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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사주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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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東學農民革命記念館)
k 고경 추천 0 조회 50 14.01.02 12: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입구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입구에는 12지신 상이 서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동학농민군의 최초 전승지인 황토현전적지 부근에

2004년 5월 11일 개관하였다.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무기, 생활용품, 전적류를 

전시. 보존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과

매년 2회의 기획전시를 하는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면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던  분들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뒤쪽으로 가면 동학농민혁명 주요인물 전봉준(1855~1895), 김개남(1853~1894),

손화중(1861~1895), 최경선(1859~1895), 최시형(1827~1898),

손병희(1861~1922) 등의 사진이 걸려 있다.

 

 

채홍우(蔡洪禹, 1857~1894) 단 봉안

 

1894년 8월 28일 관동대접주 예하 18개 접의 동학농민군은 예천 금당실과  화지에 집결하여

예천읍내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화지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은 굴머리잔투에서

금당실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은 석달동전투에서 민보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패배하였다.

석달동전투에 참여한 채홍우는 혼자서 하루에 천사백명 밭을 갈아엎을만큼

 힘이 센 장사였다고 하는데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민보군은 예천 공방전 이후 동학농민군의 근거지를 철저히 초토화시켰다.

이 때문에 채홍우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수습되지 못하고 대신

그의 가족이 단을 조성하고 전사한 날에 제사를 지내왔다.

* 단(壇)이란 시신이 없이 임시로 만든 묘(墓:무덤)를 말한다.

 

 

1층에는  19세기 조선의 국내외 상황과 자각을 통해 성장하는 혁명정신을 주제로

19세기 조선과 자각하는 농민들, 체험공간, 제국주의와 세계사의 혁명들,

무명농민군들을 위한 진혼, 기획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서면 백산(白山) 앉으면 죽산(竹山)

 

우리가 의(義)를 들어 이에 이른것은 그 본뜻이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蒼生)을

 도탄(塗炭) 가운데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磐石)의 위에다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관오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橫暴)한 강적(强敵)의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富豪)에게 고통을 받는 민중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서 굴욕을 받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을 것이니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굴욕을 받는 소리들은 우리와 같이

 

전봉준의 절명시

 

때를 만나서는 하늘과 땅도 힘을 합하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가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이 무슨 허물이랴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농민들의 의생활

 

 

농민들의 의생활

 

 

 

양반과 농민 밥상

 

 

농민들의 주생활

 

 

조선시대 각종 세금 명목

 

 

조선시대 조세제도의 변천

 

 

19세기 조세제도의 모순

 

 

19세기 조세제도의 문란

 

 

열강의 경제 침탈

 

 

 

 

개화사상

 

 

개화세력의 활동

 

 

 

 

개항의 과정

 

 

개항의 의미

 

 

 

 

위정척사운동

 

 

 

 

지통, 필가, 필통

 

 

벼루

 

 

낫, 벽채

 

 

함지박

 

 

동고리, 씨앗박

 

 

계량기구

 

 

장태

 

 

고부, 정읍, 태인을 이어주던 말목장터의 모습을 형상화 한 모습이다.

 

 

조선후기 장시(場市)

조선후기 지방상업은 주로 장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장시는 농민이나 수공업자가 서로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는 곳이며, 각종 정보 교환 및

비슷한 처지의 농민들이 모여 사회적 불만을 토로하는 여론 형성의 장(場)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특히 정부의 부당한 조세  수탈, 탐관오리의 탐학 등을 폭로한 괘서(掛書) 등이

흔히 나타나 민심을 선동 하기도 하였으며, 장날과 장터가 집회일 및 집회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등 정치적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신분제의 변동, 급격한 사회변동, 농민층의 분화

 

 

정치부패

 

 

정치부패

 

 

 

 

 

 

 

 

간재선생문집(艮齋先生文集)

 

이 책은 한말의 유학자인 전우(田愚, 1841~1922)의 것으로 간재는

 그의 호이다. 전우(田愚) 선생의 문집이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은 김벽봉전(金碧峯傳), 연천서당증최군(蓮泉書堂贈崔君) 등이 있다.

