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금북정맥 13차(장재~안흥진나루) 충남 태안군.
산 행 일 : 2015. 02. 28.(토)
산행코스 : 장재~매봉산~후동고개~장승고개~죽림고개~지령산~안흥진나루
(산행거리 18km)
산행참가 : 20명.
<산행코스>
오늘의 산행 종착지이며 산경표상 금북정맥의 날머리인 '안흥진(安興鎭)'은 조선시대 각 도의 군사거점에 설치된 군사진영 중의 하나로, 안흥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태안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군사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가까운 안흥항은 교역이 활발하여 문물을 받아들이기 쉬워, 백제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운 창구로써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난해 가을 회사 세미나가 있어서 태안비치cc에 갔던 적이 있었다. 금욜 오후에 도착하여 세미나를 하고, 토욜날 골프를 치고, 안흥항 건너편 신진도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귀가를 했었다. 그런데 그때에 금북정맥이 태안 어디쯤으로 이어진다는 정도만 생각했었지, 내가 간 그곳 안흥이 금북정맥의 종착지인 줄은 전혀 연관시켜 떠올리지를 못했었다. 이번 산행을 준비하여 '어라 지난해 내가 돌았던 그 골프장이네'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금 현재 맞닥뜨린 상황에만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에만 집중하지 않고 미래를 보려고 애쓰는 사람, 주변의 관계만 보지 않고 좀 더 큰 조직과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며 궁극적으로 현명한 관계들을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따르게 되는가 보다. 지난겨울 우리 백두산우회는 1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모르는 사람들이, 단지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만 가지고 10년을 함께하기는 무척이나 드문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마도 이번 금북정맥 마지막 산행을 하면서는 산우회를 유지해 가는 동력과 앞날에 대해 조금은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금북정맥 마지막 산행을 위해 버스에 오른다. 지난번 산행 때만 해도 무척 추운 날씨였는데 아직도 쌀쌀하기는 하지만 춥다는 정도는 아니다. 어느새 봄이 가까워진 건지, 아니면 서울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와서 그러한 것인지, 아무튼 버스에 불이 켜지고 산행 준비를 마친 후 장재 버스정류소에 내리니, 조금은 서늘한 밤공기가 상쾌하다는 느낌을 준다. 산행 들머리인 장재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금북길에 나선다. <장재> 장재 삼거리는 태안읍에서 소원면으로 이어지는 32번 국도와 근흥면 수룡리로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도로 건너편으로 만수가든이 보이고, 우측으로 새마을상회, 삼삼이용원, 합동수퍼가 나란히 있다. 이곳 버스 정류소에서 32번 국도를 따라 만리포 방향으로 200m쯤 이동, 새마을상회를 지나 좌측 임도로 접어들며 산행을 시작한다. 32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끝까지 가면 만리포에 이르게 된다. <만리포> 만리포의 원래 지명은 ‘만리장벌’이다. 조선 세종 때 뱃길로 조선을 찾은 명나라 칙사가 풍랑 때문에 안흥항으로 상륙하지 못하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는 해녀들이 잡아 온 꽃게와 해삼, 전복 맛에 반해 귀국할 때에도 다시 들렀다. 맹사성이 주관하여 역시 해삼, 전복 등을 대접하면서, 명나라 칙사의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송별식을 가졌고, 그가 떠난 백사장을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한 곳이라 해서 ‘만리장벌’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러다가 1955년 서해안 최초로 이곳에 해수욕장을 개장하면서 만리포라 했고, 이후 대천해수욕장과 함께 서해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돌아본 장재삼거리 이정표. 05:00 장재 삼거리를 지나 만리포 방향으로 조금 진행하다가 우측 임도로 들어선다. 05:06 