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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본, 근원의 자리, 존재 그자체 ......무시공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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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사상 스크랩 선불교와 노장사상의 사유방법에 관한 연구
도경 미성 추천 0 조회 8 14.04.29 22: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선불교와 노장사상의 사유방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tructure of Buddhist Thinking and That of Taoist

 

- 體用論을 중심으로 -

 

최 일 범 (Choi Il-beom)

 

 

차 례

1. 서 론
2. 僧肇의 格義佛敎 비판과 體用論
  2.1. 격의불교 비판과 中道思想
  2.2. 般若知의 체용론적 해석
3. 王弼?郭象의 玄學과 成玄英의 『莊子』 ?齊物論? 해석
  3.1. 왕필의 체용론과 곽상의 無心論
  3.2. 성현영의 重玄思想 및 『장자』 ?제물론? 四句와 『中論』 四句의 인식방법
4. 慧能의 頓悟와 체용론
5. 결 론

 

 

1. 서 론

 

중국철학사에서 불교와 도가의 첫 만남을 우리는 격의불교라고 한다.1] 위진남북조시대에 성립한 격의불교는 도가의 언어를 빌려 반야사상을 설명함으로써 소위 6가 7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道安(312~385) 이후에는 도리어 격의불교를 비판하고 僧肇(384~414)에 이르러 도가로부터 반야사상의 독립적 위치를 확보하였다. 이후 불교의 세력이 공고해지자 도가는 불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成玄英(약 606~690)은 당 초기의 대표적인 도사로서, 그의 『莊子疏』에 보이는 重玄의 철학에는 반야사상의 언어가 넘친다. 그러나 당나라 중기 이후 화려하게 꽃핀 禪宗의 진정한 원류는 도가라는 반전이 또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위진남북조시대 이후, 송대에 성리학이 성립하여 삼교 교섭의 시대로 진입하기까지 약 700여 년 간 불교와 도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1]격의불교란 물론 불교와 노장철학의 만남 외에 유가사상과의 만남도 의미한다. 예컨대 北齊의 顔之推가 불교의 五戒를 유교의 五常에 비견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역시 철학적인 면에서 불교는 주로 노장철학과 교섭하였다는 의미에서 본격적인 격의불교란 노장철학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불교와 도가의 철학이 서로 다른 지역적?문화적 배경에서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지만 특히 상호간에 공통된 철학문제를 논의할 수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불교가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위진남북조시대의 현학의 중심문제인 有無論은 역시 대승불교의 출발인 반야학에서도 똑같이 다루어졌던 것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위진현학은 본체론적 사유에 입각한 왕필의 貴無論과 본체론을 철저히 비판하는 곽상의 崇有論을 양대 주류로 발전하였다. 이미 『노자』에서 우리는 본체론과 반본체론의 양 계기를 발견할 수 있는바, 『노자』에 보이는 ‘有生於無’ 또는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에서 본체론적이고 발생론적인 사유를 발견한다면, 無爲自然에는 본체론 또는 발생론을 비판할 수 있는 반본체론적 사유방법이 내재한다. 한편 불교의 반야학은 철저히 본체를 부정하는 緣起性空, 空卽中道의 사유방법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격의불교 초기, 즉 현학의 영향하에서 반야공사상을 이해했던 6가 7종은 현학과 같이 有 또는 無의 어느 한편에 치우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구마라집(?~413)에 의해 본격적인 반야학이 수용되고 龍樹의 논서들이 漢譯되면서, 승조를 비롯한 반야학가들은 空卽中道의 논리를 기반으로 유 또는 무에 치우친 격의불교를 비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승조 이후 불교는 현학의 틀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되는가?

 

중국불교, 즉 중국적 불교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결정적 계기로서 우리는 『寶性論』, 『佛性論』 그리고 『大乘起信論』등 如來藏思想 또는 佛性思想의 등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승기신론』이 특히 중국불교의 특징인 불성사상의 형성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지만, 보다 중요한 계기는 소위 體相用 三大의 시설이다. 즉 『대승기신론』이 중국적 불교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는 것은 단순히 불성사상이 내재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체용적 논리구조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적 불교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혜능의 선불교의 특징도 역시 체용론에 근거한 頓悟說에 있다.

‘菩提自性 本來淸淨 但用此心 直了成佛’이라고 하거니와, 이렇게 다만 見聞覺知하는 마음을 써서 곧장 成佛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혜능의 돈오설은 本體인 淸淨自性과 現象인 마음을 체용의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중국불교 형성의 한 계기로서 『대승기신론』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체상용 3대의 시설에 있음은 이미 언급한 바이지만, 그에 앞서 주목하고 싶은 사실은 중국에서 반야공사상을 이해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승조가 이미 체용론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다 아는 바와 같이 용수가 涅槃, 第一義諦마저도 부정하는 철저한 공사상을 견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최초로 공사상을 이해했다고 인정되는 승조에게 체용론이 수용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승조가 수용하고 있는 『유마경』 사상에도 이미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는 不二法門이 있고, 반야공사상도 내용상에서 眞俗二諦의 不二를 내포하지만, 체용론은 단순히 불이법문만이 아닌 본체론적 사유를 포함하는 것이다. 3] 게다가 또 體用이라는 도가적 언어를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역시 도가철학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승조의 반야공사상이 본체론적 사유를 수용하여 체용론의 체계를 수립하는 데에 도가철학의 영향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禪宗이라는 중국불교의 성립을 해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도가 역시 불교, 특히 반야공사상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음은 성현영 등의 중현사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용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사유방법은, 역시 전술한 바와 같이, 본체론을 비판하는 반야공사상과 無를 본체론적 사유로 해석한 왕필의 체용론이다. 곽상의 숭유론은 성현영 등에 의해 반야공사상을 수용하는 중현사상으로 발전하게 되는 데 반해, 왕필의 체용론은 열반, 불성사상을 중국적으로 해석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왕필의 체용론이 반야학가, 특히 승조에 의해서 불교적 체용론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고, 그것은 『대승기신론』을 거쳐 혜능에 이르러 돈오설로 발전함으로써 중국불교를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4]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전제하에 위진 이래 선종의 성립에 이르기까지의 도가와 불교의 사유방법의 교섭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승조와 혜능이 수용하는 체용론의 사유방법에 대해 주목할 것이다.

 

2]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李世傑이 승조의 體用相卽論이 후대의 중국불교에 미친 영향이 심대하다고 평가한 것은 타당하다. 『漢魏兩晉南北朝佛敎思想史』(台北:新文豊出版社, 民國 69), p. 102 참조.

3]“대승불교가 흥기한 후 가장 초기에 출현하는 반야계의 대승경전에도 心性本淨說이 채용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般若空慧의 각도에서 설해졌다. 예컨대 『小品般若經』 제1권에서는 ‘是心非心, 心相本淨故’라고 하였는데, 이 경우 마음은 空不可得의 ‘非心’이므로 心相이 本淨하다는 것이다. 『大智度論』에서 ‘畢竟空卽是畢竟淸淨’이라고 말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心淸淨說은 般若中觀思想과는 부합하지만 如來藏思想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釋恒淸, 『佛性思想』(台北:東大圖書公司, 1997) 序文 참조.

4]물론 『대승기신론』이 승조의 영향으로 성립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사상사적으로 볼 때 승조에게서 체용론이 먼저 수용됨을 의미한다.

 

 

2. 僧肇의 格義佛敎 비판과 體用論

 

2.1. 격의불교 비판과 中道思想

 

소위 6가 7종을 형성한 격의불교를 비판한 것은 도안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이 도안마저 역시 격의의 자취가 있다고 하여 승조와 길장의 비판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승조에 의하면 도안의 本無說은 다음과 같이 비판된다.

 

"본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無를 숭상하여 말만 하면 無를 들먹인다. 그래서 (본무설에서는 非有非無의 中道를 설명하기를) ‘非有’는 有가 곧 無라는 뜻이고, ‘非無’는 無도 또한 無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비유비무의) 본래의 의미를 추구하면 다만 ‘非有’는 참으로 有는 아니라는 뜻이고, ‘非無’는 참으로 무는 아니라는 뜻일 뿐이다. 하필 ‘非有’가 有가 없음을 뜻하며, ‘非無’가 그 無 또한 없다는 뜻이겠는가? 이것은 단지 無를 좋아하는 말일 뿐이니 어찌 사물의 실상이라고 하겠는가? " 5]

5] 本無者, 情尙於無, 多觸言以賓無, 故非有有卽無, 非無無亦無, 尋夫立文之本旨者, 直以非有非眞有, 非無非眞無耳, 何必非有無此有, 非無無彼無, 此直好無之談, 豈謂順通事實, 卽物之情哉. 『肇論』 ?不眞空論?. 이하 승조의 『肇論』 원문과 번역은 塚本善隆 編, 『肇論硏究』(法藏館, 昭和 46)를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이상에 의하면 본무종은 ‘유는 곧 무이며 무 또한 무’라고 하여 무의 절대성을 주장했으며, 승조는 이를 유무의 이변을 떠난 중도 논리로써 비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위에서 인용한 승조의 진술만으로는 도안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도안의 뜻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中觀論疏』에 보이는 길장의 본무설에 대한 비판과 『名僧傳抄』 ?曇濟傳?에 보이는 본무종에 대한 기술을 참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먼저 길장의 비판을 보기로 한다.

 

"석도안은 본무의 뜻을 밝혀 말하였다. “무는 현상에 앞서 있고, 공은 만물의 시작이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末有에 있다. 만약 본래 (末有가) 무라는 것을 알면 집착이 사라질 것이다.” …… 安公의 본무는 일체제법의 본성이 공적하다는 뜻에서 본무라고 한 것이다. "6]

6] 釋道安明本無義, 謂無在萬化之前, 空爲重形之始, 夫人之所滯, 滯在末有, 若宅心本無, 則異想便息 …… 安公本無者, 一切諸法, 本性空寂, 故云本無. 吉藏, 『中觀論疏』.

