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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연습 - 정우경
기도합니다. 내가 하는 이별들이 부디 연습이게 하소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연습이게 하소서
새로운 만남에 부푸는 가슴으로 하나도 슬프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슬픈 건 아직 참 이별연습에 서툰 까닭입니다. 여러 번의 이별연습 뒤엔 눈물도 없이 헤어질 수 있겠지만 참 이별연습을 위해 이별하기는 싫습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은 밤별이 지도록 그리다가 나도 몰래 잠든 새벽엔 유난히 긴 꿈속에서 추억을 만나고 추억과 헤어집니다
잊지 말게 하소서 이 슬픈 날들, 이 슬픈 기억 모두가 연습인 걸 잊지 말게 하소서. |
이별 이후 - 문정희
너 떠나간지 세상의 달력으론 열흘 되었고 내 피의 달력으론 십년 되었다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 안 가득 밥알 떠넣는 일이다
그 사람 되어가며 그냥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
그래서 숨막혀 나 죽으면 원도 없으리라
나 진실로 슬픈 것은 언젠가 너와 내가 이 뜨거움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다. |
이별의 말 - 오세영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기다려달라는 말은 헤어지자는 말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다 '안녕' 손을 내미는 그의 눈에 어리는 꽃잎, 한때 격정으로 휘몰아치던 나의 사랑은 이제 꽃잎으로 지고 있다 이별은 봄에도 오는 것 우리의 슬픈 가을은 아직도 멀다 기다려달라고 말해다오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
인생무상 - 박창기
가는 님은 가고 싶어 가는가 오는 님은 오고 싶어 오는가 가고 오는 속뜻을 모를레라 구름을 붙잡고 물어도 그저 흘러갈 뿐 시냇물을 붙잡고 물어도 그저 흐를 뿐 바람을 붙잡고 물어도 스쳐 가는 소리뿐
알 수 없었거늘 이미 가고 온 것을 하물며 알아 무엇하리 주어진 텃밭에서 흔적 없이 살다 갈 것을 오고 가는 사이에 위대한 연극은 벌어지고 연극의 끝을 잡으려 헤매는 인생, 아 인생아! |
인연 - 장석남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오 그래, 네 젖은 눈 속 저 멀리 언덕도 넘어서 달빛들이 조심조심 下棺하듯 손아귀를 풀어 내려놓은 그 길가에서 오 그래, 거기에서
파꽃이 피듯 |
인연설 - 이외수
안개꽃은 싸락눈을 연상시킵니다 그대가 싸락눈 내리는 날 거리에서 고백도 하기 전에 작별한 사랑은 어느 날 해묵은 기억의 서랍을 떠나 이 세상 어딘가에 안개꽃으로 피어나게 됩니다 아무리 방황해 보아도 겨울은 끝나지 않습니다 불면 속에서 도시는 눈보라에 함몰하고 작별은 오래도록 아물지 않은 상처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랑이 꽃으로 피어나게 된다면 그대가 싸락눈 내리는 날 거리에서 고백도 하기 전에 작별한 사랑은 아무래도 안개꽃으로 피어나게 되지 않을까요 |
임진강가에 서서 - 원재훈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면 그대여, 임진강가에 선다 아주 잠깐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강물을 바라본다. 미워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얼굴 내 마음엔 어느새 강물이 흘러들어와 그 사람의 얼굴을 말갛게 씻어준다 그래, 내가 미워했던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얼굴에 끼어 있던 삶의 고단한 먼지, 때,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 사람의 아픔이 아니었을까? 미처 내가 보지 못했던 나의 상처가 아니었을까?
강물만 반짝이면서 내 마음의 빈틈으로 스며들어온다
누군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면 그대여 임진강가에 서서, 새벽 강물로 세수를 하라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 그대가 미처 보지 못했던 치욕스러운 삶의 눈물을 보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강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라 |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임 오시던 날 - 노천명
임이 오시던 날 버선발로 달려가 맞았으련만 굳이 문 닫고 죽죽 울었습니다
늦으셨다 노여움이오리까 그도 저도 아니오이다 그저 자꾸만 눈물이 나 문 닫고 죽죽 울었습니다 |
잊었다는 말은 가벼운 목소리로 해야 한다 - 이순
가볍게 물결 위에 떨어지는 꽃 이파리처럼 아아, 잊었다는 말은 그렇게 가벼운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저물녘 풀잎 스치는 해지는 소리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잊었다는 말은 그렇게 해야 한다.
시든 가을 길을 걷듯 발이 무겁고 흰 눈 지고 가듯 어깨가 무겁지만 그래도 살아볼만 하지 않던가. 꽃진 자리 새로이 꽃이 피듯이 강물 흐른 뒤 뒤따라 온 강물 채워지듯이 또 다른 사랑이 언 손을 녹여주지 않던가.
다가올 사랑에 대한 겸손함으로 잊었다는 말은 가벼운 목소리로 해야 한다.
그 초록빛 넓은 꽃잎 위에 나는 지상의 사랑 가만히 묻으며 지금은 가볍게 아주 가볍게 조금은 작은 떨림을 담아 잊었다는 말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
잊는다고 잊혀질 일이라면 - 박창기
잊는다고 잊혀질 일이라면 잊어 보겠오 지나간 모든 인연은 현재를 상실했을 뿐 잠든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오
기쁨과 슬픔 가짐과 버림 삶의 잔영들은 날개를 달고 잠재의 터널로 잠시 나들이 갔을 뿐 기약 없는 망각의 늪 속을 헤매다 불현듯 섬광처럼 현실을 넘나드는 방랑자가 된다오
아쉬운 미련으로 어물정거리며 한동안의 아픔으로 뒤척이다가 또다시 잊혀진 모습으로 감추어진다오
우주보다 넓은 의식의 불가사의를 어쩌지 못하는 미약한 모습이여
너 나를 잊기로 잊혀질 나라면 인연의 운명은 왜 번민의 아픔은 왜 있단 말이오 |
잊자 - 장석주
그대 아직 누군가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대 인생이 꼭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위안으로 삼아야 한다
부치지 못한 편지 위에 눈물 떨구고 있다면 그대 인생엔 여전히 희망이 있다
잊는 것이다
미워하는 그 이름을 잊지 못하는 그 사람을 모두 잊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다
그리움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잊음으로써 악연의 매듭을 끊고 잊음으로써 그대의 사랑을 완성해야 한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자화상 -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이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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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 김명국
자전거를 하나 갖고 싶다 차를 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비웃을지 모르지만 바퀴와 페달만 괜찮다면 브레이크만 이상 없다면 헌 자전거라도 상관없으리
얼굴이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눈이 노루처럼 선한 긴 생머리의 여자라면 더욱 좋겠다
그 여자가 사는 마을길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날이 늘어간다면 나는 더 행복해질 수도 있으리 내가 나를 잊어버리게 참 하늘빛이 곱고도 맑은, 그녀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써서 책갈피에 꽂아두는 날도 생기게 되리
새참 때 미리 맞춰 광주리 머리에 이고 논둑길 따라 걸어가는 들꽃 이름을 나보다도 더 많이 아는 여자
저문 마을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가 지나간다면 빨랫줄에 널어둔 마른 빨래를 개며 앉아서도 들길이 훤히 다 내다보이는 툇마루에서 그 여자 무슨 생각을 할까
유채를 꺽어먹던 시절부터 당신을 좋아했노라고, 편지에 쓸 수는 없으리 나비가 훨훨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당신 생각이 간절해졌다고, 소쩍새 우는 밤하늘에 은하수 별이 되고 싶다고 분홍색 편지지에 적을 수는 없으리
짐받이 뒤에 그녀를 태우고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갈 수만 있다면 구름이 뭉실뭉실한 산마루 언덕까지라도 다 달려가고 싶지만 산죽밭 끼고 강물 돌아 흐르는 물가까지 가서 소풍처럼 그녀와 점심을 먹으리라
강물에다 대고 물수제비를 띄우며 까르르, 소리지를 수도 있으리
그녀가 살던 옛집 마당에도 살구꽃 피고 달빛 환하게 감꽃이 털리는 밤,
안마당에 괴어놓은 자전거 한 대가 바로 나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
작은 집 하나 짓고 싶다 - 김명순
작은 집 하나 짓고 싶다. 비록 커다란 마당이 없다 해도 비싼 것들로 치장된 가구들이 없다 해도 그저 내 가슴속에 담아둘 수 있는 그런 작은 집 하나 갖고 싶다.
