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열전 15
제15대 광해군(이흔)의 여자들
문성군부인 유씨!
후궁 9명, 자녀 1남 1녀
애들도 많이 안 낳으면서 왠
저 많은 후궁들을 참 의아스럽다~~??
광해군!
근래 영화화 되어 많은 분들이
광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하였다.
영화가 어떻게 각색되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몰라도
단, 명확한 것은 광해가 선조와
인목왕후의 적자인 영창대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위에 형인 임해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자가 되고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능력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준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광해는 당시 국제정세를
잘 파악했고 대명 사대주의에만 빠지지 않고
후금에게도 적당하게 잘 대처했다.
그렇게 중립외교, 실리외교를 잘 시행했다.
그러나 '폐모살제'라는 성리학의 근본을
훼손했다는 빌미를 서인들에게 제공하고
술과 여자로 집권 후반부를
방탕하게 보냄으로써 잘 통치하지 못했다.
사람은 모두 트라우마
(PTSD :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콤플렉스(Complex)를 가지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크든 작든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해의 콤플렉스는 그의 아비인 선조처럼
왕위계승 시 적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식 왕비 소생이 아닌 짝퉁이라는 것..
정통성을 강조하는 세습사회에서는
명품 브랜드와 짝통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진품과 짝퉁 구별법...
비올때 빗속에서 수백만원하는 뤼이비통
진품 가방을 가진 사람들은 가방을 품에 안는다.
가방을 비 안 맞게 하려고...
그런데 짝퉁 똥 가방을 가진 사람들은
가방을 머리로 올려 비를 피한다고 한다.
머리 안 젖게 하려고..
광해, 혹시 나중에 영창대군이 방계인 자신을
위협할까봐 9살밖에 안 된 어린
영창대군을 증살(쪄서 죽인다)하게 만든다.
''참 그놈의 권력이 뭔지...'' ㅠㅠ
아홉살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리고 자식이 그렇게 죽었다는 것을 들은
애미인 인목왕후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이런 짓 하면 천.벌.을 받는다.
''天網恢恢 疏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부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그 그물을 빠져나가지는 못한다는 뜻.
天 : 하늘 천, 網 : 그물 망
恢 : 넓을 회, 恢 : 넓을 회
疏 : 트일 소, 而 : 말이을 이
不 : 아닐 불, 失 : 잃을 실
노자(老子) 73장 임위편(任爲篇)의 말이다.
인과응보ᆞ사필귀정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우리가 살면서 명심할 말이다.
문성군 부인 유씨!
선조 6년(1573년) 태어나서
1588년(선조 21년) 16세에 두 살 아래
14살 광해와 결혼하고 아들 셋을 두었으나
아들 둘은 일찍 죽었다.
선조가 51살에 의인왕후 박씨가 죽고
새 왕비로 인목왕후를 맞는다.
방년 꽃다운 19살의 인목왕후를..
''에헤라~ 디야 좋을씨구~^^''
근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세자빈였던 유씨는 30살이었다.
시어머니보다 무려 11살이나 많다.
이거 정상적인 판이 아니다.
강아지 판, 한마디로 개판이다..
그러나 우짜나?
나이가 어려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다!
참 아더메치다. ㅠㅠ
아니꼽고..더럽고..메시껍고..치사하다..
그래도 시어머니가 영창대군을
낳기 전에는 사이가 별로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인목왕후가 떡두꺼비 같은 적장자,
그것도 아들인 영창대군을 낳은 것이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대북파는 광해로..
소북파는 영창대군파로..
방계 출신인 선조도 방계 컴플렉스가
많았는데 얼마나 기분이 띵호아겠는가?
마치 심봉사가 뺑덕이 엄마에게서
늦게 얻는 새끼를 안고 덩실 덩실
춤을 추듯이 선조 기분도 만땅이다.
손자 같은 아들!
얼마나 귀여워했겠는가?
그럴수록 세자와 세자비는 속이 탄다.
문성군부인 유씨가 시어머니
인목왕후와 감정이 틀어질 일이 생긴다.
유씨 막내가 아퍼서 본전 약방에 약을
지으러 갔는데 안 지어줘서 동궁 약방에서
약을 지어 먹였는데 그만 죽어버린 것이다.
그 이유가 인목왕후 때문이라고
유씨는 생각하고 분한 마음을 갖는다.
"으~ 여자의 독기가 풍겨 나온다."
1608년(선조 41년) 2월 선조가 죽자
왕후에 오른 문성군부인 유씨는
시어머니 인목왕후를 푸대접 한다.
게다가 광해는 인목왕후를 폐위시켜 버린다.
그리고 유씨는 보란듯이 친정 유씨 집안을
불러들여 중요보직에 앉히고,
그들은 부정부패를 자행한다.
유희량과 유희분 등은 조정의 요직들을
독차지하고 부정청탁을 생활화 했다.
광해군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창경궁 등을
복원하라고 지시하자 조정에서는 재원 마련를
위해서 매관매직, 벼슬행상 등을 자행한다.
게다가 광해는 마담뚜인 김상궁(개똥이)
치맛바람에 술과 여자로 방탕한 생활을한다.
참~ 잘 돌아간다. ㅠㅠ
결국 서인들로 주축이 된
인조반정으로 광해는 몰락한다.
그래서 유씨와 광해,
세자와 세자빈은 강화로 유폐되었다.
그런데 세자가 땅굴을 파고 도망가려다
잡혀서 사사 되고, 세자빈은 치마를
뒤집어 쓰고 강화도 바다로 뛰어들어 죽는다.
열받은 유씨,
남편 광해에게 바다에 빠져 죽자고 했는데
남편이 거절하자 51살에 목을 매어 자살해 버린다.
왕비 중에 목매 자살한 왕비는 유씨가 최초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목에 건다. ㅠㅠ
긍게 조심하고..
시어머니 인목왕후에게 잘했어야지!
광해, 여기저기 옮겨다니다가 1641년
(인조 19년) 제주도에서 67살에 숨을 거둔다.
문성군 부인 유씨!
임진왜란 때에는 세자 광해를 도와
일을 잘 처리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좀더 남편 관리를 잘하고,
시어머니에게 잘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러나 역사에는 if(만약에)가 없다!
"Gone is gone!"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광해의 업적은 실리외교와 중립외교,
그리고 백성을 위한 대동법 시행이다.
대동법(大同法)은 조선 중기인 광해군과
숙종 시기에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 제도이다.
이원익이 주창했다.
토지의 결수에 따라 1결당 12두씩을
통일하여 부과하게 되는데 양반과 지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본격적으로 실시하는데
100여 년의 시일이 소요되었다.
토지를 많이 가진 양반 지주들은 부담이
급증하게 되자 대동법의 시행을 반대하였다.
각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는 것을
공(貢)이라 하는데 대동법은 이런 것들을
일률적으로 미곡으로 환산하여 바치게 하는
제도인데 이때 걷은 쌀을 대동미라 한다.
내일 또 계속 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