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에 여섯 명의 남자가 함께 숨을 쉬니, 공기가 묵직해진다.
희박한 산소 때문인지 약한 고소증세가 나타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주 깨고, 다시 눈을 감아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
깨어날 때마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이 얼마나 올라왔나, 몇 번이고 확인한다.
한밤중의 찬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고요한 산속에 달빛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온다.
마차푸차레의 날카로운 스카이라인 뒤로, 보름달이 둥실 떠오른다.
달빛에 물든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신비롭게 빛나고, 온 세상이 낮과는 다른 밝음으로 가득 찬다.
신화 속 한 장면처럼, 황홀한 밤이다.
눈 덮인 풍경이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난다.
마치 대낮처럼 밝아진 설원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노출값을 맞추지 못한 채 버벅거린다.
기계마저 이 비현실적인 밤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듯하다.
눈부신 달빛 아래, 눈 덮인 설산의 웅장함과 기묘함.
그 광경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나는 그저 숨죽인 채,
자연이 선사한 이 황홀경을 온몸으로 느낄 뿐이다
정월 대보름, 대낮같이 밝은 달빛 아래 할 일이 많은 밤이다.
딱딱한 부럼을 대신할 견과류 대신 주머니 속에 단단해진 초코바를 한 입 깨물어 본다.
귀밝이술도 없으니, 차디찬 날진병의 물 한 모금으로 대신한고
오곡밥과 나물은 어찌할 길 없지만, 마차푸차레를 배경으로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간절한 기원을 올린다.
늘 건강하게, 모두가 행복한 날들이 되게 해달라고.
지신밟기는 ABC 롯지 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훠이~ 훠이~ 액운을 쫓는다.
더위 팔기는 아무리 둘러봐도 잠든 사람들뿐이라, 달빛 아래 빛나는 히운출리에게 속삭인다. “내 더위 사가라.”
깡통에 잔가지를 가득 넣어 불을 붙여 돌린다면 딱 좋겠지만,
어림없는 일이라 쥐불놀이는 아쉽게도 포기하지만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담배불을 돌려볼까 생갹했지만 혹여라도 누가 보기라도 하는날엔 정월대보름달 아래 미친놈 소릴 들을테니 참는다.
깡통돌리기 대신 안나푸르나 1봉이 바람에 눈보라를 휘날리며 달빛을 받아 타오른다.
이제 할 거 다했으니 자야지.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아쉽지는 않은 일출을 보고
눈이 쌓여 접근할 수 없는 박영석대장과 그 일행의 추모비를 향해
안재영대표님이 준비해 온
데니 태극기와 광복 80주년 기념으로 팔만육천사백방울을 모아 만든 81.5% 순백 소주인 홍천 815. 한정판 술을 마음을 모아 올린다.
데니 태극기(Denny 태극기)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진 유물로, 19세기 말 대한제국 시기 제작된 것이다.
1890년대 후반, 대한제국 정부는 미국인 외교 고문이었던 오웬 니컬슨 데니(Owen N. Denny, 1838~1900)에게 태극기를 하사했다.
데니는 조선 고종의 외교 자문 역할을 맡았으며,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조언했다.
대한제국에서 받은 태극기를 소중히 간직했고, 이후 그의 가족이 이를 보관하다가 공개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태극기 중 하나로 평가되며 태극과 4괘(건곤감리)의 배치가 현대 태극기와 다소 차이가 있다.
손으로 직접 그려진 것으로 보이며, 실물은 약간 낡고 색이 바랬다.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데니의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었으며, 한국으로 반환 논의가 진행된 적도 있다.
의미 있는 태극기와 귀하게 빚은 술로 그들이 행복했기를 바란다.
어제 저녁을 먹고 난 후, 배터리가 방전된 봉우리님과 이해성대표님이 손짓 발짓으로 쿡 대장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더니—
아침 식사에 급조된 나물밥 한 그릇이 눈앞에 놓였다.
이 정도면 호사.
ABC에서 맞이한 정월 대보름은 이것으로 완성된다
쿡 대장이 정성스레 준비한 대보름 아침상을 받으니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한 해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며 음식을 천천히 음미한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하는데, 문득 롯지 건물 처마에 길게 매달린 고드름이 눈에 띈다.
투명한 얼음 사이로 바라본 마차푸차레의 우뚝한 봉우리는 한 폭의 그림 같다.
고드름을 본 게 도대체 얼마 만일까?
어린 시절, 겨울이 오면 지붕 아래 주렁주렁 매달렸던 고드름을 부러뜨려 손에 쥐고 놀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도시에서 살아가며 그런 풍경을 잊고 지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마치 시간 속에 묻혀버린 기억들이 불현듯 되살아난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빛을 머금은 고드름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또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일까을 생각한다.
포터팀이 부산스럽게 짐을 꾸리고 출발을 한다.
옷차림이며 신발이 부실해 보여 마음이 아프다.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출발을 하고 나면
아침식사 설거지를 마친 쿡팀이 정리를 하고 뒤따라 올것이다,
물론 얼마지나지 않아 그들은 우리를 앞지를 것이고,
미리 내려가서 점심을 준비할 것이다.
마르디 히말에서 사흘간 롯지 음식을 먹으며 악전고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매끼 한식으로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준 쿡팀에게도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대들 덕분에 우리들 모두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ABC를 떠나기 전에
주변을 돌아보며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는다.
“다시 올 수 있을까?“
언제나 이 자리를 떠나며 품었던 생각이지만
왠지 오늘은 더 간절하다.
아!
꼭 와야 한다
루리양이 10년 후에 다시 올 때 인솔을 해주기로 했으니까.
십 년 후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데니 태극기도 아니고 롯지 벽에 모두가 이름을 적은 태극기 모양도 아니고
통일된 나라의 국기를 가지고 서른 살이 넘은 친구들과 칠순이 지난 인솔로 오리라!
꿈하나를 가슴에 품는다.
마실정회동
첫댓글 제가 루리양 에게 십년후 롯지에 걸어둔. 태극기 교체 하라고 했는데 마실님이 인솔자로 당첨 되셨군요. ㅎ
괜히 읽었어요 ㅜㅜ
나는 가지도 못할곳
하지만 꿈은 꾸어 보겠습니다
사진과 글 항상 그러하듯 넘 멋지네요
꿈을 가져야지요.
고도를 낮춰 조금 쉽게 안나푸르나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를 만들면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