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꽤나 큰 농가가 나오고, 05:08 농가 울타리를 끼고 산길로 들어선다. 05:22 좌측 근흥면 마금리와 우측 소원면 법산리를 잇는 도로를 지나, 05:24 밭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숲으로 들면, 가족묘지가 나오고 묘지 가장자리를 따라 오른다. 05:28 등로는 빼곡한 소나무 숲을 뚫고 이어지더니, 05:31 능선을 넘어서 어린 소나무가 빼곡히 심어진 곳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가,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동하면 묘지가 나오면서, 근흥면 마금리에 있는 농가 뒤편으로 내려서게 된다. 05:32 농가 마당을 통과하여 좌측 진입도로를 따라 지방도에 접속하고, 도로를 따라 좌측 안흥 방향으로 진행한다. 05:35 마금 1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고, <마금리> 마금리는 다른 이름으로 마금동(磨金洞)·마김(磨劍)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곳의 지형을 살펴보면 '주위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서 마치 동네가 온화하고 포근함이 막은 것 같다'하여 우리말로 '막음→마금'이라 부르던 것을, 지명의 한자표기에 따라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취음으로 마금(磨金) 또는 마김(磨劍)이라 기록함으로써 혼동을 가져오게 했다. 많은 인사들이 단순히 이 '마금(磨金)과 마검(磨劍)'의 뜻을 풀이하여, 옛날 이 곳에서 금세공술(金細工術)이 발달했다느니, 또는 군사들이 칼을 갈았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풀이함으로써 견강부회(牽强附會)를 저질렀는데, 이는 모두 막음(원형은「막다」이다)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야기된 것이라고 한다. <펌> 05:41 산행기에서 많이 보았던 라윤목장이다. 라윤목장을 지나 잠시 후 우측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05:43 역시나 들머리가 이내 나타난다. 라윤목장에서 100여m 정도를 진행하다가, 우측으로 보이는 전봇대 옆으로 접어든다. 05:48 603번 지방도에서 숲으로 들어서자 이내 다시 시멘트 포장 농로를 만나게 되고, 농로를 따라 우측으로 3~4분 진행하다가 다시 좌측 산으로 들어간다. 05:54 비교적 짧지 않은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05:58 능선 위로 올라서서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06:02 잠시 능선을 따르다 보니 매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매봉산(102m)>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산으로, 산이라기보다 야트막한 동네 언덕같은 느낌이지만 어엿한 이름도 있고, 금북정맥의 한줄기로 위엄도 갖췄다. 매봉산이란 이름은 주로 높고 뾰족한 봉우리를 가진 산에 붙는다는 생각을 접어야 할 듯하다. 매봉산 좌측으로 표지기들이 달려있는 등로로 접어들어 내려서면, 06:06 가족묘지로 보이는 묘역을 지나게 되고, 06:10 유실수 나무가 식재된 밭 사이로 이어진 농로에 내려서게 된다. 06:13 밭과 농로를 번갈아 걸으며 밤고개에 도착한다. 마을을 잇는 콘크리트 도로를 지나, 적색 지붕 농가 좌측의 밭 둔덕을 지나서 다시 야산으로 접어든다. 06:20 좌측으로 인가가 보이는 숲을 지나면 성황당 고개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올라서니 방화선 임도 같은 황톳길을 걷는다. 오늘 구간은 그리 높지도 않아서 편한 걸음으로 진행한다. 06:28 널찍한 가족묘지를 지나, 또 다른 묘역에, 좌측 능선 방향으로 붙어서 진행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논두렁을 따라 지름길을 택했다가 잠시 길을 잃기도 하고, 앞쪽 농가주택을 지나며 만나는 도로에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능선으로 붙는다. 인터넷 지도에서 현 위치를 보면서 농로를 따라 금북능선으로 향한다. 06:35 근흥면 안기리(좌측)와 마금리(우)를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는 능선에 도착하며, 금북능선에 복귀하여 농가주택과 전봇대 사이를 끼고 우측으로 올라선다. 돌아본 금북능선의 구릉지. 06:42 숲길로 접어들며 만난 묘역에서, 돌아본 동쪽 태안 방향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산행 시작한 지 거의 두 시간여 만에, 주위 사물이 분간되며... 