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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 리 ☆목 월 문 학 관 ●○ 원문보기 글쓴이: 선혜영(8기)
[2014 동리목월 신인상 소설 당선작] 조숙
감자
이게 뭔가? 무심코 들어 올린 검은 비닐봉지에 뭔가 들어있는 것 같은 무게가 느껴진다. 세탁기 뒤에 좁은 공간에 막대기를 밀어 넣어서 청소하려던 손길이 멈칫한다. 세탁기에 매달리듯 엎드려서 막대기를 이리저리 움직여 겨우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끌어올렸다. 언제부터 거기 박혀 있었던지 형편없이 쭈그러진 비닐봉지다. 비닐봉지를 열자 그 안에 마치 어미새가 둥지에 낳아놓고 잃어버린 새알처럼 감자 다섯 개가 오롯이 들어있다. 조심스럽게 비닐봉지안에 들어 있던 감자를 꺼냈다. 다섯 개의 감자는 마치 숨바꼭질하다 술래에게 불려나와 동그라미 안에 갇힌 아이들처럼 멀뚱히 나를 바라본다. 이것들이 언제부터 저 은밀한 곳에 터를 잡고 저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던가!
어미감자의 몸을 뚫고 암팡지게 올라온 감자싹이 청보랏빛이다. 쭈글쭈글해진 어미몸 위에 악마의 발처럼 발톱을 단단히 박아놓고 뻗친 싹이 기세등등 서슬이 퍼렇다. 얼핏보니 허술하게 묶인 비닐봉지를 뚫고 나온 싹이 금방 날아오를 어린 새 같기도 하다.
때마다 돌아가는 세탁기의 온도와 눅눅한 물기, 그리고 적당히 뚫린 비닐봉지의 구멍이 통풍이 되어서 싹을 틔우기에 최적의 조건이 되었던 모양이다. 감자 다섯 개를 앞에 놓고 나는 탐구생활관찰일기 숙제하는 아이처럼 하나씩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들여다본다. 굴 속 같은 어둠속에서 제 몸의 수분과 양분을 수혈하고 싹을 틔우고 길러 내느라 분주했을 어미마음이 먼저 읽힌다. 빈 젖처럼 쭈글쭈글한 어미감자의 몸을 쓰다듬어본다. 손끝에 닿는 주름고랑의 느낌이 마른 낙엽처럼 버석버석하다. 쇠젖가락으로 감자를 하나씩 찔러보았다. 감자 가운데를 관통하고 쇠젖가락이 지나간 자국이 뻥 뚫렸다. 나는 쇠젖가락으로 감자몸피를 마구 찔렀다. 쇠젖가락이 감자 몸피를 뚫고 나가는 느낌이 통쾌하다. 곰보처럼 구멍이 뻥뻥 뚫리면서도 감자는 비명 한마디 없다. 심술난 아이처럼 감자를 베란다 바깥으로 하나씩 하나씩 내던졌다. 감자가 둔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툭 툭 떨어졌다.
‘악마!’
할머니가 대문을 확 열고 들어섰다. 저녁거리로 양푼에 감자를 담아 들고 나오던 어머니는 할머니가 갑자기 대문을 여는 바람에 대문에 이마를 쾅 부딪쳤다. 어머니는 감자 양푼을 껴 앉은 채 마당에 나동그라졌다. 그 바람에 양푼에 담겨있던 감자들이 데굴데굴 굴러서 할머니 발밑에 떨어졌다. 할머니는 공을 차듯이 발에 차이는 감자를 뻥 차버렸다. 땅바닥에 떨어진 감자를 주우려던 어머니는 감자를 뻥 차버리는 할머니를 보고 어머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궁기에 식량을 발로 차버리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처음 본 것이다. 어머니는 제멋대로 나가떨어진 감자를 하나씩 찾아서 양푼에 다시 주워 담았다.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옮겨 올 때 들고 온 것은 검은 가방 두 개 뿐이었다. 그 가방 속에 태풍의 눈이 들어 있는 것을 감지한 사람은 어머니 뿐 이었다. 키만 껑충하게 큰 아버지는 대문을 확 열고 들어가는 할머니 뒤를 따라 양쪽에 제법 큰 가방을 하나씩 들고 남에 집에 들어오듯이 쭈뼛거리며 뒤따라 들어왔다. 할머니는 마치 처녀처럼 검은 핸드백을 가볍게 팔목에 걸치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할머니의 핸드백에 달린 금속 장식이 반짝 햇살에 빛났다. 할머니는 방문 앞에 다다라서 꼿꼿하게 서 있었다. 저렇게 등이 빳빳한 노인이 있을까? 마치 방문 앞에다 대고 ‘내가 왔다’ 하는 것처럼 방문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얼른 앞으로 나서서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방문을 열어드렸다.
“오마니 다 왔시오. 안으로 들어가시라요.” 아버지가 허리를 굽실거리며 말했다. 그제야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들고 온 할머니의 가방도 예삿물건이 아니었다. 하나는 검은색이고 또 하나는 갈색이었는데 왠지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손잡이와 가방앞부분에 달린 가죽 장식이 가방을 더 멋져 보이게 만들었다.