 

또한 『名僧傳抄』 ?曇濟傳?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본무주종은 이렇게 말한다. “如來가 세상에 나와 본무의 뜻으로써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러므로 『방등심경』에서도 모두 오음이 본무라고 밝혔으니 본무론의 유래가 오래되었다. (본무란) 무슨 뜻인가? 현상세계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텅 비었을 뿐이다. 원기가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만물의 형상이 이루어졌으니, 형상은 비록 이루어지고 변화하지만 그 변화의 근본은 자연에서 나왔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니 어찌 조물주가 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무가 현상의 변화 이전에 있고, 공이 만물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본무란 텅 빈 데에서 능히 만물을 발생한다는 뜻이 아니다. " 7]

7]本無主宗曰, 如來興世, 以本無興敎, 故方等深經, 皆備明五陰本無, 本無之論, 由來尙矣, 何者, 夫冥造之前, 廓然而已, 至於元氣陶化, 則群象稟形, 形雖資化, 權化之本, 則出於自然, 自然自爾, 豈有造之者哉, 由此而言, 無在元化之前, 空爲衆形之始, 故爲本無, 非爲虛豁之中, 能生萬物也.

 

 

길장이 기술한 “무는 현상에 앞서 있고, 공은 만물의 시작이다”에 의하면, 마치 도안이 무를 형이상학적 실체로 규정하여 무로부터 유가 발생했다는 발생론을 주장했다고 알기 쉽다. 실제로 우리는 도안의 본무론이 노자의 ‘有生於無’에 근거한 발생론적 세계관과 같다고 서술한 예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8]

그러나 ?담제전?에 의하면 도안이 의거한 바는 사실 노자만이 아니라 곽상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곽상은 왕필의 貴無論을 비판하고 만물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自爾獨化說을 주장하였는바, 곽상의 자이독화설이 도안의 본무론에도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위에 인용된 ?담제전?의 “형상은 비록 이루어지고 변화하지만 그 변화의 근본은 자연에서 나왔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니 어찌 조물주가 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무가 현상의 변화 이전에 있고, 공이 만물의 시작이라고 말한다”는 진술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안이 반야학의 무자성공을 설명하기 위해 노자의 ‘有生於無’와 곽상의 자이독화설을 결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노자의 ‘有生於無’와 곽상의 자이독화설은 서로 모순명제이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 먼저 곽상의 자이독화설을 그의 天? 해석을 통해서 보기로 한다.

 

8]예컨대 楊惠南은 『龍樹與中觀哲學』(台北:東大圖書公社, 1988), p. 41에서 도안이 『노자』의 ‘有生於無’와 같은 발생론에 빠졌다고 한다.

 

 

"천뢰라는 것이 어찌 독립된 일물로 따로 존재하겠는가? …… 무는 이미 무일 뿐이니 유를 생할 수 없고 유가 생겨나지 않았다면 생이라고 할 수 없다. …… 나는 스스로 존재할 뿐이니 그것을 천연이라고 한다. 9] "

9] 天?者, 豈復別有一物哉, …… 無旣無矣, 則不能生有, 有之未生, 又不能爲生, …… 自己而然, 則謂之天然. 『莊子翼』(漢文大系 권9, 東京:富山房, 昭和 48년).

 

이상에 보이는 바와 같이 곽상은 무가 유를 발생시킨다는 노자의 ‘有生於無’를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그렇다면 도안은 어째서 만물의 자연자이를 말하는 곽상과 노자를 결합했을까? 그것은 도안 자신이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末有에 있다. 만약 본래 (末有가) 무라는 것을 알면 집착이 사라질 것이다” 10]라고 말한 바와 같이, 末有(현상세계)가 단지 허상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도안이 곽상의 자이독화설을 받아들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 곽상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곽상의 자이독화가 궁극적으로 현상 사물의 존재를 긍정하는 근거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안이 곽상의 자이독화를 수용한 것은 다만 형이상자를 부정함으로써 일체 사물의 존재도 부정하려는 의도였다. 그가 노자의 ‘有生於無’를 수용한 뜻도 여기에 있다. 단지 자이독화만을 말해서는 형이상자는 부정될지언정 현상 사물까지 부정할 근거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노자의 ‘有生於無’를 말하여 유와 무의 관계성을 설정함으로써 비로소 무에 의해서 유를 부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통틀어 보면 도안은 곽상의 자이독화설을 통해서 형이상학적 실체를 부정하고, 동시에 노자의 ‘有生於無’를 이용해서 곽상의 자이독화를 또한 부정하는 雙遮의 방법을 통해서, 무자성공을 다만 일체 사물이 공허하다는 절대부정의 의미로 해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무는 무이므로 유만이 실재라고 하여 유를 긍정한 곽상과는 달리, 도안은 유의 근원은 무인데 무는 무이므로 유 또한 부정되어야 한다는 절대부정에 귀착한 것이다.

 

사실 무자성공은 도안이 말한 것처럼 단지 만물이 공허하다는 절대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용수의 『중론』에서 “만약에 일체가 공하지 않다면 생과 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11]고 말한 바와 같이, 공은 만물이 허무함을 뜻하기보다는 오히려 만물의 존재를 보장한다. 물론 자성을 갖는 실재로서의 존재를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 존재로서의 보장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용수의 공이 연기성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고에 자성이 있다면 어떻게 集으로부터 고가 생길 수 있겠는가?” 12]라는 말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공이란 집에서 고가 생긴다는 四聖諦 사이의 연기적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언표에 불과한 것이다.

사물의 자성은 부정하지만 사물 자체가 연기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 것이 용수의 공이 의미하는 바이며, 공 또한 공하다는 空空 13]의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렇게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작용한다는 점에서 또한 中道라고도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앞에서 인용한 승조의 ‘비유비무’ 14]에 대한 해석 역시 연기성과 중도의 관점에서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15]

그것은 역시 앞에서 인용한 “본래의 의미를 추구하면 다만 ‘비유’는 진실한 유가 아니라는 뜻이고, ‘비무’는 진실한 무가 아니라는 뜻일 뿐이다. 하필 ‘비유’가 유가 없음을 뜻하며, ‘비무’가 그 무도 또한 없다는 뜻이겠는가?” 16] 라는 승조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이 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0]주 6) 참조.

11]若一切不空, 則無有生滅, 如是則無有, 四聖諦之法. 『中論』 ?觀四諦品? 제24.

12]若苦有定性, 何故從集生. 吉藏, 『中觀論疏』.

13]용수는 『중론』 제24장 제18게에서 “공성과 연기와 중도는 동일한 뜻”이라고 언명하였고, 이러한 중도사상은 불타의 유무중도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역시 『중론』 제15장 제7게에서 “불타는 능히 유와 무를 부정하였다. 가전연을 교화한 경에서 말하신 것처럼 불타는 유도 떠나고, 무도 떠났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그렇다면 ‘유도 떠나고 무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품반야경』에서는 ‘공 또한 공하다’는 의미에서 ‘空空’이라고 하였거니와, 이에 대한 용수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공이 일체법을 부정한 뒤에는 오직 공만 남는다. 공은 일체법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공 자신도 응당 부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도 공하다.” 이처럼 공 또한 공하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중도를 말할 수 있다.

14] 주 5) 참조.

15]승조의 유무론이 용수의 중도를 충실히 천명하고 있음은 청목의 주석과 대비할 때 명료하게 드러난다. 청목은 『중론』의 ‘衆因緣生法, 我說卽是空’을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다.

“‘衆因緣生法, 我說卽是空’은 어째서인가? 衆緣이 구족하면 화합하여 物을 生한다. 이 物은 衆因緣에 속하므로 無自性이며, 무자성이므로 空이다. 空 또한 空하지만 단지 衆生을 인도하기 위하여 假名으로 설하였다. 有와 無의 二邊을 떠났기 때문에 中道라고 이름한다. 이 법은 자성이 없으므로 有라고 할 수 없고, 또한 공도 아니므로 無라고 할 수 없다. 만약 법에 性相이 있다면 중연에 의지하지 않고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중연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하지 아니한 법은 없다.”

『中論』 ?觀四諦品? 제24(대정장 권30, p. 33). 이상의 주석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승조의 유무론은 유와 무의 이변을 떠난다는 청목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다.

16]주 5) 참조.

 

 

"‘비유’란 진실한 유가 아니라는 뜻일 뿐 유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무’란 진실한 무가 아니라는 뜻일 뿐 무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진실한 유가 아니라는 뜻일 뿐 유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은, 일체 사물은 자성을 갖는 진실한 유는 아니지만 연기법에 의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진실한 무가 아니라는 뜻일 뿐 무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은, 일체 사물은 연기법에 의해 존재하므로 무자성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용수의 공이란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으며 다만 우리의 집착을 제거할 뿐이다. 그것은 승조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성인은 無相이 없다. 왜인가? 만약 무상을 무상이라고 여긴다면 무상이 곧 相이 되어 有를 떠나 無로 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산봉우리에서는 도망하였으나 도리어 구렁텅이에 빠진 것과 같으니 양쪽 모두 병통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至人은 有에 處하되 有에 집착하지 않고, 無에 居하되 無에 빠지지 않는다. 비록 有無에 빠지지 않되 유무를 또한 버리지도 않는다. " 17]

17] 聖人無無相也, 何者, 若以無相爲無相, 無相卽爲相, 捨有而之無. 譬猶逃峰而赴壑, 俱不免於患矣.

是以至人處有而不有, 居無而不無. 雖不取於有無, 然亦不捨於有無. 『肇論』 ?般若無知論?.

