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31)
〇 83항. “우주의 여정의 목적지는 하느님의 충만 안에 있습니다. 보편적 우주적 성숙의 중심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충만에 도달해 계십니다.53) … 다른 피조물들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가 아닙니다. 반대로, 피조물은 모두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품으시고 비추시는 초월적 충만 안에서, 공동의 목적지인 하느님을 향하여 진보하고 있습니다.…”
☞ 교황님은 각주 53)에서 “이 관점 안에 떼야르 드 샤르댕(1881-1955) 신부의 공헌이 자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회 수사신부이며 지질학자였던 샤르댕 신부님은 과학과 신앙의 조화에 힘쓴 예언자적 신학자셨는데요, 생전에 그분의 사상은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면서 경고받기도 했지만, 신부님의 선구적 혜안은 점차 인정되었고 이제 드디어 교황님 문헌에 인용이 되었습니다.
샤르댕 신부님은 “창조적 진화론”을 주장하였는데,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화는 물질이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출현(첫 번째 임계점)과 인간의 출현(두 번째 임계점)에 이어 진화는 세 번째 임계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데, 이것이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로서, 이는 장차 인류와 우주가 도달할 미래의 상태입니다.
‘오메가’는 ① 진화가 도달하는 미래의 종국점 ② 모든 차원에서 진화를 이끌어가는 에너지의 근원 ③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즉 오메가는 진화의 완성자이며, 진화를 질서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미래에 완성될 진화의 궁극적 오메가이면서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진화의 중심입니다. 그리스도는 세계를 초월하지만, 육화하시어 세계 안으로 들어오셨고 세계의 일부가 되셨습니다.
샤르댕 신부님은 내몽골의 오르도스 사막을 탐험하다가 미사를 드릴 빵과 포도주가 떨어지자 다음과 같이 기도드리며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출처: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주님, 이번에는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이 찬란한 빛을 내며 떠오르면, 그 아래 살아 있는 땅의 표면은 다시 한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며 또다시 그 두려운 노동을 시작합니다. 오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 낼 소출들을 저의 이 성반(聖盤)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 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聖爵)에 담겠습니다.
이제 곧 지구 곳곳으로부터 올라와 ‘영’(靈)을 향해 모아질 온갖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속, 그것이 저의 성반이며 성작입니다. 새날을 맞이하라고 지금 빛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들과 신비로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이 하루 동안 더욱 커질 모든 것들. 이 하루 동안 더욱 작아질 모든 것들. 오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들까지도 주님, 이 모든 것을 한껏 저의 품속에 끌어모으려 하는 것은, 그것들을 당신께 봉헌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저의 봉헌물이고, 당신께서 바라시는 단 하나의 봉헌물입니다…. 주님, 저희를 ‘하나’가 되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