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SB네이션 트위터 |
#1 메이저리그가 디비전시리즈로 뜨겁던 지난 10월8일. 서른 개 팀 최고의 유망주들이 모여 한 해를 마감하는 애리조나 가을리그의 개막 경기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농구장에서 볼 법한 대형 초시계가 그라운드 한 켠에 등장한 것. 선수들은 시계에 맞춰 20초 내에 투구를 했고, 2분5초 내에 공수교대를 했다. 경기는 확연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그날 벌어진 두 경기는 도합 21점이 났음에도 각각 2시간33분과 2시간39분 만에 끝났다).
지난해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처음 선보였던 전면적인 비디오 판독 확대가 지체없이 메이저리그에 적용됐음을 감안하면, 이는 내년부터 메이저리그 경기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92년 12억 달러였던 한 해 매출이 지난해 80억 달러를 돌파했을 정도로 현재 호황을 누리고 있는 메이저리그는 '시간과의 전쟁'을 선포한 상황. 이에 <경기 촉진 위원회>(Pace of Game Committee)를 만들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주자 1,3루 상황에서 투수의 위장 견제를 금지시킨 데 이어, 내년에는 '공을 던지지 않는 고의사구'의 도입까지 고려하고 있을 정도로 경기 시간 단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 내에서 미식축구에 이어 '넘버2'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메이저리그는, 그러나 젊은 팬들로부터는 외면을 받고 있다. 정규 이닝 평균 3시간8분의 경기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는 것(이는 인기 TV 시리즈 '워킹 데드'를 네 편이나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실제로 1950년대 2시간23분이었던 메이저리그의 평균 경기 시간은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2시간52분으로 세 시간을 넘지 않았다.
게다가 경기 시간의 40%를 넘는 1시간20분 정도가 경기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공수 교대, 투수 교체, 포수와 코치의 마운드 방문, 타자의 타석 이탈 등으로 소모되다 보니 이전 세대보다 더 빠른 속도감을 가지고 있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더욱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다저스의 경기 시간이 길었던 이유 ⓒ gettyimages/멀티비츠 |
그렇다면 경기 시간이 늘어난 요인은 무엇일까. 메이저리그가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은 과거에 비해 타자들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 <댈러스 스타 텔레그렘>에 따르면, 한 경기에서 타자들이 타석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소모되는 시간의 합계는 무려 30분에 이른다. 핸리 라미레스가 투구당 28.1초로 ML 1위, 야시엘 푸이그가 26.7초로 7위에 오른 다저스는 이 때문에 시즌 중반 사무국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는데(ML 평균 23.0초) 내년부터 타자들은 타석 또는 홈플레이트 주변을 벗어나는 데 있어 제재를 받게 될 전망이다(야디에르 몰리나도 마운드를 방문하는 일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건당 평균 2분이 걸리는 비디오 챌린지가 도입되고(판정이 어려울 경우 5분이 넘어갈 때도 있다) 수비 시프트의 대유행으로 타자가 바뀔 때마다 수비수들이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 이상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 메이저리그는 투고타저다. 올해 메이저리그 팀들이 기록한 평균 4.07득점은 1981년(4.00) 이후 최소였으며, 타율(.251)과 출루율(.314)은 아메리칸리그가 지명타자를 도입하기 직전인 1972년(.244 .311), 장타율(.386)과 경기당 홈런(0.86) 1992년(.377 0.72홈런) 이후 가장 낮았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타자들이 20%를 넘는 삼진/타석 비율(20.4%)을 기록했다(2013년 19.9%).