 

그러므로 승조의 ‘비유비무’에 대한 해석은 용수의 연기성공의 의미를 올바르게 천명한 것이며, 승조의 도안에 대한 비판 역시 연기성공의 중도논리에 입각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2.2. 般若知의 체용론적 해석

 

승조의 반야사상의 특색은 용수의 연기성공에 의한 ‘비유비무’중도를 천명한 데에서 그치지 않고 ‘寂卽用, 用卽寂’의 體用論으로 발전하는 데 있다. 그것은 『조론』 ?반야무지론?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언표에 나타난다.

 

 

"용이 곧 적이며, 적이 곧 용이다. 용과 적은 체가 하나이니, 같이 나왔으면서 이름만 다른 것이다. 용 없는 적은 없으니 용을 주관한다. " 18]

18] 用卽寂, 寂卽用. 用寂體一, 同出而異名, 更無無用之寂, 而主於用也. 『肇論』 ?般若無知論?.

 

위의 “용이 곧 적이며, 적이 곧 용이다. 용과 적은 체가 하나이다”라는 말은 적과 용의 체용관계를 언명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승조가 『노자』 제1장의 “같이 나왔으면서 이름만 다른 것”(同出而異名)을 인용하여 ‘寂卽用 用卽寂’의 체용관계를 밝히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적과 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적이란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난 불타의 寂靜한 心體를 의미하며, 용은 적정한 심체의 작용을 가리킨다. 그것은 승조가 위의 인용문에 이어서 말한 다음의 내용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보적이 말하기를 “無心無識이면서도 覺知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窮神盡智이며 지극히 象을 초월한 말이다. 여기에서 성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 19]

19]寶積曰, 無心無識無不覺知, 斯則窮神盡智, 極象外之談也, 卽之明文, 聖心可知矣. 『肇論』 ?般若無知論?.

 

여기에서 보적이 말한 ‘無心無識’은 곧 마음의 體로서 寂이며, ‘각지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곧 寂靜한 心體의 作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無心無識’은 결코 인식의 단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인식 주관에 의해서 대상을 표상하는 것, 즉 心緣相을 조작해 가는 집착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다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生滅이란 生滅心이다. 聖人은 無心하니 어찌 생멸이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心을 心으로 함이 없고, 또 應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다만 應을 應으로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應會하는 道는 四時가 일정하게 운행하는 것같이 분명하건만 다만 虛無로써 體를 삼기 때문에 生도 不可得이며 滅도 不可得이다. " 20]

20]生滅者生滅心也, 聖人無心, 生滅焉起, 然非無心, 但是無心心耳, 又非不應, 但是不應應耳, 是以聖人應會之道, 則信若四時之質, 直以虛無爲體, 斯不可得而生, 不可得而滅. 『肇論』 ?般若無知論?.

 

여기에서 ‘生滅’이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겠으나, 사실상 우리가 변화한다고 믿고 있는 객관 사물들은, 인식 주관 밖에 자성을 가진 실체로서 의연히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객’ 대립의 대상적 파악에서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표상의식의 소산, 즉 ‘生滅心’일 뿐이다. 21]

승조는 “인식 대상은 인식 밖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 주관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며, 또한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 역시 인식 대상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생겨남은 곧 인연법이며, 인연법이므로 참되지 않다” 22] 고 말하거니와, 생멸심이란 곧 인식 주관과 객관의 因待관계에서 의식에 표상된 심연상일 뿐이다. 따라서 성인의 ‘無心’이란 다만 생멸심이 없음을 가리킬 뿐이요, 또는 주객 대립의 의식을 지양함을 말할 뿐이요, 결코 의식 그 자체의 단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승조의 “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심을 심으로 함이 없을 뿐” 23]이라는 말이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심의 無知와 혹지의 知無를 구별하는 승조의 설명을 참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21]고형곤 『선의 세계』 권1, p. 34.

22]夫所知非所知, 所知生於知, 所知旣生知, 知亦生所知, 所知旣相生, 相生卽緣法, 緣法故非眞. 『肇論』 ?般若無知論?.

23] 주 20) 참조.

 

 

"聖心은 虛靜하여 없앨 수 있는 知가 없다. 그러므로 無知라고 할 수 있을 뿐 知無라고는 할 수 없다.

惑智는 知가 있기 때문에 없앨 수 있는 知가 있다. 그러므로 知無라고 할 수 있을 뿐 無知라고는 할 수 없다. 無知는 般若의 無이고, 知無는 眞諦의 無이다. "24]

24]夫聖心虛靜, 無知可無, 可曰無知, 非謂知無,

惑智有知, 故有知可無, 可謂知無, 非曰無知,

無知卽般若之無也, 知無卽眞諦之無也. 『肇論』 ?般若無知論?.

 

여기에서 말하는 성심은 물론 불타의 마음을 가리키며, 惑智란 ‘惑取之智’ 즉 ‘대상을 미혹되게 집착하는 지’의 줄임말이다. 그렇다면 성심의 무지와 혹지의 지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성심은 진제, 즉 무(=공)에 대해서 무지의 경계이고 혹지는 진제, 즉 무(=공)에 대해서 지무의 경계에 있다는 말이다. ‘무지’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無知可無’, 즉 ‘없앨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지가 없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지무’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有知可無’, 즉 ‘없앨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무란 진제로서의 공을 실체화(=대상화)한 것이요, 무지란 실체화할 공이 없음을 여실하게 깨달음을 가리킨다. 전술한 바와 같이, 승조는 “성인은 무상이 없다. 왜인가? 만약 무상을 무상이라고 알면 무상이 곧 상이 되어 유를 버리고 무로 가는 것이 된다” 25]라고 말하거니와, 무상을 무상이라고 대상화하면 곧 무상이라는 상을 취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참으로 무상이기 위해서는, 무상이라는 마음조차 없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마음에 무상이라는 상조차 취함이 없을 때 참으로 집착 없는 마음이 현행한다.

이 또한 승조가 “眞智는 眞諦를 觀함에 일찍이 所知(=대상)로서 取함이 없다. 智가 所知를 取하지 않으니 이 智가 어찌 知를 말미암겠는가? 그러나 智는 知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眞諦를 所知로 삼지 않을 뿐이다” 26]라고 말한 바와 같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寂用이란 心緣相이 단멸한 뒤, 다시 말하면 심연상으로서의 일체 대상을 의식하지 않을 때에, 결코 대상화되지 않는 智 자체가 현행하여 현실에서 대상을 만나 그때그때 그 대상의 실상을 왜곡하지 않고 우리의 의식에 現前시키는 작용을 의미한다.

승조는 보적의 말을 빌려 “집착 없는 마음이 현행한다”(無心意而現行) 27]고 하였고, 또 “지가 어두울수록 비춤은 더욱 밝다” 28]고 하였으니, 마음이 대상에 집착함이 없을수록, 일체의 대상의식이 없을수록, 심체는 더욱 명료하게 사물의 실상을 비추어 현전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소위 寂用이 체용의 관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25]주 17) 참조.

26] 眞智觀眞諦, 未嘗取所知, 智不取所知, 此智何由知, 然智非無知, 但眞諦非所知. 『肇論』 ?般若無知論?.

27] 寶積曰, 無心意而現行. 『肇論』 ?般若無知論?.

28]智彌昧, 照逾明. 『肇論』 ?般若無知論?.

 

심체는 마치 사물이 앞에 있으면 분명히 비치고 사물이 사라지면 흔적도 없는 거울과 같아 그 자체는 ‘無一相可得’의 空일 뿐이다. 이와 같이 지금 비친 사물을 떠나서 따로 거울의 체상이 없으므로 ‘用卽寂’이요, 다시 새로운 사물이 나타나면 거울은 또한 이전의 사물을 흔적 없이 지우고 새롭게 만난 사물을 비추니 그것이 ‘寂卽用’이다. 즉 심체의 현행 전체가 하나의 작용에서 현행하고, 또한 하나하나의 작용을 떠나서 따로 심체의 현행이 없기 때문에 體卽用, 用卽體의 체용관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체용론은 분명히 대상화되지 않는 심체의 존재와 현행을 긍정하는 것이므로, 반야공사상의 진제마저도 공하다는 공공으로부터 진일보하여 본체론을 수용한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뒤에서 혜능의 돈오설을 설명하면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3. 王弼?郭象의 玄學과 成玄英의 『莊子』 ?齊物論? 해석

 

3.1. 왕필의 체용론과 곽상의 無心論

 

성현영은 『莊子疏』 序에서 “장자라는 책은 道德의 깊은 뿌리를 펼치고, 重玄의 묘지를 서술했으며, 無爲의 담염함을 드러내고, 獨化의 요명함을 밝힌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도덕과 무위가 노장철학을 대표하는 일반적인 개념이라고 한다면, 독화와 중현은 성현영 자신의 노장철학에 대한 관점을 표명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독화는 지인의 초탈한 정신 경계를 표현하는 곽상의 개념이다.

『莊子』 ?소요유?의 “若夫乘天地之正, 而御六氣之辨, 以遊無窮者”에 대한 곽상의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天地의 올바름을 탄다는 것은 곧 만물의 本性을 따름이요, 六氣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은 변화의 과정에서 노닌다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무슨 막힘이 있겠는가? 대상을 만나면 곧 하나가 되니 무슨 대립이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은 彼我의 대립을 玄同하여 하나됨의 세계에서 소요한다는 것이다. " 29]

29] 乘天地之正者, 卽是順萬物之性也, 御六氣之變者, 卽是遊變化之途也, 如斯以往, 則何往而有窮哉, 所遇斯乘, 又將惡乎待哉, 此乃至德之人, 玄同彼我者之逍遙也. 『莊子疏』.

 

이로써 보면 곽상은 장자의 소요를 ‘피아의 대립을 완전히 해소한 지인의 정신 세계 또는 정신 경계’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피아의 대립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어떻게 소요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는가? 위에 보이는 바와 같이, 『莊子』에서 제시된 방법은 “천지의 올바름을 타고”(乘天地之正) “육기의 변화를 이끈다”(御六氣之辨)는 것이다.

