로 내렸으니 산불위험이 없을 것이고, 산행이 가능할 거라고 예측해 본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것은 나의 희망사항이었다. 여느 때처럼 산행은 금지되고 있었다. 다만 틈이 있었을 뿐.)
13시 15분 서울역에서 KTX에 올랐다. 대전에서 김천행 무궁화호로 갈아탈 예정이다. 혼자서 가는 길은 쓸쓸하기도 하지만 홀가분하기도 하다. 또한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음에 축복된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일 저런 일에 묶이다 보면 산에 올라 산과 대화할 시간도 찾기 어려울 수가 있다. 특히 오늘처럼 멀리 가는 산행을 위한 시간은 좀처럼 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나 오늘 다행히도 결행을 할 수 있어 정말 흐뭇하다. 앞으로 일어날 어려움 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속으로 외쳐 본다. ‘그래, 가는 거야.’
대전역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타고 김천역에 내리니 오후 3시반이 조금 넘었다. 조금 떨어진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길을 물으니 육교를 통해서 가라고 한다. 김천역에는 철로를 건너기 위해 기다란 터널형의 육교를 만들었는데 그 길이가 제법 되어서 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힘이 들 것 같다.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육교를 내려서니 바로 터미널이다. 인터넷에서 조사한 대로 부항행 시내버스는 오후 4시 10분에 있다고 시간표에 쓰여 있다. 잠시 터미널 앞 농협 슈퍼에 들러 음료수 한 병과 빵 2개를 샀다. 내일 산에서 마시고 먹을 용도이다. 해인산장에 전화해서 숙소를 예약하는데, 부항행 버스를 타고 하대3거리에서 버스를 내린 뒤에 연락하면 차로 라이드하겠다고 한다.
4시 10분에 김천을 떠난 버스는 한참을 달려 드디어 5시 10분 쯤 하대3거리에 나를 내려 놓는다. 산장에 전화하니 얼마 안 되어 주인인 김용원씨가 SUV를 타고 나타나 산장까지 태워 준다. 그런데 날씨가 조금은 쌀쌀하다. 바람도 불고 흐려있어 풍경이 을씨년스럽고 무엇보다도 우선 내일산행이 염려된다.
산장에 도착하니 한 팀이 술을 마시며 밥을 청하고 있다.(이들은 산행 팀은 아니고 놀러온 사람들인데 곧 떠났다) 나는 뒷채의 방으로 안내되고 조금 있다가 식사를 하게 된다고 한다. 방에 앉아서 이것 저것 생각을 뒤척이는데 책이 몇 권 눈에 띈다. 오늘 밤은 저 책들을 한 번 읽어 보리라 생각을 한다. 미국인에 대한 수필집 한 권과 기독교 관련 수필집, 소설 한 권 등이었다.
6시가 조금 넘어 주인이 식사를 하러 오라고하는데 안방으로 모셔서 가족과 같이 하는 식사다. 김용원씨, 부인, 그리고 노모와 같은 상에서 먹는다. 소주를 한 병 갖다 놓고 권하는데 밥상에는 취나물과 두릅이 놓여 있다. 잇몸을 수술한지 얼마 안되어 술을 사양했으나 좋은 뜻으로 강권하기에 세잔이나 마셔 본다. 가족의 식탁에 초대되고 향긋한 두릅을 맛볼 수 있어 고마웠다.