햇살이 너무 고와서 눈물이 날 때 공원 앞 작은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파래서 괜시리 눈물이 날 때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할머니의 모습에서 홀로 계실 어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일상사에 치여 허우적거릴 때 잠시 찾아들어가 머무를 수 있는 그런 작은 집 하나 갖고 싶다.
그런 작은 집 하나 갖고 싶다.
나만의 집 내 마음속 어느 한 곳에 그런 작은 집 하나 짓고 싶다.
그러다가 내 가슴속 모조리 다 들켜버려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그런 나그네가 찾아온다면 붉어진 뺨 애써 감추고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하고 싶다. |
작은 기도 - S. E 키서
눈멀어 더듬더듬 찾게 하지 마시고 맑은 비전으로 언제나 희망을 말할 수 있고 언제나 한결 유익한 기운을 더할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불길이 약할 때 얇은 옷 차려입은 꼬마들이 거기 앉아 여태껏 누려 본 적 없는 즐거움을 그려보는 때에는 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불게 하소서
무심코 내가 한 번 던진 말이나 내가 얻으려고 애쓴 노력으로 인하여 가슴 아픈 일도 두 볼이 젖게 하는 일도 없게 하소서 |
작은 행복 - 이성민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느낄 수만 있어도 행복한 이가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어떠한 고통이나 절망이 가슴을 어지럽혀도 언제나 따뜻이 불 밝혀주는 가슴속의 사람 하나 간직해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소중합니다 한번도 드러내지 못한다 해도 사랑은 말하지 않아 더 빛나는 느낌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있어 행복합니다 생각하면 언제나 정다운 사람 있어 행복합니다 |
잠자는 아가에게 - 이철환 - 해남 버스터미널에서
푸른 가로수도 더위에 지쳐 누워버린 여름, 잠자는 아기를 등에 업은 아기 엄마가 터미널 대합실 바닥을 조심조심 청소한다
아기 엄마의 굼뜬 동작을 호되게 나무라지만 바보처럼 미소 지을 뿐 아기 엄마는 말이 없다
대합실은 어느새 아기 엄마의 민망한 미소만큼이나 조용해진다
햇빛 속으로 던져주고 이내 잠들어버린다
반짝이는 물빛 무지개...
어서 자라서 네 엄마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렴 어린 너의 평화로운 잠을 위해 가슴을 찌르는 말에도 바보처럼 웃고만 있는 네 엄마는 바보가 아니란다 네 엄마는 말 못하는 바보가 아니란다 |
쟈스민차 - 곽재구
내가 처음 쟈스민차를 마신 곳은 돈황의 사막이었습니다 나는 돈황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쟈스민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당신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던지요 돈황 그 이름 속에 쟈스민 향기와 같은 당신의 향기가 스며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정말 알 수 없었답니다. |
쟈스민차 - 곽재구
내가 처음 쟈스민차를 마신 곳은 돈황의 사막이었습니다 나는 돈황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쟈스민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당신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던지요 돈황 그 이름 속에 쟈스민 향기와 같은 당신의 향기가 스며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정말 알 수 없었답니다. |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 이외수
살아 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나지막히 그대 이름을 부른다 살아 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
저물녘 언덕에서 - 정우경
때때옷 입고 꽃신 신고 마중가지요 총총걸음 재촉하며 님 오실 나루터로 마중가지요 금새 오지 않으셔도 돌아서지 않으리다 소몰이 나섰던 동네 중머슴 언덕배기 슬슬 다 넘어가도 본체 만체 그 나루터 지키옵지요 산노을 물빛에 다 바래이면은 떨구었던 쓰개치마 다시 쓰고서 나는 돌아오지요 흙먼지 털어 꽃신 챙기고 때때옷 차곡차곡 접어두었다가 님 오시는 날 또다시 총총걸음으로 거기 가오리다. |
저녁별 하나 - 백창우
1 누가 내 노래들을 기억해줄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이토록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외워 부를 이 있을까 해 지는 황혼녘에 홀로 서서 그 빛 다 가슴에 안아보면 너무도 초라한 내 모습에 한없이 슬퍼지는데 아아, 이런 것이 인생이려니 우리 가난한 이름들의 삶이려니 힘없이 돌아오는 길 위에 내 마음처럼 쓸쓸한 저녁별 하나
누가 내 아픔들을 만져 줄까 모두 떠나간 어느 밤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어줄 이 있을까 어둠 내린 도시의 불빛들은 슬픈 꿈으로 흔들리고 그리운 사람들의 그림자가 저만치 멀어지는데 아아, 이런 것이 인생이려니 우리 고단한 이름들의 삶이려니 힘없이 바라본 하늘 한 켠에 내 마음처럼 쓸쓸한 저녁별 하나 |
저녁 기도 - 전혜린
조용하거라, 공포여, 고통이여. 곧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눈만 감고 가만히 있으면 너는 반드시 가루가 되어 부서질 터이니, 기다리거라, 분노여, 불안이여. 세계가 끝났다고 네가 생각하는 날, 참으로 끝나는 것은 다만 너의 작디작은 심장의 움직임뿐일 것이니, 나를 떠나거라, 애정이여, 동정이여. 네가 집착한 온갖 대상은 손가락으로 흘러 떨어지는 모래보다 더 순간만의 것이고 더 무(無)인 것이니, 잠자자, 내 감각, 내 피부...... 우주의, 신의, 사람들의 고통을 인공적으로라도 덜 느낄 수 있도록! |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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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 이성부
붉은 바위는 나를 눌러 강변에 눕혀 버린다. 눈을 떠 그대 얼굴 볼 수가 없다. 크낙한 힘 속에서 씩씩하고도 눈물겹게 태어난 사랑은 나를 눕혀 더욱 나를 눈멀게 한다 |
전보 - 문정희
나는 너에게 전보가 되고 싶다
창백한 달이 떠 있는 신새벽이어도 좋으리라
지극히 짧은 일격으로
축전이 되고 싶다
아이들의 놀이처럼 싱거운 화면, 그 위에 꽂히는 한 장의 햇살이고 싶다
심지어 깊은 슬픔이 되고 싶다
전보가 되고 싶다 |
절반의 추억 - 정우경
너의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한쪽 가슴이 몹시도 아파왔다 아름다운 인연조차 서러운 날에 눈물도 없이 젖어오는 나의 눈시울 아마도 사랑한 날보다 더 많은 무게의 그리움 때문일 게다 스치는 그대의 그리운 미소만으로도 이토록 숨가쁜 나의 슬픔을 모두 얘기할 순 없지만 사랑하기에, 너를 사랑하기에 떠나는 뒷모습에 눈물지을 수 없었던 쓸쓸한 나의 눈동자 밤하늘 가득 메운 별보다 높이 떠서 너의 마음 그곳에 향해 있지만 내 그리움 한웅큼 드리우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새벽이 되었다 슬픈 외사랑을 홀로 삼키고...... |
젖지 않는 마음 - 나희덕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발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 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
제비집 - 이윤학
제비가 떠난 다음날 시누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함께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 간 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상처를 생각하겠지. 전깃줄에 떼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날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가, 하늘 높이 까맣게 날아간다 |
조그만 행복 - 박성철
일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자판기 앞에서 사람들과의 대화와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 화창한 가을날의 신선한 바람. 기대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어느 날 받게 된 편지. 외로울 때 어김없이 걸려 오는 친구의 전화벨 소리. 어느 추운 겨울날 오랜만에 내리는 함박눈. 잠들기 전에 무심코 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귀익은 음악 소리... 때론 이런 것들에 나는 행복감을 느끼며 지쳐 있던 몸을 추스르며 다시 내일을 살아가게 됩니다.