잠시 태안읍 방향의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쉼을 한다. 06:48 이제는 등로가 제법 뚜렷한 산길로 이어지더니, 06:50 부흥산(73m)을 지난다. 지도상으로는 ‘남산’인 듯한데, 박건석님은 지도상과는 달리 부흥산이라 써 놓았다. 06:51 돌아본 태안읍 백화산 방향. 06:55 통나무 밴치가 있는 80봉(남산) 봉우리를 지난다. 봉우리 나무둥치에 '남산'이라 표시된 표지기들이 걸려 있다. 좀 전에 지났던 73봉이 부흥산이고, 이곳이 남산이 맞는가 보다. 07:01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후동고개에 도착한다. 태안군 근흥면 용신리에서 안흥 염전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콘크리트 포장 소로가 지난다. 후동고개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07:02 오늘 처음으로 이정표가 있는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후동고개 들머리로 들어선다. 07:05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07:10 금세 평탄한 능선길로 바뀌고, 07:11 돌탑이 있는 103봉을 지난다. 07:12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백화산 우측 태안읍 위로 아침해가 솟아 올라 있다. 당겨본 2015년 2월 28일의 태양. 07:15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벤치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게 되고, 07:17 좌전방으로 근흥면 앞쪽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근흥면 소재지 방향 조망. 07:20 좌측 태안 방향 조망. 07:22 삼각점이 있는 73.4봉을 지난다. 07:24 73.7봉을 지나 능선을 타고 안부로 내려서면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에 도착하고, 이정표의 면사무소 방향으로 좌틀하여 내려가면 근흥중학교가 있다. 쉼터에서 백사장님이 가져 온 버섯차 한잔을 나눠 마시고, 07:30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근흥중학교에서 조성한 생태정원 정자가 있다. 근흥중학교 뒤편에서 바라본 태안 방향. 07:32 근흥중학교 우측 도로로 내려선다. <근흥면> 근흥면은 본래 태안군 근서면과 안흥면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일본 강점기였던 지난 1914년 일제가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2개 면을 병합하여 다시 근흥면이라 개칭하고 서산군의 관할지역으로 편입시켰다. 근흥이란 명칭은 위의 근서면의 '근'과 안흥면의 '흥'자를 따서 합성 약칭으로 명명한 것인데,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따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써, 75년간 내려오던 서산군의 관할에서 벗어나 다시 태안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흥면의 지형을 살펴보면, 백화산의 한 줄기가 근흥으로 뻗어내려 구수산(145m), 대왕산 (140m), 전막산(121m), 장치산, 건지미산, 응봉 인생산, 형제봉, 지령산 등을 이루어 놓았다. 지령산은 근흥면의 주산인데, 주변으로 뻗어내러 청룡록, 금고도, 구절봉, 노적봉, 영주봉, 석정티산을 이루어 놓고, 다시 한 줄기는 안흥으로 뻗어내려 당봉, 문필봉, 남산봉, 객사봉을 이루어 놓았다. 이와 같이 근흥면은 전면적의 70% 이상이 산지로 되어 있어, 넓은 농경지는 많지 않으나 곳곳에 간척지가 발달되어 있어 소규모의 평야가 펼쳐져 있으므로 영농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근흥면은 3면이 바다에 접해 있는 반도이므로 수산업이 매우 발달되어 있으며, 따라서 안흥항은 지난 1975년에 일종항으로 승격되어 명실상부한 어항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으나, 실은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여송무역선이 드나드는 국제항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07:33 근흥중학교 정문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서서 좌틀하여 진행하다가, 95번 지방도를 따르다가 부동산을 끼고 근흥보건지소 골목으로 들어간다. 07:35 골목으로 들어서니 좌측에 금북정맥 산꾼들에게 굴짬뽕으로 유명한 용현식당이 있고, 우리는 미리 아침식사를 예약해 놓은 성원식당으로 들어간다.