그런데 곽상은, 장자가 말한 “천지의 올바름을 탄다”를 “만물의 본성을 따름”(順萬物之性)으로, “육기의 변화를 이끈다”를 “변화의 과정에서 노닌다”(遊變化之途)로 해석하였다. 보기에 따라 장자가 말하는 ‘천지의 올바름을 타고’ ‘육기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은 만물을 초월(乘)하여 이끌어 간다(御)는 형이상학적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그러나 곽상은 ‘천지’를 ‘만물’ 자체로 보고, ‘변화를 이끈다’는 것을 단지 ‘변화의 과정에 노닌다’는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논의의 중심을 초월로부터 현상세계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莊子』 ?제물론?의 ‘天?’를 해석하는 데에서도 유감 없이 드러나고 있다.

 

 

"천뢰라는 것이 어찌 독립된 一物이겠는가? 즉 피리에 구멍들이 어울려 하나의 소리를 내듯 생명들이 서로 만나 함께 하나의 하늘을 이룰 뿐이다.

無는 기왕에 無이니 有를 生할 수 없다. 또한 有가 생겨나지 않았으니 다른 아무것도 낳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생명을 누가 낳았는가?

그저 저절로 생겨났을 뿐(自生)이다. (만물은) 저절로 생겼을 뿐이지 내가 낳은 것이 아니다.

내가 기왕에 만물을 낳지 못하고 만물 또한 나를 낳지 못하니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自然)이 된다. 나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天然이라고 한다. " 30]

30] 天?者, 豈復別有一物哉, 卽衆窺比竹之屬, 接乎有生之類, 會而共成一天耳,

無旣無矣, 則不能生有, 有之未生, 又不能爲生, 然則生生者, 誰哉,

塊然而自生耳, 非我生也,

我旣不能生物, 物亦不能生我, 則我自然耳, 自己而然, 則謂之天然. 『莊子翼』.

 

이상에서 “천뢰라는 것이 어찌 독립된 一物이겠는가?”라는 곽상의 물음은 초월적(형이상학적) 실체를 부정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또한 “無는 기왕에 無이니 有를 生할 수 없다”는 언표는 그가 왕필의 형이상학적 사유(=貴無論)를 부정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곽상은 다만 형이상학적 실체를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들의 관계도 부정한다. “내가 기왕에 만물을 낳지 못하고 만물 또한 나를 낳지 못하니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自然)이 된다”는 말에서 우리는 곽상이 사물간의 인과성을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사물간의 인과성을 긍정해서는 自爾獨化는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곽상의 자이독화가 참으로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장자』 ?제물론?의 말미에 보이는 유명한 ‘罔兩問景’ 대목에 대한 곽상의 주석에서 그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혹자는 말하기를 “罔兩은 景에 의지하고 景은 形에 의지하고 形은 造物者에 의지한다”고 하니, 청컨대 묻겠다. “조물자는 有인가 無인가? 무라면 어떻게 만물을 만들 수 있는가? 유라면 만물을 다양하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만물이 스스로 생겨나 아무 데에도 의지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것이 천지의 바른 도리이다. 그러므로 彼와 我가 서로 因待하고 形과 景이 서로 생겨나게 하는 것은 비록 玄合이라고 할지언정 서로 인대하고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罔兩이 景에 의지하지만, 오히려 함께 존재하는 것이지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罔兩이 景에 제압되지 않으며 景은 形에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形이 無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다면, 발생과 발생하지 않음, 그러함과 그러하지 않음, 남을 따르는 것과 나 자신에 말미암는 것이 모두 스스로 그러하지 않음이 없으니 내가 왜 그 원인 따위를 알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물 각자에게) 맡기고 인위로 조작하지 않으면 本末內外가 사라져 흔적조차 없으리라. 만약 그 원인을 추구하여 스스로 그러함을 잊고, 밖에서 사물의 근원을 찾아 안에서 주체가 됨을 잃는다면 사랑과 집착이 생기리니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얻겠는가? " 31]

31]或謂, 罔兩待景, 景待形, 形待造物者, 請問, 夫造物者, 有邪, 無邪, 無也, 則胡能造物哉, 有也, 則不足以物衆形, 故明乎衆形之自物自造, 而無所待焉, 此天地之正也,

故彼我相因, 形景相生, 雖復玄合, 而非待也, 今罔兩之因景, 猶云俱生, 而非待故, 罔兩非景之所制, 而景非形之所使,

形非無之所化也, 則化與不化, 然與不然, 從人之與由己, 莫不自爾, 吾惡識其所以哉,

故任而不助, 則本末內外, 泯然無跡, 若乃責此近因, 忘其自爾, 宗物於外, 喪主於內, 而愛尙生矣, 何夷之得有哉. 『莊子翼』.

 

위에서 “罔兩은 景에 의지하고 景은 形에 의지하고 形은 造物者에 의지한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물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 즉 존재에 대한 인과론적 추론을 의미한다. 우리는 보통 사물이 존재하는 근거를 추구하다 보면 그 배후의 원인들을 소급해서 결국은 조물자 또는 제일원인 등 형이상학적 실체에 도달하게 된다. 위에 보이는 “조물자는 有인가 無인가? 무라면 어떻게 만물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곽상이 조물자 내지는 만물의 형이상학적 실체를 부정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무가 만물, 즉 유를 생산할 수 없다는 형식 논리적 추론은 이미 위에서 언급된 바이다. 그런데 곽상은 다만 무를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마저도 부정한다. “유라면 만물을 다양하게 할 수 없으리라”는 추론이 그것을 의미한다. 즉 만물의 존재 근거가 만약 유라면 그 자신이 유로서의 일정한 형태를 갖고 있을 것이므로 다양한 만물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와 유의 양면에서 형이상자가 부정됨으로써 곽상의 철학에서는 실체론의 성립 기반이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런데 곽상이 실체론을 부정한 이유는 결코 존재론적 입론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위에 보이는 “만약 그 원인을 추구하여 스스로 그러함을 잊고, 밖에서 사물의 근원을 찾아 안에서 주체가 됨을 잃는다면 사랑과 집착이 생기리니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얻겠는가?”라는 곽상의 말과 같이, 문제는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적 태도, 즉 만물을 관조하는 주체적 정신 경계에 있다. 어떤 사물을 관조할 때 그 사물과 연관된 일체의 인과적 관계를 단절하면 비로소 그 사물 자체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릴 것이다. 사실 우주의 어떤 사물도 그 자체의 존재는 유일무이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우리가 그러한 사물의 고유성과 가치를 긍정할 때 비로소 사물의 실상을 보게 되리라. 그러나 그 사물을 다른 사물과 연관시켜 인식하고 그 가치를 비교하게 되면, 그 순간 우리는 이것과 저것의 우열을 가리고 가치 우위적인 것에 애착을 갖게 되어 사물의 실상을 왜곡하게 마련이다. 곽상이 본체론을 비판하고 인과성을 타파할 것을 주장하는 배후에는 바로 이러한 마음의 왜곡과 집착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다.

 

사실 그는 사물간의 인과관계를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앞에서 “彼와 我가 서로 因待하고 形과 景이 함께 존재하는 것은 비록 玄合이라고 할지언정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인대하고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사물의 인대관계를, 일방적인 인대와 의지가 아닌 玄合, 즉 양자의 개성이 모두 온전할 수 있는 상호 공존의 관계로 인식을 전환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사물을 관조할 때 사물간의 우열을 비교하려는 관점을 떠나 그 사물 자체의 가치와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비로소 그 사물 자신의 모습을 올바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물을 관조하면, 마치 華嚴의 事事無碍法界觀과 같이, 만물은 각각 고유한 존재성과 가치를 지니고 상호 공존하여 갈등 없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곽상이 왕필을 비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왕필의 귀무론은 곽상이 비판하는 발생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물론 다 아는 바와 같이, 왕필의 귀무론은 형이상자인 무가 만물을 발생한다는 발생론은 결코 아니다. 도리어 만물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자연론이라는 점에서 곽상의 주장과 전혀 다르지 않다.

왕필은 『노자』 제10장 注에서 “그 근원을 막지 않으면 만물은 스스로 생하니 무슨 공이 있겠는가? …… 만물은 저절로 자라니 내가 주재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덕은 있되 주재함은 없으니 현묘하지 않은가?”라고 하여 만물을 주재하는 초월적 형이상자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그는 “천지는 자연에 맡겨 무위하며 조작이 없다. 만물은 자연스럽게 서로 다스리니 (천지는) 不仁하다. 천지는 짐승을 위해 풀을 낳은 것이 아니건만 짐승은 풀을 먹고, 사람을 위해 개를 낳은 것이 아니건만 사람은 개를 먹는다”(『노자』제5장 注)고 말하였는데, 여기에서 말한 ‘무위하며 조작이 없다’는 것이 곧 그가 말하는 ‘無’이다. 즉 인위조작이 없는 자연의 덕이야말로 만물을 생장하게 하는 근본이라는 것이다.

왕필의 “모든 유는 무에서 시작한다. …… 도는 무형무명으로써 만물을 시작하고 이룬다”(『노자』 제1장 注)는 ‘無’의 형이상학은 사실 ‘인위조작이 없는 덕’의 형이상학적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왕필의 ‘生’은 형이상자인 道(=無)가 만물을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만물은 인위조작에 의해 억압되지 않을 때 자신의 본성에 따라 생명의 자연스러움을 발휘할 수 있다는 ‘不生之生’이다. 32]

따라서 왕필의 형이상학은 無爲의 德性을 체득한 聖人, 至人, 神人의 정신 경계를 드러내는 경계 형태의 형이상학일 뿐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왕필이 형이상학적인 사유방법을 통해서 자연무위를 설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것이 곽상과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왕필의 형이상학이 성립하는 논리적 토대는 무엇인가?

 

왕필의 형이상학은 사실 體用論이다. 33] 그의 ?大衍義?에 의하면 太極과 萬物은 체용의 관계이다.

