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인대회
심영희
어제는 강원문인대회가 강릉에서 개최되어 다녀왔습니다. 10시가 행사 시작인데 집에서 동생과 함께 7시에 출발했지요. 고지식한 성격에 도로에 정해진 K로대로 지켜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답니다.
처음 가본 곳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e-zen,
집 떠나 강릉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집에 가고 싶어 매일 울면서 살았던 제2의 고향 강릉, 대관령을 사이에 두고 강릉과 횡계를 오가던 6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1부 행사 출판기념회와 작고문인 심포지엄이 끝나고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1부 행사가 끝나면 먼저 가는 회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도 동생과 점심을 먹은 후 먼저 빠져나와 강릉시내 교동에 사는 남동생네 집에 들려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눈 후 동생과 올케가 저녁으로 회를 사준다고 하는데 점심에 회덮밥을 먹었다고 하여 함께 대관령을 넘어 고향 횡계에 도착해 어린 시절 뛰어놀던 집터에 차를 세우고 동생 차를 타고 조카가 카페를 개업하기 위해 준비 중인 곳에 갔는데 아직 공사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함께 횡계에서 저녁을 먹고 마침 동생이 세놓은 상가 중에 무인카페가 있어 그곳 카페에서 못다한 얘기를 나누고 6시 30분에 고향의 정취를 뒤로하고 횡계를 출발해 춘천으로 왔습니다.
저 혼자 같으면 거의 행사를 끝마치고 오는데 동생이 함께 갔기에 장거리 나들이가 쉽지 않은 동생을 위하여 문학행사는 1부 출판기념회만 참석하고, 2부 시상식과 3부 시낭송대회는 나중에 "강원문협"카페에서 보기로 하고 그 시간을 가족들과 즐겁게 보냈습니다.
저는 이 문학지에 "머리염색을 하면서"라는 수필을 시인인 동생은 "시인이 시인에게" 라는 시를 실었습니다.
<수필>
머리염색을 하면서
심 영 희
코로나시대에 살면서 미장원에 가는 것도 예전처럼 쉽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머리를 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하는 것도 어색할 것 같고 남의 눈총도 받을 것 같았다.
그래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낸 것이 단골미장원에 사람이 없는 시간을 택하여 가는 것이 그래도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오산이다. 처음 미장원에 들어갈 때는 다른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가는데 중간에 손님이 오는 날도 반은 되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미장원 손님들은 단골이다 보니 주인은 마스크를 썼어도 손님들은 머리를 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은 상태인데 아는 집이라 마음이 편해서인지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이야기 삼매경이다.
불안한 마음을 느낀 나는 슬며시 옷자락을 잡아당겨 코와 입을 가리고 앉아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내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얘기를 한다. 남자보다 여자손님이 더 많은 미장원에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정치이야기, 이웃집 험담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예전에는 교회가 더 많은가 다방이 더 많은가 하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사였는데 지금은 교회에 비해 카페가 엄청 많이 늘어났지만 그에 못지않게 미장원도 무시 못할 숫자로 늘어났다. 같은 건물에 미장원이 함께 있는 곳도 있거니와 같은 동네에도 미장원이 많이 생겼다. 나름대로 단골손님이 있겠지만 이것 또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
코로나시대의 미장원은 음식을 먹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바이러스는 콧속에 잠식하고 있다는데 머리를 할 때 대부분 마스크를 벗기 때문이다.
또다시 생각해낸 것이 미장원에 갈 때 마스크를 쓰고 머리를 하려고 쓰고 버려야 할 마스크 몇 장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었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할 때 쓰고 머리를 다한 다음에 버리면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머리 파마를 하던 날 손님들이 모여 앉아 떠들던 모습이 떠올라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른 손님이 마스크를 안 쓰고 계속 얘기를 한다고 해도 말릴 자격이 없으니 내가 조심하는 길뿐이 없다. 그래서 내가 마스크를 쓰고 미장원에 가려고 마음 정했었는데 오늘도 그냥 안전하게 집에서 혼자 염색을 했다.