김용원씨는 15년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이곳 해인리로 내려와서 산과 벗하여 산다고 한다. 나이를 알아보니 나보다 두살 위 형님벌이다. 내려와서 잘 살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즉답은 피하고 이제 와서 어떡하겠냐 하신다. 자식들은 퇴계원에 산다고 하신다.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으신다. 제기동이라고 하니 당신도 옛날 이문동에 사셨다고 하며 반가워 한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담소를 나누는데 산장에 묵을 손님들이 있어서 주인은 바쁘다. 나도 일어서서 잡지(산)를 하나 빌려들고 뒷채의 내 방으로 돌아오니 주인이 이미 전기장판을 켜 놓아 방바닥이 따끈따끈하다. 우선 안채에서 빌려온 '산'지를 훑어 본다. 그 다음으론 미국인에 대해서 쓴 수필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선 목사부인이자 여교수가 쓴 책을 여기저기 읽다 보니 11시가 넘었다. 옆방에는 대구에서 온 두 가족이 화투놀이를 하는지 조금 시끄럽다. 이제 잘 시간이다.
그런데 이때 이상한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장미의 영혼'인가 하는 책인데 제목이 무슨 야한 소설 같기도 한데 읽을거리도 떨어졌기에 처음 몇장을 읽어 내려가 본다. 그런데 처음부터 제법 재미가 있다.
'매사의 모범생으로 자라 마을에서 우러러보는 숙녀가 된 휴스턴 챈들러와 당시로는 진보를 넘어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여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쌍둥이 동생 블레어 챈들러. 오랜 약혼자와 결혼을 앞 두고 있는 휴스턴은 마을에 새로 이사온 자존심 강하나 거친 성품의 케인 태거트의 대저택 안을 구경할 욕심에 약혼자와의 동반 파티 장에 동생 블레어를 대신 내보내고 자신은 케인을 방문하는데, 이 순간의 결정이 그녀와 동생 블레어에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된다.(동생은 이 사건으로 약혼자와 결혼하게 된다.) 야성미가 넘치는 케인은 다짜고짜 휴스턴에게 청혼하고 약혼자와 사이가 급격히 악화된 휴스턴은 이 청혼을 받아들이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처음 몇장만 보다가 자려고 했는데 책을 읽어 내려 갈수록 재미가 있어 손에서 놓지 못했다. 소위 미국판 로맨스소설(우리로 말하면 김수현 소설 정도로 생각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야기의 전개가 극적이고 빠르게 진행되어 손에 땀을 쥘 정도이다. 내일 아침 7시 반쯤 식사를 하자고 주인이 이야기했으니 그전에 잠을 좀 자 두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좀처럼 이 재미있는 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새벽 1시 쯤 되니 옆방에서 떠들어 대던 숙박객들도 자는지 이제는 조용한데 나만 홀로 깨어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 이야기는 점입가경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휴스턴과 케인은 결혼식날의 오해는 겨우 풀었는가 했는데 얼마후 서로가 상대를 이용할 목적으로 결혼한 것으로 오해하여 별거하게 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몸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한데 정신은 말똥말똥한 채 책 속에 빠져 있다. 이야기가 끝나려면 밤을 꼬박 새워야만 할 것 같다. 읽고 또 읽는다. 가끔은 피곤한지 정신이 멍해져 건성으로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으며 선잠이 든 모양이다. 그때마다 다시 정신을 추스리고 앞쪽으로 가서 다시 읽으며 이야기를 따라간다.
드디어 해피엔딩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해피엔딩이지만 오히려 무언가 부족한 듯 허망한 느낌이다. 모든 주인공이 화해하고 행복해지지만 어쩌면 싱겁고도 허무한 결말이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 장미의 영혼[이중주라고도 번역됨]의 저자인 주드 데브루는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로서 로맨스 소설을 쓰는 전문가라고 한다.) 시간은 이미 새벽 4시 40분이다. 하루가 지난 4월 26일, 일요일이다. 내가 만들어낸 상황이지만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다. 아침 일찍 1,000미터가 넘는 산을 넘어야 하는데. 잠을 못 자서 가슴께가 저려온다. 어쨌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소설속인지 현실인지 어떤 어려운 일에 연루되는 꿈에 시달리며 잠시 눈을 붙이다가 설핏 깨어보니 벌서 6시 반이다. 다행히도 두 시간 가까이 눈은 붙힌 셈이다. 더 자고 싶다. 그러나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앉아 매일 아침 하는 간단한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은 묵주기도 5단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환희의 신비 5단을 바친다. 예수님께서 태어나는 신비이다.