특히 연천서당증최군에는 갓 스물의 나이에 농민군에게 다릿살이 찢겨지고 다리뼈가

 부러져도 그들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농민군과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최노백의 일화를 담고 있다.

 

 

면암집(勉庵集)

 

이 문집은 최익현(崔益현, 1833~1906)의 것으로 면암은 그의 호이다.

최익현은 한말의 대표적인 위정척사파로 한말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책의 동학농민혁명 관련기록은 초토사 홍계훈의 선봉대장으로

장성 황룡촌전투에서 전사한 이학승의 비문이 있다.

 

 

송사선생문집(松沙先生文集)

 

이 문집은 한말의 유학자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것으로 송사는 그의 호이다.

이 문집에는 동학농민혁명 관련기록으로 나주평적비문(羅州平賊碑文)과

장흥부사박공제단비문(長興府使朴公祭壇碑文)이 있다.

이 가운데 나주평적비문을 보면 나주성이 함락되지 않은 것은 목사 민종열(閔鐘烈)이

향약(鄕約)으로써 백성들을 이끌어 충효로 일치 단결시킴으로써 가능하였다 라는 기록이 보인다.

 

 

제국주의와 세계사의 혁명들

 

 

 

 

 

 

 

 

 

 

 

 

 

 

 

 

 

 

 

 

 

 

 

 

 

 

 

 

 

 

 

 

 

 

 

 

 

무장기포 깃대꽂이

 

 

1872년 지방도/무장현 채색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872년 지방도/고부군 채색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9세기 중엽 조선왕조는 정치적으로는 세도정치와 과거제도의 문란으로 사회. 경제적으로는

 수취제도의 문란과 지방수령들의 일반 민중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이 가중되는

가운데 민중들의 봉기로 인한 지배체제의 모순이 날로 심화되었다.

민중들은 악화된 삶의 환경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같은 요구는 점차 조직화되기에 이르렀다.

'동학'은 이같은 시대 배경에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遇)에 의해 창도 됐다.

 

1894년 고부(古阜) 농민 봉기로부터 시작되어 동학농민군이 전국을 휩쓸었던

 '동학농민혁명'은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채 좌절되었지만 한국의 근. 현대사를 결정지은

역사의 일대 사건이자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반봉건적.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세운 우리 역사상 최대규모의 민중항쟁이었다.

 

 

2층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과 영원히 살아 숨쉬는 혁명정신을 주제로

동학농민혁명관련기록화, 동학농민혁명을 향하여, 고부에서 전주성까지, 무르익은 혁명의 희망,

폭풍우 몰아치는 조선산하, 일본군에 가로막힌 꿈, 끝나지 않은 함성,

희망, 영상관, 농민들이 꿈꾼 세상 등으로 꾸며져 있다.

 

황토현전적지 및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관람료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 1월 1일은 휴관이다.

 

관람시간은 09:00~18:00

입장시간 09:00~17:00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나오면서 앞을 바라본 모습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옆에는 교육관이  자리하고 있어 그곳으로 가본다.

 

 

교육관

 

동학농민혁명 관련 각종 교육 및 행사를 하는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되어 있다.

 

 

햇빛이 많은  날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는 쉼터도 있고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운치가 있는 곳에도 쉼터가 있다.

 

 

맞은편에 황토현전적지가 바라다 보인다.

 

 

나오면서 바라다 보이는 교육관

 

 

교육관 옆쪽으로  동학농민혁명전시관이 보인다.

 

 

멀리서 바라본  동학농민혁명기념관과 황토현전적지

 

 

내년이면 황토현전적지에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기념공원이 조성된다고 한다.

기념공원에는 혁명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공간과 위령탑 등을 설치하고

또한 청소년 역사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역사문화체험관과 연수동, 야외캠핑장,

숙박시설 등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 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동학농민군의 최초 전승지인  황토현전적지와 동학농민혁명전시관을

모두  둘러보고 정읍향교를 향하여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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