추운 겨울날 신새벽에 산행길에 올라, 야외에서 식은 밥이나 빵으로 때우지 않고 이렇게 뜨듯한 구들장 위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 것은 그냥 행복이다. 행복이란 6천원짜리 백반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이란 반찬이 없이도 하나같이 맛있는 찬과 된장찌개로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상 위에 막걸리도..ㅋㅋ 08:03 행복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금북정맥 마지막 구간을 정리하러 출발을 서두른다. 식당 옆에 있는 근흥면 주민자치센터 앞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금북길 잇기에 나선다. 08:06 좌측에 근흥장로교회가 보이고, 저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근흥장로교회 앞을 지나는 백두들. 08:09 용산 2리 마을회관 앞에서 직진 방향 도로로 진행하고, 뜨듯한 아침식사 때문인지 다시금 힘이 솟는 백두들! 지금 같은 기분으로 안흥나루터까지 쭈~~욱! 스산한 아침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백두들의 함성에 호기심 가득한 백구도 얼굴을 내밀고, 08:11 근흥의용소방대도 지난다. 08:18 읍내 가는 아낙에게 밭에 심어진 것이 마늘인지 양파인지를 물어보고, 구별 못한 백두들은 한참 동안 핀잔을 들으며 걸어야 했다. 채석포와 연포 가는 갈림길로 계속 걸어가고, 08:20 우측으로 잘 지어진 민박집을 지나서, 용새골 용신 2리 방앗간 버스정류소에서 우틀하여 이면도로로 접어든다. 08:23 조금 올라가니 빨간 벽돌 건물인 채석포교회가 나타나고, 좌측 산길로 접어든다. 교회를 지나니 파란색 가건물이 있고, 우측 등로로 진행한다. 08:26 진양정씨 가족묘지를 지나고, 돌아본 근흥면 앞바다에 면한 원안해수욕장. 08:29 다시 소나무 숲을 헤치고 오르니 너덜길이 나타난다. 08:32 너덜길을 지나서 능선 등로로 올라서니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고, 좌측으로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08:42 태풍에 생을 마감한 소나무 아래로도 지나는데, 나무둥치에 115봉 '건지미산'이란 이정표가 걸려 있다. <건지미산(乾芝味山, 115m)> 건지미산은 소원면의 철마산 줄기가 근흥면에서 마금리의 주산인 장티산(蔣峙山)을 이루고, 또 남쪽으로 뻗어내려 안기리와 마금리의 경계에서 전막산(戰幕山)을 이루었는데, 여기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서남쪽으로 뻗어내려 안기리서 여서산(女笑山)을 이루고, 또 한 갈래는 남쪽에서 응봉(鷹峰)을 형성하였다. 이 응봉의 줄기는 안흥 용천동 뒤쪽에 이르러 건지미산을 이룩하고, 또 용신리의 수구에서 3갈래로 나뉘어져, 그중 한줄기가 남쪽으로 가서 국봉산(菊峰山)을 형성하니 이것이 안파주산(安波住山)이 되고, 다시 동남간으로 뻗어내려 인생산(人生山)과 형제봉(兄弟峰)을 이루어 놓았다. 또 한 갈래는 서쪽으로 뻗어내려 정죽리의 중앙에서 융기하여 지령산(智靈山)이 되었는데, 주변의 청룡록(靑龍麓)·금고도(金鼓島)·구절봉(九節峰)·영주봉(瀛洲峰)·노적봉(露積峰)등이 모두 이 지령산 줄기에 있는 것이다. 나머지 한줄기는 서남간으로 길게 뻗어내리다가 도황리와 정죽리의 경계에서 배립(排立)하여 석정티산(石井峙山)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줄기가 안흥성으로 들어와 당봉(當峰)·문필봉(文筆峰)·남산봉(南山峰)·객사봉(客舍峰) 등을 놓으니, 화려함이 마치 물 위에 뜬 연꽃처럼 보인다고 한다. (펌) 08:47 잘 자란 송림으로 이어진 능선길을 따라간다. 그리 높지 않은 구릉 수준의 능선을 가다 보니 백두들의 표정도 평소와 달리 편안해 보인다. 08:54 회장과 미팅 중에 백두들은 스쳐 지나가고, 09:00 오늘 처음으로 암릉도 지난다. 좌측 태안반도 방향. 09:03 조그만 봉우리 하나를 지나고, 09:05 130봉(국봉산/옥녀봉)도 지난다.