따스하게 데워 주는 위로가 되는 이유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들은 언제나 이보다 더 사소한 일들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 이용채
아름다운 것은 모두 사랑하고 싶습니다
모두 갖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겠지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게 되었지요 사랑을 하게되면 갖고 싶은 게 나의 마음인가요
나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갖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사랑 때문이라 생각했지요
그 사람보다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보다 소중함을 또한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며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쯤은 만나게 되겠지요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소중하다고 느낄것입니다
사랑은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게 합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게 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소중한 것 소중한 사람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마음으로 보십시오 그곳에 아름다운 사람 하나 당신을 기다립니다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 - 노희경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해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았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 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 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래서,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주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에도 난 감옥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 M. 쉴러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이별을 눈물로 대신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먼길을 떠나는 순간, 사랑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대 가슴속에 남겨진 그 사랑을 간직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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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숨겨둔 말 한마디 - 김기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조금 아껴두고 그저 때때로 그대 생각이 난다고만 합니다.
아름다움을 믿기 때문이며 아름다운 그대를 믿기 때문이며 아름다운 세상을 믿기 때문이며 가을을 좋아하는 어느 소녀가 작은 소망처럼 가을이 돌아옴을 믿듯 아름다운 그대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던 사랑한다는 말은 숨겨두고 하늘을 볼 때마다 그대의 생각이 난다고만 합니다. |
참 아름다운 사람 - 작자 미상
아무리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사랑 또한 아름답고 값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똑같이 존중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실수를 감싸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것을 옳지 않은 일이라 단정짓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변명이 아니라 '내 탓이야'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도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억누르기 보다는 비록 조금 더디 갈지라도 힘들어하는 이의 손을 잡아주며 함께 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늘 못다 준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
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 - 곽재구
빛살 터지는 강변을 거슬러 오르며 나는 내 언어의 금속세공업자가 됩니다
모래 한 알 한 알마다 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이라 새겨 넣을 겁니다 떨어지는 빛살 한 올 한 올마다 꼭 그렇게 새겨 넣을 것입니다
내가 하늘의 찬란한 기술을 다 익혔을 때 당신이 벗은 발로 내게 찾아오던 그날의 긴 설레임과 환희를 금빛의 강물 위에 새길 것입니다. |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것은 바로 그대였답니다 - 마이클 멀베나
그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원했던 것은 그대의 미소였어요
그대의 격려와 그대의 부드러운 손길과 그대의 적극적인 자세와 그대의 사랑을 원했지요 또한 그대의 승낙과 그대의 자존심과 그대의 웃음을 원했답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바로 그대였답니다 |
천 일이 지나면 - 곽재구
오늘 내가 한 편의 시를 쓰고 내일 두 편 모레 세 편 쓴다면 천 일 후엔 천 편의 시를 쓸 수 있을까 그때 나는 말하리라 이 아름다운 땅에 태어나 시간이 흐른다고 써야 할 시들을 쓰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시간이 흐른다고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잖겠는가 써야 할 시들은 많은데 바람들은 맑은 햇살을 뿌리며 응달의 강기슭을 돌아가는데 울먹인 가슴 눅이며 이제는 고요하게 지켜보아야 할 두려움 모를 그리움만 들판 가득 쌓였는데 천 일이 지나면 혹시 몰라 이 아름다운 나라에 태어나 내가 하루 천 편의 시를 쓰지 못해 쓰러질 때 그때 말 못할 그리움은 밀려와서 내 대신 쓰지 못한 그리움의 시들 가을바람으로나 흔들려 내 사랑하는 사람들 귓속에 불어넣어주고 있을지 |
첫눈오는 거리에서 - 정우경
은회색 빛이었어 금방 그걸 삼켜버리는 아스팔트가 미워서 가다 말고 멍하니...... 마음은 아팠지만 어느새 하얗게 피어난 눈꽃나무 두어 그루 너무 아름다워 별빛도 띄엄띄엄 내려앉은 시간
첫눈이 오면 잃어버린 추억병이 재발한다고 거리에서 웅성대는 사람들 얘기 아니지, 아니야 추억이란 이런 날에 걸맞지 않아 그런데 이게 뭐야 자꾸만 부질없이 눈물이 나는 건 왜 그런 거지...... |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 강은교
봄이 오고 있다 그대의 첫사랑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의 맨발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이 밟은 풀잎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이 나부끼는 바람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아침 햇빛이 꿈꾼 그대의 첫사랑의 밴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반짝이는 소리 곁으로 곁으로 맴도는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의 아침 햇빛의 꿈 엷은 살 속 으로 우리는 간다. 시간은 맨머리로 간다, 아무도 어쩔 수 없다 그저 갈 뿐, 그러다 햇빛이 되어 햇빛 속으로 가는 그대와 오래 만나리 만나서 꿈꾸리 첫사랑 되리. |
청솔 그늘에 앉아 - 이제하
청솔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안았다고 해도 좋아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 해도 좋아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당신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어
온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
초혼(招魂)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최고의 삶 - 서은영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고 당신을 위한 사랑의 행위가 되며 그 행위 자체 아니, 사랑의 행위 그 이상의 것이 됩니다.
삶을 억제하라고 서로를 얽매어서는 안 됩니다. 삶을 억제함은 우리 사랑의 종말인 까닭입니다.
우리 관계가 창의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갈등 속에서 일치하고자 주력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삶이며 최고의 삶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 이향아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낙엽 마르는 냄새가 난다. 가을 청무우밭 지나서 상수리밭 바스락 소리 지나서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오소소 흔들리는 억새풀 얘기가 들린다 추억이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마냥 그립다는 말이다. 지나간 일이여, 지나가서 남은 것이 없는 일이여. 노을은 가슴속 애물처럼 타오르고 저녁 들판 낮게 깔린 밥짓는 연기. 추억이라는 말에는 열 손가락 찡한 이슬이 묻어 있다. |
친구 - 이계설
하루를 서로 나누고 싶다는 친구 헤겔과 칸트의 금화들로 불룩한 주머니를 털어 놓으며 이 금화로는 빵을 살 수가 없다고 한다. 내 눈에 비친 무용의 동전들은 모두 보석처럼 빛이 나고 장미 꽃송이를 쥐고 온 손에 흰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현실의 가시에 친구는 깊이 찔려 있었다. |
친구란 - 수잔 폴리스 수츠
친구는 네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주는 사람
영향을 주는 사람
찾아오는 사람
찾아오는 사람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
너에게 말해주는 사람
항상 알고 있는 사람 |
조약돌 - 김연하
얼음이 녹아 흐르는 세찬 물살에 새알처럼 다듬어지고
만나고 부딪치며 깍이는 인연의 여울목에서
삶의 잔재미가 모여 세월 따라 둥글게 둥글게 사랑의 輪線(윤선)을 그려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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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 노여심
좋은 사람은 가슴에 담아 놓기만 해도 좋다.