시간은 빨리 흘러 어느새 7시가 되었다. 주인이 와서 깨어있는 나를 보더니 식사를 하자고 한다. 잠시 기다리시라고 한 다음 세수를 급히 하고 안채로 건너갔다. 간단한 아침인사 후 아침상을 받아서, 어제 저녁처럼 주인 식구들과 같이 먹었다. 다행히도 비는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식사비와 숙박비(합이 20,000원)를 지불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이를 닦고 짐을 싼다. 잠이 충분하지 못한지라 산행이 약간은 걱정되나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는 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책을 읽으며 새운 하룻밤이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고 추억도 만들었으니 말이다. 산행속도가 조금 늦어질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7시 53분 주인에게 인사를 한 다음, 산장을 찬찬히 살펴본다. 좋은 위치에 자리잡았고 GPS상 해발고도도 519m나 되어 공기가 꽤 맑은 곳일 것 같다. 사진을 두장 찍은 후 산으로 향했다. 임도를 따라서 조금 가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데 사람이 지키고 있지는 않았다.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5월 15일까지 입산금지라고 쓰여 있고 위반자에게는 2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한다.
산불방지를 위해 입산이 금지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서울에서 산행준비를 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궂은 날씨에 설마 산행이 제지 당하랴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입산이 금지된다는 경고문을 보니 덜컥 걱정이 된다.
날씨가 맑았다면 여기에 감시원이 지키고 있어 산행을 저지당했을 상황이지만 어제와 그저께 큰비는 아니지만 비가 간간히 왔기에 산불 위험이 줄어들어 지키는 사람이 자리를 비운 듯 하다. 어쨌든 다행이다. 그분께서 돕나보다. (그런데 어제 4월 25일에는 김천시에서 시승격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시장도 참가해서 산행대회를 대대적으로 삼도봉에서 열었다고 하는데 입산금지와는 어떻게 조화시켰는지 궁금하다.)
목제 이정표가 서있는데 삼도봉 3,200m, 삼마골 2,300m라고 써 있다. 임도를 따라 산위로 계속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니 임도는 없어지고 산행길은 돌이 깔린 위로 희미하게나마 계속 이어진다. 2006년 12월 3일, 대간구간[덕산재-삼도봉-삼마골재]을 산행할 때, 능선위 사거리인 삼마골재에서 해인리로 내려올 때에는 임도를 따라 내려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다른 길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날의 산행은 S산악회를 따라서 했는데, 덕산재에서 삼도봉을 거쳐 삼마골재까지 대간산행을 하고 삼마골재에서 해인리로 내려오는 구간으로 오늘 구간의 앞구간을 한 셈이다.
골짜기를 따라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대개 가파르게 마련이다.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경사도가 약해지고 산행도 쉬워지는 것이 대개의 백두대간 구간이다. 이곳 골짜기의 이름이 삼마골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끝이 안부로 삼마골재가 된 것이다. 밤새 엉뚱하게도 소설책에 빠져 몸을 혹사하고 산을 오르려니 힘이 들 것은 뻔한 이치이다. 힘들어 하는 몸을 달래가며 경사가 심한 길을 계속 오르니 삼마골재 300미터 전이라는 목제 이정표가 서있고 길은 약간 왼쪽으로 틀어 경사면을 비껴서 간다.
오전 9시 1분, 산행시작 약 1시간만에 삼마골재에 도착했다. 약간의 바람이 있는데 날씨는 좋아졌다. 하늘이 쾌청하지는 않지만 파란 하늘이 보인다. 골짜기 아래로 해인리가 보이고 주변의 헐벗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숲은 봉우리들을 덮고 있는 광경이 뚜렷이 나타난다. 시원한 풍경이다. 고도가 1,032m인 이곳은 아직 겨울이다. 산밑의 나무들에는 잎이 푸르게 났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벌거벗은 채 겨울잠을 자고 있다. 이정표와 주변 풍광을 사진기 속에 기록하며 잠시 쉰다. 어제 김천에서 산 음료수를 꺼내어 여러 모금을 마신다.