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연포해수욕장 앞바다의 조그마한 섬도 보인다. 09:07 밧줄 가드레일을 설치해 놓은 내림길이 나오고, 09:10 금북길은 편평한 구릉지를 따라 이어진다. '산책로' 푯말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Y자 갈림길에서 좌측 길을 따르면, 09:12 참호가 있는 언덕을 넘게 되고, 09:14 이내 밭 옆으로 이어진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모처럼 우측 방향으로도 시야가 트이며 바다 건너 만리포가 있는 소원면이 조망된다. 09:16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연포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지나는 장승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날머리에는 옥녀봉 탐방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고, 도로를 따라 좌측 연포 해수욕장으로 조금 진행하면 우측에 들머리가 있다. <장승고개> 태안군 근흥면 도항리에 있는 고개로, 안흥만으로 가는 603번 지방도에서 가지를 쳐서 연포해수욕장 가는 도로가 지난다. 고개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이 서 있다. 우측의 장승을 지나 밭 끝 지점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처음 보는 산꾼을 쳐다보는데, 근엄해야 할 장승의 히죽 웃는 모습에서 장난기가 묻어난다. 09:18 돌아본 장승고개. 09:21 장승고개 들머리를 들어서니, 잠깐의 짧은 구간이지만 나무들이 쓰러져 있어서 걷기가 무척 불편하다. 09:22 잠시의 험한 금북길을 따르니, 소나무 둥치에 금북정맥 이정표가 달려 있다. 09:24 근흥면 도황리 외야골로 내려선다. 뒤돌아 보니 소나무숲 옆으로 연포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포해수욕장(戀浦海水浴場)> 태안읍 서쪽 9㎞ 지점에 있으며 근흥면에서 l.5㎞ 거리에 위치해 있다. 태안∼당진을 잇는 국도와 서산∼연포간 도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1967년에 개장되어 1972년부터 삼성그룹이 고급 휴양지로 조성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개발한 해수욕장이다. 백사장 길이 1.6㎞, 폭 200m이며 수심이 얕고 경사도 완만하여 해수욕장으로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1980년대에 가수 하춘화가 부른 연포아가씨로 유명한 해수욕장이다. 09:27 콘크리트 도로를 건너 올라서니, 이곳도 조만간 정맥길이 끊어질 듯싶다. 아마 땅주인이 밭을 개간하려는지 숲을 모두 밀어 놓았다. 돌아본 옥녀봉 방향. 09:34 대나무 숲으로 들었다가 잠시 오르니, 88봉 정상에 도착하니, 우전방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 할 지령산 정상부의 모습이 보인다. 09:39 88봉에서 내려서니 콘크리트 농로와 만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도황리 양쪽 마을을 잇는 황골고개에 도착하고, 전방에 보이는 대나무밭 좌측 도로로 잠시 진행하다가 전봇대를 지나 우측으로 올라간다. 우측 여우섬 마을 전경. 09:42 돌아본 88봉 방향. 09:45 조그마한 언덕 상단에 올라서니, 희미해진 등로 한켠에서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다. 09:49 가끔씩 보이는 표지기를 따라 어지러운 구릉지대를 진행하면, 09:55 희미한 족적이 이어지는 능선을 따른다. 09:57 능선인지 구릉인지 분간이 어려운 가운데 길 흔적만 따르다 보면, 10:07 삼각점이 있는 87봉을 지나고, 10:11 잠시 더 어지러운 숲길을 진행하면, 10:14 죽림고개 직전 절개지 상단에 서게 된다. 절개지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도 되지만, 그냥 절개지를 타고 내려서도 된다. 좌전방으로 가야 할 지령산이 다가와 있고, 죽림고개 절개지 좌측 사면으로 내려온 백두들이 지령산 들머리로 향하고 있다. <죽림고개(竹林峙)> 태안군 근흥면 죽림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그 아래에는 죽림마을이 있고 죽림지(竹林池)라는 꽤나 큰 저수지가 있다. 예전에 이곳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림이라 불리웠나 추측을 해 본다. 