그가 사는 마을로 찾아가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아도 나의 가슴엔 늘 우리들의 이야기가 살아 있고
나는 나의 마을에서 조용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마주치기라도 할 때면 날마다 만났던 것처럼 가벼운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악수를 쉽게도 해야겠지만
가슴에 담아 놓은 것만으로도 우리들 마음은 늘 아침이다. |
지금 내 사랑은 - 달리 파톤
마치 이전에는 다른 누구를 만나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나는 지금 그대를 알게 되어 사랑하고 있지요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난 아직 알지 못해요
그대 생각하고 있음을 그대가 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답니다
그대가 내게 손을 내밀 때 나는 언제나 거기에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싶기 때문이죠 |
지는 잎새 쌓이거든 - 김남주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솔밭 사이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겹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진달래 - 홍수희
그 땐 참, 내 마음이 저리 붉었습니다
투욱, 떨어뜨린 불씨 하나가
벼랑 위로 잘도 활활 타들어 올랐습니다
오신 길 마저 닿을 듯
문득 철렁이는 아픔 되어도
지나치며
불씨 하나 떨어뜨려 주지 않으셔도
이별도 사랑이라 저리 붉었습니다 |
차마 말할 수 없는 까닭 - 정우경
마지막 그대 손을 잡지 않는 건 그 손길을 밟으며 어느새 내 마음에 들어와버리는 그대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대 마주보는 내 눈동자 속에서 어느새 내 마음 읽어버리는 그대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내 마음을 들켰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이별이 싫음을 차마 들키고 싶지 않은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건 이런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
참된 친구 - 신달자
나의 노트에 너의 이름을 쓴다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내가 지은 이름만은 아니다 너를 처음볼 때 이 이름의 주인이 너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손수건 하나를 사도 '나의 것' 이라 하지 않고 '우리의 것' 이라 말하며 산다
너의 활짝 핀 웃음을 보게 세상엔 아름다운 일만 있으라 '참된 친구'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울고 싶은 일이 일어나도 마음처럼 말을 못하는 바보 마음을 알아 주는 참된 친구 있으니 내 옆은 이제 허전하지 않으리
너의 손에도 참된 친구라고 쓰고 싶다 그리고 나도 참된 친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
창살에 햇살이 - 김남주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서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그녀와 주고받고는 했던 옛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
천년의 그리움 - 문병학
비 내리는 산길을 오릅니다 발소리에 놀란 산새들의 젖은 날갯짓 소리 활엽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어 깊숙이 가라앉습니다 천지간 이룰 수 없는 그리움은 없다 죄 없는 삶은 없다 앞뒤 없는 생각으로 산자락을 돌아들자 대웅전 추녀 끝 쇠물고기가 가만히 다가와 시린 이마를 칩니다 뜰 아래 비에 젖은 상사화 또다시 이승의 흙 위에 맨몸으로 눕고 무슨 죄값인지 대웅전 앞 귀떨어진 5층 석탑은 천년의 세월을 벌로 서 있습니다
간절한 그리움 하나 이루기에는 한 생의 죄값을 다 치르기에는 이승의 천년 세월은 너무 짧은가 싶습니다 젖은 몸이 자꾸만 떨립니다 |
첫 눈 - 김윤희
오늘도 너의 힘으로 나는 걷는다. 소식 끊인 지 석달 열흘 그 가을은 이제 겨울이 되었다. 아직도 아무 소식은 없지만 첫 눈 오는 오늘도 너의 힘으로 나는 걷는다.
가슴으로 뜨겁게 뜨겁게 쌓이고 가슴에 쌓인 눈물 차갑게 녹아서 물이 되고 드디어 볼 수도 없이 날아가 버리지만 오늘도 나는 잃어버린 너의 힘으로 나는 걷는다. |
첫마음 -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하루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청포(淸泡)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촛불 - 곽재구
사랑하는 이여 그대 산 너머 떠날 때 내게 촛불 하나 주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밝히리라는 따뜻한 언어인가요 사랑하는 이여 오늘밤 은하수 너머 당신이 사는 먼 마을까지 촛불 하나 들고 끝없는 하늘길 오르내리는 사내 하나 있습니다. |
추억 밟기 - 박창기
길 위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한 생애, 그건 위대한 추억 밟기 날마다 걷는 나의 길에서 나는 오히려 그리움을 밟으련다
아름다워서 너무나 서러웠다고 말할 수 있게 오늘 한 발자국에도 예사롭지 않게 하련다
앞서 가는 발자국 하나보다 진흙탕 속에 발 내린 열망의 오늘이 왜 더 사랑스러운 것인지 그날을 위해 준비하는 나의 길이 지순(至純)한 추억들만 그리며 더욱 따르게 하소서 지고(至高)한 발자국만 닮게 하소서 빛살에 쌓인 오늘 하루 그것이 은총임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
추억 한 잔 - 김지향
꿈통에 대못을 박고 다시는 열지 않기로 했다
기억의 스크린이 책장처럼 넘어간다
가슴의 가마솥에 넣고 천천히 끓인다 허름한 삶 한 자락이 조청처럼 졸아들어 추억 한 잔으로 남았다
비릿한 추억의 눈을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꿈통에 박힌 대못이 크게 확대되어 왔다
저항이나 하듯이 |
친구에게 - 전혜령
오늘은 문득 멀리 있는 친구에게 한 장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몹시 행복합니다.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면 작은 별 하나 떠오릅니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친구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집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누군가에게 빛을 던지는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사랑 하나 걸어두고 싶습니다. |
친절이란 사랑으로 - 김인숙
아이야! 친절이란 사랑이란다 비 개인 오후처럼 몸에 배인 소박함 그대로 첫 만남의 반가움 그대로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어야 되잖니? 낙엽이 곱게 물들며 지는 것은 이듬해 새 잎을 피우기 위함이듯 네가 서 있는 그 자리 다소곳이 미소를 머금고 친절이란 사랑을 보이렴 네가 너를 아끼듯 친절이란 이름으로 다정한 사랑을 담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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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복 - 이성민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느낄 수만 있어도 행복한 이가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어떠한 고통이나 절망이 가슴을 어지럽혀도 언제나 따뜻이 불 밝혀주는 가슴속의 사람 하나 간직해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소중합니다 한번도 드러내지 못한다 해도 사랑은 말하지 않아 더 빛나는 느낌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있어 행복합니다 생각하면 언제나 정다운 사람 있어 행복합니다 |
저녁별 하나 - 백창우
1 누가 내 노래들을 기억해줄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이토록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외워 부를 이 있을까 해 지는 황혼녘에 홀로 서서 그 빛 다 가슴에 안아보면 너무도 초라한 내 모습에 한없이 슬퍼지는데 아아, 이런 것이 인생이려니 우리 가난한 이름들의 삶이려니 힘없이 돌아오는 길 위에 내 마음처럼 쓸쓸한 저녁별 하나
누가 내 아픔들을 만져 줄까 모두 떠나간 어느 밤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어줄 이 있을까 어둠 내린 도시의 불빛들은 슬픈 꿈으로 흔들리고 그리운 사람들의 그림자가 저만치 멀어지는데 아아, 이런 것이 인생이려니 우리 고단한 이름들의 삶이려니 힘없이 바라본 하늘 한 켠에 내 마음처럼 쓸쓸한 저녁별 하나 |
적벽 - 이성부
붉은 바위는 나를 눌러 강변에 눕혀 버린다. 눈을 떠 그대 얼굴 볼 수가 없다. 크낙한 힘 속에서 씩씩하고도 눈물겹게 태어난 사랑은 나를 눕혀 더욱 나를 눈멀게 한다 |
젖지 않는 마음 - 나희덕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발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 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
조그만 사랑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지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 있음을 알았습니다 |