이제부터 대간길이다. 이곳 삼마골재는 네거리로 재를 넘으면 충북 영동의 물한리로 가게 된다. 물한리길은 민주지산 산행 때 걸었던 길이다. 그때는 물한리에서 이곳 삼마골재로 올라와서 삼도봉과 석기봉을 거쳐 민주지산으로 가서 다시 물한리로 내려갔었다. 민주지산은 100명산에 드는 산이기에 내가 이미 산행을 끝낸 것이다.
삼마골재에서 우측으로 난 비탈길을 천천히 오른다. 곧이어 잘 생긴 헬기장이 나온다. 사진 한장을 담고 계속 다음 봉우리를 향한다. 오를수록 시야는 점점 더 좋아지며 삼도봉에서 석기봉과 민주지산을 거쳐 각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손에 잡힐 듯이 뚜렷하게 보인다. 장관이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산의 흐름에 동조하여 나의 마음도 움직이는 듯 하다. 마음의 움직임은 바람이 되고 물결이 되어 요동치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뿌듯한 기쁨이 올라 오는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산이 주는 카타르시스이다. 목적없는 유희가 주는 단순하지만 마음을 꽉 채우는 격렬하고도 순수한 감동이다.
능선길을 걷는 것은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 오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편하다. 몸이 편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온갖 생각들이 밀려 온다. 그러나 이 시간을 헛되이 써선 안된다.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써야 한다. 산행의 한가지 커다란 장점은 산행 중 내가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깊은 생각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일상에서의 소소한 생각들을 벗어나서 좀 더 큰 생각의 줄기들을 건드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잘 생겨서 길게 휘어지고 유장하게 뻗은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걸으며 나는 내 생존의 근거까지 점검해 보는 생각에 빠진다. 어떤 결론을 얻지는 못 했다. 그러나 평소보다 깊은 생각을 하고 나면 마음이 맑아진다. 아마도 머리의 청소가 진행되는가 보다.
전망이 되는 곳에 잠깐 멈춰 서서 민주지산 쪽 산줄기를 좀 더 큰 DSLR 카메라에 담았다. 좀 더 나은 경치를 찍을 때에는 배낭 속에서 큰 카메라를 꺼내서 찍어야 한다. 주머니 속에 있는 작은 카메라는 언제나 꺼내서 경치를 기록하지만 중요한 조망점에서는 큰 카메라로 찍어야 한다. 물론 산행시간에 쫓기다 보면 큰 카메라를 자주 꺼내지는 못 한다.
길섶에는 봄을 알리는 진달래가 피어서 나그네를 반겨준다. 온통 회색빛 천지에 화사한 분홍색이라니? 대조의 미가 아름답다. 약 30분을 걸어오니 제법 높은 봉우리에 도착한다. 고도가 1123.9m 되는 봉우리이다. 누군가 이정목 위에다 1,123.9봉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정목 밑에는 삼각점을 표시한 돌이 있었다.
봉우리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언덕길을 내려갔다. 개념지도를 꺼내서 살펴보니 다음 목표는 밀목재이다. 밀목재까지는 고도로 200미터 가량을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인지라 어려움이 없다.
9시 56분 안부인 밀목재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다른 재에 있는, 옆으로 탈출하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에는 산행자들이 매어놓은 리본들이 어지럽다. 리본은 한 두개면 충문하겠으나 그 수가 매우 많아 수십 개는 되는 것 같다. 하나만 남기고 다 떼어내고 싶었지만, 일종의 존재에 대한 확인이라고 인정하고 참는다. 밀목재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산행을 계속했다.
