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돌핀스의 해양동물 이야기 13] 멀지 않은 미래, 돌고래와 인간은 소통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인간과 비슷하게 발음하는 범고래가 나타나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주인공은 프랑스의 수족관에 살고 있는 범고래 위키였다. 인간의 언어를 따라한다니 어떤 범고래일까 궁금했는데, 사육사가 ‘헬로’ ‘바이 바이’ 같은 영어 단어를 들려주면 그것을 비슷하게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했다. 인간의 소리를 흉내내는 것은 다른 동물들에서도 볼 수 있으므로, 이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범고래와 큰돌고래, 흰고래 등은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복잡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현재 돌고래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른 종의 동물과 직접 소통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오랜 꿈이다. 아마 인간이 다른 종의 동물과 언어적 소통이 가능해진다면 첫 번째 상대는 돌고래가 되지 않을까?
인간 목소리 흉내내는 범고래. 사진 = KBS 뉴스 화면 캡쳐
러시아 학자들은 흑해 연안에 사는 고유종 큰돌고래들이 사람처럼 문장을 구성해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중 마이크를 통해 돌고래들의 대화를 녹음해 분석해본 결과 돌고래들이 사용하는 파동에서 인간의 언어와 비슷한 구조적 특징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한 마리가 문장 형태로 이야기하면 다른 돌고래는 그 말을 끊지 않고 끝날 때까지 다 들어준 다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돌고래들은 보통 휘파람 소리와 딸깍거리는 소리로 소통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파동 역시 중요한 소통도구로서 인간의 언어와 비슷하게 사용된다. 파동과 파동 사이의 침묵 역시 돌고래 언어의 일부분이었다.
거제씨월드에 전시되어 있는 흰고래 벨루가. 이미지 출처= 거제씨월드 홈페이지
큰돌고래 무리와 가까이 어울려 살아가는 흰고래 벨루가는 몇 달 만에 돌고래 휘파람 소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위치한 수족관에 2013년 4살짜리 흰고래가 새로 이송되어 왔는데, 처음엔 자신의 언어 때문에 큰돌고래들과 소통이 되지 않던 흰고래는 몇 달만에 큰돌고래들의 휘파람 소리를 흉내내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원래 사용하던 소리는 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90시간 분량의 흰고래 언어 데이터를 녹음해서 분석한 결과 큰돌고래들와 소통이 가능했다고 결론내리고, 이를 다른 종간의 동물 언어소통이 가능한 사례로 제시했다.
제주 연안에서 살아가는 남방큰돌고래들 역시 인간과 비슷한 언어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춘삼이와 새끼 돌고래. 사진= 핫핑크돌핀스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거울실험과 ‘비인간인격체’ 연구를 통해 대뇌피질이 발달되어 있는 돌고래는 자의식을 갖고 있고, 복잡한 언어능력이 있으며, 감정표현을 할 것으로 추측되었다. 다층적인 사회관계를 이루고 무리 생활을 하는 돌고래들에게는 언어 소통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연구자들은 보다 구체적인 언어학적 방법으로 돌고래의 언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도카이대학 연구팀이 흰고래가 울음소리와 문자 그리고 사물을 하나의 세트로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나의 사물을 문자와 소리로 연관시켜 이해한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돌고래 역시 사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사물의 이름을 외우고 사람에 가까운 언어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북미 태평양 연안에서 범고래 연구를 하고 있는 밸컴 박사. 이미지 출처= Center for Whale Research
북미 태평양 연안에서 범고래 무리를 연구하는 밸컴 박사는 바닷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수중에 설치된 마이크를 항상 들으며 소리를 통해 접근하는 범고래 무리를 구별해낸다. 고양이처럼 야옹거리는 소리를 내는 범고래 무리가 있는가 하면 자동차 경적소리, 찡얼찡얼하는 소리, 휘파람 소리, 으윽 하는 소리 등이 모두 무리에 따라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음향 씨족 고래들은 넓은 지역에 걸쳐 서식처가 겹치긴 하지만 이웃 공동체와의 교류는 하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같은 범고래인데 먹이마저도 다르다. 바다사자를 먹는 집단, 연어 등 물고기만을 먹는 집단, 그리고 다른 돌고래류를 사냥하는 범고래 집단이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다. 수십 년간 관찰한 결과 이 고래들은 자신의 공동체가 아니면 짝짓기도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범고래 집단이 상이한 언어와 상이한 문화를 가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과학자들이 2021년까지 돌고래 언어를 해독하려는 목표를 내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웨덴의 한 스타트업 기업이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켜 돌고래의 언어를 통역해내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돌고래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와 비슷한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관건은 충분한 돌고래 언어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이 돌고래들의 언어를 분석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미래에 와있는 기분이다. 인간과 돌고래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네이버 동물공감 원문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2903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