“오마니 인제부터는 여기서 편히 지내시기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버지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막 변솟간에서 나와서 아직도 가려운 엉덩이 쪽을 긁으려다가 할머니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영옥아 이리 와서 할마이 한데 인사하라! 이제부터 우리 집에서 같이 살거이다.”
나는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미적미적 앞으로 나갔다.
“씰테없는 간나새끼래!”
할머니는 싸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처음 보는 할머니인데 그 한마디에 나는 가슴이 베었다.
할머니는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뒤돌아 앉아서 자신이 벗은 신발을 가지런하게 고쳐놓았다. 할머니 뒤를 따라 어머니도 허리를 굽히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언가 꾸지람을 들은 아이처럼 입술을 빼물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는 큰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 큰집 형편이 어려워지자 작은 집인 우리집으로 거처를 옮겨 온 것이다. 할머니는 원래부터 우리 집에 있었던 사람보다 더 ‘우리 집사람’ 같았다. 모든 일의 중심에 있었고 모든 일을 지시했다. 할머니 입에는 부정의 사슬이 달려 있어서 말을 할 때마다 앞부분에 매달려서 나오는 것 같았다. 못된 것, 그것도 못하냐, 안된다, 등등...... 할머니 몸에는 얼음주머니가 달려있었다. 아무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고 쌀쌀한 냉기만 뿜어냈다. 할머니 독기에 죽어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음식타박에서부터 집안일하는 것은 물론 외모까지, 어머니얼굴에 미간이 넓어서 부부사이가 멀다고 생긴 것 까지 탓했다. 무엇보다 어머니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출신성분을 들먹일 때였다. 외할아버지가 북송선을 타고 북조선으로 들어와서 귀화했다는데 할머니는 그것을 이유로 들어 어머니를 일본인 찌끄라지라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은 북한 공산당의 일본 거점인 조총련의 꼬임에 빠져서 지상낙원인줄 알고 북송선에 올라 북한으로 이주 했다는 사실을 더 커서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출신성분이 나빠서 아버지가 평생 당원이 될 수 없고 부당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할머니는 하루도 쉴 새 없이 어머니를 괴롭혔다.
철없는 나는 어머니가 뭘 그렇게 잘못하는 일이 많은지 오히려 어머니가 미운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왜 좀 잘하지 왜 맨날 잘못해서 할머니에게 야단을 맞는지 답답했다.
그날도 나는 아이들과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중이었는데 술래를 피해서 평소에 숨던 곳보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다. 나는 절대로 술래가 찾을 수 없는 곳을 찾아 허름한 창고같은 곳으로 숨으로 들어갔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 오싹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여기라면 절대로 술래가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컸다. 창고 안에는 깨진 벽돌과 짚더미 같은 것들이 쌓여있었다. 나는 짚더미 한쪽을 끌어다가 깔고 앉았다. 엉성하게 부러진 문틈으로 빛이 들어와서 완전히 깜깜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짚더미에 머리를 기대고 앉으니 편안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감겼다. 깜빡 잠이 들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깜깜한 어둠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와락 무서워졌다. 어둠이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뒤에서 뭐가 덮칠 것 같았다. 발밑에 무엇이 획 지나갔다. 쥐새끼 같았다. 여기서 빠져나가야겠는데 도무지 앞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너무 깜깜해서 몸의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엉금어금 기어서 밖으로 나갈 구멍을 찾아 더듬었다. 그런데 내 손에 뭔가 물컹하고 잡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옴마야!’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가 지르는 소리에 놀라서 상대방도 ‘누구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손으로 만져보았던 느낌을 되새겨 보았다. 사람의 얼굴이었던 것 같았다.
“영옥이냐?”
어머니 목소리였다.
“어머니?”
“영옥이 맞네. 너도 쫒겨났네?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어머니가 왜 여기에 숨어있는지는 곧 알게 되었다.
“영옥아!”
어머니와 나는 서로 와락 껴안았다. 마음이 따뜻했다. 어머니품이 이렇게 따뜻하고 안심되는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쫓겨나면 이 창고에 잠시 숨어서 할머니의 화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몰래 들어가곤 했던 것인데 짚더미에 의지해서 살짝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손을 잡고 의지해서 출입구를 찾아 나왔다. 창고를 빠져나와서 부서진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는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어둠속에서 어머니의 흰 이만 보였다. 어머니의 웃음을 본지 너무 오래 되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어머니와 나만을 둘러싼 흰 막이 생긴 것 같았다. 그 막은 올챙이를 감싸는 투명한 운무 같은 것이어서 겉으로 보면 없는 듯하지만 다른 것으로부터 정확히 구분 짓고 안에 것을 보호하는 부드러운 견고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바람막이도 되어주지 못했다. 미움은 미움을 낳았다.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할머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여자 편이었다. 그 여자에게서 건너오는 중국 물건에 더 마음을 두었다.
