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하면 驚氣를 일으키는 내가 NBA나 메이저리그 경기에 매니아인 양 광분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된다는 친구들이 있다.
사실 나도 잘 설명할 길이 없다.
마치 개는 싫어하는데 개고기는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 것 이외에는.
내가 중,고교시절을 보내던 당시 내가 살던 충주에는 서울처럼 스포츠신문을 판매하던 가판대도 하나 없었고, 스포츠신문 및 잡지를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아!! 한 곳이 있었다. 충주 제일 번화가인 국민은행 앞에 무인 신문 판매대가 있었는데, 가끔씩 스포츠 신문이 꽂혀 있었다. (아마도 창간한 지 얼마 안됐던 스포츠서울이었던 것 같다.) 가끔 난 등굣길에 10원을 넣고 누가 볼세라 자전거 페달을 부리나케 밟아 도망간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충주를 벗어날 일이 별로 없던 난 그래도 터미널을 거의 매주에 한 번 꼴로 달려갔다.
신간잡지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거기에서 날 반기며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주간야구'란 잡지였다.
거기엔 장효조, 이만수, 최동원의 뒷얘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그보다 더한 재미는 충주에선 접할 수 없던 미국, 일본야구를 접하는 거였다.
한국프로야구 초창기 나름대로 한국야구의 계보 및 야구룰에 대하여 줄줄이 꿰고 있다고 그 또래들 사이에선 자타로부터 인정을 받던 내가 해외야구로 눈을 돌리게 된 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았을까!
당시 그 곳에는 마크 맥과이어, 로저 클레멘스, 호세 칸세코의 신인시절이 있었고,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발표한 토니그윈과 칼 립켄 주니어의 전성기가 있었다.
또한 당시 팽팽하던 드와이트 구든이 세월의 무게앞에서 요즘은 초라해졌다지만, 거기에는 감히 30대후반을 노장이라 부르기 쑥스럽던, 정말 완숙함으로 아름답던 놀란 라이언의 끝없는 삼진 퍼레이드가 있었다.
스무살 처음 서울 생활을 시작할 무렵, AFKN에서 스포츠 빅이벤트를 중계하는 것을 보며
'내가 학창시절 서울에서처럼 AFKN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나의 인생은 바뀌었을까'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전통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팀은 강력한 타력을 지닌 팀이다.
그래서 작년도 최고의 경기로 꼽는 것은 클린블랜드가 시애틀에 14:2로 뒤지다 연장에서 16:14로 뒤집은 경기다. 그만큼 클리블랜드의 강타선을 좋아했으며, 시즌 후 박찬호 영입에 힘을 써 주길 기대했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로베르토 알로마, 후안 곤잘레스, 짐 토미로 이어지는 최강타선의 주역들중 짐 토미를 제외한 두 명을 트레이드 시킨 후 과연 올 시즌을 어떻게 끌고 가려는지 의문이 생기는 팀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박찬호의 텍사스 알링턴구장으로의 입성은 내가 바라던 바이다.
내가 박찬호의 텍사스행을 두 손을 들어 반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솔직히 난 박찬호의 20승여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그 강타자들의 경기를 적어도 5일에 한 번씩은 관전할 수 있다는 이유로도 충분히 흥분된다.
물론 박찬호 입장에선 LA시절의 물방망이 덕분에 승리를 날려버린 억울함을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회 초 첫 타자인 카탈라노토가 단타 등으로 출루하기라도 한다면 상대팀 투수는 경기시작과 동시에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 뒤를 받치는 타선은 정말 무섭다는 표현이 간결하지만 가장 어울린다.
연봉 2천 5백만 달러를 10년간 받는 리그 홈런왕이자 최고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즈.
앞으로 2~3년은 현역 선수로 더 뛸 수 있는 공수 최고의 1루수 라파엘 팔메이로,
매년 100타점 이상을 충분히 뽑아내는 타점 기계 후안 곤잘레즈,
공격, 수비, 주루,파워, 스피드.5개부문에 걸쳐 포수가 지녀야 할 모든 것을 갖춘 메이저 리그 최고의 포수 이반 로드리게즈. 박찬호는 이반 로드리게스와 배터리를 맞춘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성질은 좆같지만 공격과 스피드는 가공할만한 스위치 히터 칼 에버릿.
어떤가??
이들이 펼칠 대포놀이에 가슴이 막 설레어오지 않는가?
아메리칸 리그의 서부지구는 워낙 강팀들이 자리한 곳이라 쉽게 우승을 점치기는 힘들다. 따라서 팀순위다툼이 가장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디비전이기도하다
작년에 비해 훨씬 보강된 텍사스에 비하면 다른 두팀의 전력은 그리 보강된 것은 없어보
인다.
사실 시애틀이 작년과 같은 기적적인 승수를 쌓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테고(블럭버스터 영화의 속편은 늘 그저그렇듯이),
오클랜드 역시 영건 3총사가 싱싱한 어깨를 지니고있다고 하더라도(만일 3년후에도 이런 원-투-쓰리펀치를 지닐 수 있다면 무조건 우승에 돈을 걸어도 좋으리라) 지암비와 데이먼의 이적은 단순히 거포와 톱타자를 잃은 것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으로, 늘 이 지구의 만만한 팀이던 애너하임은 에이피어와 애런 실리를 보강했다곤 해도 지구우승을 욕심내기엔 무리일테고 여전히 4위는 이 팀의 차지가 될 것같다.
이토록 같은 지구엔 오클랜드와 시애틀이란 강팀이 도사리고 있기에,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쉽게 지구 우승을 장담할 수 없으나, 에이로드-곤조-이반-팔메이로-찬호가 있을 때 우승해두지 않으면 텍사스의 21세기는 정말 더욱 암담해질 것이다.
찬호 개인적으로도 반지의 꿈은 더욱 더 멀리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텍사스의 불방망이들이 그 뜨거운 사막의 기온만큼이나 화끈하게 터질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