다음 목표는 1,175봉이다. 10시 34분, 김천시장이 설치하여 폐광지역의 위험성을 알리는 안내판을 만났다. 그런데 나는 이미 위험한 폐광지역을 지나온 터라서 쓴웃음이 나왔다. 이 안내판은 위험지역의 동쪽에 서있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겐 유용한 정보이지만 나같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겐 무용지물이다. 서쪽에 안내판이 하나 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땅이 꺼질 정도로 정말 위험하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갔다. 왜냐면 조금 전 내가 그 폐광지역을 통과하였는데 어떤 이상함도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1시 6분, 1,175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에 도착하여 잠시 배낭을 벗고 쉬면서 주변을 돌아 보았다. 나무에 가려 조망이 좋지 않아 잠시 쉰 후에 길을 떠났다.
약 5분 지나서인 11시 4분, 조망이 뛰어난 1,175봉에 도착하였다. 정상은 돌로 되어 있는데 옆에 소나무가 낮게 자라고 있다. 배낭을 벗어 놓고 돌위에 서서 360도 전체 경관을 우측으로 돌면서 카메라에 담아 본다. 열 컷만에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다. 이러한 기록들이 유용하게 쓰일 날이 있을런지? 어쨌든 산에 오르면 경치를 카메라에 담아 이미지로 모아놓는 것이 나의 습관이 되었다.
1,175봉에선 지나온 산행길과 그 뒤로 펼쳐진 민주지산의 산군과 앞으로 갈 석교산의 큰 덩어리가 다 조망된다. 산의 정기를 흠뻑 취한 후 봉우리를 내려가는데 길이 제법 험하여 절벽길인데 로프가 2단으로 매어져 있다. 겨울에는 약간 위험할 수도 있겠다. 로프를 잡고 위의 2단을 내려가니 한 부부가 1단 절벽을 오르고 있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산객이다. 반가히 인사를 하고 산행계획을 물어본다. 우두령에 차를 두고 밀목재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예정이란다. 지난주에 물한리로 해서 삼마골재에서 밀목재까지 산행했다고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기에 원점회귀 산행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대간산행에서는 불리할 거라고 생각된다. 자가용을 이용하더라도 대간길 산행을 빨리 전진하려면 단번에 한 구간을 다 끝내고 반대편에서 택시나 버스로 자기 차로 가는 방법이 시간이나 경비의 절감이 될 것 같다.
부부는 내게 입산금지일터인데 어떻게 해인리에서 오를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고 대답헤 주었는데 자기들이 차를 세워둔 우두령애서도 제지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요 며칠 비가 왔기에 감시가 느슨해 진 것 같다. 어쨌든 다행이다. 부인이 차를 한잔하고 쉬어 가라고 하는 호의를 미안하지만 뿌리쳤다. 빨리 우두령에 도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삼마골재에서 우두령까지 4시간 안에 끝내고 싶은 것이 나의 계획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긴 휴식이나 중식도 우두령 도착 후로 일단 미루어야 할 것 같았다.(모처럼 산행하는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지금 와 생각하니 차의 거절은 미련하고도 잘못 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앞으론 여유를 좀 가져야겠다.)
석교산으로 가는 길은 역시 길게 휘어지고 느슨하게 상승하는 좋은 길이다. 이길을 홀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맛은 아주 좋다.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싯귀처럼 유유히 가는 길이자 산을 가는 맛이 우러나는 길이다.
석교산 못 미쳐 1,175봉의 뾰족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잠시 무명의 봉우리에 올라 뒤를 돌아 본다. 1,175봉은 근처에서 가장 가파르게 생긴 모습의 산이다. 날카롭게 솟은 모습이 근처 산들이 주는 펑퍼짐하지만 푸짐한 느낌은 없지만 뾰족한 모습이 주변과 대비가 되고 액센트가 된다.