지금은 아니야 - 정우경
지금은 싫습니다 그대 보내는 것 지금은 싫습니다 온몸이 움츠려들고 손발이 시려워서가 아니라 마음이 추울까 염려함입니다
그대 잊는 것 지금은 안됩니다 애써 간직하고 보듬으려 하여도 훗날 그때는 어느새 내가 추억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찬비 내리고 - 나희덕 - 편지 1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온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
천년의 바람 - 박재삼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
첫눈길 - 박래식
당신이 내게 첫눈길을 주었을 때 아카시아 꽃잎들이 기쁨에 떨며 바람에 흩날리었습니다
볼 수 없었고 하늘을 우러러 미소 짓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차마 마주 대할 수 없었던 당신의 눈빛은 사랑의 작은 약속이 되어버렸습니다 |
첫사랑 - 이윤학
그대가 꺽어준 꽃, 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다시 필 때까지 |
초상 - 조병화
내가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땐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살고 있구나 생각하였지요
사랑하고 싶어졌지요
남모르게 호사스런 고독을 느꼈지요
아주 잊어버리자고 슬퍼하며 미친듯이 바다 기슭을 달음질 쳐 갔습니다 |
촛불을 켜세요 - 백창우
1 가난한 그대 손길로 조그만 촛불을 켜세요 이렇게 소나기 내리는 밤엔 촛불을 켜세요 어둠의 바다를 지나 누가 걸어오나요 그대여, 시를 적는 마음으로 촛불을 켜세요 그 빛 하나, 젖은 하늘에 별이 되어 우리들 눈물 속에 반짝이도록 그대여, 촛불을 켜세요 새벽은 너무 멀어요 외로운 사람들의 마을에 촛불을 켜세요
바흐의 음악인가요 그대여, 촛불을 켜세요 무거운 첼로의 물결이 가슴에 몰아쳐와요 차가운 침묵의 시간에 누가 눈을 뜨나요 그대여, 종을 울리는 마음으로 촛불을 켜세요 그 빛 하나, 추운 세상에 별이 되어 우리들 마음속에 타오르도록 그대여, 촛불을 켜세요 새벽을 기다리지 말아요 등이 굽은 사람들의 마을에 촛불을 켜세요 |
추억 - 조병화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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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 작자 미상
친구란 당신이 그리움 속을 헤맬 때에 문득 그리워지는 얼굴이며, 당신이 살아있을 때에 곁에 있어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환한 미소에 응답할 사람이며, 당신이 어디에 있건 당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주려하는 사랑의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아픔, 당신의 슬픔을 나눠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에게 따뜻한 느낌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당신이 홀로 길을 걷고 싶을 때 당신의 그 마음을 아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짤막한 사연을 보내고픈 사람입니다.
뜻하지 않은 이별을 할 때도 당신의 행복만을 빌어줄 사람이 바로 친구입니다. |
타는 그리움으로 - 최옥
그리움 담아서 나무를 바라보면 나뭇잎은 어느 새 내게로 다가서는 그대 옷깃이 됩니다
우리 사랑 그래서 마주보고 서도 늘 목이 마른 간절한 그리움
별은 어느 새 그대 따뜻한 눈빛이 됩니다
그대 사랑 이슬처럼 사라질까 오랫동안 잠 못 드는 밤 한아름 허공을 안고 가만히 그리움을 견딥니다 |
편지 -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한귀절 쓰면 한귀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
편지 - 헤르만 헤세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옵니다 보리수나무 거칠게 출렁대며 나뭇가지 사이로 달님이 내 방 속을 엿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달님이 편지 위를 비쳐 줍니다
글자 위를 스쳐갈 때 내 마음 너무 슬퍼서 잠도 달님도 저녁 기도도 잊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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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 김남조
우리는 서로 만나 본적도 없지만 헤어져 본적도 없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태어 났기에 어쩔 수 없는 거리를 두고 가야만 합니까 가까와지면 가까와질까 두려워하고 멀어지면 멀어질까 두려워하고 나는 그를 부르며 그는 나를 부르며 스스로를 져버리며 가야만 합니까 우리는 아직 하나가 되어 본적도 없지만은 둘이 되어 본적도 없습니다 |
푸르른 날 -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풀꽃 - 이외수
세상길 오다가다 나도 법문 같은 개소리 몇 마디쯤 던질 줄은 알지만 낯선 시골길 한가로이 걷다 만나는 풀꽃 한 송이 너만 보면 절로 말문이 막혀 버린다 그렇다면 내 공부는 아직도 멀었다는 뜻 |
추억 밟기 - 박창기
길 위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한 생애, 그건 위대한 추억 밟기 날마다 걷는 나의 길에서 나는 오히려 그리움을 밟으련다
아름다워서 너무나 서러웠다고 말할 수 있게 오늘 한 발자국에도 예사롭지 않게 하련다
앞서 가는 발자국 하나보다 진흙탕 속에 발 내린 열망의 오늘이 왜 더 사랑스러운 것인지 그날을 위해 준비하는 나의 길이 지순(至純)한 추억들만 그리며 더욱 따르게 하소서 지고(至高)한 발자국만 닮게 하소서 빛살에 쌓인 오늘 하루 그것이 은총임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
추억 한 잔 - 김지향
꿈통에 대못을 박고 다시는 열지 않기로 했다
기억의 스크린이 책장처럼 넘어간다
가슴의 가마솥에 넣고 천천히 끓인다 허름한 삶 한 자락이 조청처럼 졸아들어 추억 한 잔으로 남았다
비릿한 추억의 눈을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꿈통에 박힌 대못이 크게 확대되어 왔다
저항이나 하듯이 |
친구에게 - 전혜령
오늘은 문득 멀리 있는 친구에게 한 장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몹시 행복합니다.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면 작은 별 하나 떠오릅니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친구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집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누군가에게 빛을 던지는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사랑 하나 걸어두고 싶습니다. |
친절이란 사랑으로 - 김인숙
아이야! 친절이란 사랑이란다 비 개인 오후처럼 몸에 배인 소박함 그대로 첫 만남의 반가움 그대로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어야 되잖니? 낙엽이 곱게 물들며 지는 것은 이듬해 새 잎을 피우기 위함이듯 네가 서 있는 그 자리 다소곳이 미소를 머금고 친절이란 사랑을 보이렴 네가 너를 아끼듯 친절이란 이름으로 다정한 사랑을 담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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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마음에 - 정우경
나를 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그토록 아파하던 나의 마음에 그들이 떠나면 비어버릴 텅빈 마음에
나 혼자 나를 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들이 없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마음을
어쩌면 조금씩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가끔 그들 생각에 아주 많이 아파오는 마음보다는 차라리 조금씩 아파하는 내가 되면서 이젠 나 혼자 나를 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
편지 - 윤동주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
편지 1 - 이성복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 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
평행선 인연 - 정우경
너는 자꾸 내게 온다며 이리로 이리로 오고 나는 자꾸 네게 간다며 그리로 그리로 간다
만나지려나 이렇게 서로 엇갈린 인연들 엮어가며
너는 자꾸 이리로 오고 우리 서로 사랑하자며 나는 자꾸 그리로 간다
만날 수 없는 만나지지 않는 평행선 위에서 자꾸만 자꾸만 우리는 비켜 지나간다. |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풀잎이 아름다운 이유 - 김무화
풀잎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바람의 향기를 알았기 때문이다. 향기를 모르는 도시의 건물들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의 향기를 탐내는 것이 아니라 감탄하여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고개 숙일 줄 아는 풀잎은 바람의 향기를 사랑할 뿐 절대 바람에 꺽이지 않는다.