『주역』 ?계사?의 “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즉 大衍數 전체는 50인데 49만을 쓰고 1은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왕필은 이렇게 설명한다.

 

32] 牟宗三, 『中國哲學十九講』, pp. 103~104 참조.

33]牟宗三, 『才性與玄理』, pp. 100~103 참조. 여기에 보이는 불교, 도가, 유가의 체용론에 대한 모종삼의 분석은 매우 음미할 만하다.

 

 

"其用四十有九는 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쓰이는 四十九가 쓰이지 않는 一에 의해 통하게 되니, 一은 數가 아니요 數가 그것에 의해 이루어지는 본체이다.

一은 『易』의 太極이고 四十九는 數의 極이다.

無는 無로써 밝힐 수 없으니 반드시 有에 因해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만물의 極에서 만물이 연유한 근원을 밝혀야 한다. " 34]

34]其用四十有九, 則其一不用也, 不用而用以之通, 非數而數以之成,

斯易之太極也, 四十有九, 數之極也,

夫無不可以無明, 必因於有, 故常於有物之極, 而必明其所由之宗也. 『周易』 ?繫辭?, 韓康伯 注.

 

 

이상에 의하면 ‘쓰이지 않은 一’과 ‘쓰이는 四十九’의 관계는 본체와 작용의 관계로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쓰이지 않는 一’은 수가 아니라 ‘쓰이는 四十九’를 통하게 하고 이루어 주는 본체이다.

바꾸어 말하면 ‘쓰이는 四十九’는 ‘쓰이지 않는 一’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無는 無로써 밝힐 수 없으니 반드시 有에 因해야 한다”는 말은 본체인 무가 현상인 유와 因待해 있으며,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35] 왕필은 ?明彖?에서도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35] 무와 유의 체용관계는 『노자』11장에 보이는 그릇의 비유로도 이해할 수 있다. 노자는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면 그릇의 빈 공간(無) 때문에 그릇의 쓰임(用)이 생긴다”(?埴以爲器, 當其無有器之用)는 비유로써 무와 유의 체용관계를 설명하였다.

그릇의 공간(無)은 그 공간에 사물(有)이 담김으로써 그 공간성이 확인되고, 또한 사물은 공간이 있음으로써 자리잡을 수 있는(존재할 수 있는) 상호 관계를 갖는다. 즉 공간과 사물은 서로를 떠날 수 없는 체즉용, 용즉체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무리(衆)는 무리를 다스릴 수 없으니 무리를 다스리는 자는 지극히 적은 자이다. 움직임은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으니 천하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은 貞夫一者이다.

그러므로 무리가 모두 존재할 수 있는 원인은 一이 주관함에 있으니

…… 만물이 헛되지 않은 것은 반드시 理를 근거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만물은 다양하면서도 문란하지 않고, 무리지어 있으면서도 미혹하지 않다. " 36]

36]夫衆不能治衆, 治衆者, 至寡者也, 夫動不能制動, 制天下之動者, 貞夫一者也,

故衆之所以得咸存者, 主必致一也,

…… 物无妄然, 必有其理,

…… 故繁而不亂, 衆而不惑. 『周易略例』.

 

 

즉 다양한 만물이 헛되지 않은 것은 理(本體)가 만물에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체인 ‘理’ 또는 ‘一’(貞夫一者)은 만물과 독립한 형이상자가 아니라 만물에 즉해서 작용함으로써 만물이 곧 본체의 현현이 된다. 따라서 본체가 곧 작용이요, 작용이 곧 본체인 체용의 관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體用論이야말로 왕필의 義理易學의 핵심이거니와, 후에 易學뿐 아니라 불교에도 僧肇를 비롯하여 『大乘起信論』, 화엄학, 『六祖壇經』 등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시 곽상의 관점으로 돌아가 왕필과 비교해 보기로 하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왕필의 철학이 만물의 다양성을 긍정하되 그것을 다시 통일적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면, 곽상의 철학이 내포하는 특징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무라는 의식마저도 하나의 집착으로 간주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왕필의 체용론은 결코 형이상학이 아니며, 사실 ‘인위조작이 없는 덕’의 본체론적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왕필의 ‘生’은 본체인 道(=無)가 만물을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만물은 인위조작에 의해 억압되지 않을 때 자신의 본성에 따라 생명의 자연스러움을 발휘할 수 있다는 ‘不生之生’이다. 따라서 왕필의 본체론은 무위의 덕성을 체득한 성인, 지인, 신인의 정신 경계를 드러내는 경계 형태의 형이상학이다. 그런데 왕필은 다만 그것을 ‘무가 유를 생한다’(無生有)는 본체론적 표현을 통해 말하고 있을 뿐이며, 그의 본체론이 사실은 체용론임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러나 곽상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왕필의 그러한 사유방법이 발생할 수 있는 인식상의 위험성이다. 그것은 무를 하나의 본체로 설정할 때, 비록 그것이 본체론을 시설하려는 의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사물 자체로 관조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곽상은, 마치 반야학의 空空과 같이, 無 또한 부정하여 無의 자취마저 탈각시키려는 重玄的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더 보충해서 서술하겠지만,37] 이렇게 보면 왕필의 철학이 유무의 체용적 구조를 시설함으로써 무위의 덕을 이해할 객관적 토대를 마련했다면, 곽상은 유무 또한 부정함으로써 무위의 덕을 실현할 수 있는 인식상의 실천을 중시한 주관적 토대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왕필의 체용론은 후에 승조를 기다려 비로소 주관적 인식의 범주로 회귀한다고 할 수 있다.

 

37] 주 41)과 그 아래의 내용 참조.

 

 

 

3.2. 성현영의 重玄思想 및 『장자』 ?제물론? 四句와 『中論』 四句의 인식방법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성현영의 『장자소』는 그가 곽상의 자이독화론을 계승하는 한편 중현의 방법을 통해서 그것을 한층 심화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중현사상이 당 초기에 도교가 불교의 사유방법과 세계관을 흡수하여 도교의 이론화를 꾀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였음은 기존의 연구성과를 통해 알려진 바이다.38] 성현영에 의하면 중현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唐寫本 『道德經開題序決義疏』 ?第三 宗體?에 보인다.

 

 

"…… 經의 의미를 해석함에는 마땅히 宗旨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고금의 注疏들이 서로 宗旨가 다르니,

嚴君平의 『指歸』는 玄虛를 宗旨로 했고, 顧征君의 『堂誥』는 無爲를 宗旨로 삼고, 孟智周와 臧玄靜은 道德으로 宗旨를 삼고, 梁武帝는 非有非無로 宗旨를 삼았다.

晉世에 孫登이 말하기를, “重玄을 宗旨로 삼는다”고 하였으니 비록 여러 학파가 서로 다르지만 이제 손씨를 正宗으로 삼아 마땅히 重玄을 宗旨로 하고 無爲를 宗體로 해야 한다.

이른바 玄이란 심원하다는 명칭으로서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으니, 지극히 심원하여 집착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미 有에 집착하지 않고 또 無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다만 집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百非四句에 모두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重玄이라고 한다.

그래서 經에 말하기를 “玄之又玄 衆妙之門”이라고 하였다. " 39]

 

38]최진석, 『成玄英的莊子疏硏究』(北京:北京大學, 1996, 박사학위청구논문) 참조.

39]최진석, 위의 논문, p. 139에서 재인용.

 

앞에 보이는 바와 같이 중현이란 ‘다만 집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百非四句에 모두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집착하지 않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중현이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이유는 위에 보이는 ‘百非四句’에 의거한다.

여기에서 잠시 중관학파의 百非四句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百非四句’란, 원시불교 경전에도 보이는 불타의 無記說法의 형식과도 상통하는, 『중론』에 보이는 논식 중 하나로서 다음과 같은 것이다.

 

 

"一切法은 空한데 무엇이 有邊이고 無邊이며 有邊이면서 無邊이며, 非有邊이면서 非無邊이겠느냐? "40]

40] 一切法空故, 何有邊無邊, 亦邊亦無變, 非有非無邊. 『中論』 ?觀涅槃品? 제25 22송.

 

여기에 보이는 有邊, 無邊, 亦有邊亦無邊, 非有邊非無邊이 곧 四句인데, 이 문장에서는 일체법이 본래 공하므로 四句는 모두 참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四句가 모두 부정되는 것을 百非라고 한다.41]

즉 四句란 어떤 진리를 긍정하기 위해 사용된 논식이 아니라, 자성을 지닌 실재로서 사물을 긍정할 수 없음을 알려 주기 위한 논식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을 有라고 고집하는 데 대한 부정, 無라고 고집하는 데 대한 부정, 有이면서 無라고 고집하는 데 대한 부정,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라고 고집하는 데 대한 부정을 百非四句라고 하는 것이다. 四句의 논식은, 단지 네 가지 경우만이 아니라 사물의 자성을 고집하는 일체의 경우를 다만 네 가지 논식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제4 논식인 ‘非有非無’에 대한 부정은 일체의 논식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41] 『중론』을 주석한 靑目도 이 게송에 대해 “일체법은 언제나 어느 것이나 인연의 화합으로 생기므로 필경 공하며, 따라서 자성이 없다. 이러한 법 중에서 어떤 것이 有邊이며 누가 有邊이라고 하는가? 어떤 것이 無邊이며, 또한 有邊이면서 無邊이며, 有邊도 아니고 無邊도 아닌가? 누가 有邊도 아니고 無邊도 아니라고 하는가? …… 이러한 62邪見은 畢竟空 중에서 모두 不可得이다”(대정장 권30, p. 36b)라고 설명하였다. 이로써 보면 四句는 어느 것도 긍정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중관학의 百非四句가 성현영에 의해 중현과 같은 개념으로 수용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장자』 ?제물론?의 “今且有言於此, 不知其與是類乎, 其與是不類乎與, 類與不類相與爲類, 則與彼無以異矣”에 대한 곽상과 성현영의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먼저 곽상의 ?注?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 ‘시비가 없다’(無是非)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과연 시비가 있는 사람과 같은가 다른가? 같다고 말하려니 나는 시비가 없음을 시로 삼고, 저들은 시비가 없음을 비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러나 비록 시비가 다르기는 하지만 참으로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저들과 같다. 그래서 ‘類與不類, 相與爲類, 則與彼無以異矣’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장차 저들과 다르려면 無心해야 하니 이미 시비를 버렸으면 또 버린 것을 버려야 한다. 버리고 또 버려서 버릴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한 뒤에야 버림이 없어도 버리지 않음이 없어(無遣無不遣) 시비가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 42]

42] 今言無是非不知其與言有者類乎不類乎, 謂之類則我以無爲是彼以無爲非, 斯不類矣然此雖是非不同亦未免於有是非, 也則與彼相類矣, 故曰類與不類相與爲類則與彼無以異也, 然則將夫不類莫若無心旣遣是非又遣其遣, 遣之又遣之, 以至於無遣然後無遣無不遣而是非自去矣.