11시 55분, 오늘 산행 중 최고점인 해발 1,207m의 석교산에 도착하였다. 초라한 정상석이 나그네를 반갑게 맞아준다. 정상석 주변은 맨흙이 드러난 평지이고 그 주변을 헐벗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약간은 쓸쓸한 풍경이다.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우두령을 향했다. 1시간내에 우두령에 도착하기 위해선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석교산의 고도가 1,207m이고 우두령의 고도가 540m이니 수직거리로는 667m를 내려가야 한다. 경사가 완만하기에 제법 먼길을 수평으로 가야할 것이다. 경사도를 15%로 잡으면 수평거리가 4.5km 정도가 된다. 그러나 길을 진행해 보니 산길이 밑으로만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두어번 위를 향해 올라가기도 한다. 그래서 대간길이 어려운지도 모른다. 대간길의 특징 중 하나라면 언제 언덕길이 또 나타날지 모르는 점이다. 앞애 솟은 높은 봉우리들은 다 넘어야 하는 것이 대간길이기도 하다.
봉우리 두어개를 넘으며 고도를 낮추어가다 보니 드디어 우두령을 꿰고 넘는 아스팔트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혹시나 산불감시원이 없나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아스팔트 깔린 지방도로로 내려섰다. 시각은 12시 55분이다 삼마골재에서 9시 5분쯤 출발했으니 3시간 50분이 걸렷으니 예정대로 된 셈이기는 하나 식사도 못하고 경치를 감상하며 쉬지도 못한 채 제법 서두른 산행이 되었다. 그러나 또 한 구간을 끝냈다는 기쁨이 밀려 온다.
길의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어제 김천의 농협 수퍼에서 사온 빵을 하나 꺼내어 먹는다. 빵을 왼손에 들고 카메라를 오른손에 든 채 우두령을 가로지른 동물이동통로 다리밑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근처에 주차된 차의 와이퍼 밑에 흰 종이가 한장 끼워져 있다. 산불조심이라는 제목의 경고장인데 그 글을 읽어보니 내용이 끔찍하다.
'귀하의 차량이 산림과 연접한 곳에 주차되어 있어 입산하신 것으로 추측되는 바, 귀하께서는 금일 산불주의 대상자로 관리됩니다.'
라고 써 있는데 그 아래로 계속해서, '입산사실이 확인되면 2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근처에서 산불이 발생하면 산불발생 용의자로 조사를 받을 거'라고 적혀 있다. 근처의 다른 차를 살펴보니 거기에도 같은 경고장이 와이퍼 밑에 끼워져 있다. 감시자에겐 자기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의 문서이지만 나에겐 오늘의 좋은 감정을 상하게 하는 한 장의 불온문서였다. 차라리 안 보니만 못한 것 같다. 아까 1,173봉에서 만났던 부부가 걱정되었다.
갑자기 나의 처지가 생각났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급선무 같았다. 산불감시원이 근처에 있다면 당장 과태료 스티커를 끊으려 할 것이다. 경고장 발행 시각이 10시에서 10시 20분 사이였으니 2시간 40분 전이다. 만약 감시원이 점심을 먹고 다시 온다면 낭패이다. 부랴부랴 먹던 것과 마시던 것을 배낭속에 쑤셔 넣고 남쪽을 향해 걸음을 빨리 한다.
산행이 끝난 후의 교통편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생각을 깊게 해두지는 않고 떠났었다. 산행완료의 기쁨이 너무나 클 것이기에 우두령에서 산행이 끝나면 무릉계곡을 따라 나있는 901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무작정 걸어갈 생각이었다. 걸어내려오면서 산행의 여운을 즐겨보리라고 계획한 것이다. 그런데 잠시 쉴 여유도 없이 쫓기듯이 아스팔트길로 길을 재촉하게 되었다.