그렇다면 투고타저의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약물 시대의 종언'을 그 이유로 꼽는다. 그러나 이를 절대적인 요인으로 삼기는 어렵다. 금지 약물은 타자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로저 클레멘스와 에릭 가니에를 포함해, 2007년 12월에 발표된 '미첼 리포트' 명단 88명 중 19명은 투수였다). 2011년 2000여 건에서 올해 1만6000여 건으로 늘어난 내야 시프트 역시 투고타저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메이저리그의 BABIP는 .299로 2011년의 .295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투고타저의 진정한 이유 중 하나는 투수들이 과거보다 더 위력적인 공을 던진다는 것이다. 올해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선발투수가 평균 91.4마일(147.1km) 불펜투수가 평균 92.5마일(148.9km)의 패스트볼을 던졌다. 반면 <베이스볼 인포 솔루션>이 모든 투구의 속도를 기록한 첫 해인 2002년의 경우에는 선발투수가 89.5마일(144.0km) 불펜투수가 90.6마일(145.8km)이었다. 선발투수 불펜투수 모두 12년 사이에 무려 1.9마일(3.06km)이 증가한 것. 야구에서 '더 빠른 공'은 타자가 타격에 쓸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 버린다.
간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원인은 그 사이 스트라이크 존이 눈에 띌 정도로 확대됐다는 것이다(아래 이미지는 심판 쪽에서 바라본 시각. 출처 하드볼 타임즈).
우타자 스트라이크존 (왼쪽 2009년, 오른쪽 2014년)
좌타자 스트라이크존 (왼쪽 2009년, 오른쪽 2014년)
존 로젤리가 <하드볼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지난 5년 사이 메이저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크게 늘어났다. 메이저리그는 과거에 비해 스트라이크가 볼로 선언되고 볼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되는 비율이 갈수록 줄고 있는데(몇 몇 어이없는 판정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이는 사무국의 철저한 고과 평가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잘못된 볼 판정 2011년 19.8%, 2013년 18.2% / 잘못된 스트라이크 판정 2011년 6.8% 2013년 6.2% - 출처 스카이넷스포츠). 실제로 5년 전에 비해 올시즌의 스트라이크 존은 룰 북과 거의 가까워 졌다. 좌우 폭이 줄어든 대신 특히 낮은 스트라이크를 잡아주는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에도 좌타자보다 우타자의 스트라이트 존이 더 넓었고 5년 사이 스트라이크 존이 더 늘어난 것도 우타자라는 것. 그러나 바뀐 존으로도 바깥쪽을 더 잘 잡아주는 쪽은 좌타자이다 보니, 좌타자들이 박탈감을 더 느끼고 있는 듯하다(실제로 타격 성적이 더 떨어지고 있는 쪽은 우타자다). 한편 낮은 쪽을 더 잘 잡아주는 추세와는 다르게, 올해 추신수는 무수한 높은 공 스트라이크 선언을 받았다. 이에 10년 넘는 시간을 통해 설정을 마쳤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큰 혼란을 경험해야 했다. [관련 기사]
부상과 존 문제로 고전한 보토 ⓒ gettyimages/멀티비츠 |
심판들이 낮은 공을 더 잘 잡아줌에 따라 투수들이 낮은 쪽 공략을 더 많이 하다 보니, 최근 득세하고 있는 타자들은 마이크 트라웃 같은 '낮은 공' 타자들이다(트라웃은 시대 흐름에 맞춰 탄생한 타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낮은 공에 강한 타자들이 많아지고 나니, 반대로 오히려 높은 공을 던질 수 있느냐가 주목을 받고 있다. ESPN 데이빗 쇼엔필드에 따르면, 스트라이크 존의 낮은 코스에 던졌을 때 피안타율은 .226, 피장타율은 .358인 반면, 높은 코스에 던졌을 때 피안타율은 .223, 피장타율은 .319로, 오히려 장타를 덜 맞는 쪽은 높은 코스에 바짝 붙인 공들이다. '하이 패스트볼'이 얼마나 위력적일 수 있는가는 매디슨 범가너가 가을야구를 통해 확실하게 보여준 바 있다.
그렇다면 스트라이크 존은 왜 넓어진 것일까. 왜 전과 달리 룰 북에 맞추려 하고 있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구나 PITCHf/x정보를 열람할 수 있고 방송국 화면에 번번히 등장하다 보니 '심판 고유의 존'이라고 주장하기가 더 이상 어렵게 된 것.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스트라이크 존의 확대는 투고타저를 통한 경기 시간의 단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무국이 스트라이크 존의 확대를 경기 시간의 단축과 연계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무국이 '시간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존이 다시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자들, 특히 공을 골라치는 스타일의 타자들은 앞으로 바뀐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적응도가 대단히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