 

다 아는 바와 같이, 『장자』 ?제물론?의 내용은 彼와 我를 대립관계로 고집함으로써 발생하는 시비의 해소를 주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해소하라고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시비를 발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시비하지 말라는 시비를 하게 되므로 사실상 지금 시비하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순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곽상은 시비하지 말라는 마음조차 부정하는, 즉 부정의 부정을 통한 無心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곽상에게서 이미 ‘부정의 부정’, 즉 중현의 방법이 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위의 ?곽상주?에 대한 성현영의 ?疏?를 보기로 한다.

 

"‘類’는 비슷한 무리를 의미한다. 보통사람들은 어리석고 미혹되어 是에 집착하고 非에 집착한다(滯是滯非). 이제 ?제물론?은 저 세속적 집착을 벗어나고 미혹된 집착을 부정하려고 짐짓 시도 없고 비도 없다(無是無非)고 말하였으니 이는 참된 道를 쓰려 함이다.

그래서 다시 ‘서로 같은 무리가 된다’(相與爲類)고 말하였으니, 이는 ‘無是無非’를 다시 부정한 것이다. 이미 是非를 부정하였는데 또 부정함으로써(遣之又遣) 바야흐로 重玄에 이르렀다. " 43]

43] 類者, 輩徒相似之類也, 但群生愚迷, 滯是滯非,

今論, 乃欲反彼世情, 破玆迷執, 故假且說無是無非, 則用爲眞道,

是故復言相與爲類, 此則遣於無是無非也, 旣而遣之又遣, 方至重玄也. 『南華眞經注疏』 卷第三(淸 光緖 10年刊, 藝文印書館, 古逸叢書本影印).

 

이로써 우리는 성현영이, 곽상이 말한 부정의 부정(遣之又遣), 즉 ‘無是無非’의 부정을 통해서 ‘無心’에 도달함으로써 참으로 시비를 벗어난 경계, 또는 방법을 중현의 개념을 통해서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곽상이 말하는 부정의 부정, 즉 일체를 부정하여 하나의 알음알이도 허용치 않는 방법 내지 無心의 경계는 이미 『장자』 ?제물론?에서 제시되어 있는 바이다.

 

그것은 『장자』 ?제물론?에 보이는 “有始也者, 有未始有始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 有有也者, 有無也者, 有未始有無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먼저 “有始也者, 有未始有始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이 가운데 “未始有始也者”는 앞서 天鈞과 兩行을 말하면서 이어지는 “古之人, 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 至矣盡矣, 不可以加矣”의 ‘未始有物者’와 같은 형식이다.

옛사람이 지혜가 지극했던 이유는 ‘애초에 물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곽상은 “이는 천지를 잊고 만물을 버려, 밖으로는 우주를 살피지 않고 안으로는 자신의 한 몸마저 의식하지 않아 능히 텅 비어 집착이 없는 것” 44]이라고 설명했고, 성현영은 “세상만물이 모두 실재가 아니어서(非有), 物과 我, 內와 外가 모두 空하며 四句가 다 부정되어 일체가 虛靜하다” 45]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有始也者, 有未始有始也者”의 ‘有始也者’ 는 일체 사물을 집착하는 세속인을 가리키며, ‘未始有始也者’는 일체의 집착을 떠난 지인의 경계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곽상의 주에 의하면 ‘未始有始也者’는 역시 “시종을 초탈하여 생사를 하나로 한 경계를 말한다” 46]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 뒤에 이어진 “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는 무엇을 의미할까? 곽상은 이를 “시종과 생사의 대립을 떠나 하나로 한 사람은 그 하나마저도 부정하여 스스로 고르게 한 것만 못하니, 이는 하나마저도 잊음이다” 47]라고 하여 부정의 부정으로 해석하였다. 성현영도 『장자소』에서 이를 중현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44]此忘天地遺萬物, 外不察乎宇宙, 內不覺其一身, 故能曠然無累.

45]世所有法, 悉皆非有, 唯物與我, 內外咸空, 四句皆非, 蕩然虛靜.

46]謂無終始而一生死.

47]夫一之者, 未若不一而自齊, 斯又忘其一也.

 

이어서 “有有也者, 有無也者, 有未始有無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가 보기에『장자』 ?제물론?에 이미 중현의 방법이 제시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알려 주는 곳이 바로 여기이다. 먼저 성현영의 설명을 보자. ‘有有也者’에 대해 성현영은 “삼라만상이 모두 虛幻이므로 有를 드러내어 그 본체가 공함을 밝혔으니, 이 句는 有를 부정한 것이다” 48] 라고 하였다.

또 ‘有無也者’에 대해서는 “無가 있는가?라고 짐짓 물어 비단 有가 부정될 뿐 아니라 無도 부정됨을 밝혔다. 이 句는 無를 부정한 것이다” 49]라고 하였으며, ‘有未始有無也者’에 대해서는 “일찍이 無가 있지 않음이 있는가 없는가?라고 짐짓 물은 것이니, 이 句는 無가 아님을 부정한 것이다” 50]라고 하였다.

 

48]夫萬象森羅悉皆虛幻, 故標此有明卽以有體空, 此句遣有也.

49]假問有此無不, 今明非但有卽不有, 亦乃無卽不無, 此句遣於無也.

50]假問有未曾有無不, 此句遣非無.

 

끝으로 ‘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에 대해서는 “일찍이 無가 있지 않음이 일찍 있지 않은가?라고 짐짓 물었으니, 이는 無가 아님도 아님을 부정한 것이다. 얕은 데서 깊은 데로 들어가고 거친 데서 묘한 데로 들어가며, 有의 긍정으로부터 시작하여 無가 아니라고 마치니, 이는 사구백비를 초월했음이 분명하다” 51]라고 하였다. 즉 성현영은 有, 無, 未始有無, 未始有夫未始有無의 四句를 『중론』의 四句와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四句의 형식에서 『장자』 ?제물론?의 四句와 『중론』의 四句는 약간의 다름이 있다. 그러나 양자의 四句가 다 같이 형이상자에 대한 무한소급을 부정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장자』 ?제물론?의 四句나 『중론』의 四句를 막론하고 모두 분석적 소급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무한하게 소급해도 여전히 분석에 대한 집착에 불과하다. 52] 따라서 四句는 『중론』이나 『장자』 ?제물론?을 막론하고 모두 분석적 사유로부터의 초월을 요구한다.

 

『장자』 ?제물론?에서는 그것을 “俄而有無矣, 而未知有無之, 果孰有孰無也”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한 성현영의 설명은, “앞에서는 유무의 자취로부터 비유비무의 근본으로 들어왔는데, 이제 비유비무의 본체로부터 유무의 작용으로 나아간다” 53]는 것이다. 즉 이 글의 앞에서는 사구를 통해 유무에 대한 집착(=분석적 무한소급)을 덜어내는 과정이었는데, 여기에서는 반대로 유무의 집착을 초월한 정신 경계(곽상의 無心이나 성현영의 重玄의 경계)에서 유무를 관조하는 상태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현영은 “俄는 卽體卽用을 밝힌 것” 54]이라고 설명하고, 이어서 “유무의 작용에 나아가 비유비무의 본체를 밝힌 것” 55]이라고 거듭 말하였다. 즉 ‘俄而有無矣’는 ‘비유비무’인 본체가 ‘유무’의 작용을 일으킴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현영의 重玄이 體用으로 전환함을 주목해야 한다.

重玄을 ‘非有非無’에 대한 부정, 즉 개념분석의 무한소급으로부터의 초월이라고 한다면, 체용은 초월의 정신 경계에서 다시 현상을 관조함이 된다. 승조에게서 볼 수 있는 心體와 그 照用의 體卽用, 用卽體 혹은 卽體卽用의 경계가 성현영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성현영의 중현은 분명히 반야공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이미 중현적 사유방법은 곽상에게도 있고 『장자』 ?제물론?에도 내재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또한 성현영 역시 승조와 같이 인식에서의 초월과 체용론을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당 초기에 이미 불교와 도가의 철학이 상호 침투하여 새로운 형태의 철학, 즉 선종을 발생할 조건이 무르익었음을 시사한다.

 

51]假問有未曾未曾有無不, 此遣非非無也, 而自淺之深, 從?入妙, 始乎有有, 終乎非無, 是知離百非超四句, 明矣.

52]王煜, ?齊物論的天府與?光?, 『老莊思想論集』(台北:聯經出版社民國, 民國 82), pp. 185~194 참조.

53]前從有無之跡, 入非非有無之本, 今從非非有無之體, 出有無之用.

54]俄者明卽體卽用.

55]就有無之用, 明非有非無之體者也.