구질구질하게 비가 오는 날이었다. 또 무엇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할머니는 퉁퉁 거리며 집안을 왔다갔다했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어머니를 향해서 ‘몹쓸년, 쓸개빠진년, 하며 욕을 해댔다. 나는 속으로 어머니가 아직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또 할머니에게 혼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아서였다. 내 바램은 왜 이렇게 잘 빗나가는지 모르겠다. 꼭 좋지 않은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집안으로 들어서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더욱 화가 나는지 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나가라 무시기 이래 답답한 기 버티고 있어서 우리 세대주 앞길을 막고 있네” 하며 어머니에게 욕을 해댔다. 할머니는 방안에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엄마의 옷을 마당으로 내던졌다. 나는 양재기에 담긴 감자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솥에서 쪄 놓은 식은 감자를 숟가락으로 짖이겨서 밥처럼 퍼먹고 있었다. 점심은 으레 그렇게 먹었다. 할머니 서슬에 놀라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감자가 켁! 걸렸다. 목에 걸린 감자 때문에 나는 허리가 꼬꾸라지도록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면서 마당에 떨어진 옷을 바라보았다. 마당 한가운데 널브러진 어머니의 옷가지에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은 금새 옷을 흠뻑 적셔놓았다. 나는 비에 젖고 있는 옷이 어머니가 젖고 있는 것 보다 더 마음이 쓰렸다.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는 옷이 어머니보다 더 아프게 느껴졌다. 나는 먹던 감자 양재기를 내던지고 마당으로 나왔다. 양재기가 떼구르르 굴러 떨어지며 담겨 있던 감자가 마당에 쏟아졌다. 짓이겨진 감자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감자를 밟고 지나가면서 어머니의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내가 먼저 옷을 줍는 것을 보고 어머니도 함께 옷을 주웠다. 나는 주운 옷을 어머니의 팔에다 걸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데 입안에 있는 이빨도 함께 앙다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젖을 옷을 주워서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는 할머니를 향해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어머니가 정말 이제는 떠나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가라 몹쓸년! 네가 나가야 이집이 산다아악!” 할머니는 더 악을 쓰듯이 말했다. 할머니도 어머니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은 것이다. 어머니는 마당을 천천히 걸어나가고 있었다. 어머니 등을 바라보던 할머니의 시선이 문득 날카롭게 나에게로 날아왔다.
“저 년도 데리고 갓!” 할머니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할머니가 나를 향해 손짓하는 손가락이 칼날같았다. 어머니는 밖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소리내지 않고 ‘어머니!’ 하고 불렀다. 나를 데리고 가 달라는 부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어머니와 내가 창고에 숨었던 그때 그 기분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내 손을 콱! 잡았다. 쫓겨난 어머니와 나는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왔다. 기차는 허름한 집들을 뒤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기차가 흔들리고 기차가 지나는 길가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나는 차창밖에 분홍색 코스모스보다 자줏빛 선명한 코스모스를 눈으로 찾으며 기차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어머니는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청진으로 왔을까?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말은 씨앗이 되고 그것은 곧 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몇 번 입에 올렸던 지명이었다는 것이 어머니를 이곳으로 이끄는 끈이 되었던 것이었다. 청진에서 어머니와 나는 꼼지락거리면서 살았다. 잘 사는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괴롭게 살지는 않았다. ‘비빌언덕’이 없어서 뿌리를 땅에 묻지 못하고 물위에 띄워 놓은 것 같았다. 다행히 어느 곳에나 골고루 비추는 햇살이 우리 집 담벼락을 그냥 지나쳐가지는 않았다. 타지에서 굴러 들어온 모녀이니 존재감이 없어서였을까? 출신성분을 따지는 사람이 없어서 좋기도 하고 관심 가져 주는 사람이 없으니 쓸쓸하기도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무난하게 지나갔고 나는 점점 자랐다. 청진의 겨울은 무섭게 추웠다. 사계절 중에서 겨울만 달랑 덜어낼 수 있다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가을이 지나고 코끝에 싸한 기운이 느껴지면 나는 벌써 모가지를 웅크리며 지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굴속 따뜻한 곳에 들어가서 한숨 깊이 자고 나면 짜잔!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나는 송홧가루를 채취해서 연명해갔다. 북한에도 산림관리청 같은 곳이 있어서 나무를 함부로 베어가면 단속을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어둠을 틈타서 산으로 올라가서 소나무를 몰래 베어왔다. 베어 온 소나무는 방바닥에 종이를 깔아놓고 솔가지와 솔방울을 하나씩 꺾어서 살살 털면 송홧가루가 나왔다. 어머니와 나는 송홧가루를 뒤집어써서 하얗게 된 머리카락과 얼굴을 종이에 대고 털면서 마주보고 웃었다. 털어낸 송홧가루를 채에 쳐서 잘 고르면 노랗고 예쁜 색깔의 송홧가루만 걸러졌다. 송홧가루 1kg은 밀가루 3kg과 맞바꿀 수 있었다.