바람의 향기를 사랑하고도 그 바람에 꺽이지 않기 때문이다. |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 복효근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 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 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 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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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윤동주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읍니다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눈이 아니 온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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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겠습니다 - 경요
낙엽 지는 이 계절 나는 그리운 사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쓰겠습니다.
낙엽 지는 이 계절에 편지를 띄울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편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이마와 머리카락을 스칩니다.
삶을 생각하고 사랑을 꿈꾸었던 아름다웠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진정 그리운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마침표를 말입니다. |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애움길이었다 |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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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 전민호
울 안에 풍경 하나를 달았습니다 바람 불어 풍경 소리 들리면 설렘이 시작됩니다
풍경이 되고 싶습니다 아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바람 불어오면 몸 부딪쳐 당신을 깨우고 그 소리 따라 나를 바라보게 하고 싶습니다 |
하나면 좋겠어요 - 김기만
하나면 행복하겠어요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적지만 둘로 나누면 너무 적지만 그대와 나 사이엔 하나면 행복하겠어요
행복한 소망 가을가에 흐르는 미소 그대에게 보여줄 화려함은 없을지라도 늘 푸른 하늘같은 마음 하나 그대와 나 사이엔 하나면 행복하겠어요
아름다운 이여 하나면 좋겠어요 그대와 나 사이 나눌 수 있는 마음 하나면 정말 행복하겠어요 |
하늘 - 윤상규
비어 있는 하늘에 그리운 이의 얼굴을 새겨 넣는다 눈을 새겨 넣는다 여지껏 아무도 돌보지 않고 뒤란에 버려뒀던 하늘
펼쳐 널고 그 빛나는 얼굴을 새겨 넣는다. |
하늘 같은 사랑 - 김동명
나는 그대에게 하늘 같은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그대가 힘들 때마다 맘놓고 나를 찾아와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그대를 지켜 주는 그대의 그리움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하늘 같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대가 씩씩하게 잘 살아가다가 혹시라도 그러면 안 되겠지만 정말 어쩌다가 혹시라도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면... 그럴 땐 내가 이렇게 높은 곳에서 그대를 바라보고 있노라고... 고개 떨굼 대신 나를 보아 달라고 그렇게 나는 한 자리에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나는 그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하늘 같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대 향한 맘이 벅차오른다고 하여도 나는 그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언젠가 내게로 고개를 돌려 주는 그날에 나는 그제서야 환한 미소로 그대를 반겨 줄 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대로 태어나게 해 주겠다고... 그러나 나는 마음을 열지 않는 그대에게 지금 나를 보아 달라고... 내가 지금 그대 곁에 있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 지금 그 누구보다 그대의 행복을 바라며 단지 하늘 같은 사랑으로 그대를 기다리는 까닭입니다 |
하늘의 융단 - W.B. 예이츠
금빛과 은빛으로 무늬를 놓은 아름다운 하늘의 융단이 내게 있다면, 밤과 낮 어스름의 푸른 융단,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드리련만 내 가난하여 가진 것 오직 꿈뿐이라 그대 발 밑에 내 꿈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내 꿈 밟고 가시는 이여. |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 샤퍼
하루는 한 생애의 축소판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의 생애가 시작되고 피로한 몸을 뉘여 잠자리에 들면 또 하나의 생애가 마감됩니다 우리가 단 하루밖에 살 수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눈을 뜰 때 태어나 잠들면 죽는다는
나는 당신에게 투정부리지 않을 겁니다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당신에게 좀 더 부드럽게 대할 겁니다
불평하지 않을 거구요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더 열심히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모두 사랑하기만 하겠습니다
나는 당신만은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죽어서도 버리지 못할 그리움 그 엄청난 고통이 두려워 당신 등뒤에서 그저 울고만 있을 겁니다 바보처럼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하리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한 사람을 위하여 - 정우경
나를 아프게 한 사람 그 고통의 두 배만큼 사랑하게 하소서 나를 슬프게 한 사람 그 눈물의 두 배만큼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하고 사랑하여 그 사랑이 지워지는 날까지
두고두고 그리워해도 늘 안타까운 사람 영원히 잊지 않게 하소서. |
할머니 편지- 이동진
느그들 보고 싶어 멧 자 적는다. 추위에 별 일 없드나 내사 방 따시고 밥 잘 묵으이 걱정 없다. 건너말 작은 할배 제사가 멀지 않았다. 잊아뿌지 마라 몸들 성커라.
공책사라. |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 김소월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그림자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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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김재진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나무처럼 사람들 속에 섞여 고요할 때 나는 행복하다
대지의 맨살을 발바닥으로 느낄 때 만지고 싶은 것 입에 넣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것 하나 없이 비어 있을 때 행복하다
한 마리 벌이 꽃 위에 앉아 있는 그 짧은 세상을 눈여겨 보라
막 눈을 뜬 앵두꽃 이파리 하나 하나가 눈물겹도록 아롱거려 올 때 붙잡는 마음 툭, 밀어 놓고 떠날 수 있는 그 순간이 나는 행복하다 |
행복한 그리움 - 박성철
오랜 그리움 가져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사람 하나 그리워하는 일이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 애상인지를... 쓸쓸한 삶의 길섶에서도 그리움은 꽃으로 피어나고 작은 눈발로 내리던 그리움은 어느새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는 깊은 눈발이 되었습니다.
그리움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리움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가슴 저미는 사연을 지녔다 해도 고적한 밤에 떠오르는 그대 그리움 하나로 나는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
행복 만들기 - 박창기
바라보는 그대 그대가 그리는 세상의 반이라도 내가 그릴 수 있다면 그대 곁에 있지 않아도 나 행복하겠네.
그대 비록 멀리 있어도 하늘에다 그대를 그리는 자유와 여유만 있어도 나 행복하겠네.
소리없이 들어주는 무량한 마음이여 그대를 품었으니 나 더욱 행복하네.