901번 국도가 끝나는 곳에서 30번 국도와 만나고 거기서는 김천행 시외버스나 시내버스가 자주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수중에는 자세한 지도가없으니 사실은 내가 지금 가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고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쫓기듯이 아스팔트길을 한참이나 걷다가 잠시 숨을 돌리고 개념지도를 보며 머리를 짜내보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는 8내지 10km로 예상된다. 멀고 아득하게 과한 거리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여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덕산재에서 대간길을 끝내고 대덕까지 약 두시간 가량 아스팔트길을 걸어나와 버스를 탄 일이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오늘은 날씨도 덥지 않아 조건이 양호한 편이다. 계속해서 두 시간을 지루하게 걸었다. 대간산행을 성공리에 마쳤다 생각하니 걱정거리는 없다. 발목이 아프고 몸이 피곤한 것 정도는 참을 만하다. 다만 오늘이 일요일인데 서울가서 밤 8시 미사에 참가하고 싶어 서두를 뿐이다.
아스팔트길을 계속해서 걸어내려 가는데 어느 마을 앞인데 간이 건물로 된 버스 정류장이 있다. 신기했다. 그렇다면 이곳에도 버스가 다닌다는 이야기이다. 한참을 더 걸어 다음 마을에 도착하니 역시 버스정류장이 있다. 정류장 이름이 임평리이다. 그런데 이때 마침 시내좌석버스 한 대가 반대편 우두령쪽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앞의 창유리에 목적지가 김천역-마산리라고 써 있다.
힘도 지쳐 정류장에 쓰러지듯이 주저 앉았다. 오후 2시 50분이다. 여기까지 씩씩하게 두 시간이나 잘 왔는데 버스를 본 이상 더 걷기가 싫어진다. 국도까지 걸어 내려가겠다는 아까의 굳은 결의는 사라지고, 저 버스가 마산리에 갔다가 돌아 나올 터이니 그 버스를 타면 서울 종암동 성당의 저녁미사에 늦지 않으리라는 편한 생각만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빵을 꺼내어 중식을 완성하고 음료수를 마신 다음 옷과 신발의 먼지를 떨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30분이나 기다렸는데 오지를 않는다. 괜한 시간만 낭비한 것이 아닌가 해서 갑자기 불안해 진다. 그때 갑자기 어제 김천 버스터미널에서 사진으로 찍어둔 시내버스 시각표가 생각났다. 그걸 보면 버스시간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를 꺼내어 시간표가 찍힌 컷을 확대해 보니 정말 '마산리'라는 행선지가 보인다. 마산리는 아까 버스 앞에 쓰여진 행선지이다.
김천터미널에서 마산리행은 6:50, 9:00, 14:10, 17:40, 이렇게 하루 네번 있는데 아까 본 버스는 오후 2시 10분 버스인 듯 했다. 그렇다면 지금 시각이 오후 3시 20분 가까우니 마산리 종점에서 버스를 돌려 이곳 임평리에 도착할 때가 되었을 것 같은데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다. 그래서 직접 터미널에 물어 보기로 한다. 054-114 안내전화에 전화를 걸어 김천시내버스터미널의 번호를 알아내고 버스시각을 물어 보았더니, 김천행 좌석버스는 오후 2시 25분에 마산리를 떠난다고 하며 이미 버스가 출발했으니 타지 못할 거라고 말해준다.
내가 마산리에서 타는 줄 안 모양이다. 여기는 임평리라고 하니, 곧 도착할테니 기다려 보라고 한다. 괜히 초방정을 떨었나 보다. 아닌게 아니라 한 5분여를 기다리니 부르릉하며 붉은색으로 칠한 버스가 정류장앞에 와서 선다. 요금은 좌석이라서 1,500원이다. 여기서부터의 여행은 거저먹기였다.