내가 자라는 만큼 어머니는 쇠약해져 갔다. 할머니에게 호통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에게 버림받으면서도 멀쩡하게 서 있던 어머니가 자주 자리에 누웠다. 어머니가 자리에 누워 있는 날은 불이 켜져 있어도 불이 꺼진 집처럼 어두웠다. 적막이 우리 집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불쑥불쑥 찾아와서 덮었다. 암울한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집이니 문 앞에 놓인 신발도 딱 두 켤레 뿐이었는데 낯선 신발이 방문 앞에 놓여있었다. 여자신발이었다. 매일 그저 그런 날이 지나가는 중 오랜만에 가슴이 설렜다. 오는 사람도 없고 가는 사람도 없는 우리 집에 누가 왔을까?
“어머니 나 왔습네다.” 방안에 있는 다른 사람도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어머니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에 있는 사람은 언니였다. 몇 년 만에 보는 언니는 처녀가 되어있었다. 얼굴이 많이 야위었고 어깨에 힘이 없어 보였다. 언니에게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제대로 익지 못하고 겉만 먼저 쉬어 버린 떨감같은 냄새!
“영옥아 잘 있었냐?
할머니에게 쫓겨나서 집을 나오던 날 마지막으로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나온 언니였다. 우리는 모두 삼남매였는데 오빠와 언니 그리고 내가 막내였다. 언니는 외모도 아버지를 닮았고 성격도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았다. 아버지를 닮아 흰 피부에 갸름한 얼굴 짙은 눈썹이 매혹적이었다. 말수가 적고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 딱히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는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은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모녀지간이고 자매간인데 어제 만났던 사람들처럼 무덤덤하게 서로 바라보았다. 데면데면했다. 내가 끼어들면서 모녀 사이에 조금 윤기가 돌았다.
“할머니는 잘 계심가?”
“할머니는 기가 다 죽었어야. 아버지가 그 여자 집으로 옮겨가고 나니 닭 쫓던 개꼴이 됐어야. 훗어머니는 집에 들어와 살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만 빼가고 말았어야”
“그렇지 세상에 어머니처럼 순뎅이같이 당하고만 살고 있을 여자가 어딧겠어”
내가 어머니를 두둔하고 나섰다. 한 번도 어머니 앞에서 어머니편을 들어서 말한 적이 없었다.
“그래, 언니는 어케 여길 다 찾아왔네?” 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결혼을 했어야”
“뭐이가? 벌써? 어디메로? 누구에게로? 그런데 여긴 어케왔어?”
나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물었다.
“경철이... 알지...”
“그 마약쟁이 경철이?‘
나는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는데 어머니는 아는 사람인 모양이다.
“네 그렇슴다. 경철이.....”
“경철이가 네 신랑이란 말이디?”
“네, 그케 됫슴다.”
언니의 외모에 반한 경철은 매일 언니 뒤를 따라 다녔다고 했다. 언니의 말수 적은 성격이 음전한 여자로 비쳐졌고 음전한 여자를 흠모하는 사내는 몸이 달았던 것이다. 어느 날 밤 이슥한 곳에서 기다렸던 사내는 단 몸을 마약으로 더욱 불을 당겨 언니를 삼켰던 것이다.
기업소마다 다르긴 했지만 북조선에서는 결혼하는 나이까지 제한을 받았다. 한창 노동력과 생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에 연애나 결혼으로 노동력을 빼앗길 수 없다는 당의 방침이었다. 남자는 30세가 넘어야 하고 여자는 25세가 넘어야 결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니는 스물두 살에 결혼을 했으니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생활총화 때마다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자아비판 때도 밤길에 당해서 결혼했다고는 할 수 없으니 제 속을 스스로 쳐야했다. 호상비판은 가슴이 터져 너덜너덜해져야 끝이 났다고 했다. 그것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시 일주일에 한 번씩 공개적으로 단상에 올려놓고 사상투쟁을 받아야만했다는 것이다. 사상투쟁이란 한 사람을 비판무대에 무릎 꿇고 앉혀 놓고 이삼십 명이나 되는 조원들이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지적하며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사상투쟁비판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디, 비판을 하다하다가 나중에는 아닌 말도 만들어 내야지 않캈어? 무릎을 꿇은 채 한 시간 두 시간씩 사상투쟁비판을 받는거이야. 기럴때는 칵 죽고싶었어야”
“기래서 어캣니?‘
“경철이도 거게서 마음이 떴어, 청진근처로 떠나자고 해서 아무 말 않고 따라 나섰지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어카겠니?”
언니 가슴에 먹장구름이 잔뜩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곧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은.
언니의 얘기를 듣다말고 어머니는 감자를 꺼내 와서 깎았다. 언니 얼굴에서 시장기를 보았던 것이다.
“어카니? 요기 할거이 변변이 없어서리, 얼른 감자라도 삶아야갓어.”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감자 껍질을 벅벅 긁었다.
언니는 뱃속에 아이가 들어있었는데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아이 가진 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배가 홀쭉했다. 언니는 가슴을 두드려가며 감자를 자꾸 먹었다.
