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수류탄 던져 4만2000달러 털었다가 3족이 처형
북한에서 공화국 영웅칭호나 훈장, 표창장,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이름을 새겨넣은 시계를 포상으로 주고 여기다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수사를 진행한 전례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상금은 북한돈도 아니고 미국돈 1만달러였다.
2003년 5월말경 사회주의 이상이 넘쳐난다는 평양의 중심인 김일성광장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중앙무역은행에 무장 강도가 들어와 대낮에 미화 4만 2000달러를 강탈해가지고 달아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인민무력부 2군단 포병대대에서 포차를 운전하던 26살 난 박모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8년 동안 군사복무를 하면서 제대로 먹지를 못해 결핵에 걸렸다. 이후 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당상동에 있는 자기 집에 와서 병 치료를 하다가 돈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못하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한번 강도질이라도 해서 돈을 써 보고 죽자”라고 작정했다. 자식 치료할 돈이 없어 한탄하던 부모는 범행을 도왔다. 내각 문화성 자재상사 부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가짜 수류탄을 만들어주었다. 나무를 수류탄 모양으로 깎아 검은 칠을 한 뒤 영화촬영 때 사용하는 수류탄 심지를 박아 넣은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장마당에서 중국산 장난감 권총을 사가지고 왔다. 박모는 이 무기들을 가지고 낮 12시경 중앙무역은행을 습격하였다
2003년 5월말경 사회주의 이상이 넘쳐난다는 평양의 중심인 김일성광장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중앙무역은행에 무장 강도가 들어와 대낮에 미화 4만 2000달러를 강탈해가지고 달아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인민무력부 2군단 포병대대에서 포차를 운전하던 26살 난 박모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8년 동안 군사복무를 하면서 제대로 먹지를 못해 결핵에 걸렸다. 이후 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당상동에 있는 자기 집에 와서 병 치료를 하다가 돈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못하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한번 강도질이라도 해서 돈을 써 보고 죽자”라고 작정했다. 자식 치료할 돈이 없어 한탄하던 부모는 범행을 도왔다. 내각 문화성 자재상사 부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가짜 수류탄을 만들어주었다. 나무를 수류탄 모양으로 깎아 검은 칠을 한 뒤 영화촬영 때 사용하는 수류탄 심지를 박아 넣은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장마당에서 중국산 장난감 권총을 사가지고 왔다. 박모는 이 무기들을 가지고 낮 12시경 중앙무역은행을 습격하였다
- 2006년 보도된, 북한 함경북도 단천역 근처의 암시장에 붙어 있다는 벽보.‘ 선군정치 바람에 백성 굶어죽는다! 군대들에게만 주지말고 인민들부터 쌀을 달라’는 내용을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 화면은 2006년 5월말 한 탈북자가 촬영해 일본 후지TV에 제공한 것을 MBC가 보도했다.
이어 “소리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나무수류탄의 심지를 뽑은 뒤 수류탄을 집어던졌다. 수류탄에서 연기가 나면서 당장 터질 듯 돌아가자 은행직원들은 바닥에 납짝 엎드렸다. 그 틈에 그는 2층에서 뛰어내려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평양시 사동구역 송신동까지 가서 택시운전기사에게 100달러를 던져준 뒤 연인과 달아났다.
이 사건을 보고 받은 김정일은 사회주의 망신이라며 무조건 잡아내라고 하면서 수사기관들에 그를 잡으면 포상금 1만 달러를 주겠다고 비밀리에 선포하고 전국적인 수사를 진행하도록 하였다. 당시 택시운전수가 박모와 애인의 얼굴 그림을 그려냈는데, 여성의 얼굴 표상은 근사하게 그려냈지만 박모의 얼굴은 전혀 닮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냈다. 얼굴 그림은 전국에 배포됐다.
박모 연인의 부모들은 당시 리비아에 의료진으로 나가 있었고 연인은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칠골동에 있는 사촌언니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 평양시 방어사령부 보위원으로 근무하던 사촌형부가 수사 사진을 보고 처제를 체포하여 자기 보위부에 데리고 가서 심문하자 박모의 연인은 “3000달러를 받았지만 처음엔 내용도 모르고 따라 갔었다”고 고백하였다.
수사기관은 그 여성을 통하여 남자의 집을 알아낸 뒤 그의 진짜 사진을 전국에 배포해 수배에 들어갔다. 박모는 연인에게 3000달러를 주고 2만달러는 자기의 병 치료로 고생한 어머니에게 주고 나머지를 가지고 달아났다. 평양시를 벗어나기 위하여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산하 경무관에게 300달러를 주고 그의 오토바이를 타고 초소들을 통과하여 강원도 원산시로 갔다.
박모는 원산에서 자기 집에 전화를 해서 수사결과를 알아보다가 전화도청으로 위치가 노출되어 체포조가 원산으로 내려가자 중국으로 달아날 생각으로 함경남도 고원군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가 식당에 있던 경무부 경무원(군사칭호 당시 하사)에게 체포되었다. 그 경무원은 마침 식당에 들어와서 “너무 배가 고프니 밥 한 그릇만 달라”고 애걸하고 있던 참이었다.
결핵을 오래 앓고 신체가 약했던 박모는 반항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잡히고 말았다. 그를 잡은 경무원은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미화 1만달러의 포상금과 보름동안의 포상휴가를 받았다. 박모가 평양을 벗어날 때 300달러를 받고 도주용 오토바이를 빌려주었던 인민무력부 총참모부의 경무관은 총살되었다.
박모가 잡히기 전까지 그의 어머니는 “아들한테서 돈은 하나도 안 받았으며 사건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우기다가 아들이 잡혀 사실이 드러나자 산속에 묻어 놓았던 돈을 찾아내 전부 반환하였다. 이후 박모와 그의 가족은 물론, 박모의 연인과 연인의 온가족도 김정일의 지시로 3대가 멸족되었다.
이 사건은 북한에서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가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없다고 선전해오던 것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만천하에 과시한 희비극이었다. 또한 이 사건은 아무리 오랫동안 사상교육을 했어도 먹을 것이 없고 돈이 없으면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심이 한낱 헛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우리 한반도,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인류에게 핵무기 도발을 하려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김정은의 독재정권이 하루빨리 종식되도록 대한민국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햇볕정책은 김정은 독재정권을 연장시키는 허망한 정책이라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알아야 하며, 북한주민들이 허위와 거짓의 진창 속에서 속히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추상 [秋想]](http://t1.daumcdn.net/cafe_image/cf_img2/img_blank2.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