오후 4시 5분, 김천 시내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명물인 육교를 통과하며 조금 걸어서 4시 12분에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마침 오후 4시 16분발, 서울행 KTX를 탈 수 있었는데 이 기차는 서울역에 6시 5분 도착 예정이었다. 기차 화장실에서 웃 내복을 갈아입고 6시 10분 서울역에 도착, 전철을 타고 집에 오니 7시가 채 안 되었다.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났는데도 성당가기엔 이른 시각이다. 8시 종암동 성당 미사에 넉넉히 참석할 수 있었다. 반은 졸면서 신부님 말씀을 듣는다.
(후기)
여기까지 장황하게 써 내려왔다. 사실을 가능한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서 시시콜콜 적어 본 것이다.(사실은 산행의 에센스만 알고 싶은 분들은 밑에 실은 산행실행표와 20장의 사진만 살펴보면 된다.) 입산금지가 이렇게 치열하게 시행되는 줄 미리 알았다면 가지 못했을 산행이었다. 통속소설에 홀려 하룻밤을 꼬박 샐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미지의 세계에 무식하지만 용감하게 뛰어들어 경험한 산행이지만 나에겐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치부하며 글을 끝맺는다.
산행실행표
주요 장소 |
고도 (m) |
도착 시각 |
참고 사항 |
해인산장 |
519 |
07:53 |
김용원씨 소유, 산악인들에게 숙박/식사제공, 산행시작점. |
삼마골재 |
1,032 |
09:01 |
백구대간 마루금이 시작된다. |
1123.9봉 |
1,124 |
09:31 |
이정목, 삼각점이 설치됨. |
밀목재 |
923 |
09:56 |
이정목, 나무에 리본이 많이 달려 있음. |
1173봉 |
1,173 |
11:14 |
전망이 양호함, 돌로 된 뾰족한 봉우리로 로프가 설치됨. |
석교산 |
1,207 |
11:55 |
산행 중 가장 높은 지점, 정상석이 있음. |
헬기장 |
1,060 |
12:20 |
헬기장 표지 있음. |
우두령 |
740 |
12:55 |
동물이동통로 설치됨, 지방도 901번과 만남, 산행끝점. |
하룻밤 통속소설속에 빠졌던 해인산장
임도를 따라 삼마골재로 올라가는 길
삼마골재
삼마골재에서 우측으로 난 대간길, 나무계단을 오르면 곧 헬기장이 나온다.
육중한 산이자만 리드미컬한 결이 있어 좋다.
이곳은 아직 겨울이다.
하늘과 산과 나무숲
반가운 진달래, 회색빛 속의 화려한 악센트이다.
폐광 주의 안내문, 난 이미 그 지역을 통과한 뒤에 만난 표지판이다.
뾰족한 1,175봉의 모습이 앞에 보인다.
높은 지대인지라 비 대신 눈발이 날렸었다.
저 멀리 뒷산줄기 왼쪽에 솟아있는 높은 산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민주지산(1,242m)일 것이다.
골짜기를 내려다 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병풍처럼 뒤에 펼쳐진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을 연결하는 산줄기를 담아 본다.
외로운 배낭과 민주지산, 어떤 연관이 있을런지? 민주산의 민주가 Democracy의 민주는 아니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 석교산의 정상석
우측 뾰족한 봉우리가 이미 지나온 1,175봉, 뒤에 받치고 있는 산이 민주지산
골짜기를 내려다보면 위는 겨울, 아래는 봄임을 알게 된다.
산행의 끝점, 우두령
우두령 황간쪽에는 소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빨리 글을 끝내고 싶은 형님의 마음이 보이네요..." 당신의 파량이..." 차량이. "다만 오늘일 이료일..." 일요일. 형님글에서 오타를 처음 보는것 같습니다...ㅋㅋ....앗...베낭도 바뀌었네요..착X식 X를 뭐라 해야하나?...........
수정했습니다. 오래된 배낭입니다. 착낭식? 읽어주셔 감사하고 지리산 잘 다녀 오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