새벽! 언니의 신음소리가 내 귀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에 누운 언니를 만졌다. 언니가 축축하게 만져졌다. 일어나서 불을 켜고 보니 언니 밑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어질어질한 목단꽃 무늬 이불에 쏟아진 붉은 피는 어느 것이 꽃잎인지 어느 것이 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하나의 큰 꽃이었다.
“이걸 어카니? 어젯밤 감자먹은 것이 잘못되었나......”
언니는 울지도 않았다. 반나절을 뻗치고 누워서 꼼짝 안하고 있다가 삐척삐척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서가는 등이 허수아비 같았다. 허적허적 남편인 경철에게로 허깨비처럼 갔다. 아주 큰 목단꽃 하나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언니집의 주소가 적힌 작은 종이 한 장만 남겨두고.
살겠다고 돌아가는 언니의 등에다 대고 ‘잘 살아라’고 썼다.
언니가 왔다가고 어머니는 더 자주 누웠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하루하루를 간당간당 견뎠다. 목구멍을 달래는 것은 잡혀갈 일도 불사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때 열여섯 살이었다. 어떤 사람의 소개로 동(銅)장사를 시작했다. 동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이 취급물건이 되었다. 모집책이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동을 끌어 모아 놓는다. 모아놓은 전선이나 그릇, 파이프들을 모아서 압축해 놓은 것을 밀거래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결국은 중국으로 밀매되는 것이었는데 북한 동(銅)은 품질이 좋아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물품이었다. 품질이 좋은 만큼 단속도 심했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물품이 금, 마약. 동(銅)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이것들을 취급하다가 잡히면 중벌을 받게 되었다.
나와 동(銅)을 취급하는 사람과 연결된 사람도 산위에 올라가서 전선을 끊어 동을 취급하려다가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일이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장사를 몇 번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지도원에게 잡히고 말았다. 동(銅)장사하다가 현장에서 바로 잡혔으니 그대로 구류장으로 잡혀갔다.
내가 구류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면회를 왔다. 면회실에서 어머니를 만나니 서로가 측은했다. 딸을 면회 오면서 무엇이든 먹을 것을 마련해 오려고 애를 썼던 어머니는 그때가 초봄인지라 산에서 달래를 캐서 밀가루를 묻혀서 찐 것을 사식이라고 가지고 왔다.
“아야! 영옥아! 어카고 있니?”
“나는 잘있슴다. 염려마시라요. 큰 잘못은 아니했으니 곧 풀려나갓지요.”
어머니는 서둘러 밀가루떡을 내 앞에 풀어 놓았다. 밀가루 떡이 담긴 보자기를 푸는 어머니 손이 달달 떨렸다.
“이거 먹으라, 어디 가서 감자라도 구했으면 떡을 좀 맹글어 보갓는데 급하게 오느라 경황이 없어서리...... ”
“어머니! 너무 걱정마시라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디 설마 굶겨 죽이기야 하갔시요.”
어머니는 며칠은 굶었는지 접힌 허리가 펴지지 않아 보였다. 나에게 밀가루떡을 권하면서도 어머니의 눈은 밀가루떡에 꽂혀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구류장에서 강냉이밥은 세끼 꼬박꼬박 먹고 있으니까니 배가 부릅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드시라요.”
내가 한번 권하자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어머니손이 얼른 밀가루 떡으로 갔다가 멈칫했다. 염치를 차리는 것이다.
“어서 드시라요. 어머니”
밀가루 떡을 집은 어머니손이 감자껍질처럼 거칠거칠하다. 건들면 바스라질것처럼 건조하다. 순식간에 어머니 혼자 밀가루떡을 먹어치우고 말았다. 그사이를 못 참고 내 배가 아우성을 쳤다. 내 배에서는 언제나 강물소리가 났다. 나는 배를 앙 다물었다. 배가 부르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 나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밀가루떡을 다 먹고 난 어머니는 머쓱한지 나를 보고 물었다.
“언제 출소한다니?”
어머니가 퀭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재판을 안 받았슴다. 염려마시라요. 어머니 몸이나 잘 돌보시라요. 어째 그렇게 맥이 없슴까?“
어머니가 나를 면회 온 것인지 내가 어머니를 면회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노동단련대로 이송되어갔다. 노동단련대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있었다. 노동 단련대는 낮에는 밖으로 나와서 감시원의 감시하에 노동을 하고 저녁이 되면 다시 구류장에 갇히는 것이다. 가끔 노동 하러 나갔다가 도망가는 사람도 있는데 잡히면 본보기로 심한 매질을 당해서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았다. 재판 결과 노동단련대 3개월 구류형을 받았다. 노동단련대는 주로 농장일을 했다.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죽지 않을 만큼 노동을 하고 구류장으로 돌아오면 쓰러져 잠들기도 힘들었다. 말이 구류장이지 동물을 가둬놓은 곳보다 더 열악한 시설이었다. 씻을 수 있는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죄수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세수나 머리를 감을 수 있었다. 좁은 구류장 안에서 서로 얼키고설켜서 잠이 들었다. 이와 빈대가 바닥을 기어 다니며 비루한 몸뚱이를 뜯어먹었다. 그래도 잠이 쏟아졌다. 농장에서 돌아와서 한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나를 깨웠다. 어머니가 죽을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지도원에게 사정을 해서 집에 좀 가서 어머니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건 법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곤 했지만 딱한 내 사정을 듣고 지도원이 선처해주었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강냉이 가루와 먹을 것도 꿔 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오면 로동을 더 많이 해서라도 꼭 갚겠슴다.”