죽림고개에서 바라본 정죽리 마을과 안흥초교. 10:17 603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우측 국방과학연구소 도로를 따라 지령산으로 향한다. 603번 지방도에서 국방과학연구소 진입도로로 들어서는 백두들. 세명놀기. 10:27 지령산 정상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도로를 따르다가 좌측의 128봉을 올랐다가 이곳으로 내려와야 하지만, 금방 다시 도로로 내려서야 하므로 그냥 편한 길로 진행한다. 10:33 골프장 관리동 진입도로 갈림길에서 잠시 좌측 골프장 진입로에 들어서면, 골든베이 골프장 관리동과 골프장이 내려다 보이고, 앞쪽 바다 건너편으로 소원면 파도리가 아련히 보인다. 소원면 서남쪽 끝에 위치한 저곳은 해안 주변이 험악한 암벽과 울창한 산림으로 이루어진 돌출 지역으로, 파도소리에 맞추어 갈매기 소리와 산새 소리만 들리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지역이지만, 파도와 암초가 심하여 이곳을 항해하던 많은 선박들이 침몰을 당한 지역이기도 하다. 골든베이 골프장 전경. 골프장과 바다를 보며 지고 온 따뜻한 차를 나눠 마신다. 10:43 바다 건너 파도리를 배경으로. 10:49 잠시의 쉼을 뒤로하고 국방과학연구소 정문 방향으로 진행한다. 10:56 국방과학연구소 정문 앞에 선다. 지령산 정상은 국가 주요시설물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정상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정문에서 좌측 철조망을 끼고 한참이나 돌아서 가야 한다. <지령산(知靈山, 218m)> 태안군 근흥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주위의 전망은 정말 좋은 곳인데 정상은 군사시설이 차지하고 있어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예로부터 이곳은 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산세가 지렁이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지령산이라고 하지만, 풍수학적으로는 지룡산(地龍山, 지렁이신의 산)이라고 한다. 야산에 불과한 이 산은 인근의 안흥항과 신진도항은 물론 연포, 몽산포 등 수많은 해수욕장을 낀 태안반도의 푸른 바다와 안면도의 수려한 수림을 조망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충북 진천을 지나 천안의 위례산, 취암산을 거쳐, 공주의 국사봉 등을 지나 홍성, 보령의 오서산에서 북서진 한다. 서산시 팔봉면의 팔봉산에서 기수를 틀어 서남진한 금북정맥은 지령산에서 그 수를 다하는데, 육로에 지친 나그네가 수려한 바다의 풍광을 즐기며 시름을 덜기에 이만큼 좋은 곳도 드물 듯하다. 11:00 연구소 울타리를 따라 진행하는 백두들. 11:01 길게 이어지는 철망울타리를 계속해서 따르다가 좌측 아래로 내려선다. 좌전방으로 안흥만의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안흥만과 신진도와 신진대교 그리고 태안비치CC의 모습. 군부대 너덜길에서 바라본 143봉의 모습. 군부대 철조망에서 바라본 전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다. 143봉 너머로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로 추측되는 섬도 보인다. 11:04 오늘 금북정맥의 피날레를 장식할 갈음이해수욕장과 127봉 조망. 연구소 울타리를 뒤로하고 비탈면을 내려서면, 군부대 철망이 앞을 막아서고, 철망을 따라 우측으로 내려간다. 11:07 울타리 끝 지점에서 철망울타리를 따라 좌틀하여 진행한다. 다시금 울타리를 따라 앞쪽 능선까지 진행하여 우측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측 파도리 통계항 방향 조망. 11:09 철망 울타리를 따라 지령산을 내려서는 백두들. 11:13 군부대 철조망을 내려오다가, 끝지점 가기 전 능선 마루에서 우측 등로로 접어든다. 11:21 갈음이 고개 직전 생강 저장굴에서 잠시 쉼을 한다. 갈음이고개에 내려서니, 좌측으로 단정하게 지어진 한옥이 내려다 보이고, 11:23 갈음이고개에서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여, 143봉 오름길을 시작한다. <갈음이 고개> 안갈음이와 바깥갈음이를 연결하는 도로로, 좌측은 태안비치CC로 통하는 콘크리트 도로가 있고, 좌측에는 숭모당이 있다. 