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착심이 붙어 떠나기를 거부한 영가
자료 제공; 김오철 교무(산본천도장례식장) 취재- 이법은 기자
원광 2012년(원기 97년) 9월호
“교무님, 큰아들이 자기 방에서 잠을 잤다 하면 가위에 수없이 눌려요.
직장도 가까운데 뜬금없이 교통사고도 나고요.
식구들도 아들 방에만 들어가면 머리카락이 쭈삣 선다네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이른 아침, 이춘선 씨가
당시 태백교당 김오철 교무(산본천도장례식장)를 찾아와 풀어 놓은 이야기다.
교무는 문득, 1년 전 즈음에 원불교 의식으로 천도재를 지낸 그녀의 남편이 떠올랐다.
그는 가난 때문에 어릴 적 시력을 잃었고,
탄광의 험한 일을 하면서 척추에도 장애가 왔다.
또 평소에 술도 많이 마셔 간경화로 5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 교무는 그의 생전에 순교를 가서 독경과 기도를 해 주면서 그와의 인연을 맺었다고.
갑자기 뇌리를 스쳐가는 그녀의 남편 기억에 그는 혹시 하는 마음에 조용히 물었다.
“이웃 사람들을 보니 집안에 행방불명된 사람도 많고, 집에 신줏단지를 만들어 혼백을 두던데,
혹시 집안에 그런 걸 뒀나요?”
이는 태백이란 지역이 탄광이란 특수성을 가진 도시이기에
무속신앙이 강한 곳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러자 이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네. 저희도 친정과 시댁에 행방불명된 사람이 많아요.
원불교를 만나기 전에 무당을 찾아가 신줏단지에 혼백도 넣었고요.
그게 아직도 집에 있어요.”라고 했다.
김 교무는 ‘혹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신줏단지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곧장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집에 도착하자 그녀는 선반 위를 가리켰다.
하얀 상자가 보였다.
조심스레 상자를 꺼내 그 속을 들여다 보니,
고추장 종지처럼 생긴 작은 그릇과 실, 그리고 쌀 한 주먹과 동전이 같이 들어 있었다.
종이가 바래져 있는 걸 보니 오랜 시간 동안 거기에 놓여져 있었던 것 같았다.
김 교무는 그걸 교당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그녀도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집안에 모셔져 있던 물건이었기에 그냥 가지고 나올 수가 없었다.
김 교무는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집안에 깃든 정령들과 영혼들, 그리고 고혼들이시여.
더욱 좋은 곳으로 모실 테니 태백교당으로 갑시다.”
그렇게 혼백 항아리와 조상들의 위패는 교당으로 옮겨 지고,
김 교무는 가족들과 함께 정성을 다해 독경을 하고 안치식을 마쳤다.
식이 끝나자 이 씨가 김 교무에게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음 호에 계속)
(지난 호에 이어) 원광 2012년(원기 97년) 10월호
안치식을 끝낸 이춘선 씨가 할 말이 있다며
김오철 교무(원광대 산본병원 장례식장)를 찾아왔다.
그녀는 평소에 김 교무에게 고민을 숨김없이 털어 놓는 신심 있는 교도였다.
그녀는 안치식을 하기 전, 집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교무님, 독경을 하고 있는데 제 어깨를 누가 확 잡아 뜯데요.
너무 아파 뒤돌아봐도 아무도 없었고요.
그 뒤에 눈을 감고 독경을 하는데 어깨가 막 아파오는 거예요.
꼭 어깨에 누가 올라탄 것처럼 짓누르는 느낌이었어요.
아직까지도 얼얼하고 아파요.”하고 하소연 했다.
김 교무는 ‘누군지는 모르지만
혹 집안에 있던 영혼들이 떠나지 않으려고 떼를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우선 그녀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위로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다음날 저녁 즈음, 이 씨가 다시 김 교무를 찾아와 그 날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근처에 살고 있던 시누이가 찾아왔다는 것.
그런데 시누이가 대뜸 집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의 꿈에 죽은 오빠(이 씨의 남편)가 나타나 하는 말,
“집에 좀 가 봐라. 네 언니가 자꾸 나를 집에서 쫓아내려고 한다.
네가 가서 언니 좀 말려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
김 교무는 문득 어제 이 씨의 말이 생각났다.
‘혹시 이 씨의 남편이 가족에 대한 착심이 남아 집을 떠나지 않았던 걸까?
집에서 독경을 할 때 이 씨의 어깨를 잡아 뜯고 짓눌렀던 것도
남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일단 이 씨에게 “남편이 짧은 생을 마감하다 보니
가족에 대한 애착을 다 놓지 못한 것 같으니
이럴수록 지극한 마음으로 챙겨 보내주자.”라고 격려했다.
천도재를 올리는 동안 이 씨는 자신의 꿈속에 나타난 남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초재를 올린 날, 잠을 자고 있는데 남편이 나타나 하는 말이
‘내 집인데 왜 다른 데로 보내려고 하느냐.”며 자신을 다그치며 소리를 질렀다는 것.
3재를 올린 날도 남편이 꿈속에 찾아왔는데
초재와는 달리 두 손을 빌면서
“이 집에서 살게 해 줘. 생전에 때리고 욕해서 미안해.
앞으로 말을 잘 들을게.”라고 애원을 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애원하는 남편에게
“여보, 당신은 이미 죽었는데 왜 이 집에서 살겠다고 그래요.
고집 피우지 말고 대종사님 법문 잘 듣고 가요.
그래서 다음 생엔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세요.”라고 강하게 말했다고.
이 씨의 마음이 전해진 걸까. 종재 이후 남편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 씨의 가족들은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가족 간의 우애가 더 돈독해졌다.
김 교무는 이 씨 가족을 통해
현재에 살아가는 모든 일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계속 연결되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천도재를 지켜 본 이웃들이 무당에게 의뢰했던 재를 교당으로 옮겨 오면서
태백교당 교화가 한결 좋아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