지도원은 구류장문을 나서는 나에게 옥수수가루 1kg과 감자1kg을 몰래 건네주면서 얼른 집에 가보라고 했다.
그 길로 밤길을 달려서 집에 왔다. 방문을 여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에서 어머니는 천정을 향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어머니! 정신차리시...”어머니가 저물고 있었다.
“어머니 죽지마시라요오.”
나는 어머니의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어머니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마른줄기 같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있었다. 나는 서둘러 옥수수 가루로 죽을 끓였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감자껍질을 벅벅 긁었다. 감자껍질이 제멋대로 두덜두덜 벗겨졌다. 아까운 감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언 감자였던 것이다. 무엇이든 한 입이라도 어머니 입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죽지 않을 것 같았다. 옥수수죽에 삶은 감자를 으깨서 먹이고 나면 어머니가 일어나 앉을 것 같았다. 숟가락 등으로 삶은 감자를 눌렀다. 하지만 언감자는 양재기에서 제멋대로 놀아났다. 숟가락을 피해 댕댕하게 굴러다니며 좀처럼 으깨지지 않았다. 감자는 내가 안간힘 쓰며 내리 누를수록 얌체같이 양재기 바깥으로 튀어 올랐다. 방바닥에 감자가 나동그라졌다. 언감자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할 수없이 옥수수죽만 한 숟가락씩 떠서 어머니 입속으로 흘러 넣었다. 어머니 목울대가 움직였다. 옥수수죽이 목을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소리같이 크게 들렸다. 다섯 숟가락이나 입에 넣을까? 어머니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더 이상 밀어 넣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 머리맡에 밥상을 차렸다. 남은 옥수수 가루를 다 털어서 죽을 끓이고 감자를 다시 삶아 밥상위에 올려놓고 가지런히 숟가락도 놓았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밖에서 방문을 잠그고 나는 집을 나왔다. 언니가 남겨두고 간 집 주소를 찾아들었다. 언니 집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무조건 달렸다. 숨이 턱에 닿을 때 까지 달리다가 걷다가 또 달렸다. 세상의 모든 길 중에서 가장 먼 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지나고 호젓한 물가를 지났다. 낮을 지나고 밤을 지났다. 아침에 길을 나섰는데 하룻밤을 지나고 반나절을 지나서야 언니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죽고 있다!”
나는 파발을 전하는 파발이꾼처럼 한마디 겨우 내 뱉고 다시 돌아섰다. 언니가 따라오던 말던 다시 돌아갈 마음이 급했다. 언니는 신발도 제대로 꿰지 못하고 따라 나섰다. 그런데 언니 걸음이 먼 길을 달려왔다가 되돌아가는 내 걸음보다 느렸다.
“어찌 이리 걸음이 느림까? 좀 빨리 가기요.”
나는 마치 빚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언니를 채근했다. 묵묵히 뒤따라오던 언니는
“아이를 가져서리...... ”하며 말끝을 흐렸다. 주눅이 든 말투였다. 기가 막혔다. 경철을 피해서 도망간다고 하더니 또다시 그놈의 아이를 가지다니,
핏기 없는 언니 얼굴을 보니 측은하기보다 비열하게 보였다. 나는 한참 먼저 앞서서 달려가다가 저 멀리에서 청승스럽게 걸어오고 있는 언니에게 눈만 던져 놓고 기다리길 반복했다. 멀리서 종종 거리며 걸어오는 언니를 바라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버지 같았다. 할머니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히는 어머니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허수아비 아버지! 힘 있는 사람에게는 비열하고 힘없는 사람 앞에는 작정하고 강한 아버지!
드디어 집이 눈 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을 먼저 보냈다. 방문이 그대로 잠겨 있었다. 그런데 자물쇠 밑구멍이 하늘을 향해 쳐들고 있었다. 화락! 불안감이 훑고 지나갔다.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는 손이 달달 떨렸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밥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밥상은 내가 놓았던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밥보자기를 들춰보았다. 밥그릇이 깨끗하게 비어 있다. 그런데 빈 그릇에 숟가락이 걸쳐져있었다. 나는 얼른 어머니 곁으로 가서 어머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눈을 뜨고 입을 반쯤 벌린 채 굳어있었다. 손이, 얼굴이, 싸늘했다. 그런데 옥수수죽과 감자는 어머니가 다 먹고 죽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옆집 할머니가 보니까 누가 우리 집 창문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죽어가는 어머니를 앞에 놓고 어머니의 끼니를 훔쳐 먹은 그 놈을 향해 악을 쓰며 욕을 했다.