금북정맥의 마지막 고갯길이다. 갈음이고개를 통과하는 백두들. 금북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27봉 방향. 11:34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치면 143봉에 도착한다. 143봉 정상에는 군시설물 인듯한 전기시설과 전선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정상 우측 편 낭떠러지 아래로 바다가 펼쳐진다. 정상 나뭇가지에 '노적봉(143m)'이라는 표지기도 결려 있다. 11:45 잠깐의 쉼을 하고 143봉을 뒤로한다. 11:48 금북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27봉과 갈음이해수욕장 모습. 127봉 우측 뒤쪽이 신진도이다. 신진도 조망. <신진도> 신진도는 1.43㎢ 크기의 섬으로, 신진(新津)이라는 유래는 육지와의 내왕을 위해 새로 나루를 개설하여 '새나루'라 호칭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함에 따라 그대로 신진이 되었다. 신진도는 지금도 신진 신항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신진항은 2종 항구로 많은 어선이 정박하므로, 신진수협 공판장에서 싱싱한 수산물을 구할 수 있다. 신진도는 1995년 연육교로 안흥항과 연결되었으며, 마도와도 붙어 있다. 신진도 방파제에서는 여름과 가을 학꽁치 낚시가 잘 되며, 마도와 신진도에서 갯바위낚시를 하는 낚시인도 많다. 안흥에서 신진도 안쪽을 내양(內羊)이라 하고, 신진도에서 가의도 안쪽을 외양(外羊)이라 하는데, 이곳을 경유하여 지나는 배들이 관수각(官首角, 지금의 관장항 또는 꼬챙이) 앞에 와서는 침몰을 많이 당하였다 한다. 그리서 고려 때부터 이곳의 재난을 면하여 볼 목적으로 근흥면 정죽리의 지령산(智靈山)에 '안파사(安波寺)'라는 절을 건립하고 항해하는데 안전운항이 될 수 있도록 파도가 잔잔하기를 빌었다고 하며, 절의 이름도 '安'(편안 안) 자와 '波'(물결 파) 자를 넣어 '안파사'라 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곳의 지명도 '安'(편안 안 ) 자를 넣어 안흥양(安興梁)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사람이 살지 않았던 꼬챙이 주변도 사람이 사는 포구인 안흥항에 포함되었음이 확실한 듯하며, 파도가 하도 심하여 이름을 파도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험난한 곳이지만, 해안에는 보리수, 머루, 다래 등 산 과일이 많고, 또한 경치가 아름다워 근흥면의 안기리에 거주하던 이기훈씨가 이 주변의 산을 매입하여 이곳에 별장을 짓고 석탑까지 세워 자녀들의 교육 겸 휴양지로 사용하였는데, 그의 형인 이기석(李基奭)(1857~1947)씨가 전라북도 고창군수를 지내다 조선조 말엽에 태안군수로 전임 발령되어 부임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태안군수로 부임한 이후에도 그를 부를 때는 항상 '고창'영감으로 불렀으며, 그 고창영감이 동생의 별장인 이곳에 와서 가끔 피서를 즐기기도 하였는데, 그때부터 이곳을 '고창영감'의 휴양지라 하여 '고창목' 또는 '고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 말은 '꼬창목'이라 변하여 부르게 되었으며, 이 '꼬창목'은 다시 '꼬챙이'라고 변하게 되어, 오늘날까지도 '꼬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육지가 꼬챙이처럼 바다 쪽으로 뾰족하게 뻗어나가 있어서 '꼬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11:54 갈음이해수욕장 백사장으로 내려선다. <갈음이해수욕장> 갈음이해수욕장은 소나무숲과 모래사장이 있는 조그마한 해수욕장으로, 철이른 탓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고 갈매기만 노닐고 있다. 이곳 갈음이 해수욕장에서는 많은 폐인을 양산했던 드라마 '다모'의 두 남자 주인공이 마지막 결투를 벌였고,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병헌과 이은주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왈츠를 췄던 곳이라 한다. 