조건없이 지켜주는 기다리는 마음이여 그대 있음에 나 참으로 행복하네. |
헤어진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 김재진
헤어져 있는 시간이 서로를 성숙시킬 것이라던 당신의 예언은 틀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 스스로를 깎아내며 어쩌면 우린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워 헤어질 수 없는 건지 모릅니다 함께 있던 날들의 따스하던 체온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어 이별이 아픈 건지 모릅니다 기다림의 무게만큼 늘어나는 시간 앞에 내 발길은 서성거리다 멈추고 만 시계가 됩니다 가지 않는 시계 바늘을 애태우며 내 가슴은 숯보다 까맣고 백지보다 창백합니다 헤어져 있는 시간이 사랑을 성숙시킬 것이라던 당신의 예언은 틀렸습니다 커버린 건 그리움뿐 당신이 두고 간 빈자리에 무성하게 자란 그리움을 나는 날마다 풀처럼 뽑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더 이상 뽑을 수 없을 만큼 풀이 자라는 날 내 기다림은 그만 질식하고 말 것입니다 |
호수 1 -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호수만 하니 눈감을밖에 |
흐르는 내 눈물은 - H. 하이네
흐르는 내 눈물은 꽃이 되어 피어나고 내가 쉬는 한숨은 노래되어 울린다
온갖 꽃들을 보내 드리리 그대의 집 창가에서 노래하게 하리라 |
희망을 위하여 - 곽재구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굳게 껴안은 두 팔을 놓지 않으리 너를 향하는 뜨거운 마음이 두터운 네 등 위에 내려앉는 겨울날의 송이눈처럼 너를 포근하게 감싸 껴안을 수 있다면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져 네 곁에 누울 수 없는 내 마음조차도 더욱 편안하여 어머니의 무릎잠처럼 고요하게 나를 누울 수 있다면 그러나 결코 잠들지 않으리 두 눈을 뜨고 어둠 속을 걸어오는 한 세상의 슬픔을 보리 네게로 가는 마음의 길이 굽어져 오늘은 그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네게로 가는 불빛 잃은 발걸음들이 어두워진 들판을 이리의 목소리로 울부짖을지라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굳게 껴안은 두 손을 풀지 않으리 |
희망, 너에게 보내는 편지 - 윤영림
내가 너에게 희망이란 걸 걸때처럼 혹시 나에게도 희망을 거는 사람이 있을까 자나깨나 오로지 나 없이는 절대 살아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당신은 지루한 집착이라고 충고를 해대지만 희망 없이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게 인생이고, 사는데는 욕망이 더 나았다며 절망에 익숙해져야 온전한 거더라고 누누이 얘기하지만... 지난날이 어찌 절망만 있었을까 그 많은 절망 앞에서도 초록의 피를 말아 하늘에 올린 희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로 존재할까?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올해도 나의 열두 달 속에 새 희망을 챙겨 넣는다 1월의 아침햇살이 무수히 부서지는 저 파장 속에 나의 꿈을 동봉하면서 이 글을 희망 너에게 부친다 |
휘파람을 불어다오 - 유안진
이 허황된 시대의 한 구석에 나를 용납해 준 너그러움과 있는 나를 없는 듯이 여기는 괄시에 대한 보답과 분풀이로
한 소절의 노래로 오그라들고 꼬부라지고 다시 꺽어들어서
한 소절의 모국어로 내 허망아 휘파람을 불어다오. |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 작자 미상
세상엔 지키고 싶지 않은 것 만큼 지키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소중하지 않은 것 만큼이나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추한 것 만큼이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선택해야 한다면 굳이 그래야만 한다면 망설임 없이 그대를 택하겠습니다
후회하게 되더라도 꼭 그래야만 될 것 같습니다 |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호수처럼 푸르다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자꾸 목말라 마신다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하늘의 나무 - 곽재구
긴 여행 끝에 우리는 한 포구에 닿았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것이 다 떨어진 우리들의 낡은 배는 포구의 잔 불빛에도 자꾸만 흔들렸습니다 마을의 불빛과 고깃배들의 불빛이 싸리꽃처럼 곱고 아름다웠으므로 우리는 배고픔도 잊고 그 꽃송이들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한 차례 흔들면 우수수 쏟아질 듯 하늘의 나무에 무수한 별들이 매달렸습니다 인간의 한 사랑이 8만 4천 년을 적신다는 그 땅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얼마나 더 깊은 사랑을 만나야 그리운 그 바닷가에 닿을 수 있나요? |
하늘색나무대문집 - 권대웅
십일월의 집에 살았습니다 종점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얼키설키 모인 집들과 몇 개의 텃밭을 지나 막다른 골목 계단 맨 끝 문간방 그 집에서 오랫동안 가을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창문 밑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팔꽃, 해바라기 저녁의 적막을 어루만져 주던 가문비나무 가끔 아주까리 넓은 잎사귀가 슬픔을 가려주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담장 너머 이어지던 지붕과 지붕들 그 위로 햇빛이 만들어놓던 빛나던 개울들 황금여울을 따라 저녁의 끝까지 갔다 왔습니다 돌아오면 처마 밑 어둠이 뚝뚝 떨어지고 어디선가 쌀 일구는 소리 너무 커 적막해라 눈을 감고 술렁이는 내 마음속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불을 켜기 힘든 저녁 하늘색나무대문을 열고 나가 해바라기가 서 있던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나팔꽃 까만 눈동자처럼 한 시절 야물딱지게 맺히고 싶었습니다. |
하루내내 비 오는 날 - 백창우
1 너는 무얼 하는지 이렇게 하루내내 비 오는 날 너는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언젠가 네가 놓고 간 분홍우산을 보며 너를 생각한다 조그만 가방 속에 늘 누군가의 시집 한권을 넣고 다니던 너는 참 맑은 가슴을 가졌지 네가 살아가기엔 이 세상이 너무 우중충하고 너를 담아두기엔 내가 너무 탁하지 몇시쯤 되었을까 거리엔 하나 둘 등이 켜지고 비는 그치질 않고
너는 무얼 하는지 이렇게 하루내내 비 오는 날 너는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조동진의 '제비꽃'을 들으며 너를 생각한다 너를 처음 만난 그 겨울엔 눈이 무척이나 많이 내렸지 네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네가 꿈을 꾸기엔 이 세상이 너무 춥고 너를 노래하기엔 내가 너무 탁하지 몇시쯤 되었을까 수채화 같은 창 밖의 세상을 보며 너를 생각한다 |
한 그림자 - 문향란
한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대가 모르는 이름 없는
그대에게 내 마음 전하고 싶지만 그러질 못하는 용기없는 못난 한 그림자
홀로 내 자신 멀어질 수 밖에 없을 때도 그대 알 리 없는 짧은 한 마디 말이라도 접어두고 그대 위해 울고 싶어하는 한 그림자 누구인지 말하고 싶어도 차마 용기 없는 못난 한 그림자
늘 괴로워하고 그리고 영원히 그대만을 사랑하는 한 그림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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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란이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함께 가는 길 - 김준태
사람들은 저마다 멀리멀리 가는 길이 있습니다. 더러는 찔레꽃이 흐드러진 길 더러는 바람꽃이 너울대는 길 더러는 죽고 싶도록 아름다운 길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울며 쓰러지며 그리워하며 멀리멀리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여 우리 사람들이여 우리들은 혼자서 혼자서 간다지만 노래와 울음 소리 속으로 바라보면 결국 우리들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함께 만나고 함께 보듬고 가는 것입니다. |
해바라기 - 한혜화
무작정 그대가 좋았다. 세상에 태어나 맨 먼저 해와 친해진 어린 식물처럼 다가갈 수 없는 거리에서 바라만 보는 이유는, 세상과 해 사이에 놓인 거리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해와 해바라기처럼 바라만 보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해와 해바라기로 살아가는 우리의 채워지지 않는 거리를 햇살 한번 반짝이지 않는 그대 무심한 마음을 진정 알고는 있는가. |
행복 - 헤르만 헤세
행복을 추구하는 한 너는 행복할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
잃어버린 것을 애석해 하고, 목표를 가지고 초조해 하는 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른다.