“나쁜새끼! 그걸 쳐먹고 어디 잘 사나보자! 설사병이나 나서 콱 죽어버려리라!”
“먹을 것을 넣어 달라고 입을 벌리고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한 숟가락 넣어주기는 커녕 감자를 제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쳐 넣었을 그 놈!”
우리가 했던 저주 때문이었을까? 옥수수죽과 감자를 훔쳐 먹은 그 사람은 설사병을 앓다가 며칠 후 죽고 말았다.
어머니의 시신을 놓고 우리자매는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할지 경험이 없으니 알지 못했다. 내가 나섰다. 언니보다 내가 더 언니 같았다. 뜨거운 물에 수건을 적셔서 어머니의 몸을 깨끗이 닦았다. 나무토막을 닦는 느낌이었다. 몸의 수분이라곤 모두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수분이 없는 어머니 몸은 건조한 껍데기였다. 아랫도리를 깨끗이 닦고 옷을 갈아입혔다. 갈퀴같은 맨발에 양말을 신겼다. 거칠거칠한 발뒤꿈치에 양말이 스칠 때마다 버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뼈마디가 부러질 것처럼 뻣뻣했다. 방바닥에 담요를 펼쳐놓고 언니는 다리를 붙잡고 나는 어깨를 붙잡고 들어서 담요위에 올려놓고 꼭꼭 싸맸다. 싸맨 다음 노끈으로 세 군데를 꽁꽁 묶었다. 언니보다 내가 더 언니처럼 능숙하게 했다. 어느새 언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지는 것이 있다. 가장 원초적인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시작하기가 어렵지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시신을 싸매 놓고 나니 일이 절반쯤은 끝난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이제 하나의 낯선 물체가 되었다. 왠지 불기운이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시신을 옆으로 밀어놓고 우리도 찬 방바닥에 누웠다. 어머니 시신과 조금 간격을 띄워 내가 눕고 언니가 나란히 누웠다. 곱사등이처럼 몸을 구부리고 누운 언니가 몸을 꼼지락거렸다. 죽은 어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거리가 가깝고도 멀었다. 냉기가 뼛속 마디마디 들어왔다. 심장을 굳어지는 것 같았다. 청진의 뿌리에서 나오는 추위였다. 옷가지를 깔고 모로 누운 언니는 어깨를 들썩이며 덜덜 떨었다. 언니에게서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나와 언니에게 입이 달려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틀째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내놓지 않았고 입안으로 아무것도 넣지 못했다. 나는 언니처럼 언니를 껴안아 주고 싶었다. 마음속에서 마음두개가 팽팽하게 맞섰다. 왜 언니가 이렇게 미운지 이유를 말할 수 없이 미웠다. 할머니에게 미움받지 않는 것이 미웠다. 할머니가 나를 향해 ‘저 년도 데리고 가라’고 할 때 언니는 아버지 뒤로 몸을 숨겼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머니 시신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머니 시신은 요동이 없었다. 끈으로 묶어놓은 어머니가 꿈틀꿈틀 일어 날 것 같은 환영에 젖었다.
“아이구야 숨막혀 죽는 줄 알았다야!”
하며 부스스 일어날 것도 같다.
창문 밖으로 둥그런 달이 떠 있었다. 달빛에 어머니를 싸놓은 담요가 보였다. 담요에서 달빛을 받아 목단꽃이 피어났다. 언니가 하혈로 피웠던 그 꽃이었다. 목단꽃은 겉보기엔 화려하나 씨 한 톨 남기지 못하는 꽃이다. 싸늘한 달빛이 요요했다.
얼음 배긴 벽에 기대어 깜빡깜빡 졸고 나니 아침이 왔다.
어머니를 관에 넣어야겠는데 관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구루마를 끌고 나가서 널빤지하나를 구했다. 널빤지를 지렛대 삼아 구루마에 걸쳐놓고 어머니시신을 끌어올려서 구루마에 실었다. 산 사람보다 죽은사람은 더 무거웠다. 구루마에 집에 하나 밖에 없는 삽을 어머니시신 옆에 나란히 실었다. 내가 구루마를 앞에서 끌고 언니가 뒤에서 밀었다. 나는 구루마에 어머니를 싣고 집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어머니에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시킨 셈이다. 어머니와 내가 담겨 있던 집이다. 땅콩껍질처럼 겉은 거칠지만 어머니와 내가 두 칸의 방에 담겨져서 그런대로 안온했던 껍데기였다.
어머니를 묻으로 산으로 갔다. 거친 길이었다. 길바닥에 떨어진 자갈 하나에도 구루마는 심하게 흔들렸다. 구루마는 바퀴가 서로 맞지 않아서 더 심하게 흔들리며 덜컹거렸다. 구루마가 한 번씩 덜컹! 할 때마다 어머니의 시신은 판자 위에서 춤을 췄다. 경사진 길에서 구루마가 기울었다. 앞에서 끄는 나는 힘이 들었고 뒤에서 미는 언니는 어머니시신이 굴러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했다. 언니는 모든 것이 엉성하고 서툴렀다. 산 중턱에서 구루마 바퀴가 돌부리에 걸리는 바람에 어머니의 시신이 주르르 미끄러져서 땅에 툭! 떨어졌다.