정맥길에 해수욕장 증명사진은 처음이자 마지막 일듯..ㅋㅋ 모래사장에 우리의 흔적을 남겨 보기는 한다. 11:58 백사장에서 다시 금북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27봉으로 향한다. 갈음이해수욕장을 뒤로하는 김 지점장님. 127봉 들머리는 갈음이해수욕장 건너편 끝자락에 있다. 12:01 돌아본 갈음이해수욕장과 147봉. 12:03 조금 올라서니 군부대 폐막사가 나타나고, 군부대 폐막사 뒤편으로 127봉 오르는 들머리 철조망에는, 이곳을 지나간 산꾼들이 걸어둔 시그널로 가득하다. 12:11 해발 0에서 오르는 127봉 오름길은 제법 가파르게 이어지고, 12:16 마침내 금북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27봉 정상에 도착한다. 금북정맥의 마지막 봉우리 표지기도 담아보고, 일찍이 보지 못했던 정상주도 한순배씩 돌린다. 12:27 올랐으면 내려야 하기에, 127봉을 뒤로하고 금북정맥을 마감하려 하산길을 채촉한다. 12:28 오름길만큼이나 내림길도 가파르게 이어진다. 우측으로 멋진 해안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잠시 편안한 소나무숲길도 지나면, 앞쪽으로 태안비치CC가 펼쳐진다. <태안비치CC> 태안군이 유치한 민자 1호 사업인 태안비치CC는 안흥항 인근 폐양식장 약 66만㎡를 매립하여 만든 정규 18홀을 갖춘 해변 골프장이다. 12:33 금북정맥의 종착지인 안흥진 팔각정에 도착한다.
고난한 금북정맥 종주를 마친 백두들! 바다 건너로는 신진도가 보이고, 이제 금북정맥은 서해로 스며든다. 12:35 기념촬영을 위해 팔각정을 내려서는 백두들. 금북정맥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린다. 금북정맥 종주를 마친 백두들! 함께하여 행복했습니다! 12:43 금북정맥을 졸업하고, 태안비치CC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백두들. 골프장 숙박시설인 카밀리아하우스 뒤편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12:45 기다리던 우리의 애마에 오른다. 12:56 금북정맥의 흙먼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안흥항으로 이동하여, <안흥항(安興港)> 예전 서해의 큰 항구였던 안흥진(安興鎭)은 서해로 내달리던 금북정맥이 내포 지방을 지나 바다로 빠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빚어 놓은 나루다. 지금은 서해에 접한 작은 어촌이지만, 백제 시대에는 당나라와의 교역으로 크게 번창했던 항구였다. 안흥항 앞바다는 물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해역으로, 이 곳은 지나기 어렵다 하여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렀는데, 나라의 세곡을 실은 배들이 자꾸 조난을 당하자 조정에서는 평안한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이름을 안흥량(安興梁)이라 바꾸었고, 이 곳 지명도 자연스레 안흥으로 불리게 되었다. 13:55 금북정맥 졸업기념 파티를 위해 따로이 떡과 음식을 마련하여, 제일횟집이라는 식당으로 찾아들어, 추운 겨울철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음식을 앞에 놓고, "행복합니다"를 외친다. 동안 고생 많으셨고, 함께해서 늘 감사드린다. 15:45 금북정맥 종주 기념 파티를 미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신진대교 아래로 태안비치cc가 보인다. 차가 없었으면 이곳으로 걸어와야 했을 텐데. 20:55 오늘은 양재가 아닌 영등포로 직행하여 못다한 예기를 나누고, 21:53 이제는 한남정맥으로 향한다. 우리가 걷는 분수령은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약간의 바람에도 완전히 다른 노정이 펼쳐지게 한다. 또한 떨어진 빗방울에 어느 쪽을 많이 깎아 내느냐에 따라 길이 달라지고 땅덩이도 달라진다. 잘잘못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늘 포용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