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 창설과 공부 시행
도전님께서는 수리사에서 49일 공부를 마치시고 1969년 5월(음력 4월)에 서울 중곡동에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셨다.
서울 중곡동에 처음으로 마련한 중곡도장을 시작으로 여주본부도장, 제주수련도장, 포천수도장, 금강산토성수련도장을 건립하시며 도장을 진법 수행의 터전으로 삼으셨다.
중곡도장은 용마산 자락에 용마포태혈(龍馬胞胎穴) 자리로서 많은 자식을 낳아야 하는 곳이다.
또한 용마산에는 치마바위가 있고 영대 뒤편 에는 배꼽바위가 있어 이는 여자의 자궁 자리로 마치 여성이 만삭이 되어 누워있는 형상이다.
중곡동 도장을 건립 중곡(中谷)의 기운을 쓰시다.
중곡(中谷)도장의 이름도 중앙 5,10 토를 가르키고 있는 도장입니다.
종무원장의 집무실은 대순진리회 각 도장의 내정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또 다른 내정으로 항상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선감들이나 일반종사원들과는 전혀 다른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토(土)성의 기운을 쓰시다.
도전님께서 금강산 제 1봉인 신선봉 아래 학사비천(비학승천)혈에 마지막으로 건립하신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은 12,000 도통과 깊은 연관이 있는 도장이다. 그것은 도전님께서는 이곳에 도장을 세우시면서 다음으로 이어서 맡아 가실 분에 대한 예언적 의미를 이곳에 두셨기 때문이다.
도통과 성공을 이루려는 기운이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 씌어진 토(土)성이란 이름에 숨어 있는 것으로 토성이란 중앙 오십 토(土) 무기의 이치로 오신 경우정(宇正)석규 종무원장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도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실제 미륵불을 세워둠으로 금강산 12000 의 도통은 토(土)성이란 기운이 있는 곳에서 미륵불이 출세하는 성공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알려주고 계신 것이다.
도전님께서 도장이름을 아무렇게 지으신 분이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도통은 중앙 오십 토(土)기운인 중앙 한복판에서 나오는 것인데 지금의 대순진리회는 서로 분열되어 각기 종통을 주장하며 도장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데 그 건물에 무슨 기운이 통해 있다고 사람들을 모아서 도통을 이루겠는가?
도전님께서 토성 도장을 건립한 것은 그 도장에 붙여진 토(土)의 기운을 쓰시기 위한 것이라 했을 때 도통기운은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토성으로 오신 종무원장님의 이치와 수련으로 열린다는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공부를 시행하시다
신미(1991)년 5월 11(癸亥)일 하지(夏至, 양력 6월 22일)에 여주본부도장에서 시학(侍學)과 시법(侍法)공부(工夫)를 시행하시고, 특수수련반을 선발하여 큰 공부를 실시하셨습니다.
포천수도장에서는 특수수련 기도공부(1992)를 시행하셨으며 여주본부도장과 포천수도장에서는 수강을 제주수련도장과 금강산토성수련도장에서는 연수를 각각 시행케 하셨다.
이처럼 도전님께서는 5개 도장을 근간으로 공부를 진행하셨으며 또한 1995년 도전님께서 화천하시기 전에 공부에 대한 공사를 모두 마치셨다.
도전님께서 모든 공부(工夫)를 마치시다
공부는 도주님께서 동지에서 시작하여 동지에서 끝나셨고,
도전님께서 하지에서 시작하여 하지에서 끝나셨다.
2007년 치성 전 내정(종무원장께서 거주하시는 공간)에서 말씀하시기를
「공부는 도전님께서 모두 마치고 가셨어. 더 이상 공부는 안 해」라고 하시고 이어서 우리는 수련이 남아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때만 해도 대순 및 각 도장이나 따로 종교를 만든곳들에서는 모두 도전님께서 하신 공부를 이어서 하였는데
오직 종무원장만이 「공부는 끝났다」 하시고 아무것도 안하셨다..
그러므로 끝나는 공부가 어디 있는가 라는 핑계로 아직도 공부를 운영중인 곳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들의 집단을 유지시키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며 또한 도전님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도전님 안계신 상태에서 공부의 이치를 알겠는가.
그리고 도전님께서 마무리를 안하시고 숨으셨단 말인가.
나는 도전님 모든것을 마무리하고 가셨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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