 

 

4. 慧能의 頓悟와 체용론

 

먼저 『六祖壇經』에 보이는 혜능(638~713)이 말한 체용의 비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善知識이여! 定과 惠는 무엇과 같은가? 마치 燈과 光의 관계와 같으니, 燈이 있으면 光이 있고 燈이 없으면 光이 없다. 燈은 光의 體요 光은 燈의 用이다. " 56]

56] 善知識, 定惠猶如何等如燈光, 有燈卽有光 無燈卽無光, 燈是光之體 光是燈之用 卽有二體無兩般此定惠法亦復如是. 퇴옹 성철, 『돈황본 육조단경』(장경각, 불기 2532, 이하 『돈황본 육조단경』), pp. 124~125.

 

여기에서 ‘燈이 있으면 光이 있고 燈이 없으면 光이 없다’는 것은 ‘燈’과 ‘光’의 인과관계를 규정하는 진술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燈은 光의 體요, 光은 燈의 用’이라는 진술은 우리로 하여금 體用論=因果論이라는 추론을 재촉한다. 과연 체용론은 곧 인과론을 의미하는 것일까? 『육조단경』에 보이는 다음의 진술은 그러한 추론을 유보하게 한다.

 

"定은 惠의 體요 惠는 定의 用이니, 惠에 卽하였을 때는 定이 惠에 있고 定에 卽하였을 때는 惠가 定에 있다. 善知識이여! 이 뜻은 곧 定과 惠가 平等하다는 것이다. 道를 배우는 사람은 생각하되, 定이 먼저 있어서 惠를 발생한다거나, 惠가 먼저 있어서 定을 발생한다거나, 定과 惠가 각각 別體라고 말하지 말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法에 두 모양(二相)이 있다는 것이다. " 57]

57] 定惠體一不二, 卽定是惠體, 卽惠是定用, 卽惠之時定在惠, 卽定之時惠在定,

善知識, 此義卽是定惠等, 學道之人作意, 言先定發惠, 先惠發定, 定惠各別, 作此見者, 法有二相. 『돈황본 육조단경』, p. 120.

 

이상의 진술은 定과 惠의 관계가 단순히 因果關係가 아님을 분명히 말해 준다. 즉 위에서 “定이 먼저 있어서 惠를 發한다거나, 惠가 먼저 있어서 定을 發한다거나, 定과 惠가 각각 別體라고 말하지 말라”는 언표는 양자간의 時間的 성격과 非對等的 성격을 명백히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58]

오히려 “惠에 卽하였을 때는 定이 惠에 있고, 定에 卽하였을 때는 惠가 定에 있다”는 진술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定과 惠는 相卽的 또는 相含的인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즉 육조의 말에 의하면, 양자는 ‘平等’한 관계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체용의 관계란, ‘燈과 光의 비유’가 지시하는 바와 같이, 분명히 원인과 결과의 관계이면서도 동시에 시간성과 비대등성은 부정되는 相卽的 또는 相含的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양면을 통틀어 말하자면 ‘상즉적 인과관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상즉적 인과관계’라는 것은 과연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상즉’과 ‘인과’는 서로 모순관계가 아닌가? 여기에서는 이 문제의 논리적 타당성을 살피기 위한 논의는 일단 피하기로 하자. 그 대신 『육조단경』내에서 ‘상즉적 인과관계’로서의 체용론이 무엇을 위해서 시설되었는가를 살펴보고 뒤에서 그 의미를 서술하기로 한다. 다시 말하면 『육조단경』에서 체용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자는 것이다.

 

58]김준섭, 『철학과 논리의 연구』, pp. 109~110 참조. “오늘날에서 인과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략 다음의 4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첫째, 인과 과의 관계는 불변하고 일정한 것이어야 한다. 언제든지 동일한 원인이 있을 때 동일한 결과가 일정하게 일어나야 한다.

둘째, 인과 과는 공간적으로 접근된 것이어야 한다.

셋째, 인과 과는 時間的 성격을 가져야 한다. 원인은 결과보다 앞서며, 시간적 사이가 오래라고 할지라도 一義的인 시간의 계속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어야 한다.

넷째, 인과 과의 관계는 非對等性을 띠어야 한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뒤집을 수 없다고 본다.

위의 네 가지 조건에 대해서는 이론도 많이 있다. 특히 현대 물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적합하지 못한 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하는 인과관계의 개념은 양자물리학을 제외한 다른 많은 과학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육조단경』에서는 定과 惠를 체용관계로 규정한 이외에 또 眞如와 念 역시 체용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즉 “眞如는 念의 體요, 念은 眞如의 用이다” 59]라는 말이 그것이다.

진여란 물론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自性淸淨心으로서, 『육조단경』에서도 역시 “性體淸淨” 60] 이라고 하여 진여의 청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六祖의 宗旨는 그가 “人性은 본래 淸淨하되 妄念 때문에 眞如가 덮여 있으니 妄念을 떠나면 本性은 淸淨하니라” 61]라고 말한 데에 있다.

즉 心은 본래 淸淨한 眞如로되 다만 妄念이 眞如를 가림으로 인해서 미혹하다는 것이다. 육조는 그것을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여 위는 밝으나 아래는 어두워 해와 달을 보지 못하다가 홀연히 지혜의 바람이 불면 삼라만상이 일시에 드러난다” 62]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해와 달이 항상 밝다’는 것은 본체가 항상 스스로 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眞如는 다만 청정한 자체를 지키지 않고 끊임없이 念의 作用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眞如와 念의 體用관계이다.

 

진여가 本體로서 念의 作用을 일으킨다는 것은, 육조가 말한 바 “本性이 念을 일으켜 비록 見聞覺知에 卽해 있으나 萬境에 물들지 않아 항상 自在하다” 63]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본체의 작용인 염은 만물을 견문각지하되 만물을 대상화하여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자재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혜능이 말하는, 진여의 작용으로서의 염은 사실 무념의 염이라고 할 수 있다. 혜능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59]眞如是念之體, 念是眞如之用. 『돈황본 육조단경』, pp. 130~131.

60]外離一切相, 是無相, 但能離相, 性體淸淨. 위의 책, p. 128.

61]人性本淨, 爲妄念故, 蓋覆眞如, 離妄念, 本性淨. 위의 책, p. 133.

62]日月常明, 只爲雲覆蓋, 上明下暗, 不能了見日月星辰, 忽遇惠風, 吹散卷盡雲霧, 萬象森羅一時皆現. 위의 책, p. 140.

63] 自性起念, 雖卽見聞覺知, 不染萬境, 而常自在. 위의 책, p. 131.

 

 

"선지식아, 나의 법문은 본래 모두 無念을 종지로 하고, 無相을 본체로 하고, 無住를 근본으로 한다.

무엇을 無相이라 하는가? 相에서 相을 떠남이요, 無念이란 念에서 念하지 않음이요, 無住란 사람의 본성이 念念이 主着하지 않으나,

前念, 今念, 後念이 念念 상속하여 단절이 없으니, 만약 一念이 단절하면 法身이 곧 色身을 떠나게 된다.

念念이 상속하는 중에 일체법에 주착함이 없어야 하니 일념이라도 만약 머물면 念念이 곧 주착하게 되니 이를 얽매인다고 이름하거니와 일체법에 염념이 머물지 않으면 곧 얽매임이 없으리니 이로써 無住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 64]

64]善知識, 我自法門, 從上已來, 皆立無念爲宗, 無相爲體, 無住爲本,

何名無相, 無相者, 於相而離相, 無念者, 於念而不念, 無住者, 爲人本性, 念念不住,

前念, 今念, 後念, 念念相續, 無有斷絶, 若一念斷絶, 法身卽是離色身,

念念時中, 於一切法上無住, 一念若住, 念念卽住, 名繫縛, 於一切法上, 念念不住, 卽無縛也, 以無住爲本.

『돈황본 육조단경』, pp. 126~127.

 

 

이상에 의하면 무념, 무상, 무주는 모두 글자 그대로 염이 없음, 상이 없음, 머무름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無相者, 於相離相’ 즉 ‘무상이란 상에서 상을 떠남’이라고 하였거니와 의식의 대상인 사물 자체는 부정하지 않되 대상에 집착하지 않음을 무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일체의 대상이 자성을 갖고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의식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의 소산이라고 한다.

위에서 혜능이 “前念, 今念, 後念이 念念 상속하여 단절이 없으니, 만약 一念이 단절하면 法身이 곧 色身을 떠나게 된다”고 말한 것도 역시 우리의 앞에 대상으로 존재하는 세계가 실은 염념부단히 상속하는 의식의 소산임을 알려 준다. 그래서 “念念이 상속하는 중에 일체법에 주착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우리가 의식 밖에 초월적으로 실재한다고 믿는 일체 사물은 사실 의식주관에 의해서 표상된 대상임을 알고 그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밖으로는 대상이 사라지고 안으로는 그 대상과 대립한 주관의식도 또한 사라져서 주객이 모두 사라진 경계만이 남을 것이다. 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일념이라도 만약 머물면 念念이 곧 주착하게 되니 이를 얽매인다고 이름하거니와 일체법에 염념이 머물지 않으면 곧 얽매임이 없으리라”고 혜능이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컨대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죽음에 얽매이는 것은 죽음이 자성을 갖고 실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아 얽매이게 되면 그 마음은 곧 부단히 상속하여 염념이 주착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다만 우리가 그렇다고 주착하는 것일 뿐이므로 일체법이 공하여 자성이 없음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곧 얽매임에서 놓여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얽매임에서 놓여난다는 것은 결코 의식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요, 상속하는 염념은 부단히 흐르되 단지 그것을 집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혜능은 “육진 경계 속에서 떠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 거래가 자유로운 것이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 이름한다. 일체 대상을 의식하지 않고 생각을 끊는 것은 그 또한 법에 얽매인 것이니 치우친 견해라 이름한다” 65]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無念, 無相, 無住의 無는 곧 ‘二相의 諸塵勞를 떠남’이다. 66] 즉 염을 자성을 갖는 실재로 집착하는 有邊이나, 염을 돈단하는 無邊에 떨어지는 일체의 헛수고에서 떠나는 것이다. 그것은 역시 혜능이 “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을 보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는 망상이 생긴다” 67]라고 말한 바와 같이 단지 분별의식을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 대상을 의식하는 염은 부정하지 않되 다만 대상에 대한 분별의식, 즉 대상을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순수하게 대상을 지각하는 염 자체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진여는 염의 본체요, 염은 진여의 작용이다” 68]라고 말한 혜능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65]於六塵中, 不離不染, 來去自由,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莫百物不思, 常令念絶, 卽是法縛, 卽名邊見. 『돈황본 육조단경』, p. 179.