목표와 욕망도 잊어버리고 행복을 입밖에 내지 않을 때,
네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너의 영혼은 마침내 평화를 찾는다. |
행복한 사람 - 이생진
날 때부터 손바닥에 사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사랑 때문에 새벽부터 하늘로 날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사랑 때문에 푸대접 받아도 꽃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사랑 때문에 산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
미래도 모르고 오늘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
행복론 - 최영미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 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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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어도 함께인 듯한 - 정우경
함께 있어 채워지는 가슴보다는 홀로 아파 깨우치는 가슴이게 하소서 함께 있어 웃음짓는 얼굴보다는 홀로 슬퍼 눈물짓는 얼굴이게 하소서 빈 가슴이 넘치도록 그대 사랑 받고 싶지만 아파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는 상처입지 않으면 아물 수 없는 내 쓸쓸한 마음 안에 조금씩 엮어지는 슬픈 사랑 이야기 함께 있어 채워지는 기쁨보다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슬픔이게 하소서. |
흐르는 강물 - 김영미
우표도 붙이지 않은 편지를 병 속에 넣어 강물에 띄운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그대를 기다리면서
강물이 더욱 불어나면 이 편지는 더 빨리 그대에게 가 닿을까
돌아오지 않는 편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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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김광규
희망이란 말도 엄격히 말하면 외래어일까. 비를 맞으며 밤중에 찾아온 친구와 절망의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희망을 생각했다. 절망한 사람을 위하여 희망은 있는 것이라고 그는 벤야민을 인용했고, 나는 절망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데카르트를 흉내냈다. 그러나,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유태인의 말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에 관해서 쫓기는 유태인처럼 밤새워 이야기하는 우리는 이미 절망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일까. 통금이 해제될 무렵 충혈된 두 눈을 절망으로 빛내며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절망의 시간에도 희망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 어디선가 이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고 지켜야 할 희망은 절대로 외래어가 아니다 |
흰구름 - 천상병
저 삼각형의 조그마한 구름이 유유히 하늘을 떠다닌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을까? 아주 천천히 흐르는 저것에는 스쳐 지나는 바람이 있을뿐이다 바람은 구름의 연인이다 그래서 바람이 부는 곳으로 구름은 어김없이 간다 희디 흰 구름이여! 어느 계절이든지 구름은 전연 상관 않는다 오늘이 내일이 되듯이 구름은 유유하게 흐른다. |
4월의 노래 -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하늘 - 이동식
친구야 길을 가다 지치면 하늘을 보아 하늘은 바라보라고 있는 거야 사는 일은 무엇보다 힘든 일이니까 살다보면 지치기도 하겠지만 그러더라도 그러더라도 체념해 고개를 떨구지 말라고 희망마저 포기해 웃음마저 잃지 말라고 하늘은 저리 높은 곳에 있는 거야 정녕 주저앉고 싶을 정도의 절망의 무게가 몸과 마음을 짓눌러 와도 용기를 잃지 말고 살라고 신념을 잃지 말고 살라고 하늘은 저리 높은 곳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있는 거야 친구야 어느 때이고 삶이 힘듬을 느끼는 날엔 하늘을 보아 그리곤 씨익하고 한번 웃어 보려므나 |
하늘 냄새 - 박희준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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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가는 길 - 박영
참으로 슬퍼할 일 너무 많아도 이제 울지 않기로 하자. 한 세상 울다 보면 어찌 눈물이야 부족할 리 있겠느냐만 이제 가만가만 가슴 다독이며 하늘 끝 맴돌다 온 바람소리에 눈 멀기로 하자 이 가을,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게 다그치지 않기로 하자 아니야,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기로 하자 |
하루 - 천양희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서 나는 잠시 나를 내려놓았다. 어디서 너마저도 너를 내려놓았느냐. 그렇게 했느냐. 귀뚜라미처럼 찌르륵대는 밤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거짓말하면서 그 거짓말로 나는 나를 지킨다. |
한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 김재진
한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그때 그 용서할 수 없던 일들 용서할 수 있으리 자존심만 내세우다 돌아서고 말던 미숙한 첫사랑도 이해할 수 있으리 모란이 지고 나면 장미가 피듯 삶에는 저마다 제철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찬물처럼 들이키리. 한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로인해 상처받은 누군가를 향해 미안하단 말 한마디 건넬 수 있으리 |
한순간만이라도 - D. 포페
한순간만이라도 당신과 내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당신도 알게 될 테니까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
해바라기 사랑 - 정우경
하늘처럼 살고 싶다고 했었다 하늘을 닮아가며 살고 싶다고
늘 하늘을 향해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 빠알간 얼굴로 하루를 사는
인사도 없이 떠나버리고 나는 해바라기처럼 살고파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해바라기는 늘 바라만 볼 뿐 다가서지 못한다
점점 높아만 간다. |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행복의 조리법 - 반 부란
인내심을 수북히 넣고 가슴에 가득 넘치는 애정을 하나 넣고 관용을 두 주먹만큼 보태고 약간의 웃음을 뿌리며 머리하나 가득이 이해심을 넣은 후 친절은 넉넉히 치고 믿음은 많이 넣고 잘 섞은 다음 이것을 일생에 골고루 발라서 만나는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라. |
향기나는 그대에게 - 정우경
문득 문득 그리워지는 이여 여름의 빛은 다 바래고 적막한 아스팔트에선 짙은 추억의 냄새가 난다 여기 저기 쌓인 낙엽들 속에 소리없이 덮여 있는 그대에게 보낼 답장 없는 편지 언제나 그리워지는 이여 활짝 열어젖혀진 나의 창가에 그대 향기를 담고 불어오는 바람 먼지보다 가벼운 몸짓으로 그 바람에 묻혀 그대에게 가고 싶다 가을보다 더 진한 향기로 묻혀 그대, 그대에게...... |
호수 - 문병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수한 눈길의 번득임 사이에서 더욱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 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많은 사람을 사랑해버린 다음 비로소 만나야 할 사람 비로소 사랑해야 할 사람 이 긴 기다림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과 헤어진 다음 모든 사랑이 끝난 다음 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여 이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여. |
홀로한 사랑 - 정우경
그대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바람만 부는 빈 들판처럼 왜 나만 이리도 그대를 그리워해야 합니까
내가 전부일 수 없습니까 나의 마음 온통 흔들어버린 그대 왜 그대 마음엔 내가 들어갈 수 없습니까. |
흐르는 것 모두 물이 되어 - 김경은
흐르는 것 모두 물이 되어야 하리 물이 되어 반도 끝머리 저문 섬 구석구석 난류 되어 떠돌다가 불현듯 그대 보고픈 봄날이면 그리움으로 뜬눈 밝혀 북방으로 북방으로 달려가서는 말씀 없는 그대 젖은 입술 고단한 일상의 눈물로 닦으며 대답 없는 사람들의 이름 불러 못 다한 이야기 들려주어야 하리 흐르는 것 모두 물이 되어 만나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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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천상병
내일의 정상을 쳐다보며 목을 뽑고 손을 들어 오늘 햇살을 간다.
일거리는 쌓여 있고 그러나 보라 내일의 빛이
그 창 그 앞 그 하늘! 다만 전진이 있을 따름!
나는 동서남북 사방을 이끌고 발걸음도 가벼이 내일로 간다. |
흰 종이배 접어 - 박남준
그리움의 종이배 접어 흰 종이배 접어 띄우면 당신의 그 바다에 닿을까요 먼 바람결로도 꿈결로도 오지 않는 아득한 당신의 바다에 닿을까요
백날 삼백예순다섯날 흰 종이배 접어 띄워요 바람 같은 당신께로 가는 사랑 흰 종이배 접어 띄워요 |
진화 /고성만 방울이 두 개 모여 땡그랑 소리 날까 언 놈이 내는 소리 클까나 대 볼까나 둘이서 봐야 알지 크고 작은 이유를 오래전 내 밑천은 없어져 흔적 없고 찾아도 용도 몰라 있어도 무용지물 자꾸만 여자를 닮아간다 어쩐다니 겁나네 |
할미꽃 4 / 손준석 바람볕이 좋은날 뽀송 뽀송 화장하고 님 마중나와 산중턱에 앉아 있소 보고푼 발걸음 봄내음으로 오시려나 긴긴 겨울 몰아치는 산바람에 얼굴은 동상으로 자주빛이 되었다오 나 몰라라 하지마소 고개숙인 내 얼굴 얼굴색이 변했다 해도 당신향한 내 속내는 한결같은 마음이라오 물빛물결 2016 . 2 . 12 |
희망가 / 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
희망가 / 문병란 | 방황/고성만 | 벗에 취하는 밤 / 손준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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