미장원에서 미용사가 해준 것처럼 머리 뒤까지 골고루 염색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나름대로 왼쪽, 오른쪽, 앞뒤를 갈라 골고루 염색 약을 발라준다. 반백이 넘으면 흰머리가 생기니 머리염색을 안 하면 흰머리를 이고 다녀야 하니 흰 머리가 어울리는 사람도 더러는 있지만 대부분 늙어 보이고 추해 보이기 때문에 귀찮아도 염색을 하는 것이다.
미장원에 가서는 돈만 내면 염색이든 파마든 머리까지 감겨주는데 집에서 염색을 하면 약값만 들어가니 돈은 적게 들어가서 좋은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염색 약을 섞어 머리에 골고루 발라줘야 하고 머리를 감을 때 목에다 수건을 감고 감으니 목으로는 물이 들어가지 않는데 염색 물이 흘러 눈으로 들어간다. 염색 약 때문에 눈이 나빠진다는데 그렇다고 안대를 하고 머리를 감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래저래 미장원을 찾게 되는데 코로나가 겁이나 집에서 염색을 하려고 저녁을 먹은 뒤 동네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염색 약과 몇 가지 물건을 사가지고 왔는데 며칠 후 그 마트 직원 중에 코로나확진자가 발생했다고 그 기간에 다녀간 사람은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문자를 받고 말로만 듣던 “드라이브스루”라는 행렬에 끼어 2시간을 소비했다. 30분 쇼핑하고 확진자가 발생하기 이틀 전에 마트에 다녀온 불운으로 두어 달 넘게 그 마트에는 가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더 억울한 것은 이번에 사온 제품은 세 번을 염색할 수 있도록 1제 2제가 세 봉씩 여섯 봉이나 들어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약을 확인하고 1.2제를 섞어 염색 약을 바르고 40분 후에 머리를 감았는데 이게 웬일이냐, 머리에 물이 들지 않아 흰머리 뿌리가 그대로 있었다.
불량제품을 팔았다고 투덜대며 남은 염색 약과 잘라 쓴 약 비닐봉지를 케이스에 넣어가지고 마트 개장시간인 10시를 기다려 마트에 갔다. 이렇게 불량품을 팔면 어떻게 하느냐며 남은 약과 어제 저녁에 받은 영수증을 민원창구에 내밀고는 모자를 벗어 내 머리를 보여주며 물이 하나도 안 들었다고 설명했다.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은 염색 약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1제와 2제를 섞어야 하는데 1제는 3봉이 그대로 있는데요 하는 것이다. 어머 내가 1제대신 린스를 섞어 염색을 했나 봐요.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웃어버렸다.
염색 약 케이스 안에 1제 세 봉 2제 세 봉 린스 한 봉이 들어있었는데 1제와 2제를 섞는다는 게 2제 한 봉에다 린스를 섞어 머리에 바르고 40분을 기다렸던 것이다. 염색 약을 제대로 확인 못한 내가 마트직원 보기 창피하기도 했지만 머리에 물들기를 바라며 기다린 40분의 시간이 더 아까웠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새벽 똑 같은 절차를 거쳐 머리염색을 했다. 내 실수로 3회분의 염색 약은 2회뿐이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경험자는 말한다’고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안 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며 거울을 본다.
어제의 실수가 생각나 자꾸 웃음이 나온다. 실수는 했을망정 코로나시대에 미장원보다는 집에서 염색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마음 편하다. 그 편한 마음에 돌을 던진 것은 그 다음날 대형마트에 다녀간 사람은 코로나검사 받으라는 문자메시지였으니 또다시 황당했다. 엊그제 저녁에 염색 약을 사러 가지 말고 그냥 미장원에서 염색을 할걸 하는 후회도 되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어제도 마트에서 염색 약을 사와서 오늘 새벽 흰머리에 갈색 염색을 했다. 미장원보다 우리 집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시>
시인이 시인에게
심순덕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고 쓰신
정호승 시인님
공연히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지 말라구요
그럴 줄 알면서도
만지작대며 자꾸 쳐다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쓸쓸하대서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요?
나만 외롭고 쓸쓸하다면
힘에 부쳐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고독을 자처하던 젊은 날들이 아련한 날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과
기운달이 그리운 오늘
엄마가 보고파서 그냥 웁니다
강원문인협회 회원들이 7~80세를 넘은 회원이 많아서 타계하신 문인도 많습니다. 그중에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작고문인 박유석(남) 시인. 이충희(여) 시인 작품활동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