“그거 하나 지대로 못잡으면 어카니”
언니같은 내가 언니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다.”
무력한 언니가 개미처럼 말했다.
“여게를 꼭 잡고있으라” 언니에게 구루마 손잡이를 잡고 있으라 했다.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져있는 어머니를 질질 끌다시피해서 다시 구루마에 실었다. 도우려고 한 손을 내미는 언니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바보같이’ 알 수 없는 분노가 부글부글 일었다. 분노한 힘이 넘쳤다.
산중턱에는 제멋대로 자란 잡풀사이에 잔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잔설에서부터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냉기 품은 바람에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머릿속까지 얼얼했다. 뒤를 돌아보니 땅에 얼굴을 박고 구루마 뒤를 밀고 있는 언니도 산발한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하늘이 쨍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들이 더 위협적인 것이다.
어머니가 묻힐 곳을 골랐다. 삽으로 이곳저곳을 찔러보았다. 언 땅이 완강하게 버티고 틈을 주지 않았다. 삽을 꽂는 곳마다 튕겨 나갔다. 기어코 삽을 내리꽂고 삽 위에서 껑충껑충 춤을 추었다. 언 땅과 사투를 벌이듯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원만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산에 잡목이라도 거두러 가는 길인 듯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가며 말했다
“구덩이를 더 파라 그 정도로는 택도 없다아.”
죽은 사람을 아무데나 매장하는 일도 감시대상이라서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할아버지 말대로 구덩이 좀 더 깊게 팠다. 어머니를 담을 딱 맞는 질그릇이 만들어졌다. 밑바닥에 널빤지를 먼저 깔았다. 관은 없어도 어머니를 차가운 땅바닥에 그대로 묻을 수는 없는 일이다. 판자위에 어머니의 시신을 내려놓고 흙을 덮었다.
‘어머니 잘가시라요’
‘어머니 다시 돌아와서 따뜻한 무덤을 만들겠슴다’ 나는 허무한 약속을 했다. 어머니를 다 묻고 나서 그 자리에 나무로 열십자를 만들어 세웠다. 빈 구루마를 끌고 돌아섰다. 내리막길에 빈 구루마에 실린 삽자루 혼자 몸부림쳤다. 두엄두엄 발걸음을 사리며 언니가 뒤를 따라 왔다. 마지막으로 한번 어머니를 묻은 곳을 뒤돌아보았다. 큭! 눈물이 쏟아졌다. 죽은 어머니를 보고도, 죽은 어머니의 입과 콧구멍과 귓구멍에 솜을 밀어 넣을 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었다. 죽은 어머니를 덜렁 들어서 담요에 놓고 꽁꽁 싸매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야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길이 흐려졌다. 언 길바닥에 내 눈물이 후둑후둑 떨어졌다. 내 눈물자국을 밟으며 산을 내려왔다. 발이 허공을 딛는 것처럼 헛헛했다. 허한 발걸음으로 내가 걸어간 곳은 구류장 앞이었다. 약속대로 나는 다시 구류장으로 스스로 돌아와서 갇혔다. 노동 단련대에 잡혀간지 정확히 3개월이 되는 날 아침 노동 단련대 조사실에서 나를 불렀다.
“김영옥이, 니래 3일 더 로동해야한다 알갓니?”
‘물론 그래야디요’
쓴 웃음으로 대답했다.
구류장으로 나오는 길로 나는 아무도 없을 빈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구류장안에서 알게된 언니가 알려준 대로 남조선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결행했다.
얼음 두만강을 혼자서 건넜다. 두만강위에 풀풀 날리는 눈발을 희망이라고 믿기로 했다. 눈발이 강물에 스며드는 것처럼 남한에 스며들었다.
“이게 뭐지? ”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빗자루를 든 채 화단을 손질하던 손을 멈춘다. 유치원 셔틀버스에 오르는 딸을 배웅하고 돌아서다가 경비아저씨가 가리키는 쪽으로 다가갔다. 훅! 땅냄새가 났다. 사냥개처럼 예민해진 나의 후각이 구역질을 끌어 올린다. 경비아저씨가 가리키는 손끝을 눈으로 쫒아갔다. 돌덩어리 같은 감자 몇 개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반쯤은 땅속에 묻혀있고 반쯤은 노출되어 있다. 절박한 생명이 거기 있었다. 절박한 삶이 청보라색 촉수를 뻗쳐내고 있었다. 화단 모퉁이 제대로 볕도 들지 않는 곳에서 감자는 새끼를 치고 있는 중이었다.
흑! 나는 배를 움켜쥐었다. 아랫배가 빳빳해졌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태동이었다.
나는 왕성한 번식력으로 개체수를 늘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