66]離二相諸塵勞. 위의 책, p. 130.

67]不見自性本淨, 心起看淨, 却生淨妄. 위의 책, p. 133.

68] 眞如是念之體, 念是眞如之用. 위의 책, pp. 130~131.

 

 

다시 한 번 확인하는바, 대상은 본체가 없는 무자성공이며, 우리의 마음 또한 공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공하다 함은 결코 그 존재 자체의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대상이 본체가 없는 무자성공이라 함은, 바꾸어 말하면 곧 나의 마음이 대상에 대해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그 자신은 대상화되지 않는 심체를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상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無一相可得의 진여가 역력하게 삼라만상을 관조하는 작용, 즉 照用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진여는 無一相可得이므로 照用히 곧 本體로서 ‘用卽體’요, 작용을 떠나서 본체가 없으므로 ‘體卽用’이다. 고형곤은 이를,

 

"일체 대상의식을 가지지 않고 과거와 현재 사이에 接滅과 引起가 단절되어 전후가 斷續될 때, 現今 찰나가 지나간 찰나를 (‘지금 금방 지나간 것’으로 직관하는 현찰나의 과거직관 속에서) 회상하는 把持作用에 의하여 과거, 현재의 연결이 지어지지 않을 때, 中間自孤의 無心의 一念인 現今의 現前一念에서의 ‘看看 萬象與 森羅 只此一身常獨露’가 곧 無量壽 無量光의 서방정토인 것이다. " 69]

 

라고 말하거니와, 역시 그가 말한 것처럼 “존재는 이미 훤하게 현전해 있고, 인간의 본질은 존재의 현전성인 常住涅槃이건만, 인간의 無明不了로 말미암은 주객대립의 표상세계 속에 존재는 은폐되어 있는 것” 70]이다. 즉 대상화한 무명의식을 떠날 때 존재는 본래 그대로 우리 앞에 현전하고 있다.

혜능이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여 위는 밝으나 아래는 어두워 해와 달을 보지 못하다가 홀연히 지혜의 바람이 불면 삼라만상이 일시에 드러난다” 71]고 말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체용론의 의미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해와 달은 항상 밝게 비추므로 본체성을 가지며, 그러나 그 자체는 작용을 떠나 독립하지 않으므로 무자성공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한 頓悟가 성립할 토대를 발견하게 된다. 도대체 진여자성이 본래 훤하게 자신을 현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몰록 깨칠 것인가? 그 깨침은 혜능이 말한 대로 “見一切法, 不着一切法” 72] 의 깨우칠 것 없는 깨우침이므로 頓悟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73]

결국 ‘卽體卽用’ ‘體卽用, 用卽體’의 체용론이 아니고는 본체의 공성을 절묘하게 표현하여 돈오의 종지를 드러낼 길이 없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존재는 명백히 현전하며 照用을 일으키므로 眞如와 照用은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진여는 자체가 공하여 결코 작용을 떠난 독립적 실체가 아니므로 또한 照用과 相卽해 있다. 체용론에 인과성과 상즉성이 맞물려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체용론은 결코 일반적인 본체론은 아니로되 묘하게 그 본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상즉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체용론의 발견이야말로 중국불교인 돈오설이 성립하는 토대요, 불교와 도가의 교섭이 낳은 하나의 성취라고 생각한다.

 

69] 고형곤, 앞의 책, p. 79.

70]고형곤, 앞의 책, p. 187.

71]주 62) 참조.

72] 『돈황본 육조단경』, p. 179.

73]이택후는 이러한 관점에서 “선종의 오도는 사변적 추리인식이 아니라 개체적 즉각체험”이라고 한다. 또 그는 선종과 장자철학이 공유하는 직관사유방식이 심미적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즉 현대 미학에서의 ‘미의식을 통해서 진리를 인식하는’(以美啓眞) 방법과 통한다는 것이다. 『中國古代思想史論』(北京:人民出版社, 1987), p. 207, p. 217 참조.

 

 

5. 결 론

 

불교와 도가는 비판 철학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는다. 불교는 브라흐마니즘의 브라흐만을 비판하였고, 도가는 천의 인격적 주재성과 인위적인 문화를 비판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체론을 거부하는 불교의 공사상과 무위자연을 말하는 도가의 철학은 부정의 지혜이다. 그것은 부정이 부정에 머물지 않고 도리어 긍정을 낳기 때문이다. 공사상이 대승불교의 원천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승불교의 반야공사상은 二乘(=聲聞?獨覺의 小乘)이 생사를 두려워하고 열반만을 좋아하는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시설되었다. 그것은 『大般若經』의 “보살은 생사에 처함을 낙으로 여기고 열반을 낙으로 여기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모든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낙으로 삼기 때문이다” 74] 라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세간법이 공함을 아는 보살은 생사의 두려움에서 초출할 수 있고, 출세간법 역시 공함을 아는 보살은 열반의 쾌락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체의 두려움과 즐거움의 이변을 떠나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야말로 대승불교가 종교로 성립할 수 있는 근본정신이다. 즉 세간법과 출세간법의 이변에서 능히 초월할 수 있는 주체적 정신 경계를 완성하는 데 불교의 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선종은 이러한 정신적 초탈을 극대화하여 종교의 경계에서 미학적 경지를 열어 놓은 특징을 갖는다고 볼 수 있거니와, 여기에서 도가사상과의 교섭이 작용한다.

즉 도가사상과의 교섭을 통해서 주체적 초탈을 극대화한 중국불교로서의 선종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와 같은 중국불교가 성립하는 철학적 근거가 체용론에 있음을 밝혔다.

 

74]菩薩以處生死爲樂, 不以涅槃而爲樂也, 何以故,諸菩薩摩訶薩, 以化有情而爲樂故. 『大般若波羅蜜經』 권572(대정장 권7, p. 953).

 

반야공사상의 ‘非有非無’와 『장자』의 ?제물론?에서 보이는 ‘無是無非’는 다 같이 생멸심 또는 분별심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패러독스이며, 또한 진리를 정면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우리는 중생의 집착에 대해 ‘~도 아니고, 또한 ~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깨달은 부처의 마음은 정면에서 ‘~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불교의 특징이 바로 ‘~이다’라고 말하는 불성사상의 극치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논리, 즉 일체가 진리로서 우리 앞에 현전하고 있다는 체용론의 건립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도가에 깊이 침잠했던 승조가 반야공사상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동시에 체용론을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반야학과 도가의 만남을 전제한다. 그리고 사실상 체용론이 왕필에게서 시작되고 그 근거가 이미 노장에 내재했음을 밝혀서 체용론의 연원이 도가라는 것을 밝혔다.

물론 곽상의 자이독화설은 반야학과 도가의 사이를 좁히는 가교로 작용하였으며, 성현영에 와서는 중현과 체용이 어울리면서 도가와 불교의 상호 침투가 극대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선종의 돈오라는 중국불교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중국철학사에서 반드시 이러한 경로를 거쳐 선종이 이루어졌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체용론이 돈오설의 논리적?철학적 배경이며, 도가사상과의 교섭을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가 여기에서 밝힌 『장자』 ?제물론?의 사유방법과 왕필, 곽상의 철학은 도가의 사상이 충분히 불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깊이와 폭을 갖고 있었음을 말하려는 것이고, 승조, 성현영, 혜능에 대한 서술은 불교가 반야공사상을 견지하면서 도가의 체용론을 창조적으로 수용하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논문은 사상사의 흐름을 다원적으로 보려는 관점의 소산이다.

 

 

 

A Study on the Structure of Buddhist Thinking and That of Taoist

 

In this thesis, I examined how structure of Buddhist thinking was connected with that of Taoist in terms of the theory of ‘Ti-yong(Principle and Function, 體用)’. The theory which is unique structure of thinking in Chinese philosophy, especially become main in Chinese Buddhism through acceptance in Huayen and Zen sects.

 

It was Wang-pi(王弼) who first used Ti-yong as the philosophical term in Xuan-xue(玄學). But Seng-zhao(僧肇), the first man who criticized the Ke-yi(格義) and understood thoughts of Prajnya-Sunyata correctly in Chi- nese Buddhism, also explained the structure of the Wisdom of Prajnya as Ti-yong.

 

Later, Cheng Xuan-ying(成玄英), Taoist, accepted thoughts of Prajnya and interpreted Zhuang-Zi(莊子) through Prajnya. And as Zen sects created the theory of Sudden Enlightenment and Sudden Cultivation based in Ti-yong, we can say that this theory is the model structure of thinking in Chinese Buddhism.

 

Originally, the theory of Ti-yong contains thoughts of Substantialism as such. It is, however, since the theory of Ti-yong never dualize the Sub- stantial and the Appearance, different from general Substantialism. In view of the theory, the Appearance is just functioning of the Substantial ; the former itself is the latter all ; one is not different from the other, nor same with. That is, in the theory of Ti-yong, the Substantial causes the Appear- ance and vice versa, at the same time, this itself is all that and also vice versa.

 

I think one aspect of the theory of Ti-yong, Substantialism, is influenced from Taoist, and the other aspect, which means the Substantial is not different from the Appearance nor same with, is effected from thoughts of Prajnya-Sunyata. Thus Chinese Zen Sects were completed through the process that thoughts of Prajnya was connected with that of Tao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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